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9화 (9/220)

< 9화 >

“안 배울래요.”

내 대답에 서도현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엄마도 아닌 내게서  거절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오늘 무대 위에서 내 표정을 봤을 테니 확신하고 있었을 거다.  이 아이는 반드시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정답이긴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기에 거절하는 것일 뿐.

자신의 예상이 틀렸음에도, 서도현은 물러나는 것이 아닌 무 릎을 굽혀 시선을 내 눈에 맞춘다.

“음. 서준아. 이 삼촌이 봤을 땐, 서준이가 오늘 무대 위에서 연 극할 때 즐거워한다고 느꼈거든. 그렇지 않았니?”

“그건 맞아요. 무대 위에서 정말 재밌었어요.”

즐거웠다.

비록 6살 꼬맹이들과 함께 삐약삐약 떠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연극이었지만. 사람들이 내 연기에 반응하는 그 모습들이 충분 히 즐거웠다.

김도경 시절부터 연기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연기로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희열감.

“당장 TV에 나오는 배우를 해보라는 게 아니야. 그냥 서준이 가 정말로 연기에 흥미가 있을지 없을지 한번 확인해보자는 거 지. 어때 재미 삼아 한 번만 배워볼래?”

좋은 제안이었다.

아역 배우가 되자는 것보다. 6살의 차서준이 연기에 흥미가 있 을지 확인해보자는 제안은.

하지만.

당장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었던 연기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 다.

그 소중한 것이 가장 우선시에 놓여있기에. 나는 이제 겨우 6 살인 지금, 그 전부였던 연기도 기꺼이 후순위로 미루어둘 수 있 었다.

그게 뭐냐고?

이번 생에서 새롭게 얻은 소중한 ‘우리 가족’. 아직은 배우가  되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보다 ‘행복한 가족 만들기’에 집 중하고 싶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나중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해 볼래요. 아직은 아니에요.”

“이런. 아직이라···.”

단호한 내 의지를 읽었는지. 서도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 며 무릎을 세운다. 그러면서도 내가 말한 아직이란 단어를 놓치 지 않았다.

나와 서도현을 옆에서 바라보던 엄마가 황급히 끼어든다.

“죄송해요 대표님.”

오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루어진 대화로 추측해봤을 때. 서 도현은 제법 인정받는 소속사의 대표임이 분명했다.

처음 자기소개를 들었을 때 놀란 엄마의 표정을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서도현에게 내가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자 걱정  이 든 것이다. 혹여나 나중에 내가 뒤늦게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봐.

허나 몸을 완전히 일으킨 서도현의 얼굴에는 전혀 불쾌함 같 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뭐랄까.

“하하. 아닙니다. 서준이가 아니라는데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 지요.”

의욕을 불태운다는 느낌이랄까.

마치 이번 고백은 차였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직진하겠다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단순한 헤프닝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서준이 어머님. 혹시나 서준이가 연기에 흥미를 보인다면 언 제든지 편하게 연락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애를 정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이건 뭐랄까. 제가 이쪽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얻  은 확신 같은 겁니다. 서준이는 배우의 길에 들어선다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 말입니다.”

확신에 찬 서도현의 말에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만약 서도현의 신분을 모른다면. 어린아이를 착취하기 위해  접근한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어지간한 사기꾼이 아닌. 엄마조차 알 고 있는 연예계에 종사하는 배우 소속사 대표였다.

당장 며칠 전에도 TV 프로그램인 ‘연예 매거진’에 인터뷰까지  나왔던 대단한 사람.

“네. 서준이의 생각이 바뀐다면 바로 대표님께 연락드릴게요.  우리 서준이를 좋게 봐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뿐인 아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극찬과 함께하는 말들이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 니었다.

“하하. 그러면 오늘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혹시나 서준이 가 흥미를 보인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엄마에게 다시 명함 하나를 더 건넨 서도현이 고급 세단을 타 고 사라진다.

“엄마. 우리 집에 안 가요?”

“···으 응? 가야지. 얼른 들어가자 서준아.”

잠시 손에 들린 명함을 멍하니 바라보던 엄마가 내 말에 그제 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준아.”

“네?”

집에 돌아온 엄마가 나를 부른다.

아마 방금 전 서도현의 제안에 많이 흔들리신 것 같은데.

집에서 엄마, 아빠와 즐겁게 연극을 준비한 것과 달리. 단호하 게 고개를 저은 내 대답의 이유가 궁금했는지.

“서준이는 이번에 연극을 준비하면서 어땠어?”

내게 저런 질문을 던졌다.

어땠냐고?

재밌는 지옥이었다.

6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무언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힐링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찌들었던 내가 서서히 아이들의 동심에 치료가 되는 기 분이랄까.

그와 동시에 애들에게서 시달림을 받으면 그런 지옥이 또 따 로 없었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대화가 안 통해요.

그래도.

“재밌었어요.”

“그래? 엄마, 아빠랑 연습할 때에도 재밌었니?”

“네. 하지만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워요. 유치  원 끝나고 학원 다니는 친구 이야기를 들었는데. 10살은 늙을 거 같대요.”

그 말에 엄마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마치 생각지도 못한 농 담을 들은 사람처럼.

농담 아닌데.

“그랬구나. 엄마, 아빠도 서준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정말 즐 겁단다.”

엄청나게 좋은 기회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얼굴에 는 아쉬운 기색 따윈 없었다.

허나, 수시로 바뀌는 어린이들의 꿈을 생각했는지. 내 손을 잡 고 말을 이었다.

“아까 대표님 말씀처럼. 우리 서준이가 연기에 흥미가 생기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말해야 돼. 알았지?”

“네! 엄마한테 가장 먼저 말할게요.”

방긋 웃으며 대답하자 엄마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 다.

잠시 후.

막차가 끊기지 않을까 걱정되는 시간이 되어서야 아빠가 시무 룩한 얼굴로 등장했다. 한 손을 뒤로 숨긴 채로.

“아빠!”

“응? 우리 서준이 안 자고 있었어?”

“네! 아빠가 언제 집에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약속했던 하나뿐인 아들의 유치원 발표회에도 가지 못했다.   아들이 얼마나 실망했을까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텐데.

정작 내가 방긋 웃으며 안아주자, 그런 근심들을 모조리 날려 버린 듯했다.

먹구름이 걷힌 아빠가 신이 나서 뒤로 숨겼던 손을 꺼냈다. 그   손에는 하얀 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닭다리를 들고 있는 닭이 그려져 있는.

“그건 뭐에요?”

“이거? 아빠가 우리 서준이 연극 축하 기념으로 치킨을 사 왔 지.”

“씻고 오세요. 제가 준비하고 있을게요.”

작은 손으로 뺏다시피 치킨이 담긴 봉지를 받았다.

씻고 나온 아빠와 함께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나는 오늘 발표 회 연극에서 있었던 일들을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 제가 상어 역할을 엄청 잘해서 칭찬받았어요.”

“정말?”

“정말이에요. 다른 애들 부모들이 저 애는 누구냐고 놀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엄마가 한마디 거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생한 아빠의 어깨를 작은 손으로 열심히 주무르자. 그제야  축 처져있던 입꼬리를 올리는 아빠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서준이도 좋은 꿈꾸고 잘 자렴.”

굿나잇 인사를 마친 나는 작은 방에 들어와 누웠다.

바깥 조명에 흔들거리는 천장 불빛을 보니. 낮에 서도현이 했 던 말이 떠오른다.

아역배우를 위해 연기 공부?

그런 것 따윈 필요 없다. 당장 제대로 된 눈을 가진 감독이 한  번만이라도 나를 촬영한다면 눈이 돌아갈 테니.

다만. 너무 어린 나이의 성공은 독이란 걸 배웠다. 내게 독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독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힘들게 지내던 집이 갑작스럽게 큰돈을 만지게 된다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러니 계획보다 조금 더 빨리 ‘행복한 가족 만들기’를 성공하 여 흔들리지 않는 가족을 만들 생각이다.

내일 아침에도 아빠를 안아줘야지.

아, 내일이 일요일이었던가?

생각은 여기까지만 이어졌다.

6살의 어린 몸은 눈을 감음과 동시에 깊은 잠에 빠져들게 만들 었다.

*

“서준아.”

“왜?”

“오늘 나랑 끝나고 좋은데 가지 않을래?”

얼핏 듣는다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대화는 엄 연히 6살 꼬맹이들끼리 주고받는 것이다.

김도윤이 말한 좋은 곳은 이상한 곳이 아니란 말이다.

바로.

어린 김도윤이 배우라는 꿈을 가지게 된 촬영장에 같이 가자 는 말이었다.

“촬영장에?”

“응. 연극이 끝나면 외삼촌이 데려간다고 했었는데. 그게 오늘 이야. 거길 서준이 너랑 같이 가고 싶어.”

이건 서도현이 김도윤에게 의뢰한 게 아니다. 원래 약속되어  있는 일정에 김도윤이 내게 같이 가자고 조르는 것일 뿐.

물론 그 사이에 서도현이 넌지시 나를 언급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거절했으나.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수락 할 수밖에 없었다.

6살 꼬맹이의 떼쓰기란 간혹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처럼.

“안녕.”

“안녕하세요. 그런데 삼촌. 엄마한테 말하지 않아서 걱정할지 도 몰라요.”

결국 김도윤의 손에 이끌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서도현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엄마가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하자. 서도현이 웃으며 걱 정 말라고 안심을 시킨다.

“엄마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삼촌이 서준이 어머니랑  통화를 했거든.”

확실히 성공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단순한 재롱잔치 무대에서 내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또 거 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나를 찾아왔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신념. 그리고 확신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는 법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래도 서준이가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까. 가는 길에 집에 들 렀다 가자.”

“집에요?”

“서준이가 엄마랑 함께 가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해서 함께 가 도 괜찮아.”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안다. 6살 어린이라 하여 막무가내  가 아닌. 자연스럽게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대함에 있어 6살 꼬맹이가 아닌. 미래를 함께할  자기 배우를 위한 투자로 보고 있었다.

“근데 어디에 가요?”

“도윤이가 말했던 대로 촬영장에 갈 거야. TV에 나오는 유명 한 사람들도 볼 수 있지.”

“TV에 나오는 사람들이요?”

“응! 나도 저번에 삼촌 따라갔었는데. 엄청 멋져. 서준이 너도  가면 한눈에 반할걸?”

옆에서 신이 난 김도윤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걱정이 될지 모르니 엄마를 보고 갈까?”

“네. 고맙습니다.”

백미러로 바라보는 서도현을 향해 꾸벅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 안에서 서도현에 대한 평가 점수가 조 금 더 올라갔다.

“서준아. 엄마가 유치원 버스가 내리던 곳에서 기다린다고 했 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알았지?”

“네.”

아역배우가 되어보자거나, 연기를 배워보자. 이런 설득을 하 는 게 아니라.

6살 어린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 보였다.

나를 촬영장에 데려간다면. 그곳에서 화려한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당장 옆에 있는 김도윤의 눈빛이 반짝반짝이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거기에 하나 더.

엄마까지 배려하며 움직인다는 사실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 게 된다.

*

다른 세상이더라도 촬영장의 분위기는 비슷했다. 분주하게 움 직이며 준비하는 스태프들. 그리고 촬영을 기다리며 대본을 확 인하는 배우들까지.

나는 서도현의 손을 잡고 촬영장에 도착했다. 서도현의 걸음 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구름엑터스 소속 배우가 있는 대기실 이었다.

“어? 대표님이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우리 배우님을 응원하러 왔지.”

“아니, 내가 몇 년 차인데 응원을 와요. 응? 안녕.”

의심을 눈빛을 보내던 남자 배우가 그제야 나와 김도윤을 발 견했는지 손을 흔든다.

“안녕하세요.”

몇 번 본 적이 있는지 김도윤이 꾸벅 인사를 한다. 나 역시 옆 에서 따라 인사를 했다.

“조카를 위해서 온 거구만. 자꾸 거짓말하면 나 도망갑니다?”

“갈 데가 있으면 가.”

“에이, 내가 대표님을 두고서 어딜 가겠어요. 키워준 은혜도  모른다고 손가락질당할 일이 있나. 안 가요 안 가.”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소속사 대표와 배우임에도 제법 친해  보였다.

잠시 서도현과 대화를 나누던 남자 배우의 시선이 내게서 멈 췄다.

“응? 못 보던 친구 하나가 함께 왔네. 누구예요?”

남자 배우의 물음에 서도현이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도윤이 친구인데. 앞으로 내가 함께하고 싶은 친구야.”

그 말이 퍽 놀라웠는지 놀란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 그 말은···.”

“맞아. 그러니 오늘 잘 대해줘. 나중에 같은 식구가 될지도 모 르는 어린 친구니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서도현이라는 구름엑터스 대표가 지닌 무게감에 대해 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뒷말이 ‘성공을 보는 대표’였나.

그런 서도현의 극찬에 가까운 소개에. 나를 바라보는 남자 배 우의 시선이 변했다. 그러더니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제안 하 나를 꺼냈다.

“마침 단역으로 아역 한 명 구하느라 난리 나던 참이었는데 잘  됐네. 그냥 대사 한 줄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건데. 이 친구 한번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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