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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21화 (21/69)

아카식 아머리(2)

아카식 아머리(2)

“뭐야, 정수! 벌써 움직여도 돼?”

병상에서 일어나서 소초 밖으로 나왔을 때, 물건을 옮기고 있던 제임스가 물었다.

“예. 몸 상태는 괜찮아요. 그냥 잠깐 쓰러졌던 것 같아요. 산책 좀 갔다 올게요.”

“몸이 괜찮다면야 다행이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약초밭에 갈 거라면 그 근처 마을 담벼락에는 다가가지 마.”

“담벼락이요?”

“그래. 그 근방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곤충들이 자꾸 날아와서 식충 식물 ‘데스마우스’를 심어놨는데, 블루문 이후에 식충 식물들이 엄청나게 커졌더라고.”

사람 머리통만 한 곤충도 그렇지만, 그런 걸 잡아먹는 식충 식물이라니.

역시, 98층은 무서운 곳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세상에. 사람을 공격하는 식충 식물인 거예요?”

“아니. 사람을 공격하진 않는 녀석들이지만, 혹시 모르니 다가가지 말라는 거야. 정수 너에겐 토끼도 정면승부를 걸어왔고, 레드문에 영향도 받아 쓰러질 정도로 몸이 좋지 않으니까 말이야.”

걱정하는 듯하지만, 제임스의 입가가 씰룩거리면서 묘하게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확실히 조심할수록 좋겠지.

“알겠어요.”

나는 제임스를 뒤로한 채, 약초밭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틀간 누워 있다 보니 굳은 몸도 풀 겸, 투견 길드에 납품할 약초를 마저 캐야 하니까.

약초밭으로 나가는 길목에 보이는 울타리.

멀리서 보니, 확실히 담쟁이덩굴처럼 울타리를 감고 있던 식물의 크기가 확 커져 있었다.

데스마우스.

언뜻 보면 아름다운 꽃 같지만, 꽃잎이 입술처럼 움직이고 그사이에 이빨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진짜, 가까이 가면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은 비주얼이네.

제임스의 조언대로 울타리를 멀리 돌아가려는 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기록이 진짜였어! 이 말도 안 되는 식물들의 크기! 정말 놀랍군!”

“윌리엄?”

“오! 정수. 깨어났구만. 몸은 좀 괜찮나?”

“아, 네. 제가 쓰러진 걸 알고 계셨어요?”

“그럼. 쓰러진 자네 상태를 누가 봐줬을 것 같나? 하하. 마나 하트가 성장했더군. 축하하네. 아마, 블루문의 영향이겠지.”

윌리엄은 턱을 쓸며 씩 웃었다.

역시, 윌리엄은 경비대원들보다 더 마나에 민감하니, 눈치챌 줄 알았다.

“뭐, 그렇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블루문의 영향이라뇨?”

“블루문은 순수한 마나를 가득 품고 있다고 하지. 그래서, 순수한 마나를 가득 품은 존재일수록 축복이 된다네! 저 식물이 보이나?”

윌리엄 꽃 하나하나가 사람 상체만큼 자란 식충 식물을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가 곤충 퇴치용 식물이라고 하던데, 블루문 때문에 커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정답이야. 원래는 벌레를 잡아먹으며 조금씩 커지는데, 저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렸지. 그런데 하루아침에 저렇게 된 것이라네!”

확실히 무서울 정도로 커지긴 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몇몇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톱으로 꽃을 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을 공격할까 봐 자르는 건가요?”

“음? 그건 아닐세. 너무 커지면 벌레를 끌어들이는 향을 내뿜어서 오히려 마을로 더 많은 벌레가 날아오거든. 일종의 가지치기지.”

“그러면 동쪽 과수원의 과일도 크기가 다 커졌겠어요. 블루문 한 번에 풍년이 되겠네요.”

“블루문의 영향은 단순히 크기만 커지는 게 아니야!”

내 말에 윌리엄의 목소리가 한 층 커졌다.

이 양반, 진짜 신나셨네.

“마법 시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초의 효과가 훨씬 좋아지며 특수한 효과까지 생긴다는 기록도 있지. 거기에, 블루문 이후에는 희귀한 약초가 가득 자란다고 하네.”

“정말요?”

이 대목에서는 나도 흥분이 된다.

희귀한 약초라니, 대체 얼마나 비쌀까?

뭔가 요즘 새로운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게 되는 것 같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내가 눈을 빛내자, 윌리엄이 허허 웃으며 턱수염을 쓸었다.

“그래. 나도 블루문을 보는 게 처음이지만, 식물들이 자란 걸 보니 기록된 정보는 확실하네. 살아생전, 이 기적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 몰랐군.”

윌리엄은 감정이 벅차오른다는 듯이 잠시 식물들을 돌아보다가 말을 이었다.

“레드문이 몬스터들을 흉포하게 만드는 마기와 마왕의 상징이라면, 블루문은 생명력이 가득 담긴 정순한 마나와 희망을 의미하네. 그런 현상을 보고, 마법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약초밭에 가볼 건데, 같이 가겠나?”

“좋죠. 안 그래도, 약초를 캐러 가던 중이었거든요.”

우리는 곧바로 약초밭으로 향했고, 나는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윌리엄! 진짜 약초가 더 커졌어요! 게다가, 제가 꽤 많이 뽑았는데도 그새 무성하게 자랐네요!”

약초들은 줄기부터 굵고 크게 자란 것뿐만 아니라, 천천히 자라고 있던 씨알이 작은 녀석들이 폭풍 성장해서 어떤 게 작은 약초였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블루문의 힘이 이 정도라니.

“그래. 이 근방은 이 약초들이 자라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서 그리 크게 자라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이 정도면 원산지인 설산 밑에서 자란 것 같군.”

“설산이요?”

“그래. 이 약초들이 원래 서늘한 곳에서 자라던 품종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나?”

그러고 보니, 처음 이 약초밭을 발견했을 때, 클라크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약초들은 원래 이곳에서 자라던 품종이 아니라, 서늘한 곳에서 자라던 품종이라고.

“네. 들은 적 있어요. 설마 그 서늘한 곳이라는 게, 설산인가요?”

“그래. 원래 이 약초 군락이 있던 곳은 이곳보다 더 북쪽에 있는 설산일세. 그곳에선 여기보다 더 굵은 약초들이 자라지. 블루문의 달빛을 받고 나니, 이곳의 약초들도 그것과 비슷하게 자랐군. 효과가 더 좋아졌을 걸세.”

나는 신나게 해독초를 뽑아댔다.

돈을 잔뜩 뽑아냈더니, 돈이 또 자랐네.

대체 이게 다 얼마야? 110만 원, 220만 원······.

아니지.

나는 손에 잡힌 씨알 굵은 해독초의 성능을 확인했다.

【푸른 달의 상급 해독초】

【푸른 달빛을 받아 커진 해독초. 상급 해독초보다 더 큰 해독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섭취 시, 몸의 독소를 배출하여 체력이 상승합니다.】

“맙소사······.”

눈이 돌아갈 정도로 끝내주는 효과.

단순히 독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체력까지 상승한다고 한다.

해독초가 커지면서 더 큰 해독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 해독제를 만드는 데 약초를 덜 써도 된다는 것.

거기다, 체력까지 올려준다는데, 이 정도 효과면, 10% 정도는 추가로 더 받아도 되지 않을까?

“흐흐······ 흐흐흐······.”

나는 쪼그려 앉은 탓에 다리가 저린 것도 개의치 않고, 미친 듯이 약초를 캐댔다.

그렇게 투견 길드에 납품한 약초를 거의 다 캤을 무렵.

“아이고, 허리야······ 응?”

허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잠시 일어났을 때, 저 멀리 숲 쪽에서 푸른 불빛이 아른거렸다.

도깨비불······ 이라기엔 불꽃이 마치 반딧불이처럼 반짝거리는데.

대체 저게 뭐지?

나는 옆에서 약초를 살피던 윌리엄에게 물었다.

“윌리엄, 혹시 저거 보이세요?”

윌리엄은 정확하게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보인다는 건가?”

“숲 쪽에서 빛나는 푸른 불빛이요. 마나가 담긴 것 같기도 하고······.”

윌리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게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네. 자네, 혹시 피곤한가?”

나보다 마법적 성취가 높고,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인 윌리엄이 느끼지 못했다면 마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두 눈에는 따라오라는 듯이 춤을 추며 반짝이는 파란 불빛이 보였다.

“마침 나도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을에 돌아가서 쉬는 게 어떤가?”

“아, 아뇨. 괜찮아요. 눈이 조금 침침했나 봐요. 저는 조금만 더 캐다 갈게요.”

“알았네. 무리하지 말게나.”

윌리엄이 먼저 약초 다발을 들고 사라졌고, 나는 윌리엄이 사라지기 전까지 약초를 캐는 척하다, 푸른 불빛을 쫓았다.

숲은 위험하다.

가장 약한 파이트 래빗조차도 내게는 위협이 되니까.

하지만 다니엘에 받은 ‘요정의 팔찌’가 있다.

다니엘의 말에 따르면 짐승의 발톱 정도는 막아준다고 하니까 괜찮겠지.

푸른 불빛은 잡힐 듯 말 듯, 나와 비슷한 속도로 숲을 통과했다.

이거, 아무래도 나를 어딘가로 이끄는 것 같은데?

그렇게 푸른 불빛을 따라 10분 정도 숲을 헤맸을 무렵.

“······동굴?”

나는 한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잠깐만, 여긴······.

“내가 처음에 왔었던 동굴이잖아?”

내가 98층에 처음 떨어진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동굴이자, 깊숙한 곳에는 감히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입구에서만 며칠을 버텼던 동굴.

여기에서 라면을 끓여 먹던 중에 경비대원들과 마주쳤었지.

내가 따라온 푸른 빛은 그 동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들어오라는 건가?”

나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가 푸른 빛을 쫓았다.

위험한 상황이 있으면, 팔찌가 한 번은 목숨을 지켜주겠지.

그 짧은 틈이라도 벌 수 있다면, 단검의 스킬을 사용해 그림자 안으로 숨어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렇게 동굴 안쪽으로 꽤 들어갔을 때쯤.

“대체 이건······ 뭐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은 석벽.

아니, 거대한 석문이 동굴을 막아놓고 있었다.

그 석문에는 이상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심하게 훼손되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유적?”

나는 문득 클라크가 해주었던, 이 마을에 숨겨진 비밀이 떠올랐다.

“그럼 설마 던전?”

하지만 그곳은 경비탑인데.

여기랑 거리가 좀 멀잖아?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겨, 석문에 손을 댔다.

그리고 그 순간.

【자격요건 확인 중······】

【‘아카식 아머리’의 소유를 확인했습니다】

【환영합니다】

“어어─”

쿠구구구······

아카식 아머리의 소유를 확인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거대한 석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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