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그런 내 긍정적인 마인드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건. 엄마, 아빠가 이상한 대화 주제를 꺼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오빠. 여기 잠깐만 앉아봐.”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아빠의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든 척을 하고 있던 내 귓가에. 아빠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앞에서는 존칭을 쓰던 엄마는. 단둘이서 대화를 나눌 때 에는 마치 연인들의 대화처럼 친근한 말투를 썼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는데. 현재는 언제 기억이 돌아올지 모르 는 상태래. 우리 서준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오빠랑 내가 잘 케 어해야 한대.”
“나도 오늘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자연적으로 기억이 돌아오 지 않는 한 딱히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 서준아, 아프지 말자.”
아빠의 무릎에 파묻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오른다.
아직까지는 정말 낯설고 어색하다.
나를 향해 이토록 일방적인 사랑이 쏟아지고 있는 이 상황이.
그런 내가 덜컥 굳어버린 건. 이어지는 대화를 들었을 때였다.
“그래서 말인데. 서준이 유치원을 옮겨야 할 것 같아.”
응?
뭘 옮겨?
그런 물음표는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쐐기가 박혔다.
“유치원을? 지금 다니는 곳이 집과 가까워서 좋아했잖아.”
“응. 그런데 당장 서준이가 유치원에 돌아갔는데. 기억에 없는 친구들과의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서준이가 그런 상황 속 에서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돼.”
“그건 그렇지. 그런데 지금 시기에 옮길 수 있는 유치원이 있 을까?”
“주아네 엄마가 서준이 소식을 듣더니, 마침 원생 한 명 이사 로 자리가 생긴 곳이 있다고 알려줬어.”
“주아네 엄마가?”
엄마, 아빠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내 귓가에는 더 이상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유.치.원?
이게 무슨 소린가.
깜박하고 있었다.
이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어딜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랬다.
8살의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 6 살이라면 응당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던 것 이다.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하고.
나는 배움을 위해 유치원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럴 수가.
“응. 가람 유치원이라고 오빠도 알지?”
“가람 유치원? 당연히 알지. 우리가 한참 서준이 유치원 알아 볼 당시 가람 유치원에 보냈으면 하고 바랐었잖아.”
“맞아 거기야. 마침 주아네 엄마가 거기 원장님이랑 아주 잘 아는 사이래. 우리만 좋다고 하면 자기가 이야기해주겠대. 오빠 도 알잖아. 거기 진짜 들어가기 힘든 곳이야.”
“정말? 그런데 우리 서준이가 거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빠의 아들의 새로운 유치원 이적에 대한 고민을 꺼냈을 때.
“오빠는 오빠 아들에 대해서 너무 몰라. 어떻게 애 아빠가 이 렇게 자식에 대해 무심할 수가 있어?”
“내가? 매일 퇴근하면 서준이와 함께 놀아주고, 목욕도 시키 는데?”
정말로 질책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부부 사이에 농담처럼 티 격태격하는 말장난일 뿐.
엄마의 너무하다는 듯 가벼운 나무람이 이어졌다.
“우리 서준이가 유치원에서 얼마나 핫스타인지 알아?”
핫스타?
톱스타는 들어봤어도 핫스타는 처음인데.
“솔직히. 내 아들이라서 콩깍지가 씌워서 그런 게 아니라. 객 관적으로 봐도 우리 아들이 정말 잘 생겼어. 오빠를 안 닮아서 다 행일 정도야.”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아빠가 침몰한다. 반박하자니 아들이 못생겼다고 주장해야 하니. 혼자 침몰하는 수밖에.
실제로도 차서준 어린이는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다. 아직 6살 의 어린아이기에 역변의 위험시기를 견뎌야 하겠지만. 외모 포 텐이 만점에 가까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세상이 내가 알던 곳과 다르다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왜냐고?
이 얼굴로 다시 성공하면 되니까.
연기력 하나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나다.
지금 차서준의 외모 포텐과 함께라면. 이번 생에는 그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차차 하고.
꽤나 미인인 엄마와, 곰 스타일의 아빠 사이에 어떻게 이런 얼 굴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눈과 코가 제법 아 빠를 닮긴 했다.
그 미묘한 조합 과정에서의 초대박으로 인한 외모 포텐 폭발 이라고나 할까.
엄마의 말처럼 지금 정도의 외모라면. 유치원에서 여자애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긴 했을 터다.
“그, 그래도 눈과 코는 나를 닮았는데···.”
“대신 우리 서준이는 얼굴에서 오밀조밀 조화가 끝내주게 되 었잖아.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하늘에 감사하다고 매일 기도드 리고 있어.”
두 번째 침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목소리에는 침울한 기색이 없다.
자기 자식이 얼핏이나마 자신을 닮으며 잘생겼다는데.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지금처럼 오히려 기뻐하는 기색이 담긴 손길로, 잠든 척하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처음엔 몰랐는데 서준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어.”
“뭐를?”
“어린애들일수록 외모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구나. 잘생긴 게 최고라지만. 어린애들에게는 그게 더 큰 거 같아.”
“아···.”
“첫 아이다 보니 걱정이 많았는데. 애들일수록 잘생기니 인기 가 엄청 많아. 유치원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서 친절하게 서준이 를 엄청 챙겨줘.”
뭔가 엄청난 깨달음을 전수하는 것 마냥. 엄마가 아빠에게 말 했다.
엄청난 외모라는 무기를 가진 이상. 새로운 유치원에 가더라 도 잘 적응할 거라는 생각에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지금 다니던 유치원에서도 우리 서준이 때문에 난리가 났던 걸 알잖아. 오빠가 걱정하지 않아도 서준이는 잘 다닐 거야.”
“언제부터 보내게?”
“오빠만 좋다고 하면 내일 주아 엄마에게 연락하려고. 다니기 까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아.”
“그래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서준이가 지금 기억을 잃은 상태 라는 게 걱정이 되네.”
“의사 선생님도 그편이 더 좋다고 하셨어.”
“그래?”
“응.”
그렇게 6살 차서준의 유치원 이적(?)이 결정되었다.
8살이 되면 초등학교만 생각을 했었지. 내가 당장 유치원을 가 야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질 못했는데.
순간 유치원 따윈 필요 없어요! 라며 나의 천재성을 보여줄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사고로 기억을 잃은 아들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인 두 사람이다.
괜히 여기서 더 큰 폭탄을 터트렸다간. 정말 수습할 수 없는 상 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행복한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천재성을 드 러낸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테니까.
지금은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 소소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 는 게 더 좋았다.
*
얼마 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무슨 말이냐면.
벌써 내가 유치원을 갈 날이 되었다는 거다.
다른 아이가 입었다면 귀여울 유치원복을 내가 입은 채로 엄 마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는지. 엄마는 옷을 입힌 이후 몇 장이 나 사진을 찍어댔다.
찰칵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표정을 짓자, 더욱더 좋아하는 엄마였다.
“우리 아들. 그러면 씩씩하게 유치원에 갈까?”
“···네!”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 차서준 어린이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쉽지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때 때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경험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혹여나 넘어질까 손을 꼭 잡는 엄마의 손이 어색하면 서도 놓기 싫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막상 집을 나설 준비를 마치니. 기억을 잃은 어린 아들을 유치 원에 보내야 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런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마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엄마의 얼굴에서 서서히 먹구름이 걷힌다.
“엄마랑 이제 나갈까?”
“네!”
엄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며 생각했다.
기껏해야 6살 쪼꼬미들이 옹기종기 다니는 유치원일 뿐이다.
별일이야 있겠어?
*
가람 유치원.
원생들을 태우러 다니는 유치원 버스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오히려 내 손을 꽉 잡은 것은 엄마였다.
“서, 서준아. 엄마도 같이 따라갈까?”
이런.
유치원도 일종의 사회다. 어린아이들이 제법 어른인 척 흉내 를 내며 다니는 학교.
그런 곳에 첫날부터 엄마 손을 잡고 나타날 순 없지.
“괜찮아요. 혼자 씩씩하게 다녀올 수 있어요.”
“그래? 그러면 엄마가 우리 서준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에 여기서 기다릴게. 알았지?”
“네!”
어째 역할이 바뀐 느낌이 들긴 했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 황이었다. 엄마가 바라보는 나는 기억을 잃은 어린 아들이었으 니까.
아빠에게는 당당하게 서준이가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보낼 때가 되니 걱정이 앞선 모양이다.
“엄마. 나 잘 다녀올 수 있어요.”
내가 방긋 웃어주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지 꼬옥 잡은 손 에 힘이 풀린다.
유치원 버스가 멈추고. 열린 문으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 성이 내린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어머니. 어머! 네가 서준이구나.”
내리자마자 엄마에게 발랄한 인사를 건네던 유치원 선생님은. 이내 나를 바라보더니 정말 깜짝 놀랐다는 듯 손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 말씀보다 우리 서준이가 너무 잘생겼어 요. 새로운 유치원 적응 같은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이건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듯 유치원 선생님이 당당히 말했다.
“거기에 제가 서준이가 배정될 샛별반 선생님이거든요. 특별 히 더 신경을 쓸 테니까. 큰 걱정 마세요.”
샛별반 선생님의 손을 잡고 유치원 노란 버스에 오르자. 창문 너머 눈가가 촉촉해진 엄마가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엄마 도 안심이 되는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조잘조잘 떠드는 버스는 금방 유치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지도 아래에 먼저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내가 샛별반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안에 들어가자. 시끌 시끌하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 채 이쪽을 바라본다.
“여러분! 새 친구가 우리 샛별반에 전학을 왔어요.”
생기발랄한 샛별반 선생님의 소개에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 했다. 정확히는 얼굴로.
확실히 얼굴이 열일을 했다. 갑작스럽게 샛별반에 나타난 새 로운 전학생에 대한 경계보다는. 호의적인 시선이 훨씬 많았으 니까.
몇 시간 뒤.
나는 시끌시끌 다가오던 아이들을 상대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구석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어렵다.
이건 6살 어린이로 행동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무슨 대화 주제가 그렇게나 다채로운지. 어린이 사이에 유행 하는 만화들에 대해 따라가기도 벅찼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돌 아가면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쉽지 않겠네.
요 꼬맹이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말이지.
그때였다.
혼자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던 내 귓가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 가 들려온 것은.
“야. 너 우리 샛별반에 오늘 새로 왔다며?”
마치 청춘 드라마에서나 들릴 법한 대사가 들려온 곳을 바라 보니. 3명의 귀여운 꼬맹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