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고. 매번 다음 시즌이 공개되고 나면, 이전 시즌에 비해 아쉽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시리즈물의 숙명이었다.
그런데.
“우형이 형, 정범이 형 축하해요.”
“내가 형들과 보자마자 느꼈잖아. 이거 무조건 터진다! 내 예상처럼 지금 또다시 전 세계 1위 차지했다고 기사 계속 쏟아지고 있네. 축하해 형들.”
“고마워.”
‘왕자의 난’ 시즌2는 모두의 불안과 염려를 종식시키며. 모두의 극찬 속 시즌1에 이어 흥행을 터트렸다.
넷티비에서 공개됨과 동시에 형들은 박우형 집에 모여서 봤지만. 아쉽게도 난 그 자리에 함께할 수가 없었다.
아직 미성년자라서. 김정범이 비밀을 지켜줄 테니 몰래 같이 보자고 한 번 더 꼬셨지만. 과감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한 나였다.
그런데 이런 기쁜 상황 속에서 정범이 형 표정은 왜 저렇지.
“아이고, 나 이제 서준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우승이 형. 정범이 형은 또 왜 저래요? 지금 제일 기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 사람이.”
마치 세상이 무너진 사람마냥 앓는 소리를 하는 김정범을 보면서 묻자.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김우승이 웃으며 그 이유를 말해준다.
“왜긴. 시즌1의 마지막에 세자였던 서준이 네가 죽으면서 끝났잖아. 시즌2는 좌의정인 정범이 형이 죽으면서 끝났거든.”
아하. 시즌2 내부 시사회 때에도 엄청난 호평이 쏟아졌다고 들었다. 이번에는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시즌3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상황.
죽어서 하차한 나처럼, 김정범도 시즌3가 제작된다 하더라도 함께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이렇게 되고 나니. 왕자의 난은 완전 우형이 형을 위한 시즌제 드라마가 되었네요.”
“그렇네? 시즌1 끝나고 나서 서준이가 주인공이었다는 말이 남았는데. 결국 시즌2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우형이 형이 진짜 주인공이었네?”
시즌1, 2가 성공하고 나면 이어질 상황은 간단했다. 드라마를 흥행으로 이끈 주연 배우의 몸값 상승.
아마 시즌3가 제작 확정이 된다면. 박우형은 시즌2보다 훌쩍 오른 출연료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형. 뭘 부러워하고 그래. 이번에 회당 출연료도 제법 받았을 거고. 또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그건 맞지. 사실 출연료나 광고비 이런 것보다 기쁜 건 따로 있어.”
“뭔데요?”
내가 묻자,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는 표정으로 김정범이 나를 바라본다.
저 형이 진심으로 기뻐할 만한 것이···.
“아, 대본 많이 들어왔겠네요. 맞죠?”
“정답! 역시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서준이밖에 없다니까. 우승이 저건 날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요.”
이상한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그러나 방금 김정범이 했던 말처럼 차기작 제안이 쏟아진다는 것에 가장 기뻐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과거 ‘금괴소동’으로 다시 일어서기 전까지. 연달아 작품을 국밥처럼 거하게 말아먹으면서 B급 영화 제안만 들어왔었다고 했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그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푸념을 꺼낼 때가 있을 정도였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그나저나 우형이 형은 왜 이리 오래 통화를 할까요?”
“그러게. 축하 전화가 그렇게 많이 들어오나?”
나와 김정범, 김우승이 열심히 수다를 떠들고 있었는데. 정작 집주인이자 축하받아야 할 사람인 박우형은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우형이 들어왔다.
“미안. 급한 전화라서.”
“다 알지. 형수님이지?”
흠칫. 김정범이 짓궂은 미소와 함께 묻자. 박우형이 움찔하고 반응한다.
정말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람이 우형이 형이었는데. 저 형이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인간미가 제법 생겼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지내면서 이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 박우형이었다.
“서준아. 너 탑6 콘서트 언제라고 했지?”
바로 화제 돌리기를 시전한 것. 그리고 그 성능은 매우 훌륭했다!
“맞다! 나도 혹시 티켓 좀 구해줄 수 있어? 진짜 트로트 왕자 열풍이 어마어마하긴 하더라. 부모님이 티켓 좀 구해줄 수 있냐고 하신 건 처음이었어.”
“너도? 안 그래도 나도 그 부탁을 받아서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서준이한테 부담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네. 부담되면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아닌 연사모 형들이 하는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줄 수 있었다.
트로트 왕자 탑6 콘서트는, 그 6명의 가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라며 몇 장의 티켓들을 나눠주었다. 콘서트 제목부터가 ‘감사’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말이다.
“당연히 괜찮죠. 이번에는 전국 콘서트라서 날짜별로 있으니까. 형들이 원하는 날짜를 말하면 바로 티켓 구해다 드릴게요.”
“정말? 그래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이미 티켓 2장이 뇌물로 들어가기도 했다. 불법적인 뇌물이 아니라 귀여운 뇌물로 말이다.
바로 아빠 회사 사장님에게 그 티켓을 보낸 것. 내가 알기론 ‘트로트 왕자’를 생방으로 다 챙겨보고, 또 문자 투표까지 다 참여했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라고 들었거든.
*
차우진 과장이 다니는 회사의 수다 주제는 당연 국민 연예인이 된 차서준에 관한 것이 많았다.
“정말 차 과장님이 탑6 콘서트 티켓 구해다가 사장님 드렸대요?”
“그래. 지금 그래서 우리 사장님이 엄청 싱글벙글하시잖아. 오늘 잘하면 1시간 일찍 퇴근하고 회식할 수도 있어.”
“하긴. 사장님이 그렇게 트로트 왕자를 좋아했다던데. 임원회의 들어가면 잊지 말고 문자 투표하라고 그렇게 당부했다잖아.”
오늘 화제가 된 것은 ‘트로트 왕자’ 탑6 콘서트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과장님이 먼저 서준이에게 말한 게 아니라. 서준이가 사장님 가져다드리라고 줬다고 하더라고.”
“그럴 만도 한 것이. 사장님 특별 지시로 개봉 때마다 단체 관람가고, 또 서준이 미국에서 촬영하는 동안 특별 휴가도 먼저 말했잖아요.”
“맞네. 역시 사장님은 뭔가 다르긴 달라. 장기 투자를 이렇게 성공하네.”
이제는 어머님들의 아이돌 그룹이라고 불리는 ‘트로트 왕자’ 탑6였다. 당연히 전국 콘서트의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곧바로 매진 행렬을 찍을 정도.
그런 탑6 콘서트 티켓을 얻었다는 건. 그것도 차서준이 직접 보낸 티켓이라는 건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과장님이 다른 분들에겐 표를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솔직히 차 과장 아니었음 우리가 차 배우와 같이 사진 찍고 또 사인받을 수가 있었겠어?”
“그건 맞죠. 사실 농담처럼 우리 회사 최고 복지가 차 배우 아빠가 다닌다는 거라잖아요. 저번에 김 대리 결혼할 때 차 배우가 축가도 불러주고.”
그랬다. 옆부서 김다은 대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차서준이 아빠인 차우진 과장과 함께 결혼식장에 방문해 축가를 불러준 것.
“오죽하면 농담처럼 먼저 결혼했던 사람들이 한 번 더 할까? 이런 말까지 했겠어요.”
“저 엄청 부러웠잖아요. 그래서 과장님 회사에 계실 때 얼른 결혼하려고요.”
“차 배우 축가를 듣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겠다. 이상한 말이긴 한데 납득이 간단 말이지.”
다른 가수도 아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탑급 연예인이 축가를 불러준단다. 그것도 식사 쿠폰 하나면 된다고 웃으면서 말했단다.
그때였다.
잠시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직원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진 것은.
“어?!”
*
- 배우 차서준은 사랑의 큐피드? 배우 박우형 일반인 미모의 여성과 열애 중.
└ 이거 또 기레기 낚시성 기사 아님? 차서준 이름만 들어가면 조회수 보장이 되니까 너도나도 어그로 기사 쓸 때가 있잖아.
└ ㄴㄴ 아님. 기사 안 읽었음? 지금 연애 중이라는 증거 사진들과 함께 기사 썼잖아. 그리고 박우형이 저렇게 여성과 있던 적이 없었음. 오죽하면 이상한 소문까지 났었는데. ㅋㅋㅋ
└ 그건 맞지.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배우인데. 연애설 한 번 터진 적이 없어서 이상한 말들이 많았잖아. 이번에 기사 뜬 거 보니 아니었네. 그보다 상대가 일반인인데 이렇게 기사 띄워도 되나?
└ 그 일반인이 차 배우랑 동생 유치원 담임이라는 말이 있음. ㅋㅋㅋㅋ 두 사람의 접점이 어디서 나왔나 취재하다 보니까 샛별반이 나온 거. ㅋㅋㅋㅋㅋ
└ 어? 그러고 보니 뭔가 그림이 좀 그려지는데? 당장 김우승은 차서준이 같이 드라마 찍던 여배우랑 만났고. 또 김정범은 차서준이 가면 왕자 출연할 당시 같은 무대에 올랐던 상대였잖아. 이거 뭔데? ㄷㄷㄷ
└ 와. 이렇게 놓고 보니까 진짜 그렇네. 연사모가 차 배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연사모 형들 연애, 결혼도 모두 차 배우 덕분에 이루어진 건가?
연애설 기사가 터졌다. 그것도 박우형과 김수아 선생님에 관한 기사가 말이다.
차라리 일반적인 연예부 기자가 쓴 기사라면 별 상관이 없었겠지만. 하필 기레기에게 걸린 탓에 김수아 선생님의 신상에 관한 정보가 슬쩍 공개되어 버렸다.
“우형이 형!”
“왔어?”
응? 지금쯤이면 박우형이 심각한 얼굴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한 우형이 형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형?”
“서준이 너도 기사 봤구나.”
“어떻게 된 거예요?”
“저번에 수아랑 하준이랑 같이 저녁 먹었잖아. 그때 하필이면 옆 테이블 어딘가에 그 기자가 있었나 봐. 냄새를 맡고서 내 뒤를 따라다닌 거지.”
두 사람의 연애 사실이 걸리게 된 계기가 나 때문이라니. 밥을 먹자고 한 사람이 김수아 선생님이라곤 하나.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음일까.
“걱정하지 마. 이미 기사가 나갈 줄 알고 있었거든.”
걱정 말라며. 심지어 이미 연애설 기사가 터질 줄 알고 있었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박우형이었다.
“어떻게요?”
“며칠 전에 연락이 왔었어. 자기가 나와 수아가 만난다는 사실과 증거들을 가지고 있으니. 섭섭하지 않은 가격으로 입을 막아달라면서.”
역시나. 기사를 쓴 신문사 이름을 봤을 때부터 이맛살이 찌푸려진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냥 내보내라고 한 거예요?”
“어. 수아와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봤거든. 지금 기자 하나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알아차린 것 같다. 돈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원한다면 저쪽에서 원하는 금액을 주고 막겠다. 이렇게.”
응?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뭔가 미묘하게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수아 선생님과 우형이 형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터트려도 괜찮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형! 설마?”
“그래. 축가 불러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바로 가지는 않을 거야.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 하니 조금 있다가 입장 발표가 나갈 거고. 식장 날짜는 수아네 집에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나서 결정하겠지만. 지금 대략적으로 내년 1월쯤을 생각하고 있어.”
이런. 드디어 연사모의 마지막 주자가 떠날 결심을 한 모양이다.
“형! 정말 축하···.”
내가 박우형에게 진심이 담긴 축하의 말을 건네려는 순간.
“형! 이거 기사 터졌어!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서준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맞아! 하필이면 또 하준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이잖아. 이거 잘못했다간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간다고. 얼른 수습을 해야 한다니까!”
다급한 얼굴을 한 김정범과 김우승을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응?”
“지, 진짜?”
박우형이 이야기를 들을수록 두 사람이 얼빠진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설명이 다 끝날 때쯤엔.
“이야! 축하해! 드디어 형이 갈 결심을 했구나. 나는 진짜 형이 못 갈···. 아니, 안 갈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니까.”
“맞지. 예전에 한번은 진지하게 의심한 적도 있었다니까. 저 형은 무성애자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래도 좋은 짝을 만나서 갈 결심을 하다니. 선물이나 많이 준비해야겠다.”
이 사람들 보소. 무슨 상처 주고 약 주고를 하네. 어쨌거나 결과는 결심을 내린 박우형에게 줄 선물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
다음 날.
배우 박우형의 연애설에 관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미래를 생각하고 만남을 이어가고 있으며. 조만간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겠다며.
여기까지는 모두가 해피엔딩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서준아.”
“네?”
“삼촌도 그 기사 봤다.”
서도현이 촉촉해진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삼촌에게 어울리는 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아직 차서준 연애 조작단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