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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1화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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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이 아니라고?(1)

    1층이 아니라고?(1)

    부모가 있다는 게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 바야흐로 고아들의 시대다.

    나, 사나이 김정수도 그렇다.

    나는 고아다.

    20년 전, 세계에 곳곳에 탑이 생겨났다.

    탑의 부산물들은 고블린 손가락부터 마정석까지 모든 것이 그야말로 기적의 산물이었다.

    작은 포션 하나만 구비 해두면, 손가락 하나 잘린 정도로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돈이 됐고, 많은 이들이 탑에 들어갔다.

    탑은 인류에게 어마어마한 가치를 선물했다.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그게 내가 고아가 된 이유겠지.”

    자세한 건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할 수 없지만, 나와 같이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 그랬다.

    부부가 함께 도전했다가 그대로 탑에 묻힌다.

    남겨진 아이들은 고아원에 모였다.

    “아니, 근데 그렇게 위험한 곳이면 부부가 따로 가면 안 되나? 사지에 들어가면서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오빠, 또 그 소리야?”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고등학생이자, 우리 고아원의 다섯째 김민희.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 중 가장 큰 녀석이었다.

    “이해가 안 되잖아.”

    “됐어. 우리 부모님은 원장님으로 충분하니까. 그것보다, 오빠 오늘 또 탑 들어가지?”

    “응. 가야지. 이제 1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피는 못 속인다고, 부모님을 잡아먹은 탑에 도전하는 고아들은 셀 수조차 없다.

    물론, 그중에 하나는 나다.

    “목걸이는 챙겼어?”

    “아, 맞다.”

    나는 서랍에 넣어두었던 목걸이를 꺼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이 고아원에 나를 두고 가면서 남긴 유일한 물건.

    원장님이 잘 가지고 다니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진작 버렸을 물건이지만, 이제는 별 감정도 없다.

    그저 원장님이 챙겨 다니라니까 챙겨 다닐 뿐.

    그 모습에 민희가 고개를 저었다.

    “으휴, 정신 놓고 다니는 거 봐. 몸 잘 챙기고. 또 다쳐서 오지 말고.”

    “잔소리는.”

    하지만 싫지는 않은 잔소리다.

    모두가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뭘 걱정하는지도 알고 있고.

    혹시나 가족이 또 탑에서 죽을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

    “저번에도 그러다 크게 다쳐서 왔잖아! 피에 젖은 붕대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돈 버는 것도 좋지만, 포션이라도 좀 쓰고.”

    “그 돈이면 밥이 몇 낀데. 알았으니까 학교나 가세요.”

    나는 피식 웃으며 김민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방을 나섰다.

    뒤에서 김민희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또 애 취급! 나 내년이면 성인이거든!”

    그래.

    내년이면 성인이지.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대학에 가지 못하고 궂은일을 하는 것도, 다 저 녀석들 잘살게 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어떻게든 동생들은 고생하지 않고 살게 해주고 싶다.

    나는 고아원의 큰 형이니까.

    “형, 돈 많이 벌어와!”

    “다치면 안 돼!”

    “그래, 이 녀석들아. 이번에야말로 배 터지게 고기 뜯게 해줄게!”

    “와! 형 최고!”

    “오빠 최고!”

    다들 잘 먹지 못해 키가 작고 말랐지만, 다들 밝다.

    응원을 듣고 있으면 없던 힘도 생기는 기분.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아이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해주다 보니, 마지막으로 인사드려야 하는 분이 나오셨다.

    “지금 가는 거니?”

    “원장님.”

    “이제 막지는 않겠다만, 몸조심하고. 너 요즘 부쩍 피곤해 보이더라. 다크써클도 짙고.”

    원장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뜯어보았다.

    확실히, 나는 만성피로를 느낀다.

    탑에 들어가고 나서는 정신이 예민한 탓인지 그게 더 심하게 느껴졌고.

    이 일이 안 맞나 고민도 했지만, 이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괜찮으니까. 다녀오겠습니다.”

    가보자.

    탑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도착한 탑의 입구.

    입장을 기다리면서 탑을 바라본다.

    마치 피사의 사탑을 떠올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관이지만 그 크기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구름에 걸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탑은 한눈에 담기가 힘들었다.

    나는 긴 줄의 끝에 서서 가방을 다시 살폈다.

    “어디 보자, 라면이랑 육포랑······ 대충 다 챙겼네.”

    탑 안에 들어가서도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지만, 물가가 비싸다.

    일주일에 한 번 귀환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돈 많은 길드에 들어간 놈들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없으면 일주일에 한 번 물건을 채워와야 한다.

    밖에서 탑으로 들고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의 한도는 10kg.

    다행이라면, 장비 취급을 하는 아이템들은 무게 제한에 걸리지 않고, 소모품만 책정된다는 거다.

    그러니 탑에서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거고.

    “적어도 폼 안 나게 굶어 죽지는 말아야지.”

    그래서 나는 항상 이렇게 간편하게 때울 수 있는 걸 가득 채워서 들어간다.

    다시 한번 확인을 마쳤으니, 이제는 탑에 입장할 시간.

    어느덧 가까워진 탑의 입구 안쪽에, 탑으로 들어가는 포탈이 보인다.

    우우웅.

    “천천히 한 분씩 입장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내에 따라 입장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웨이포인트를 선택해주십시오】

    【0층】

    내가 갈 수 있는 건, 아직 0층 밖에 없다.

    0층은 튜토리얼 개념의 공간으로, 제대로 된 보상이 나오지 않는 곳.

    하지만 오늘 드디어 1층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0층.”

    잠시 눈앞에 빛이 번쩍이더니, 마치 쇠로 만든 옷이라도 입은 듯 몸이 무거워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가 느껴진다.

    탑에 들어오는 감각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으, 토할 것 같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나만 겪는 괴증상으로, 내가 붙인 이름은 ‘탑 울렁증’이다.

    여기저기 자문하고 신전에도 방문했지만, 이 증상의 원인은 여전히 모른다.

    그냥 내가 약해서 그런 건가 싶다.

    그래도 앞으로 레벨을 올라가면, 몸이 강해질 테니까 달라지지 않을까?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고, 판타지 RPG 게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돌로 만들어진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광장 중앙, 둥근 분수대 옆에서 등탑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군데군데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아저씨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 김정수 왔냐!”

    “오늘도 여기 계세요? 사냥은요?”

    “하다가 왔다. 젠장, 이렇게 해서 언제 1층 올라갈지 까마득하다. 너는 오늘 올라간다고?”

    “네. 오늘 사냥 마치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드디어 한국 놈들 손에서 벗어나겠네. 빌어 처먹을 길드 놈들. 무슨 층을 올라가는 데 통행료를 받고 지랄이야 지랄은.”

    아저씨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곳 0층에서 1층으로 올라갈 때 걷는 상당한 수준의 통행료 때문이었다.

    국가별로 구분되는 0층에서는 초보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한국길드연합이 보호비와 1층 통행료를 걷는다.

    돈에 미쳐서 탑에 들어온 놈들답게, 고블린 등골까지 빨아먹을 놈들이지.

    다행히도 1층부터는 모든 탑이 연결되면서, 국제협약에 따라서 통행세 같은 건 금지되고 있었다.

    “아무튼, 어서 가봐. 동생들 대학 보낸다며.”

    “그래야죠.”

    그런 상황 탓에 보호비와 1층 통행료를 버느라 제대로 돈을 벌지 못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도 어엿한 1층 등탑자가 되는 거니까.

    가지고 있는 식량에 한계가 있으니 서둘러야지.

    마을을 떠나려는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무리하지는 말고. 너 얼마 전에는 사냥 중에 기절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상처도 없었는데, 젊은 놈이 이리 허약해서 원.”

    “요즘엔 조금 괜찮아요.”

    “괜찮기는! 다크써클이 그때보다 더 짙은데 거짓말은. 돈도 좋지만, 몸 꼭 챙겨라. 더는 누가 죽어 나가는 거 보기 싫으니까.”

    “먼저 죽는 사람한테 부조로 백만 원 하기로 한 약속만 잊지 마세요.”

    “허, 참. 독한 놈. 어른 놀리기나 하고. 알았다, 알았어. 빨리 사냥이나 하러 가.”

    나는 킥킥거리면서 자리를 떴다.

    조심하기는 해야지.

    날이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있으니 말이야.

    “으, 이놈의 탑 울렁증······.”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양손으로 볼을 찰싹 소리가 들릴 만큼 강하게 치며 또 정신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애써 털어냈다.

    또 애들을 걱정시킬 수는 없으니까.

    나는 마을을 벗어나 사냥터로 향했다.

    0층 마을에서 한 시간 정도 벗어난 곳에 있는 울창한 숲.

    이곳이 주 사냥터이자, 고블린들의 터전이다.

    턱!

    나는 가방을 숨겨놓고 사냥을 나섰다.

    스르릉.

    소총이나 미사일 같은 화기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탑에서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무기는 검과 활 같은 것들.

    그중에서 나는 브로드 소드라는 한 손 검을 뽑아 들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키에엑!”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작은 고블린 한 마리.

    푸욱!

    빠르게 검을 받쳐 올려 녀석의 목을 찌른다.

    “켁! 케엑!”

    바들거리다가 쓰러진 녀석을 던져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습이 먹히지 않은 걸 확인하고, 세 마리의 고블린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오늘따라 몸이 무거운데, 힘들겠어.”

    서걱!

    식은땀이 나지만, 어찌어찌 검을 휘두르며 고블린 세 마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고블린의 사체를 챙겼다.

    녀석들의 시체를 버릴 게 없어서, 마을의 잡화점에 던져주면 알아서 측정해준다.

    주르륵.

    그리고, 터져 흐르는 코피.

    “습, 아, 씨. 요즘 코피가 자주 나네.”

    진짜로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이것도 탑 울렁증 증상의 악화 같은데······ 이 정도면 울렁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그리고 설마 탑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니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멈출 수는 없다.

    “끄응, 이걸 가지고 가는 것도 일이야.”

    고블린이 아무리 작고 가볍다고 한들, 네 마리를 혼자 끌고 가는 건 일이다.

    끌차를 빌릴 수도 있지만, 탑의 물가를 생각하면 그냥 힘 좀 더 쓰고 말지.

    기다려라! 1층에 도착하면 길드도 들어가고 돈도 왕창 벌어서 지금 이 설움을 다 풀어줄 테니까.

    “고블린 네 마리. 40만 원입니다.”

    “나이스!”

    오늘로, 1층 입장에 필요한 천만 원을 다 모았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약 천만 원.

    지독히고 사냥하고, 알뜰살뜰 모았다.

    “다음 귀환까지 남은 6일간 1층으로 올라가서, 정식 ‘등탑자’로 등록한 다음, 길드 면접을 보고 사냥하는 데 써야지.”

    1층부터는 사냥해서 벌어오는 대로 온전히 내 돈이라고 생각하니 설렘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통행료 납부 끝났습니다. 1층 포탈 열어드릴게요.”

    도둑놈 같은 길드원의 뒤통수를 째려보면서, 포탈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한 대 때리고 싶지만, 그래도 이제 고생 끝 찬란한 등탑자 생활 시작이다!

    기다려라, 얘들아! 형이, 오빠가 양손에 돈 가방을 들고 돌아갈 테니까!

    우우웅.

    나는 빠르게 걸어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1층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나오겠지.

    그런데······.

    “어라?”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스템 에러】

    에러? 이런 게 있었나?“

    【등탑자 정보 탐색】

    【자격 요건 충족】

    【최초로 98층을 발견했습니다】

    【98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라, 씨발?”

    그 메시지와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

    탑의 1층.

    모든 국가의 등탑자들이 모이는 곳.

    0층의 열 배는 될 크기의 마을 광장 중앙에 있는 분수에 있는 사람들이 오늘따라 소란스러웠다.

    그들의 눈은 하나 같이 분수대 옆 전광판을 향하고 있었다.

    【한국 랭킹】

    【1위 정보 없음 – 98층】

    【2위 박진혁 – 57층】

    【3위 김병식 – 55층】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98층이라고? 이게 말이나 돼?”

    한국에서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탑을 오르던 랭킹 1위조차 57층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정보도 없는 등탑자가 혜성처럼 등장하며 98층을 뚫어버렸다.

    당황스러운 건, 층을 오르는 기색도 없이 98층에 도착해버렸다는 것.

    “박진혁이 60층 뚫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이제 어쩌냐?”

    “길드 잘리는 거 아니야? 왜, 길드에서 운영자금의 반은 박진혁 아이템 맞추느라 쓴다는 얘기도 있잖아.”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잘리기야 하겠어? 그래도 난리는 나겠다. 느닷없이 1위 자리를 뺏겼으니까. 나 같으면 속에 천불이 나서 한동안 등탑은 못 할······.”

    “쉿! 쉿!”

    “왜? 내가 뭐, 못 할 말을······. 헉!”

    순간, 부산스럽던 광장이 조용해졌다.

    철걱, 철걱.

    전신에 번쩍거리는 판금 갑옷과 등에 멘 거대한 투핸드 소드의 주인.

    30분 전까지만 해도 3년 동안 한국 랭킹 1위 자리를 내려놓은 적이 없었던 박진혁이었다.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며 길을 비켰다.

    대외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등반자들 사이에서의 소문은 좋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더 좋지 않았다.

    불똥이 튀기 전에 모두가 박진혁의 주위를 벗어났다.

    박진혁은 잠시 굳은 얼굴로 전광판을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이제 1위가 아니라 2위로 밀려난 자신의 이름을.

    옆에 있던 등탑자가 박진혁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이름이 표기되지 않는 걸 보니 정식으로 등록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오류라도 난 게 아닐까요?”

    “탑이 언제 실수를 한 적이 있던가?”

    그도 오류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의 랭킹 1위라는 자리와 57층에 오르기까지의 경험상으로 탑은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수치로 계산되었고, 종종 이레귤러가 존재하나 그마저도 크게 보았을 때 탑의 계산 안이었다.

    그렇기에 박진혁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오류가 아니야.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98층에 올라가 있는 게 확실해.”

    “그럼, 어떻게 할까요?”

    “녀석도 언젠가는 모든 등탑자가 모이는 이곳, 1층에 오겠지. 1층을 24시간 감시해라. 수상한 인물이 보이면 즉시 보고하고, 어떤 인물일지 모르니 접근은 하지 마.”

    “알겠습니다.”

    등탑자가 박진혁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홀로 남은 박진혁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전광판을 노려보았다.

    자신도 아직 오르지 못한 미지의 공간에 올라선 인물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누르면서.

    “넌······ 대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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