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1화
7. 워크샵(1)
유니버스 스튜디오는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으로 워크샵을 떠나게 되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회사 규정이라니…….’
워크샵 총괄 노릇을 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니, 태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알찬 워크샵을 위해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다섯 명을 조장을 모아두고 말했다.
“1박 2일 동안 사고 없도록 통제 부탁드려요. 각 숙소에 짐 풀고 한 시간 휴식 후 세미나실에 모일 수 있도록 해주세요. 거기서 제가 직접 프레젠테이션 진행할 겁니다.”
공지 후 태연은 자신의 개인 숙소로 이동했다.
회사에서 맞춰준 유니버스 스튜디오 팀 복장인 집업 후드로 갈아입고, 바로 세미나실로 이동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정확히 한 시간 후, 같은 복장을 한 25명의 직원들이 들어와 세미나실을 가득 채웠다.
태연은 헛기침을 터뜨리고 첫 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금부터 판테온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겠습니다.”
* * *
게임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개발팀이 하나의 공통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기획팀 내부에서도 게임에 대해 그리고 있는 그림이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물며, 팀이 다르면 말할 것도 없다.
세계관과 시나리오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기술이 적용되고 또 어떤 사양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가 될지.
이런 기본적인 내용도 모르고 업무에 임하는 사람을 태연은 많이 보아왔다.
이런 이유로, 기획 세부 내용이 바뀔 때마다 기획팀의 장급들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진행하고도 또 바뀌는 경우가 있으니, 그럴 경우 초기에는 열정을 보이던 개발자도 기획 내용에 대해 이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듀서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TF팀이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합의를 마친 내용들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판테온의 기본 필드 구성입니다.”
본래 MMORPG는 다양한 거점과 필드, 인던을 갖게 되지만 판테온은 거점이 하나였다.
그것이 바로 이그드라실로 이루어져 있고, 절대 시스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지배하는 공중도시 판테온.
“아시겠지만, 각 나라의 신화, 설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과 추종자들의 거주하는 연합 도시 개념입니다. 기본이 되는 형태 및 규모는 뉴욕 맨하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과거, 현대, 미래가 공존하는 신비한 도시.
서버 수를 최대한 줄이고 초창기부터 글로벌 통합 버전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홍민석 AD와 이영애 원화 파트장이 만들어 낸 원화, 스케치 자료를 커다란 롤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구역별 상세 설명을 진행한다.
“판테온은 첫 번째 라그나로크 이후, 악마 세력에 효율적으로 대항하고 인류와 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연합 집단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세계관은 최대한 요약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만 짚고 넘어간다.
“사실 판테온의 기반인 이그드라실은 진짜를 흉내 내려 한 모조일 뿐입니다. 세계관의 기반은 북구신화의 이그드라실 설정을 기반으로 합니다만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우주가 되었고, 씨앗이 은하를 구성했다는 식이죠.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는 롤 스크린에 펼쳐진 그림을, 귀로는 설명에 몰입했다.
“씨앗이었던 지구가 지금의 형태로 자라면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로 그 첫 열매들이 주신의 격을 지닌 신과 악마, 그리고 두 세력의 공공의 적이랄 수 있는 혼돈의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신수, 마수, 동물, 그리고 인간과 같은 필멸의 생명체들을 창조했습니다.”
신과 악마는 자신들의 기반인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하지만 신들이 불리했다. 호전적인 성향이 강한 악마들이 자신들끼리 먼저 싸워 서열을 정하고, 판데모니움이라는 집단을 구축한 뒤 신들에게 싸움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첫 번째 거대한 전쟁, 라그나로크가 펼쳐졌고 이로 인한 피해가 무척 크니 신들은 비로소 연합을 결정, 지금의 도시 ‘판테온’을 만들었다.
“판테온의 기반인 모조 이그드라실은 여러 주신들이 권능을 합해 창조했습니다. 어느 신에게도 속하지 않은 이그드라실은 판테온을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절대 운영 시스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시스템이 지구와 악마의 상황을 관측하며 신들과 추종자, 그리고 ‘플레이어’들에게 임무를 하달합니다.”
이그드라실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앞에 판테온의 모든 이들은 공평하다. 신들도 법을 어기면 벌을 받게 된다. 벌을 거부하고 반항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운용하는 치안 집단에 응징을 당하게 된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유저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특정 신의 세력에 소속될 수도 있죠. 그리고 그에 합당한 특성, 능력 등을 부여받게 됩니다.”
판테온의 필드와 던전은 지구 그 자체다. 지구에 필드가 있고 던전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대해야 하는 건 반대 세력인 판데모니움의 악마들, 혹은 두 세력 공공의 적이랄 수 있는 ‘혼돈의 존재’들이다.
“판테온에서 다양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거리의 치안을 유지한다거나, 테러 및 다양한 범죄를 해결할 수 있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생활, 혹은 하우징 시스템 구축 및 확장,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벌 수도 있습니다.”
설명이 계속 이어질수록 세미나실의 개발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야말로 세계관의 자유도만큼이나, 작업이 얼마나 힘들어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연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 정도 규모의 기획을 정말 상세히도 짜놨네.’
‘청사진이 뚜렷하군. 헤맬 일은 없겠어.’
마침내 프레젠테이션이 끝났다.
태연은 마지막으로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힘든 작업이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 만든다면 멋진 게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반드시 성공시켜서 같이 부자 되어 봅시다. 감사합니다!”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시간에는 홍민석, 이영애의 강의가 연이어 진행됐다.
두 사람은 세계적인 교육 기관 및 콘텐츠 제작 회사의 경험을 공유했다. 단순히 말만 들려준 게 아니라 흥미로운 자료가 함께였기에 모두에게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는 바비큐 파티를 하며 자유 시간을 가졌다.
태연은 조용히 식사를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빠져줬는데 그사이,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에 ‘넥플 플러스 전사 워크샵 일정’ 문서가 띄워져 있었다.
‘직원 70명에 본사 간부, 대표님과 회장님까지 하면 총인원이…….’
심지어 이번 워크샵에는 타키자와 사토시와 개발팀 프로듀서의 참가도 예정되어 있다.
워크샵이 끝나면 그들과 함께 넥플 플러스 작업 현장을 견학하고, 함께 회의를 한 뒤 이틀 동안의 한국 관광 일정을 서포트 해줘야 한다
띠링.
그때 메시지가 연이어 날아왔다.
넥플 플러스 김명욱 대표와 개발팀, 외주 업체 등의 문자였다.
메시지로 답변을 해주고, 중요한 내용은 통화로 업무 피드백을 진행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곁에 앉았다. 홍민석 AD였다.
한참을 정신없이 보내다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니 홍민석 AD가 말했다.
“바쁘시군요.”
“제 업보죠 뭐.”
“넥플 플러스 워크샵은 언제부터 진행됩니까?”
“다음 주 금, 토, 일요일이에요.”
“2박 3일씩이나 합니까?”
“거긴 진짜 세미나 분위기로 진행될 거예요. 다들 현지화 작업이 처음이고 운영팀은 교육해야 할 내용도 많거든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홍민석 AD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PD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제가요?”
“개발력도 개발력이지만…… 안목에 대해서만큼은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그 어떤 조직장들보다도 뛰어나십니다.”
묵직하면서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칭찬에 태연이 빙긋 웃었다.
“다행이네요.”
“정말 오랜만에 출근하고, 일하는 게 즐겁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 와이프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근무 환경과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만들어 주신 PD님께 정말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그렇게 계속 띄워주기만 하시면 저 현기증 나요. 벌써 어지럽네.”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영애를 비롯해 아트팀 여자 직원들이 하나둘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PD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저도요!”
도저히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판테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지, 품고 있던 의문을 주저하지 않고 마구 쏟아냈다. 개중에는 엉뚱한 의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태연은 노트북을 덮고 웃는 얼굴로 답변에 응해주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술기운 탓인지 붉어진 얼굴로 한껏 즐거워하는 여인이 보였다.
숏컷이 무척 잘 어울리는 S대 미술학과 출신의 성태희. 그녀는 결국 입사에 성공했고 지금은 졸업 예비생이자 아트 개발자로서 함께 하고 있다.
빼어난 외모와 스타일, 밝은 성격으로 개발팀 남정네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모나지 않은 성격이라 다행이다.’
좋은 경험을 지닌 베테랑을 뽑는 것도 좋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인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태희뿐 아니라 건대 게임 스쿨 출신의 3D모델러 최예지, 원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애니메이터로 개발자 인생을 시작한 이재문도 평이 매우 좋았다.
홍민석 AD는 이 세 명의 가능성 넘치고 성격 좋은 병아리들 육성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고 고백했다. 태연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은 프로그램, 기획 신입도 몇 명 뽑아야지.’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 그들 중 좋은 신입이 보이면 주저 없이 발굴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아, 정말 좋다.’
태연은 웃는 얼굴로 달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향후 인원이 많아지더라도 지금의 이 좋은 분위기가 계속 지속되기를.
태연은 간절히 기원했다.
* * *
넥플 플러스 워크샵 분위기는 여러모로 색달랐다. 어쩌다 보니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거의 맞아떨어졌다. 서로를 신경 쓰고, 어떤 이들에게서는 썸의 징조가 강렬히 느껴진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난 봐도 잘 모르겠는데…….”
들떠서 주체를 못 하는 김명욱을 외면하고, 태연은 70여 명의 직원들을 바라봤다. 처음에 워크샵을 2바 3일 동안 간다고 했을 때에는 죽상을 짓던 사람들이 지금은 무척 화사했다.
“제가 보기에 이번 워크샵 끝날 때 커플 몇 명 나옵니다!”
태연은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10분 후 도착 예정.]
태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회장님, 이사님들 맞으러 갈 준비를 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