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특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미국 나이로 고작 13살의 어린 배우가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쥘 것인가.
또 10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된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가 몇 개의 상을 받아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요소가 정말 많은 시상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차 배우가 무조건 남우주연상 타야지. 라이프에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미친 연기력을 선보였는데.”
당연히 차서준의 열렬한 팬인 김시율은 열심히 채팅을 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영광의 순간을 보기 위해 연차까지 쓴 그녀였다.
└ 무조건 남우주연상은 차 배우 아닌가요? 이미 앞서 있었던 골든 글로브에서도 차 배우가 남우주연상 받았잖아요.
└ 그게 확률은 가장 높긴 한데. 아직 결과를 까보기 전까지는 몰라요. 데이드란 감독의 ‘13월’의 주연 배우도 진짜 말도 안 되는 연기력을 보여줘서요.
└ 사실 시상식마다 또 성격이 은근 달라서.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이번 오스카에서도 반드시 받는다는 보장이 없음요. 그래도 전 차 배우가 무조건 받을 것 같아요.
└ 혹시나 수상이 불발되더라도 차 배우는 이미 전설 아닌가요? 한국 배우 중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얻은 배우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던 거 같은데. ㄷㄷ
└ 맞죠. 심지어 나이가 이제 고작 중학교에 들어간 14살임. ㄷㄷㄷ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까지 차 배우가 보여준 결과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하잖아요.
잠시 후.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이 발표되기 직전. 감독상으로 ‘라이프’의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이름이 불렸을 때 채팅창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 역시 감독상은 무조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이 받아야지! 이러면 지금 라이프가 이번 오스카에서 몇 관왕을 달성한 건가요?
└ 지금까지 6관왕이요. ㄷㄷ 10개 부문 최대 노미네이트되어서 정말 난리가 났었는데. 2개 빼고 전부 다 라이프가 상을 거머쥐었네요. ㄷㄷㄷ
└ 미쳤다!!! 우리 차 배우가 원맨쇼 했다는 평을 받는 영화가 아직 2개 부문이 남았는데에도 6관왕이라니. 이러다가 진짜 작품상까지 싹 쓸어가는 거 아닐까요?
└ 사실 남우주연상은 차 배우의 확률이 엄청 높긴 한데. 아쉽게도 작품상은 지금 데이드란 감독의 ‘13월’이 너무나도 강력해요. 각본상도 ‘13월’에 밀렸잖아요. ㅠㅠ
└ 아무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의 성격상 작품상은 라이프보단 13월의 수상 가능성이 조금 더 높게 쳐주고 있음요. 자, 드디어 이제 우리 차 배우 순서가 왔네요.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오스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순서가.
“제발··· 우리 차 배우가 황금 트로피를 받게 해주세요.”
후보들이 한 명 한 명씩 발표될수록. 김시율의 입 안이 바짝 말라갈 수밖에 없었다.
비록 두 달 전 골든 글로브에서 차서준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었으니까.
특히나 이번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 And the oscar goes to···
시상자의 입에서 영화 라이프의 배우 차서준 이름이 언급된 순간.
김시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번쩍 들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꺄아! 됐다고! 우리 차 배우 이름이 불렸다고!”
└ 헐? 지금 수상자 이름에 우리 차 배우 이름 불러진 거 맞죠? 영화 라이프라고도 확실하게 말했으니까. 정말 우리 차 배우가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 탄 거죠?
└ 미쳤다!!! 지금 차 배우 시상식에 오르기 전에 잠깐 후보들 얼굴을 한 화면에 동시에 보여줬는데. 저 배우들 다 이기고 우리 차 배우가 수상한다고?!
└ 차 배우가 정말 기뻐하네요. 저럴 때 보면 마냥 제 나이처럼 보이는데. 미국 최고 시상식인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배우라니. ㄷㄷㄷ
└ 역시 차 배우의 수상 소감의 마지막은 가족 사랑 이야기죠. 오스카에서도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마무리하는 우리 차 배우!!!
└ 이제 시상식 끝나고 파티 할 텐데. 거기서 차 배우가 트로피 맡기면 이름 새겨주고 보증서도 줌. ㅋㅋㅋㅋㅋㅋ 관련 썰 얼른 한국 돌아와 풀어줬음 좋겠네요!
언제나 그렇듯 배우 차서준의 수상 소감의 마지막은.
“오늘날의 배우 차서준이 있게 도와준 서도현 대표님, 고맙습니다. 응원해주신 팬분들, 또 사총사, 연사모 형들도 항상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사랑으로 응원해주신 엄마, 아빠. 저도 정말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준아! 하윤아! 형아 상 탔어! 돌아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가족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채워졌다.
*
- 오스카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된 배우 차서준.
-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 쾌거!
- 전 세계가 지켜본 최연소 수상자가 된 배우 차서준의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
- 언제나 수상 소감의 마지막은 한국어로 가족 사랑을 이야기하는 배우 차서준.
당연히 배우 차서준의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기사들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에서 14살의 어린 한국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까.
모두가 수상 소식에 축하해주고 있을 때. 정작 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뭐? 작품이 안 들어온다고?”
“네. 사실 라이프 공개 이후부터 살짝 조짐이 있긴 했는데. 골든 글로브에 이어 오스카까지 다녀오고 나니까. 완전 가뭄이 되었어요.”
심각한 표정으로 하는 내 말에 김정범이 웃음을 터트린다. 아니, 이 형 보소. 누구는 지금 제법 심각한 상황인데.
정말로 올해 들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대본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로 아예 사라지다시피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삐딱한 시선으로 김정범을 지그시 바라보자.
“미안미안. 서준이 네가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길래. 당연한 일이잖아.”
김정범이 왜 웃음을 터트렸는지에 대해 황급히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서준아 생각해봐. 이제 널 캐스팅하려면 얼마를 줘야 할까? 너 지금 국내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업계 탑이라고 이제.”
“맞네. 서준이 몸값이 어지간한 규모가 아니고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긴 했지. 우형이 형보다 더 높으면 말 다 한 거 아니야?”
“인정. 연기도 더 잘해.”
우형이 형? 그건 좀···. 어쨌거나 형들의 말이 맞았다.
‘왕자의 난’ 이후 연속으로 ‘라이프’까지 대성공을 시키면서. 한번 찔러보자는 식으로 배우 차서준에게 작품을 넣던 이들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대신 하나하나 들어오는 작품들의 퀄리티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 더 있지. 아마 들어오는 작품 수준이 이전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을걸. 맞지?”
“맞아요. 정범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매니저 형이 말해줬어요?”
“아니. 생각해 봐. 작년에 이어 올해는 골든 글로브,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어. 감독들이라면 그런 배우를 데리고 쪽팔리지 않은 작품을 찍고 싶지 않겠어?”
정말 김정범의 말처럼 그랬다. 찔끔찔끔 들어오는 작품들에는 배우라면 한 번쯤 같이 해보고 싶은 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정말 자신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제안 시도조차 포기해버린다는 것. 골든 글로브, 오스카에서 받은 남우주연상이 가지고 온 나비효과였다.
“그래서 서준이 너 차기작 결정했어?”
‘왕자의 난’ 시즌2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한 김정범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묻는다.
“아뇨.”
내가 대답한 순간. 먹이를 발견한 맹수의 눈으로 돌변한 김정범이 잽싸게 내 옆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나랑 차기작 어때? 배우 차서준과 김정범의 조합! 이미 왕자의 난에서 증명이 되었잖아. 다시 재결합 콜?”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으나.
“형. 저 당분간은 엄청 바쁠 것 같은데요. 미국도 몇 번 더 다녀와야 돼요.”
거절이 아니라 정말로 바쁘긴 했다. 골든 글로브에 이어 오스카에서 최연소 기록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기에 각종 프로그램에서 섭외 요청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건 한국을 넘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함께 출연 제안이 들어온 곳들 중에선 아무래도 얼굴을 비춰야 하는 곳들도 있었다.
“변했네. 우리 서준이가 세계적인 배우가 되더니 변해버렸어. 아이고! 내가 우리 서준이를 등에 업어가면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자꾸만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 김정범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정범이 형. 탑6 앙코르 콘서트 티켓 필요 없어요? 서울에서 할 예정이라는 것 같던데요.”
효과는 매우 훌륭했다!
“미안. 형이 요즘 차기작을 검토하느라 정신이 나갔나 보다. 우리 서준이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늘 내가 다 시켜줄게.”
순식간에 정신을 차린 김정범이 옆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주무른다.
듣기론 장인, 장모님에게 탑6 콘서트 티켓을 드리고 그렇게 예쁨을 받았다지. 그렇게 좋아하실 줄은 정작 준비한 김정범도 몰랐다고.
안 그래도 가수 차서준에게 곡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하던데. 가뭄을 느끼고 있는 배우 차서준과는 정반대의 웃픈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다행히 사총사 친구들이 모두 같은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반이야 조금 갈리게 되었다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처럼 축하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듯 학교 끝나고 돈가스 가게로 향하면 되었으니까.
“대단해!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최연소 배우라니!”
“···진짜 서준이 멋진 거 같아.”
날 보며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최지환과 하지우. 날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김도윤까지.
“나 진짜 서준이를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서준이 널 보고 있으면···.”
이런.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나란히 서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달렸던 김도윤인데. 정작 목표가 점점 더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배우 차서준의 사총사 친구로 유명한, 그것도 같은 아역 배우로서 활동하는 김도윤에겐 항상 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 김도윤은 베프인 차서준 보면서 시기질투가 느껴지지 않을까? 같은 배우로 활동 중인데 차서준은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까지 타면서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잖아. 김도윤은 아직도 고작 드라마 아역 배우로 출연하는 게 전부인데.
오죽하면 이런 눈살 찌푸려지는 글들도 심심찮게 올라올 정도였다. 다행히 순식간에 달려든 팬들 덕분에 글이 금방 삭제되었지만 말이다.
혹시나 이번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나 때문에 배우를 향한 의지가 꺾였나 걱정이 드는 순간.
김도윤의 고개가 홱 나를 향하며 눈에서 불이 번쩍인다.
“나 진짜 더 죽어라 노력할 거야! 서준아, 나 혼자서 잠들기 전에도 연기 공부 엄청 열심히 하고 있거든? 시간이 되면 보고 부족한 부분을 좀 도와줄 수 있어?”
내가 김도윤을 너무 어린아이로만 본 모양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별함이 느껴졌던 아이가 김도윤이었는데.
김도윤은 저 멀리 앞서나가는 친구를 보면서 좌절하기보단. 오히려 어떻게든 그 뒤를 따라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하려 한다.
기특하네. 이런 친구의 손을 어떻게 외면하겠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심지어 요즘은 시간도 좀 남는다.
“당연하지! 그러면 잘 됐다. 도윤이 너 오늘부터 수업 끝나고 나랑 연기 레슨 시작하자. 어때?”
“어? 어어? 오, 오늘부터?”
오늘부터 시작하자는 말에 당황하는 김도윤의 표정이 보인다.
“당연한 소리 아니야?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지금 도윤이 넌 배움에 대한 의욕이 나조차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타오르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그 열기가 조금이라도 식기 전에 열심히 해보자. 안 그래도 도윤이 너 차기작 검토 중이라고 삼촌이 그러던데. 이제 차기작 결정되면 차서준의 사총사 친구로 더 주목받을 텐데 잘해야지. 알았지?”
응? 사총사 친구들의 반응이 묘하다. 저런 시선을 오랜만에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날 바라보는 김도윤, 최지환, 하지우를 보고 있자니. 유치원 샛별반부터 시작된 이 우정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끈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봄의 꽃이 만개하고. 겨울의 눈송이가 내렸다.
그리고 다시 봄날의 꽃송이가 방울방울 피어나기를 몇 번 반복했을 무렵.
- 배우 차서준. 사총사 김도윤, 아역 배우 출신 최이안과 함께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 캐스팅 확정.
“드디어 우리가 함께 주연으로 드라마를 하게 되었네?”
배우 차서준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