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3명의 꼬맹이. 삼총사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요 삼총사가 샛 별반의 중심이라는 걸.
내가 아까 샛별반에 들어가기 전까지 애들이 저 삼총사를 중 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봤었다.
그렇게 샛별반의 중심이던 삼총사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차서 준의 존재로 인하여 관심이 뺏겼다는데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야. 너 왜 대답을 안 해? 내 말 안 들려?”
그러니 지금처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가 혼자 떨어져 있을 때 다가온 거겠지.
이게 그 유치원 텃세라는 건가.
그걸 제외한다면 구석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게 다가올 이유가 없었다.
내가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자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꼬맹 이는 성큼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내게 대답을 듣겠다는 듯이 되물으면서.
“너 오늘 새로 왔다면서?”
“어. 왜?”
당연히 이어질 말은 이 나이대 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을 뺏긴 아이는 그 관심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움직일 테니 까.
오늘 하루만 보더라도 원래는 삼총사와 웃고 떠들었어야 할 친구들이. 온종일 내 곁에 다가와 종알종알거렸다.
그래서 텃세라도 부리려고 다가오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나는 유치원에서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돌아갈 생각 이었다.
오늘과 같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은 이쪽에서 사절이다 이 말씀.
적당히 상대하다 보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삼총사의 리더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작 삼총사 리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기소개였다.
“나는 샛별반 반장 김도윤이야.”
“그래? 반가워. 나는 오늘부터 샛별반에 새로 오게 된 차서준 이야.”
나는 잠시 악수를 위해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분명 지금 눈앞의 삼총사의 리더. 아니, 김도윤 어린이는 자신 을 소개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마치 유치원생이 아닌 사회의 어른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따라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김 도윤이 내민 손을 잡았다.
“원래 새 친구를 사귈 때에는 이렇게 악수를 하는 거랬어.”
“그건 누구한테 배웠어?”
“응. 외삼촌한테 배웠어.”
“외삼촌?”
“응.”
그제야 김도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제법 잘 생겼다. 이 몸 인 차서준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샛별반을 넘어 유치원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받을 만큼 귀엽다.
어딜 가더라도 ‘어머, 귀여운 아이네?’ 하고서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외모.
그러니 아직 모른다. 샛별반에서 온전히 쏟아지던 관심과 사 랑을 뺏겼다는 사실에 이렇게 다가온 걸지도.
어린아이인 만큼 금방 제 속내를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 오늘 처음 왔으면서. 왜 친구들이랑 안 어울리고 이렇게 혼자 떨어져 있어?”
정작 이어지는 김도윤의 말은 샛별반 반장으로서 혼자 있는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랬다.
걱정.
새로 샛별반에 들어온 친구가 잘 적응하지 못하나에 대한 걱 정.
“···그냥.”
뜻하지 않은 전개에 당황하며 적당히 둘러대자.
에휴 하고선 한숨을 쉰 김도윤이 한 걸음 뒤에 있던 나머지 삼 총사 둘을 불렀다.
“너 정말 소심하구나. 자꾸 혼자 있으려고 하네.”
소심? 내가?
“안 되겠다. 너 아직 샛별반 친구들 다 모르지? 처음부터 모두 외우진 못할 테니까. 우리부터 소개할게.”
김도윤의 그 말을 시작으로.
“반가워! 새로운 친구! 나는 샛별반의 최지환이야!”
발랄한 친구 최지환 어린이가 먼저 자기를 소개하고.
이어서.
“···나는 하지우.”
뭐랄까. 조금 경계심 많은 강아지 같은 느낌의 하지우어린이 가 자신을 소개한다.
신기한 캐릭터들의 조합인 삼총사를 보면서 나는 김도윤에게 배운 대로 손을 내밀며 인사를 했다.
“나는 오늘부터 샛별반에 오게 된 차서준이야. 반가워.”
서로의 이름 소개가 끝나자. 삼총사가 성큼 더 내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나를 둘러쌌다. 샛별반 선생님이 지나가다 보면 혹 여나 오해하기 딱 좋은 포지션으로.
정작 삼총사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다른 것들이었지만.
“너. 오늘 새로 왔으니까. 원래는 우리끼리만 보려고 했던 걸 같이 보여줄게.”
혹여나 주변에 들리면 안 된다는 듯이 은밀히 말한 김도윤이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렇게 삼총사. 아니, 넷이 되어버린 우리가 도착한 곳은 햇빛 이 잘 들어오지 않는 그림자가 진 곳이었다.
설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려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정작 김도윤은 황급히 자신의 커다란 윗옷 주머니에 작은 손 을 넣었다.
“너네 이거 진짜 친구들에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걱정 마!”
“···응.”
그래도 못 미더웠는지 몇 번이나 더 당부를 한 다음에서야 김 도윤이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냈다.
“짜잔!”
정작 김도윤이 꺼낸 것은 야광 카드였다. 그것도 샛별반 남자 아이들이 시끌시끌 떠들던 ‘황금 카드왕’의 야광 카드.
역시 애들은 애들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나와 달리. 옆에 있 던 최지환과 하지우의 반응은 격렬했다.
“헉! 이거 황금 카드왕의 희귀 야광 카드 아니야?”
“···대단해.”
최지환이 화들짝 놀라고. 조용한 하지우 역시 한 타임 늦은 놀 란 반응을 보였다.
나야 저 카드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카드인지 몰라서 대충 반 응으로 넘겼고.
“대박이지? 내가 이번에 외삼촌을 졸라서 엄마 몰래 엄청 많 이 샀어.”
그제야 왜 김도윤이 삼총사와 나를 이끌고 구석으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주말에 새로 뽑은 카드를 자랑하려는 거구나.
하긴. 이 나이대의 아이들에겐 남들에게 없는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커다란 부러움을 사게 만들 테니.
그런 내 생각이 다시 한번 깨진 것은 김도윤의 말이 이어질 때 였다.
“이거 봐. 같은 카드가 무려 2개가 더 나왔어. 총 3장이라고.”
“와! 대박! 도윤이 너 진짜 부럽다. 황금 야광 카드가 무려 3장 이나 있다니.”
“···부러워.”
“음. 부럽네.”
그제야 김도윤이 왜 샛별반 친구들이 없는 이곳으로 삼총사를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갔다.
같은 카드 3개.
유치원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영 화 ‘황금 카드왕’.
그중에서 수십장을 사야지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는 야광 카 드.
같은 카드 3장이 나왔으니 샛별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 구들인 최지환과 하지우에게 카드를 선물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 예상이 맞았는지 우쭐대며 말을 이으려던 김도윤이 덜컥 멈춘다.
정확하게는 삼총사 사이에 자신이 데려온 나를 본 순간에.
“내가 이걸 너희··· 어?”
그러고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6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김도윤이었기에 아는 것이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새로 온 친구인 나를 차별하면 안 된다 는 것을.
“왜왜?”
“아, 아니야.”
잠시 자신의 손에 들린 야광 카드 3장을 바라보던 김도윤이 눈 을 질끈 감았다.
그러더니.
“너, 너네한테 선물로 줄게. 한 장씩 받아.”
귀엽다.
다음 기회에 삼총사들만 모여서 나눠줘도 되는 일이고. 아니 면 아직 친하지 않은 나를 빼고 두 명에게 나눠줘도 되는 일이었 다.
그런데 김도윤은 눈을 질끈 감고 유치원 친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황금 카드왕’의 야광 카드를 나눠주기로 결심한 것 이다.
그것도 오늘 처음 본 나를 포함해서.
“고마워! 나 이거 샛별반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고 집에 가서 자랑할게!”
“···고마워.”
마치 엄청난 보물이라도 선물 받은 것처럼 팔짝 뛰는 두 사람 과 달리. 나는 손을 저으며 선물을 사양했다.
6살 꼬맹이의 소중한 보물을 뺏는 기분이 들어서.
“도윤아. 나는 괜찮은데.”
“아냐. 우리 외삼촌이 선물로 줬으면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했 어. 내가 오늘 너와 친구가 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야.”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과 다르게 단호하게 말하는 김도윤 때문에 나는 고맙다며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다시 기회를 봐서 돌려주면 되겠지 뭐.
그러다 문득 궁금증 하나가 들었다.
6살 어린이 김도윤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외삼촌에 대해서.
물론, 그런 생각은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6살 삼총사의 말들에 금방 잊혀졌다.
*
가람 유치원에 다닌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삼총사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내 모 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삼총사가 아니라 사총사가 된 건가.
실제로도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 삼총사 사이에 있었다.
“여러분! 선생님이 오늘부터 우리 샛별반 친구들이 어떤 걸 준 비해야 된다고 했는지 기억하나요?”
샛별반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이 합창하여 답한다. 물론 나 는 무슨 일정이 있는지 모르기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 연극이요!”
샛별반 아이들의 합창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연극이라 고?
“맞아요. 우리 샛별반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가장 재밌게 읽었 던 동화를 직접 연극으로 해볼 거예요.”
네! 하는 합창이 이어지자. 잠시 미소를 지은 샛별반 선생님이 연극을 펼칠 동화책을 꺼냈다.
“그래서 우리 샛별반 친구들이 서로 토론해서 어떤 역할을 맡 을 건지 토론을 해야 해요.”
중간에 온 전학생이나 다름없는 나였다. 집에서도 기억상실증 때문에 걱정이 많은 상황.
이번 어린이 연극에서 나무1이나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유치원 연극 정도는 애들의 재롱잔치 같은 거라 생각 했으니까.
이때까진 몰랐다. 6살 어린이의 유치원 연극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연극과는 전혀 다르다는걸.
“나무가 없어?”
내가 털썩 무너진 건. 잠시 후 유치원 연극엔 나무1 같은 역할 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였다.
이거.
유치원 생활도 정말 쉽지가 않다.
*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라이징 스타! 배우 김우진 씨가 또다시 대표님께 감사드린다며 다시 한번 언급했는데요.”
“하하. 아닙니다. 저는 그저 우리 김우진 배우에게 기회를 주 었을 뿐입니다. 다 우리 배우님이 뛰어난 덕분이죠.”
“안 그래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고 계신데요. 대표님께서 연 기파 배우들만 발굴해내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요?”
“이런. 그 부분은 제 영업 비밀이라···. 농담이고요. 특별한 비 결은 없습니다. 그저 배우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얼마나 연기를 잘할 수 있는지만 볼 뿐입니다.”
서도현은 무시해도 자꾸만 걸려 오는 전화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하죠. 대표님께서 선뜻 시간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저희 는 정말 감사하고 있는걸요.”
“그러면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인터뷰를 하던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 서도현은 대표실에 들어와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 나 바쁘다니까. 인터뷰 중인데 자꾸만 전화를 하면 어떡 해.”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화기 너머에선 전화 를 건 용건만 다다다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 알아 너 바쁜 거. 그런데 하나뿐인 네 조카가 너를 꼭 보고 싶 다네.
“그래서 이번 주말 저녁에 식사하기로 했잖아.”
- 그거 말고. 두 달 뒤에 네 조카가 발표회에서 장기자랑 있는 거 알지?
그제야 왜 무시했음에도 굳이 수차례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 는지 알아차린 서도현이었다.
문자로 했으면 간단하게 ‘그날은 시간이 정말 안 돼’하고 넘겼 을 테니.
제 누나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전화를 건 것 이다. 어차피 끝까지 받지 않았어도 주말 저녁에 또 말을 꺼냈겠 지.
“두 달 뒤? 나 그때 진짜 바쁜데. 안 그래도 그쯤에 박준후 감 독님이랑 100억짜리 영화 때문에 미팅 한 번이 예정되어···.”
서도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말을 끊고 들어온 수 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덜컥 입이 멈추고 말았으니까.
- 이번에 유치원에서 샛별반은 연극을 한다던데? 도윤이가 외 삼촌에게 꼭 보여주겠다면서 아주 눈에 불이 활활 타오르더라.
하나뿐인 조카. 김도윤의 이야기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잠시 책상 위 달력을 살핀 서도현이 눈가를 지그시 누르며 물 었다.
“두 달 뒤 정확한 날짜가 언제야? 최대한 시간 비워볼게.”
서도현의 항복 선언에 그제야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 19일. 두 달이나 남았으니까. 그때 꼭 어떤 일정이 있더라도 비우고 와. 안 그러면 하나뿐인 늦둥이 조카가 삐져서 안 보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알았지?
“알았···.”
이번에도 서도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용건을 마 친 수화기 너머의 주인이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잠시 한숨을 내쉰 서도현은 달력에 체크를 했다. 이렇게까지 강조를 했다는 건. 하나뿐인 조카가 외삼촌이 오길 정말 간절하 게 바란다는 뜻이었으니까.
“하. 도윤이 그놈 이쪽 길은 안 된다니까. 이거 또 집에 불려가 게 생겼네.”
늦둥이 어린 조카를 위해 주연 배우와 함께 촬영장에 데려갔 던 게 화근이었을까.
그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내 구경하던 어린 조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삼촌! 나 커서 저런 배우가 될래!’
아직 본가에서는 도윤이의 꿈을 듣지 못해 조용한 모양이지만. 그 소식이 들어가는 순간 불호령이 자신을 부를 것이 분명했다.
“뭐. 이참에 우리 도윤이의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면 되겠지.”
다시 인터뷰를 위해 서도현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대표실을 나섰다. 그가 떠난 책상 위에는 명함 하나가 놓여있었다.
[구름엑터스 대표 서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