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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2화 (2/69)
  • 1층이 아니라고?(2)

    1층이 아니라고?(2)

    짹짹.

    새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

    오랜만에 숙면을 마치고 일어나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이렇게 몸이 가벼운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으으, 잘 잤다. 상쾌하네!”

    잠깐, 잘 잤다고?

    나는 분명 탑에 들어왔었고······ 탑에서는 항상 천근만근이었는데?

    나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낯선 숲이다.

    “씨발! 여기가 어디야?”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라지지 않고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메시지가 해주었다.

    【최초로 98층을 발견했습니다】

    【98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분명 0층에서 설레는 마음을 다잡으며 1층으로 향했다.

    아니, 향했다고 생각했으나 98층에 올라간다는 말과 함께 정신을 잃었지.

    “진짜로 98층에 표류한 건가?”

    멍하니 주위를 살폈다.

    드래곤이라도 살 것 같은 끔찍한 풍경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평화로운 곳 같네.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더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마왕 사냥’이 시작됩니다】

    【‘아카식 아머리’가 적합자를 인식했습니다】

    【상태 이상이 해소됩니다 – 마나 부족 증후군】

    첫 번째 메시지는 각 층에 도착할 때마다 주어지는 핵심 목표인데, 두 번째 메시지는 대체······.

    “이게 뭐야? 아카식 아머리는 뭐지? 상태 이상은 또 뭐야? 해소됐다고? 그런 거 걸린 적 없는데?”

    아카식 아머리라는 뭔지도 모를 것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마나 부족 증후군이라는 디버프다.

    곰곰이 생각하면, 짐작되는 부분은 있다.

    내가 탑 울렁증이라고 부르며, 탑에 들어올 때마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그 병.

    “······그게 ‘상태 이상’ 디버프였다고?”

    그렇다면 지금 몸이 가벼운 것도 말은 되겠지.

    하지만 아직 의문인 부분은 많았다.

    왜 나는 상태 이상에 걸린 상태였으며, 왜 갑자기 98층에 떨어졌을까?

    그리고 왜 98층에 도착하자마자 그 상태 이상이 해제된 걸까?

    “하나도 모르겠네.”

    그때였다.

    쿵─ 쿵─

    저 멀리서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 큰 소리와 울림이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서 가장 큰 나무에 올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Lv.105 포레스트 터틀】

    “배, 배, 백 오 레벨?”

    전 세계를 뒤져도 탑을 오르는 사람 중에 레벨 100을 넘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숲을 돌아다니는 집채만 한 거북이가 105라니······.

    심지어 그런 놈이 한, 두 마리가 아닌지, 나를 기준으로 숲 반대편에도 비슷한 놈이 보인다.

    “하하. 좆됐다.”

    98층에는 대체 저런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

    나는 직감했다.

    여기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죽는다.

    나는 저 괴물들의 동선을 피해 몸 숨길 곳을 찾았다.

    일단 살고 봐야지.

    몬스터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주위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근처에 동굴 입구를 하나 봐두었다.

    일단은 거기에 몸을 숨겨야지.

    굴 안에도 몬스터가 있지는 않을지 우려가 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탁 트인 밀림보다는, 벽이 있는 동굴이 낫다.

    나는 슬금슬금 동굴 방향으로 움직였고, 곧 거대한 바위 무더기 사이에 난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똑─ 똑─ 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스럽게도 동굴에는 주인이 없었는지,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어떡하지? 여기에서 일주일을 버텨야 하나?”

    【귀환(0층) 비활성화】

    ─남은 시간 : D6. 04:00

    탑의 출입구가 있는 0층으로 귀환하려면 아직 6일 하고도 4시간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버텨야만 한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절망스러웠으나 마음을 다잡았다.

    ‘오빠! 맛있는 거 먹고 싶어!’

    ‘형! 올 때 정말로 변신 로봇 장난감 사 올 거야?’

    사나이 김정수.

    애들한테 돈 많이 벌어서 돌아가겠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꼭 지켜야만 한다.

    *

    거의 이틀 정도를 초코바와 소시지로 때우면서 버텼다.

    그래도 탑 물가가 두려워서 잔뜩 챙겨둔 인스턴트 식품들이 내 생명줄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초코바와 소시지가 거의 다 떨어져 간다.

    귀환을 위해 필요한 건 앞으로 4일.

    정말 위급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바로 먹을 수 있는 건 아껴두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눈을 잡아끄는 건 라면이었다.

    하지만, 라면 냄새를 풍기면, 혹시나 맹수가 다가오지 않을까?

    “몬스터들이 이 근처로는 안 오는 것 같긴 한데.”

    맹수는커녕, 이틀 동안 이 근처에서 생물체의 흔적이라고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죽을 수 있었다.

    괜히 컵라면을 손에 쥐고, 고민이 길어졌다.

    “그냥 생으로 먹을까?”

    고민하던 차, 동굴 입구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익!

    “뭐, 뭐야?”

    웬 카랑카랑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창과 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동굴 입구를 막아섰다.

    “누구냐!”

    어라, 목소리?

    【Lv.124 경비대원 마크】

    【Lv.125 경비대원 조지】

    좆됐다.

    레벨 120이 넘어가는 몬스터······ 는 아니고 NPC인가?

    탑에서 간혹 의사소통되는 NPC를 마주할 수 있다던데······.

    어쨌든 NPC라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다.

    저들이 숨만 쉬어도 나는 지푸라기처럼 올올히 분해되어 죽어버리겠지.

    꿀꺽.

    나는 양손을 올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말이 통한다는 건데······.

    “누구냐고 물었다!”

    “아, 저는 김정수라고 합니다. 길을 잃어서······.”

    내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해보려는데 경비대원들 뒤에서 한 명이 더 튀어나왔다.

    【Lv.130 경비대장 클라크】

    무려 레벨 130의 강자······.

    숨이 멎는 것 같다.

    짐승에 발톱에 당한 듯, 한쪽 눈을 따라 긴 흉터를 가진 클라크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이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예, 맞습니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서요.”

    “흠. 확실히, 복식만 봐도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군. 여기서 대체 뭘 한 거지? 손에 쥔 건 뭐고?”

    클라크는 내 손을 가리켰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 손에는 컵라면이 그대로 쥐어져 있었다.

    “그게······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식사? 그게 식사가 된다고?”

    클라크는 잠시 턱을 쓸다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음식이지? 아침에 쓰레기 같은 걸 먹었더니, 괜히 더 배고픈 기분이야. 뭐라도 먹었으면 좋겠군.”

    “하지만 대장님! 정체도 모르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먼저 먹여보면 되잖나? 뭐, 싸울 의지도 없어 보이고. 너도 아침밥 먹다 뱉은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크흠!”

    꼬르륵.

    기회다.

    나는 내가 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나눠 드릴까요?”

    그리고 잠시 후.

    후루룩! 후룩!

    동굴 안에 연신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극구 반대했던 두 사람도, 나와 클라크와 라면을 먹는 것을 보더니 침을 꼴깍꼴깍 삼키다 결국 합류했다.

    라면 냄새는 못 참지.

    경비대 소속의 세 사람은 맵다고 난리를 치면서도 국물 한 방울마저 남기지 않을 기세로 컵라면을 마셨다.

    호로록!

    “크아! 죽이는데!”

    “이런 건 처음 먹어봅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난 거야? 이 근처에선 못 보던 물건인데?”

    “하하······ 이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긴 하죠.”

    세 사람은 내가 민망할 정도로 감탄하고 있었다.

    ‘왜들 이렇게 오바하는 거지?’

    아무리 라면이 맛있긴 해도, 저 정도까지는······ 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직 98층은 미지의 영역이다.

    즉, 아직 지구와 교류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탑은 층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중세의 양식을 따르고 있었으니 이들은 현대와는 동떨어진 중세 사람이라는 뜻.

    거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당연히 먹는 MSG는 이들에게 엄청난 자극이라고 했지.

    “이 음식 이름은 대체 뭔가!”

    “아, 그건 라면이라고 하는 건데, 그런 그릇에 담겨 나오는 걸 컵라면이라고 해요.”

    “이야, 컵라면이라. 남부 음식인가?”

    “남부에서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고 듣기는 했죠.”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대화하며 멋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아직 친해지기 전이니, 내가 탑 외부인이라는 걸 밝히지는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여기 98층에서 탑 밖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도 미지수고.

    “크아─ 국물이 미쳤는데?”

    “지금까지 헛살아온 기분입니다.”

    세 사람이 국물까지 털어먹고 있는 걸 보는 사이, 나는 고민했다.

    탑 밖으로 귀환하려면 아직 4일가량의 시간이 남았으니, 이들을 따라가면 적어도 귀환의 쿨타임이 끝날 때까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람들에게도 마을이 있을 테니까.

    나는 경비대원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하······.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혹시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혼자서 숲을 탈출하기 힘들 것 같아서요.”

    잠시 정적.

    하지만 이내 경비대장 클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만 부으면 되는 이런 귀한 음식을 줬는데, 안 될 거 뭐 있나! 우리 마을이 멀지 않으니까 거기로 안내하지!”

    “하지만, 대장님! 낯선 사람을 그렇게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크하하! 이 사람아. 우리에게 선뜻 음식을 내주는 것도 그렇고, 옷차림을 보게. 가볍고 튼튼해 보이는 데다 깔끔하잖나.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 같아.”

    “무슨 문제 생기면, 대장님이 책임지시는 겁니다.”

    “쯧쯧. 자네는 너무 걱정이 많아.”

    경비대원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나를 데려가기로 의견을 맞췄다.

    “자, 따라오게. 10분이면 가니까.”

    나는 경비대를 따라 움직였다.

    물론 10분이라는 건, 경비대의 기준이었다.

    가벼운 무장이라고는 하나, 가죽 갑옷을 몇 겁으로 덧대 입고 무거운 무기를 들고도 숲을 뛰듯이 걷는 이들을 따라가자니, 숨이 차올랐다.

    결국, 내 속도에 맞추다 보니, 30분이 넘게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약골인데요?”

    “남부는 대부분 뱃사람이라 체력이 좋고 드센 거 아니었습니까?”

    클라크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훑어보다가, 경비대원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직도 모르겠어? 저 목걸이를 봐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경비대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곳은 귀족가 뿐이야. 귀족이 아니더라도 꽤 신분이 높을 거라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걸 보면, 조용히 있겠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데려가는 거지.”

    “허억!”

    귀족이라는 말에 순간 두 경비대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색이 파리해졌다.

    나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목걸이를 보았다.

    누군지도 모를 부모가 준 유일한 물건.

    설마 이게 오해를 불러올 줄이야.

    “나중에 트집 잡히느니, 데려가는 게 낫지. 우리끼리 모르는 척 말만 맞추자고.”

    “아,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소곤소곤 이야기했지만, 다 들렸다.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뭐,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 어차피 나중에 풀 오해니까.

    클라크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경비대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크하하! 남부에 뱃사람만 있다는 건 편견이야. 그래도 남부의 구석진 곳에서 살다 온 건 맞는 것 같군.”

    “그, 그렇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하, 하하. 그럼 우리가 배려해야지요. 그럼요.”

    경비대원들의 어색한 웃음과 배려 속에, 나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에 들어와 가장 처음 들른 곳은 경비대가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쾅, 콰앙!

    경비대 사람들은 훈련용 검을 들고 검술을 연습하고 있었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큰 소리가 울렸고, 얼마나 강한 힘으로 검을 휘두르는 건지, 내가 있는 곳까지 바람이 휘날렸다.

    검을 부딪치는 경비대원들도 레벨이 130에 가까운 괴물들이었다.

    저 경비대원 중 한 명이라도 지구에 내려가면, 진짜 난리 나겠는데?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다들 엄청나게 강하네요.”

    “뭐? 크하하! 저런 햇병아리들이 강하다고?”

    “제가 살던 곳에는 저런 사람들이 없어서요.”

    “하긴, 네 몸만 봐도 알 것 같다.”

    경비대장의 말에 순간 울컥했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랭킹 1위 박진혁을 데려다 놓는다고 한들, 경비대장은커녕 경비대원에게 상대가 될까?

    아니, 박진혁의 공략대 전체가 덤벼도 상대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한가지 생각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럼 이 사람들에게 배우면 나도 어마어마하게 강해지는 거 아니야?’

    탑 10층마다 등탑자에게 스킬을 가르칠 수 있는 NPC가 있다고 들었다.

    어떤 NPC를 만나서 어떤 스킬을 배우냐에 따라서 등탑자가 역량이 확 갈릴 정도로, 등탑자에게는 중요한 기회였다.

    “한국의 랭킹 1위인 박진혁도 그저 평범한 등탑자였다지······.”

    그러나 오러 소드라는 스킬을 배운 이후로 랭킹에 들고 파죽지세로 1위를 탈환한 것으로 스킬의 중요성을 증명해버렸다.

    여기가 90층이나 100층은 아니지만,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저기, 저도 검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응? 네가 말이냐?”

    “물론, 맨입으로 배우겠다는 건 아니고, 충분히 값을 치르겠습니다.”

    이곳은 MSG라는 존재가 없는 세상이다.

    오면서 보니까, 딱딱한 빵이나 묽은 수프 따위가 주식이고.

    그렇다는 건, 이 사람들에게 먹힐만한 아이템이, 내게 한 보따리가 있다는 것.

    나는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 뜯었다.

    “이 음식은 어떻습니까”

    “뭐야, 이게? 시꺼먼데, 탄 거 아니야?”

    “에이, 드셔보시면 다를 겁니다.”

    경비대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초코바를 하나 집어서 킁킁거리더니 곧장 입에 넣었다.

    “아, 아니! 이건!”

    경비대장이 눈을 부릅뜬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심지어 눈동자가 위쪽으로 뒤집히기 직전이잖아!

    “대장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너 이 자식! 독이라도 넣은 거냐!”

    경비대원들이 무기라도 뽑을 기세였지만, 정신을 차린 경비대장이 순식간에 남은 초코바를 반으로 나누어 경비대원들의 입에 넣었다.

    초코바를 입에 넣은 경비대원들은 경비대장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옷! 오오옷! 힘이 넘친다!”

    “이제까지의 나는 내가 아니었어!”

    눈물이라도 흘릴 듯 감격한 경비대원들을 향해, 경비대장이 속삭였다.

    “역시, 귀족이 맞을지도 몰라.”

    “어쩐지. 귀족들은 설탕을 쌓아놓고 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틀림없습니다.”

    이러다 나중에 귀족 사칭죄로 잡혀가는 건 아닌가 싶긴 하지만, 나중에 풀면 될 일이다.

    “좋아. 이런 귀한 걸 받았으니 뭐라도 가르쳐주지. 이봐, 제임스!”

    경비대장의 말에 검을 부딪치고 있던 제임스라는 경비대원이 다가왔다.

    “예, 대장님.”

    “이 친구가 검을 배우고 싶다는군. 조금 가르쳐 줘.”

    제임스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약골처럼 보이는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중에 제일 약한 너한테 가르치라는 거지.”

    “큼······ 알겠습니다. 어이, 수준 한 번 보지. 따라와.”

    두근두근.

    나는 제임스가 쥐여준 목검을 받아 들고 뒤를 따랐다.

    고블린을 사냥하던 대로 자세를 잡고, 기회를 본다.

    “자, 간다.”

    타닥!

    제임스가 가볍게 땅을 박차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져 나왔다.

    그래도,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공격만 막는다고 생각하면 대처가 가능할 것 같다.

    목검을 비스듬히 들어 제임스의 검을 막는 순간이었다.

    빡! 우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손목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끄악!”

    손에 힘이 빠져 목검을 놓치는 거로도 모자라, 눈물까지 찔끔 나오기 시작한다.

    점점 통증이 강해지며, 너무 아픈 나머지 나는 손목을 살필 정신조차 놓쳐버렸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때, 언뜻언뜻 제임스와 경비대장의 대화가 들려왔다.

    “허, 이것 참.”

    “마법사 불러와! 제임스! 살살했어야지! 손목을 돌려버리면 어떡하나?”

    “진짜 살살 휘두른 겁니다!”

    얼마 후, 마법사가 달려와 회복마법을 사용해주었고, 나는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났고, 뚱한 표정의 제임스만이 옆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너는 정말 재능이 없구나? 그런데도 검을 배우겠다고?”

    “예. 꼭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너무 아팠지만, 그만큼 제임스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이야기.

    꼭 배워야만 한다.

    “하아. 대장님 말도 있고, 그렇게 배우고 싶으면 가르쳐는 주마. 따라 나와.”

    나는 빠르게 제임스를 뒤따랐다.

    “기본부터 시작해야겠어. 자, 내 자세를 잘 보고 따라 해.”

    후웅! 후웅!

    검을 위에서 아래로 베는 동작과 사선으로 휘두르는 동작.

    단순한 동작들이다.

    그러나 소리와 풍압은 이 검술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꿀꺽.

    나는 연신 제임스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한 시간, 두 시간······.

    “힘이 안 실리잖아!”

    “그거 가지고는 고블린은커녕 고블린 할애비가 와도 지겠다!”

    “기초체력도 많이 부족하구만. 내일은 더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야겠어.”

    눈물 나는 시간을 보낸 뒤, 나는 하루를 경비대 소초에서 보내기로 했다.

    간이침대에 누워 욱신거리는 몸을 주무르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곳에서는 강해질 방법이 없는 건가?’

    이렇게 혹독하게 수련했는데도 얻은 게 없었다.

    그게 더 비참했다.

    ‘아냐. 딱 하루. 딱 하루만 더 해보자. 어차피 귀환까지는 시간이 더 남았어.’

    어차피, 귀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여기서 강해져서 돈을 벌지 못하면, 고아원에 있는 동생들을 보살피겠다는 원대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겠지.

    나는 모포로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는 눈을 붙였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기상과 동시에, 눈앞을 수놓고 있는 메시지 테러를 보고 말을 잃었다.

    【말단 경비원 제임스의 허술한 검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숙련도 100% 달성 시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숙련도 1%】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오릅니다】

    【레벨이······】

    ·

    ·

    ·

    【마나를 흡수하여 몸을 회복합니다】

    “하······ 하하······.”

    고작 숙련도 1%를 올리는 것으로, 1이었던 레벨이, 어느새 10에 가까울 정도로 올라 있었다.

    “그런데, 이게 허술한 검술이라고?”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히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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