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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24화 (24/69)
  • 수면 밑에서(2)

    수면 밑에서(2)

    최진웅의 그림자에 분신을 숨겨 놓는 것으로 싸울 준비를 마치긴 했지만, 아무래도 고아원이 신경 쓰인다.

    아이들이 대피했다고는 하나, 싸우기에는 썩 좋지 않은 상황.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억지스러운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나, 참. 또 뭐라고. 폭행이요? 증거 있습니까?”

    이 산골에, 내가 얼마 전에 달아둔 것을 제외하면 CCTV 같은 건 없다.

    당연히 맞은 놈들의 증언을 제외하면 증거는 없지.

    나는 그걸 이용해 배짱을 부렸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빠르게 골드 몽키 길드원의 수와 수준을 살폈다.

    대부분 나보다 약한 녀석들이겠지만, 문제는 저 많은 수를 몇 안 되는 투견 길드 사람들과 나만으론 다 막기 힘들다는 것.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골드 몽키 길드의 마스터, 최진웅이다.

    녀석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내가 수준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물론 내 그림자 분신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약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최진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호. 증거라? 뻔한 레파토리지. 근데 네가 보기에는 내가 무슨 청렴한 대법관처럼 보이냐?”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 기억으로는 그분들, 저기 비탈길 내려갈 때 구르시던데요? 제가 때린 게 아니라요.”

    “······굴렀다고?”

    “뭐, 돈 받아서 신이라도 나셨는지, 비탈길을 덩실덩실 뛰어 내려가다가 한 명 구르니까 우르르 구르더라고요.”

    “저런 개새끼가! 들을 필요 없습니다, 형님!”

    내 말에 박대수가 악을 질렀고, 최진웅은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젠장, 역시 안 먹혔나?

    내가 가진 모든 아이템과 스킬을 사용한다면 녀석과의 승부에서 승기를 잡거나 적어도 내 몸 하나는 빼낼 수 있겠지만, 문제는 고아원이다.

    싸움의 여파로 고아원에 피해가 가면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다.

    젠장, 역시 확실하게 해결하려면 투견 길드의 지원이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최진웅이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와 멈췄다.

    고작 한 발자국을 남겨놓고 대치한 상태로 놈이 물었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럼 생각해보죠. 이제 0층을 벗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내가, 그쪽 길드 과장이라는 사람을 두들겨 패는 건 말이 되고?”

    내 물음에, 최진웅이 박대수를 바라보았다.

    상식선에서, 이제 갓 1층에 올라간 등탑자가 두 달 만에 레벨 29의 박대수를 때려잡는 건 불가능하다.

    그 말은 설득력이 있었는지, 최진웅은 잠시 말이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좋아, 어느 정도 먹힌 것 같으니, 한 발자국 더 간다.

    “박대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참 무능한 부하를 두신 것 같은데.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닐까요? 이참에 물갈이하시죠. 사업 번창을 위해서라도.”

    내 말에 최진웅이 씩 웃었다.

    “내 몽둥이 앞에서 이렇게 길게 나불대는 놈은 또 처음 보네. 우리 고객님, 생각보다 깡 있는 친구였구만?”

    터억.

    최진웅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속삭였다.

    “그 깡, 마음에 들었어. 하지만 말이야······ 이쪽은 가오란 게 있어서 말이지. 받을 건 받아야겠어.”

    그와 동시에 녀석의 손이 높게 올라갔다.

    나는 내 뺨을 노리고 날아드는 그 손을 잡아챘다.

    콱!

    최진웅이 나를 얕보고 힘 조절을 한 건지, 생각보다 손쉽게 놈의 손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놈은 잠시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인상을 구겼다.

    “잡아?”

    힘을 뺐다고는 하나, 탑의 1층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는 등탑자에게 잡혔다는 사실은 충분히 자존심이 상할 일.

    최진웅은 주저 없이 무기를 휘둘러왔다.

    파앙!

    나는 빠르게 몸을 굴려 자리를 벗어났다.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리 빠르고 예리한 일격이긴 하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최진웅의 몽둥이가 계속해서 허공을 갈랐다.

    팡, 파앙!

    놈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며, 슬슬 피하는 것도 버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등에 멘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녀석의 몽둥이를 막았다.

    카앙!

    검과 쇠몽둥이가 부딪치며 큰 소리가 울렸다.

    그간 레벨이 꽤 오른 데다가 내 검에는 충격을 완화해주는 스킬이 달려있는데도 팔에 저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역시, 보통 실력이 아니다.

    캉, 캉!

    다행인 건, 힘에서는 밀리지만 반응속도는 내가 조금 더 빠르다는 것.

    공격을 흘리고 피하는 식으로 녀석의 체력을 빼놓으면 언젠가 반격의 기회가 오겠지.

    그게 내가 여태껏 나보다 강한 상대로 싸우며 배운 팁이었다.

    “미꾸라지 같은 놈······.”

    그러나 최진웅도 내 노림수를 눈치챘는지, 자세를 낮추고 양손으로 몽둥이를 쥐었다.

    마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걸 보니, 스킬을 사용하려나 본데······.

    “이것까지 꺼내게 하다니. 제법이었다, 꼬마야.”

    최진웅은 씩 웃으며 달려들더니 몽둥이를 횡으로 휘둘러왔다.

    여태까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단순한 공격.

    하지만 검을 들어 몽둥이를 막으려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다급하게 검을 틀어 녀석이 노리는 왼쪽 관자놀이가 아닌 정수리를 막았다.

    펑, 펑! 까가가각!

    녀석의 몽둥이에서 불꽃 터져 나왔다.

    마치 제트 엔진처럼, 폭발적인 출력을 이용해 몽둥이의 각도를 급격하게 바꾼다.

    찰나의 순간, 놈의 몽둥이의 궤적은 휘두르기에서 내리찍기로 바뀌어 있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감으로 느꼈을 뿐.

    쾅──!

    “크으······.”

    위에서 찍어누르는 힘에, 나는 뒤로 몇 발자국을 밀려났다.

    본능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머리가 터져나갔을 강한 공격.

    역시 스킬의 유무는 천지 차이란 말이지······.

    최진웅은 여유롭게 웃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잘 막는데,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볼까?”

    펑, 퍼벙!

    몽둥이에서 연달아 불꽃이 터지며, 궤도를 알 수 없는 몽둥이질이 시작됐다.

    나는 녀석의 움직임을 빠르게 쫓으며 공격을 막아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강한 힘과 빠른 속도뿐만 아니라, 전투 중 이런 변주가 가능하다니······.

    역시, 한 길드의 마스터라는 직위를 노름판에서 딴 건 아니었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전투에 변주를 넣을 방법이 제법 많지.

    나는 ‘아카식 컨틀렛’을 사용, 자기력을 이용해 내 머리를 노리고 찍어 내리는 몽둥이를 끌어당겼다.

    물론 놈의 압도적인 힘을 이겨낼 수는 없겠지만, 중심을 약간 흔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그러나, 자기력의 효과는 내 상상 그 이상의 발군이었다.

    우우웅.

    “뭐야!”

    놈의 공격 궤적이 흐트러지면서 상당히 큰 헛스윙이 나왔다.

    우우웅, 카앙!

    나는 당황한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분신에게 단검을 사용해 녀석의 다리를 찌르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공격이 성공하나 싶었던 순간.

    퍼버버벙!

    최진웅이 연달아 몽둥이를 폭발시켰고, 그 추진력을 이용해 자기력에서 억지로 벗어나 몽둥이를 휘둘렀다.

    나는 다급하게 몸을 굴려 녀석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피했다.

    그래도 완전히 공격에 실패한 건 아니었다.

    핏!

    분신이 놈의 그림자에서 팔만 드러내 단검을 휘둘렀고, 녀석의 종아리에 생채기가 생기며 핏방울이 튀었다.

    투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피.

    그것을 본 골드 몽키 길드원들이 흥분하며 무기를 꼬나쥐었다.

    “형님!”

    “어? 어느새!”

    전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내가 어떻게 공격한 것인지 아직 파악이 안 된 모양.

    “이 새끼들아, 뭐해! 빨리 나가!”

    타다닥!

    골드 몽키 놈들이 달려오는 것과 동시에, 종아리를 살피던 최진웅이 몽둥이를 길게 늘어트리며 자세를 낮췄다.

    “······감히 나한테 상처를 내?”

    최진웅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분노하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지금까지 받아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 올 터.

    이건, 전력을 다해서 피해야 한다.

    내가 팔찌의 보호막을 사용하고 거리를 벌리려는 순간.

    부우웅, 끼이익!

    골드 몽키 길드와 대치하듯이, 반대편으로 여러 대의 밴이 들어왔다.

    그 차량을 본 최진웅이 공격을 멈추고 인상을 찡그렸다.

    “저건 또 뭐야?”

    밴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호탕한 목소리와 달리, 금방이라도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어이, 원숭이 새끼. 그쯤 하지.”

    “한수 형! 한솔아!”

    “정수야, 괜찮냐? 미안하다. 좀 늦었다.”

    밴에서 한수 형과 함께 한솔이를 비롯한 투견 길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골드 몽키 길드원들과 대치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고아 새끼인 줄 알았는데, 개새끼였나 보네? 우리 고객님, 투견 소속이셨나? 그럼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최진웅이 불꽃이라도 튈 듯 한수 형을 보다가, 씩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어이, 김정수. 네 깡 마음에 들었다. 우리 길드로 와라. 투견 길드보다 훨씬 더 큰 지원을 해주지. 아쉽지 않을 정도로.”

    “허? 이런 시추에이션을 만들어놓고 영입 제의? 깡 좀 있으시네요?”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최진웅은 몽둥이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래? 지금 이 거절, 후회하게 될 거야. 깡은 좋은데, 머리는 영 안 굴러가네.”

    최진웅은 나에게서 관심을 돌려, 어느새 내 보디가드라도 된 것처럼 뒤를 지키는 한수 형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이네? 이번에 투견이 33층에서 개박살 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건강하신 것 같구만. 어떻게, 약초는 좀 많이 구하셨나?”

    최진웅의 도발에, 한수 형이 으르렁거렸다.

    “너희가 상관할 일은 아닐 텐데?”

    “거, 같은 층 공략하는 사람들끼리 걱정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야박하기는. 우리는 태산 길드 쪽에서 약초 납품을 받아서 조만간 탑에 올라갈 건데, 그쪽은 언제 올라가시나, 반년 뒤? 1년 뒤?”

    “······.”

    “그때쯤이면, 우리는 어디까지 올라가 있을까?”

    태산 길드는 동명의 대기업을 등에 업고 자본을 쏟아부어 성장한 대형 길드로, 골드 몽키의 뒷배를 봐주는 놈들이다.

    또한, 태산 길드의 약초 재배량이 어마어마하다고 알고 있다.

    놈들이 약초 공급을 중단하고 하청 길드에게만 약초를 내주는 바람에 한수 형이 더 고생했겠지.

    당연하지만, 내가 투견에 약초를 공급했다는 사실을 태산과 골드 몽키 쪽이 알 리가 없었다.

    한수 형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원숭이. 거기까지 하지.”

    “사람이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나는 박한수씨가 잘 풀리셔서 자존심 좀 챙기셨으면 해서 물어본 거라고. 굳이 얼굴 붉힐 필요 있나? 위에서 만나면 살갑게 인사라도 하자고.”

    무기를 매만지며 살갑게 인사하자는 꼴이, 누가 봐도 만나면 가만히 안 두겠다는 분위기.

    태산에서 랭커 플레이어를 파견이라도 하면, 투견이라는 이름은 소리소문없이 탑에 묻힐지도 몰랐다.

    적어도, 한수 형이 없었다면 말이지.

    “태산이 뒤에 있다고 이러나 본데. 내가 누군지 잊었나?”

    한수 형은 어느새 최진웅의 머리 옆으로 주먹을 뻗고 있었다.

    콰아앙!

    한발 늦게 거센 바람과 굉음이 들렸고, 골드 몽키 길드원들이 타고 온 밴 한 대의 옆구리가 찌그러지며 쓰러졌다.

    끼기긱, 쿵!

    “이, 이 새끼들아! 빨리 차 일으켜!”

    “빨리 안 움직이고 뭐 해!”

    당황한 골드 몽키 길드원들이 낑낑거리며 쓰러진 차를 일으키려 했다.

    저건, 한수 형의 스킬인 권풍이다.

    격투 위주의 전투 스타일을 가진 한수 형이지만, 원거리에서도 어마어마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그 스킬과 천부적인 격투 실력 덕에 한수 형도 한때는 대형 길드의 유망주로 자란 적이 있다.

    대형 길드의 폭정에 엮이기 싫다는 이유로 모두가 바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 바람에 지금은 탑을 오르는 데 난항을 겪고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랭커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막상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이 정도로 강한 스킬일 줄이야.

    핏!

    한수 형이 쏘아낸 권풍의 위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근처에 있었을 뿐인 최진웅의 볼이 찢어지며 피가 주르륵 흘렀다.

    “꺼져, 원숭이. 난 너 같은 새끼들이 제일 싫으니까. 태산이고 뭐고, 다음에 보이면 모가지를 꺾어버릴 거다. 그러니까 여긴 얼씬도 하지 마.”

    한수 형이 나직하게 경고했다.

    최진웅은 볼을 타고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보더니, 잠시 태수 형을 노려보다가 양손을 들고 몇 발자국을 물러섰다.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뭘 이렇게 죽일 듯이 달려드시나?”

    “꺼지라고.”

    “미친개 잡는데 딱 좋은 몽둥이를 들고 오긴 했는데, 혹시 물리기라도 하면 약도 없는 법이지.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으니 돌아간다!”

    골드 몽키 길드원들이 밴에 올라타기 시작했고, 차로 향하던 최진웅이 잠시 발을 멈추더니 몸을 돌렸다.

    “어이, 김한수 씨. 충고 하나 하는데, 그렇게 다 적으로 돌리면 이 바닥에서 오래 못 살아.”

    “퍽이나.”

    한수 형이 중지를 들어 올렸고, 최진웅이 혀를 차며 차에 올랐다.

    부우웅.

    그렇게 피해 없이 폭풍이 지나갔고, 나는 긴장한 나머지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한수 형, 감사해요.”

    “감사하긴. 계약인데. 그래서, 다친 사람이나 부수어진 건 없고?”

    “네. 다행히 딱 저 새끼들이 지랄하기 전에 오셨어요.”

    “다행이네. 그보다 미안하다. 내가 태산 이름만 들어도 피가 거꾸로 솟는 바람에 스킬까지 써버렸는데, 아이들이 놀란 거 아니야?”

    방금까지만 해도 레벨 40이 훌쩍 넘는 상대를 압도하던 사람이, 아이들 생각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

    대형 길드의 폭정에 엮이기 싫다는 이유로 길드를 창립하고, 대형 길드에 저항하던 사람들을 거두어 탑을 오르는 사람.

    거칠고 걸걸한 외형이나 언행과 달리, 한수 형의 따뜻한 마음씨가 새삼 다시 느껴졌다.

    “괜찮아요. 아이들 지금 뒷방에 숨어 있거든요. 이럴 때마다 대피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서요.”

    “다행이네. 그나저나, 김정수······ 너 또 어딜 갔다 온 거야?”

    “네?”

    한수 형이 내 가슴을 툭 건드렸다.

    “더 강해졌잖아. 원숭이랑 한 판 붙는 거 오면서 봤다. 그 자식 그래도 나랑 비슷한 레벨대인데······ 한 대도 못 맞추던데?”

    “아하하······.”

    “무슨 성장 속도가······ 이러다가 내가 따라잡히는 거 아니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한수 형은, 분위기를 풀어보려는지 과장까지 섞어가며 말했다.

    “에이, 형! 그 정도는 아니죠. 오바하시기는.”

    “하하하! 네 성장 속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다. 그나저나, 내려왔으니 좋은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이요?”

    “그래. 자세한 건 안에 들어가서 보자.”

    우리는 자리를 옮겨 고아원으로 들어갔다.

    원장실을 빌려서 소파에 앉자, 한수 형은 스마트폰으로 웬 영상을 틀어서 내게 내밀었다.

    ─······지난 14일 오후, 강원도에 홍천군의 대규모 약초밭 부지 인근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자이언트 로커스트. 이 거대 메뚜기 떼는 황충(蝗蟲)이라고 불리며, 일대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등 각종 마력토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마력재난관리부는 해당 몬스터 군집을 B등급 재난으로 분류······─

    뉴스에서는 사람 머리통만 한 거대 메뚜기가 새까맣게 하늘을 메운 약초밭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게 아까 최진웅이 자랑하던 그 태산의 약초밭이야. 뭐? 약초 지원을 받아서 올라가? 한 길드의 마스터란 놈이 사태 파악도 못 하고 한 소리지.”

    “와······ 저 정도 숫자면, 진짜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겠네요.”

    “개새끼들, 사람 목숨 걸린 일로 장난질하더니, 꼴 좋지.”

    아까까지만 해도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던 사람이, 이제는 뉴스를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자, 봐. 저기서 파이어볼 연사하는 놈 있지? 저놈이 태산 소속 랭커 중 한 놈인데, 약초밭 다 탈까 봐 큰 마법도 못 쏘고 고작 파이어볼이나 쏘고 있는 꼴 좀 봐라. 하하! 속 시원하다!”

    한수 형은 정말 사이다를 원샷이라도 한 사람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나도 속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정말 이걸로 끝일까?

    ─자이언트 로커스트의 레벨은 개체당 7에서 8쯤으로, 독립된 개체일 경우는 위험도가 높은 몬스터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체 수가 불어난다는 점이 문제인데요, 또한 무리의 이동 반경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예상되어 인근 50km 이내의 민간 거주 구역에는 대피 명령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사람 머리통만 한 메뚜기라고 해서 습성이 다른 건 아니었다.

    녀석들은 닥치는 대로 식물을 갉아 먹고 빠르게 수를 불리며, 무리가 커질수록 레벨과 별개로 재앙이 된다.

    이거, 놔두다간 태산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닐 것 같은데······.

    그때, 문득 머릿속으로 한가지 아이디어가 스쳐 갔다.

    “어? 한수 형! 저랑 계약 하나 더 하실래요?”

    “계약? 갑자기 무슨 계약?”

    “이번에도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큰돈을 벌게 해드릴 수는 있어요.”

    내 머릿속을 스쳐 간 건, 98층의 마을 외곽 울타리를 빼곡하게 채운 식충 식물.

    그것도 블루문의 힘을 받아서 훨씬 강화된 식충 식물이라면······.

    모두가 원하겠지.

    아군이든 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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