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게임 개발자가 너무 유능함 12화
7. 워크샵(2)
첫 순서는 유니버스 스튜디오 때와 같았다.
유진성 회장을 비롯한 손영상, 이태영 이사.
그리고 타키자와 프로듀서와 그의 개발팀원이 모인 자리에서 태연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몬스터 이터 온라인 현지화 작업 과정 및 런칭 전략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유니버스 스튜디오 때보다도 이번 프레젠테이션과 워크샵 일정에 태연은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인원도 많았고 거래처의 중요한 손님들이 참석하는 자리였다.
미리 인쇄물을 뽑아 한국어, 일본어로 나누고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여 일본 손님들에게 붙여줬다.
태연은 처음부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몬스터 이터 온라인을 가장 재미있고 알차게 즐길 수 있는 곳이 한국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있었다.
안정적인 서버 운용, 현지화 개발팀의 팀워크. 그리고 운영자들의 사익을 배제한 공평한 운영!
개발팀과 운영팀의 팀워크도 무척 중요하다.
개발팀은 운영팀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운영팀은 유저 동향을 열심히 파악해서 그들이 원하는 이벤트, 컨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 과정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총괄해야 하는 것이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
“타지카와 사토시 프로듀서님과 개발팀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 협력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주제넘게 나대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저는 한국 서비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여러분과 유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잘 되면 여러분 덕분인 거고 잘못되면 제가 문제인 겁니다.”
그 말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인센티브 지급은 최대한 공평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성과에 따른 연봉 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편애하지 않을 것이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 및 가정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태연은 뒤편에 앉아 있던 유진성 회장과 두 이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저 혼자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제가 프로젝트 매니저를 계속해서 담당하는 조건으로 회장님과 두 분 이사님이 약속해 주신 내용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와아아아!”
지금까지 공식 석상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며 약속할 정도라면 믿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몬스터 이터가 이곳에 계신 모든 여러분들의 인생 게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겠습니다.”
태연이 고개를 숙이자 유진성 회장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힘껏 박수를 쳤다.
세미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워크샵 프로그램 중에는 몬스터 이터 개발팀의 강의, 그리고 대담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태연의 아이디어로 추진된 기획이었다. 태연은 개발팀과 현지화 서비스 팀의 거리감을 줄이고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순서를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멍 때리고, 술이나 마시며 하릴없이 노는 그런 광경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진성 회장은 두 이사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기 전, 태연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워크샵 내용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이거 영상으로 찍고 있는 거 맞죠?”
“네. 회장님이 지시하셨던 대로 모든 내용을 영상 기록 후, 편집해서 공유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미 유니버스 스튜디오 영상은 작업을 끝내고 회사 사내 복지 지원팀에 공유했습니다.”
“좋아요.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됐고 질적으로도 우수한 프로그램이라면 직원들도 워크샵을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처럼 잘 부탁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진성 회장과 두 이사가 한 번씩, 웃는 얼굴로 태연의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려준 뒤 자리를 떠났다.
태연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둘째 날에는 몬스터 이터 레이드 경연 대회를 비롯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동반되었다. 그냥 공부만 하는 거라면 정말 지겹고 힘든 연수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태연은 휴식 시간을 적절히 추가했다.
김명욱 대표로부터 지원을 모든 코너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품을 걸고, 그리고 특정 인물 몇몇이 아닌,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코너 속에서 소정의 성과를 기록한 뒤 상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태연은 자신이 힘들어하는 만큼 워크샵의 질적 수준과 만족도가 크게 향상된다는 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은 차후, 사내에 공유될 고성능 카메라에 온전히 담기고 있었다.
2박 3일간의 일정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 * *
“자, 놀러 갑시다!”
“오오오오!”
모든 워크샵 일정이 끝나고 태연은 약속한 여행 가이드로서 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개발팀이 모두 탑승할 수 있도록 좋은 봉고차를 빌려 서울을 비롯해 지방의 이름난 명소와 맛집을 데리고 다녔다.
개발팀이야 즐겁겠지만 태연으로서는 죽음의 일정이었다. 오죽했으면 괴짜, 타키자와 프로듀서가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해올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됐을 텐데……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후한 대접을 받고 있어요. 정말 고마워요.”
태연은 씨익 웃었다.
“우린 친구이자 동료잖아요. 다음에 제가 일본에 놀러 가면 똑같이 해주실 거면서, 서로 민망하게 그런 말 하지 말자고요.”
아무래도 태연의 이 말에 개발팀 전부 큰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3박 4일간의 여행 일정까지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태연은 다시 개발 일선에 복귀했다.
* * *
넥플 플러스 개발 총괄을 맞으며 태연의 연봉 계약서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천만 원에 불과하던 연봉이 단번에 두 배로 뛴 것이다.
유진성 회장이 직접 지시한 일이었다. 태연이 많은 업무를 수행 중이고, 그로 인한 성과가 뚜렷하니 이에 따른 대우를 해주는 게 마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대외 이미지 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인재 관리부서는 태연 없이 굴러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세계적인 게임 IP 몬스터 이터를 비롯해 크라잉 소프트가 개발하거나, 개발 중인 게임 IP 계약 건은 오롯이 태연의 공이었다.
대중이나 일반 직원들은 잘 모르지만 넥플의 간부,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 게임들을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계열사가 바로 넥플 플러스였다. 아직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이 회사는 70여 명에 달하는 양질의 인력 채용을 마친 뒤 진작 현지화 작업에 투입 중이었다.
아직 어수선할 시기에 빠르게 내부 상황이 정리되고 안정화가 된 것 역시 태연의 공이었다.
연봉 재계약에 내부에서 다른 말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최근, 유니버스 스튜디오는 조금 특이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타 스튜디오에서 전환배치 문의가 밀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적당히 처리했지만 날이 갈수록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태연은 인사팀장을 찾아가 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는 넉넉한 미소로 대답했다.
“회사 직원들은 소문과 분위기에 민감한 법이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쉽게 말해서 유 PD님이 담당하는 두 스튜디오 개발 환경이 정말 좋다고 소문난 거죠.”
“뭐가 어떻게 소문났는데요? 아니 제가 뭘 했다고 그런 소문이…….”
그 말에 인사팀장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어플에 접속해서 어떤 게시글들을 보여줬다.
태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뭔가요?”
“‘갈대나무 숲’이라는 어플인데 직원들이 익명으로 회사 관련 글을 올리는 곳이에요. 이거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안 하는 사람 거의 없을 텐데, 모르셨어요?”
“…….”
몰랐다.
태연이 스마트폰을 받아 어플을 살폈다.
‘넥플’ 탭에 엄청나게 많은 글이 있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유 PD, 유니버스, 우주, 몬스터 이터, 넥플 플러스. 등을 검색해 보세요.”
그 말을 따라 해본 태연이 곧 탄성을 터뜨렸다.
-우주 팀 분위기 좋던데…… 거기 TO 아직 남아 있나?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하다. 사내 정치질은 기본이고 툭하면 기획이 엎어지니까……. 유 PD 팀은 그런 게 없다던데 사실이냐?
-친구가 넥플 엔터에 근무 중인데 거기 분위기 정말 좋다더라. 직원들이 다들 실력, 성격이 모두 좋다더라. 나도 거기 가서 일하고 싶다.
-돈이고 나발이고 이젠 지쳤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데…… 유니버스 스튜디오라면 괜찮으려나?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게시글을 계속 살펴보던 태연은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우리 스튜디오 짱 좋다. 야근 없어도 리더들이 핸들링만 제대로 해주면 양질의 결과물이 잔뜩 나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 스튜디오가 최고다.
-유 PD님 굉장한 분임, 개발력도 개발력이지만 사람 보는 안목이 굉장한 것 같아. 스튜디오에 거를 사람이 하나도 없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야. 나 그냥 평생 여기서 일하고 싶어.
-연봉 잘 맞춰주고 야근은 물론 주말 근무 언급 같은 거 하나도 없다. 이미 TF 단계에서 중요한 기획들이 모두 상세히 정해져서 작업이 엎어질 일도 없어. 야근 시간 축적해서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스튜디오 어디 또 있나?
유니버스, 넥플 플러스 직원들의 자랑질이 소란의 근원이었다.
태연의 표정이 굳어지니 인사팀장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좋은 일 아닙니까? 그만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건데…….”
“그거야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타 스튜디오 장급 인력이나 프로듀서, 디렉터들이 절 안 좋은 눈으로 볼 거 아닙니까. 그게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아…….”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장 뛰어가서 직원들 입단속 좀 시켜야겠네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던 태연이 말했다.
“아, 그리고 우리 추가 채용 당분간 없으니 전배(전환배치) 요청하는 분들에게 이 사실 알려주세요. 필요하면 제가 팀장님 찾아뵙고 요청드릴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불필요한 적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이것이 태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이런 좋은 여론에도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악감정을 갖기 시작한 프로듀서, 디렉터, 혹은 장급 인력들이 자신들을 상대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하지만 사태를 파악했을 때에는 수습하기에 많이 늦은 상황이었다.
넥플 모 스튜디오의 프로듀서와 디렉터가 태연을 찾아와 불쾌한 듯 말했다.
“지금 유 PD님 때문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인력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
“직원 단속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PD님 때문에 저를 비롯한 몇몇 PD들은 적폐로 낙인찍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작 잘하던지!’
그렇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싸우자는 것과 다름없으니 태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말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