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30화 (30/220)

< 30화 >

차서준에게 문자를 보내던 김우승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만큼 숙취가 한 방에 사라지는 무서운 말이었다.

“여, 여기로 온다고?”

배우가 된 김우승에게 있어 차서준은 단순한 7살 꼬맹이가 아 니었다.

과거 ‘유니온’ 데뷔를 준비하면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키던  선생님들도 서준이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욕을 한다는 게 아니 다.

뭐랄까.

연기를 대함에 있어 수십 년의 경력이 쌓인 대선배님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직접 눈앞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야 하는지를 선보이고 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어허! 하고 호통을 쳤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얼른 준비해야겠다.”

술이 깼는지 확인하러 온다는 게 아니다. 오늘 촬영에 문제가   없는지. 또 최고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지 점검하러 온다는 뜻.

어제 사 온 숙취 해소제 뚜껑을 따 마신 뒤. 김우승은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대본을 들고 차서준이 등장했다.

“형.”

“으, 응?”

“우리 아직 종방 안 했잖아요. 마지막 촬영도 남았고. 그렇죠?”

“···그렇지?”

“그렇지가 아니에요. 무슨 일이든 마무리와 끝맺음이 가장 중  요한 법이에요.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을 탈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마실 거예요? 다음날 촬영도 있는데?”

7살 꼬맹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푹푹 박힌다. 무엇보다  반박할 수 없는 모두 맞는 말인지라 김우승의 고개가 더욱더 숙 어졌다.

순간 최우수 연기상을 탔다고.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퍼마신 어 제의 자신이 후회가 됐다.

서준이의 말처럼. 아직 촬영도 다 끝나지 않았고. 당장 오늘 촬 영도 있었는데.

“에휴. 그렇다고 기죽지는 말고요. 최우수 연기상 탄 거 정말  축하해요. 형이 정말 잘해서 받은 상이잖아요.”

차서준의 축하한단 말에 김우승의 고개가 홱 하고선 움직였다.

방금 전까지 호랑이 선생님처럼 매섭게 혼을 내던 차서준이  어느새 방긋 웃고 있다. 그제야 7살 제 나이로 보인다면 착각일 까.

“고맙다 서준아!”

차서준의 극찬에 감격이 차오른 김우승이 안아주려고 달려드 려는 순간.

“하지만!”

이런.

아직 꾸중이 끝나지 않았나 보다.

활짝 펼친 두 팔을 다시 공손히 모은 최우수 연기상의 수상자  김우승은. 다시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꾸중을 기다렸다.

지금 차서준이 하는 말들 중에서 틀린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 니까.

“시상식에서 그렇게 저만 찾으며 울부짖으면 어떡해요. 배우 에게 있어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게···. 그때는 최우수 연기상이라는 영광을 받으니 눈앞이  하얘지면서···.”

다시 서서히 고개가 숙어지는 김우승을 보면서 차서준이 웃었 지만. 이미 시선이 땅으로 향한 김우승은 보지 못했다.

“잘했어요. 사실 형이 가장 기쁜 순간에 저를 말해서 기뻤어요. 그리고 엄마가 형을 한 번 집으로 초대하고 싶대요.”

“정말?!”

차서준의 집에서 자신을 초대한다니 기쁘기도 하고. 또 어머 니는 서준이처럼 무섭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는 김우승이었 다.

단짠단짠의 아침이었다.

*

“커엇! 다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씬 촬영이 끝났다.

모두의 얼굴에 시원섭섭한 표정들이 떠올라 있었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차 배우도 고생 많았어요. 우승 씨랑 설아 씨도 마지막 까지 최고였어요. 최고.”

김도욱 PD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엄지를 들어올렸다. 로맨스  코미디가 그렇듯. 마지막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지만.

“사람들 반응이 좋아요. 오히려 달달한 이야기들로 연장해달 라고 아우성도 아니라니까요.”

박우영 작가가 활짝 핀 얼굴로 사람들의 반응을 중계해주고  있었다.

뻔한 장면도 누가 연출하고, 어떤 대사를 하느냐. 마지막으로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

“다들 쫑파티까지 하고 가실 거죠?”

“네. 오늘이랑 종방연 때 스케줄은 모두 비워놨습니다. 감독님 이랑 끝가지 달려보려고 말입니다.”

김우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도욱 PD의 말에 답한다.

쫑파티라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12부작의 힘든 촬영 기간 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가볍게 하 는 것이니까.

아마 오늘 분량이 없어 함께하지 못한 배우들은. 마지막에 다   같이 마지막화를 보고 마무리하는 종방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서준아. 요청했던 거 지금 막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까?”

“안 그래도 감독님에게 말해두었어요. 조금 있다가 다 같이 모 였을 때 나눠주면 될 것 같아요.”

내가 준비한 건 바로 ‘서준 T'였다.

아직 큰돈을 번 게 아니기 때문에 비싼 건 아니고. 촬영하는 기  간 동안 고생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내 작은 기념 선물이었다.

하얀 무지 반팔티에 정면에는 내 사진이. 그리고 뒷면에는 ‘너 에게 다시’의 제목과 촬영 기간, 내 사인이 들어갔다.

“어머? 이걸 서준이가 준비한 선물이라고?”

“이야. 내가 수많은 작품에 참가했어도. 이런 선물을 받은 적 은 처음인데.”

“서준아. 고마워!”

잠시 후.

김도욱 PD가 건네준 마이크를 잡은 내가 그동안 정말 고맙다 는 인사와,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는 말을 꺼내자 나온 반응이었 다.

수진 누나가 대략적으로 미리 사이즈들을 가늠해두었고. 또  넉넉한 물량으로 준비했기에 선물을 못 받는 사람은 없었다. 남 을지언정 부족하면 안 될 테니.

“수진 누나. 마지막 인사 나누고 올게요.”

“그럴래?”

“네.”

힘든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모두가 시원섭섭한 감정들을 느 끼게 된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준비된 쫑파티에서 나는 스태프 하나 하나를 찾아갔다.

“형. 저랑 같이 사진 찍어요!”

“정말? 그래도 돼?”

“네! 우리 드라마 찍는 동안 엄청 고생했잖아요. 기념으로 사 진 찍어요.”

내 제안에 조명 팀 막내의 표정이 활짝 핀다. 사실 드라마를 촬 영하는 내내 요청하고 싶었을 거다.

앞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 그런 배우와 함께 촬영을 했다 는 기념을 남겨두고 싶었을 테니까.

방금 내 제안처럼 단둘이 찍는 사진은. 모두 고생했다며 단체  로 찍는 사진과는 자신에게 있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터였다.

“정말 내 핸드폰으로?”

“그래야 형이 저랑 함께 ‘너에게 다시’를 찍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잖아요. 저도 수진 누나가 찍어줄 거예요.”

심지어 자신의 폰으로 찍자는 내 말에 한 번 더 놀란다.

찰칵. 신이 난 표정의 조명 팀 막내와 사진을 찍은 뒤. 그가 원 하는 사인지에 사인도 해주었다.

다음은 누굴 노려야 하나.

마치 연쇄 사인마라도 된 것처럼. 나는 지나가는 스태프 하나 하나를 붙잡고서 사진을 연신 찍어대었다.

“아저씨. 저랑 같이 사진 찍어요.”

그리고 그건 스태프들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촬영장에 온 보 조 출연자들까지 나는 팬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

[‘너에게 다시’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우리 차 배우가 선물해 준 선물과 함께 인증샷]

└ 벌써 ‘너다’ 마지막 촬영 끝남?

└ ㅇㅇ 12부작으로 편성되었으니. 마지막 촬영이 끝날 때가  되긴 했지.

└ 근데 저기 스태프 손에 들린 티 뭐임? 서준이 얼굴 귀여운데. 나도 갖고 싶다.

└ 서준이가 촬영 기간 내내 고생한 스태프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고 함. '서준 T'라고 배우들까지 모두에게 선물했다고  함. ㅋㅋㅋ

└ 귀엽네. 앞에는 자기 얼굴. 뒤에는 사인이랑 ‘너에게 다시’  제목이랑 촬영 기간이 적혀 있네. 저거 받은 스태프들 정말 뿌듯 하겠다.

인증샷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차서준과 단둘이서 정겹게 찍은 사진들. 그리고 선물로 받은 ‘ 서준 T'를 들고 찍은 사진들이 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촬영에 누가 될까 하지 못했던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푸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차 배우님 촬영장 미담썰. 이제 마지막 촬영까지 끝났으 니 풀어본다.]

- 촬영도 모두 끝났으니. ‘너다’의 성공을 견인한 우리 귀여운  차 배우님 미담을 좀 풀어봄.

일단 우리 귀여운 차 배우님은 촬영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사하기임.

특히 스태프들이나 보조 출연자들까지 모두 찾아다니면서 ‘안  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게 추운 날씨에도 힘이 나게 하는 힐링이었음.

그리고 추운 날씨에 야외 촬영이 있으면. 꼭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랑 같이 히터 쓰자고 막 불러들임. ㅋㅋ

마지막 촬영 끝나고. 다들 서준이랑 기념사진은 찍고 싶은데  말 못하고 끙끙거릴 때.

‘형! 우리 사진 찍어요!’ 하고 서준이가 먼저 다가와서 스태프  막내까지 한 명 한 명 다 사진 찍어주고 사인도 해줌.

무엇보다 방에 걸린 ‘서준 T'만 보면 그동안의 고생이 보답받 는 기분임.

└ 서준이 6살. 아니지, 이제 7살 아님? 하루아침에 벼락스타   되어서 거만해질 수도 있는데. 파도파도 왜 이리 귀여운 미담만 나옴?

└ 우리 서준이는 팬서비스도 확실해요. 길 가다가 팬들이 자 기 알아보면 무조건 멈춰서 사인이랑 사진도 찍어줌. 특별한 스 케줄 있으면 양해 구하고 가고.

└ ㅋㅋㅋㅋㅋ 오죽하면 김우승이 작년 시상식에서 서준이를   울부짖었겠음. 그냥 서준이는 천생 연예인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거 같음.

└ 저 서준 T가 너무 귀엽다. 그보다 같이 고생한 사람들을 생 각해서 선물을 준비한 마음이 더 귀여운 듯. ㅠㅠ

└ 수, 목은 무조건 TV 앞에서 ‘너다’ 본방 사수 해야겠어요.

“좋다.”

역시나 후기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준 T'를 선물한 건. 단순히 이미지를 쌓기 위해서 시작한 일 이 아니었다.

앞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해나가면서. 내 나름대로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기념인 셈.

“보자. 슬슬 광고들이랑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가 되었는 데.”

‘너에게 다시’를 촬영 중인지라. 내게 들어오고 있는 수많은  광고들이나 작품들을 서도현 선에서 보류하고 있을 터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것처럼. 문을 열고 서도현이 들어온 다.

그것도 내가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꺼내면서.

“서준아.”

“네?”

“들어온 광고들 중에서. 삼촌이 서준이가 해도 될 만한 것들을  추려봤는데. 확인해볼래?”

“네! 주세요.”

안 그래도 광고 이야기부터 나올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화보와 함께 공개된 ‘피치노’의 광고가 나로 인하여 효과를 톡 톡히 봤다.

심지어 고급 브랜드로 쉽게 손대기 힘든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런칭과 동시에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전부 ‘피치노’의 옷들이었고.

“우와. 광고비가 엄청 올랐어요.”

“당연하지. 그만큼 서준이 네 인기가 올라갔으니까.”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을 끝낸 지금. 내 몸값은 처음 광고가 들 어올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 상태였다.

10화까지 방영된 [너에게 다시]의 시청률이 25프로를 넘어섰 다. 심지어 그 경쟁작이 스타 군단의 [시크릿 라이프]였으니.

승리의 주역이라 평가받는 내 몸값이 뛰는 건 당연한 일이었 다.

“삼촌.”

“응?”

“광고 말고 작품 들어온 건 없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도현이 눈을 빛낸다. 마치 이 말을 꺼 내길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지금 서준이 너에게 들어오는 작품들이 꽤나 많거든. 특히 어 려운 연기가 요구되는 배역들도 꽤나 많이.”

“그러면 제가 다 볼 수 있어요?”

“전부 다?”

“네!”

이번 차서준으로서 삶의 목적은 금전적인 성공이 아니다.

엄마, 아빠와 행복한 가족 만들기. 또 내가 하고 싶은 연기들을  마음껏 하기.

성공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대박 날 작품을 쫓는 게 아닌. 다양한 필모를 쌓아 가면  된다. 한두 작품 흥행에 실패한다 하여 흔들릴 내가 아니었으니 까.

“음. 서준이의 재능을 보고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영화들도 제 법 들어왔는데. 모두 다 줄까?”

“네! 다 주세요. 급하게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건 빼고요.”

“그래. 지금 바로 주마.”

당장 바로 촬영에 들어 가야하는 건 제외했음에도. 내 앞에 쌓 인 것들이 수북했다.

조금 휴식을 취한 다음에 차기작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와 행복한 여행도 다녀야 했으니까.

다만. 좋은 작품이 있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할 생각 도 있긴 했다.

“보자.”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해야 할까.

“어떤 작품들이 들어왔을까. 오?”

그때였다.

재밌어 보이는 작품을 발견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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