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니지먼트사업부 4팀, 팀장 (2) >
“팀장님! 팀, 팀장님!”
건물 밖에 나와 있던 로드매니저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상황부터 읊어봐. 애는 어떤데.”
“폭발 직전인 것 같아요. 현장은 몇 시간째 살얼음판 전쟁턴 거 같고요. 스태프들은 아까부터 난리난 거 같고요. 제가 어떻게든 간식으로 달래보려고 했는데 거들떠도 안보고, 도저히 감당이 안 되가지고······!”
“감당이 안 되면 빨리 연락했어야지.”
까슬까슬한 정수리가 푹 숙여진다.
“죄송합니다! 팀장님한텐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협박, 아니, 그래가지고요. 근데 이러다가 촬영장 뒤집어엎을 것 같아서 몰래 숨어서 연락드린 거예요. 팀장님 앞에서는 좀 잠잠해지니까······!”
처음 이송하한테 붙였을 때는 꿈꾸는 것 같다고 행복해하던 놈인데, 한 달도 안돼서 악몽에 시달리는 얼굴이 됐다.
“어, 지금 둘이 이송하 얘기하는 거 맞지? 손채영이 아니라?”
회사에서부터 따라붙어온 이봉준 실장이 얼떨떨한 눈으로 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가보자.”
“네!”
재빠르게 앞장서는 로드를 따라갔다. 스튜디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쩌저적, 살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사람이 수십 명인데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포토그래퍼의 셔터소리만 정적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송하는 꽃무덤 속에 있었다. 마디마디 꽃망울이 맺힌 샛노란 프리지아 꽃다발에 뺨을 묻는다. 입술로 꽃잎을 살짝 물고, 이송하가 화사하게 웃었다. 보자마자 선뜩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뒷목에 송곳이 박힌 느낌이다.
“제대로 웃어봐.”
포토그래퍼가 말했다. 이송하의 입술이 더 휘었다.
“계속 웃고 있잖아요. 여섯 시간째.”
“그러니까 제대로 웃어보라니까. 제대로. 제에대로.”
느물느물한 지시에 이송하가 아랫입술을 물었다놓는다. 참고, 참고, 참다가 이제 인내심이 박살나기 직전인 얼굴이다. 꽃다발을 찌그러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움켜쥐던 이송하가 고개를 돌렸다. 다음순간, 눈이 마주쳤다.
날 보고 놀라던 얼굴이 삽시간이 일그러진다. 이송하가 로드매니저를 험악하게 쏘아봤다. 로드가 목 졸린 소리를 냈다. 동시에 포토그래퍼가 카메라를 내렸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계속 합시다.”
벌떡 일어난 이송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성큼성큼. 들고 있는 꽃다발에서 권총을 꺼낼 것 같은 기세였다. 이봉준 실장이 주춤 물러섰다. 이송하는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 대기실 안으로 홱 들어가 버렸다.
“······지금 쟤가 너 무시한 거야?”
이봉준 실장이 혼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쟤 분위기가 왜 저래? 둘이 싸웠어?”
“아뇨.”
“그게 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데? 쟤가 트러블 일으킨 게 벌써 몇 번째라며. 우리 회사 트러블메이커 타이틀이 손채영에서 이송하한테 넘어간 거야? 멀쩡하던 애는 아니지만 멀쩡한 척 잘 하던 애가 왜 갑자기 터졌어?”
“정선우 팀장님? 팀장님 맞으시죠!”
여자의 목소리가 쑥 들어왔다. 전에 몇 차례 화보촬영을 함께 했던 에디터였다. 허겁지겁 다가온 그녀가 구세주를 발견한 어린양의 얼굴을 하고서 내 팔에 매달렸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팀장님 저 좀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오늘 송하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네요.”
“그죠, 그런 것 같았어요. 거기다 작가님이 계속 딴죽을 걸기도 했고.”
에디터가 포토그래퍼의 뒤통수를 힐긋 보곤 다시 매달렸다.
“팀장님! 저희 오늘 촬영 엎어지면 진짜 큰일 나요. 대형 사고예요. 송하 씨가 입은 드레스랑 보석 다 해외에서 어렵게 협찬 받아서 모셔온 것들이라 다시 세팅 못하거든요. 어떻게 좀······!”
“잠깐만요. 송하랑 얘기 좀 해볼게요.”
다른 사람들을 남겨놓고 혼자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송하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깊숙이 수그리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험악하다.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용을 쓰는지 드레스 위로 드러난 어깨가 들썩거렸다. 다가가보니 바닥에 찌그러진 생수병이 굴러다녔다.
“물 더 갖다 줄게.”
돌아서다가 휘청했다. 이송하가 양손으로 내 뒷무릎을 움켜잡았다.
“어디가세요.”
“물 갖다 준다니까.”
“필요 없어요.”
고개는 여전히 푹 수그린 채다. 주머니를 뒤져 미리 챙겨온 캐러멜을 한줌 꺼냈다. 눈앞에 들이밀고 흔들어도 별 반응이 없다. 하나 까서 입에 물려주고 나서야 턱이 움직인다.
“오빠. 이름 좀 다시 불러주세요.”
“이송하.”
“······.”
“삼행시도 지어줄까?”
농담을 던졌더니 한숨 같은 웃음이 돌아왔다. 좀 진정이 됐는지 이송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후다닥 내 무릎에서 손을 뗀다.
“죄송해요. 피 묻은 손으로.”
“네 손에 피 안 묻었고, 많이 안 좋아?”
이송하의 눈이 가라앉았다.
“오락가락해요. 하마터면 사진작가한테 욕할 뻔 했어요. 빌어먹을 작, 가님 말이 맞죠. 오늘 콘셉트가 천진난만한 프리지안데, 천진난만한 표정이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망했어요. 이제 이런 꽃은 저한텐 안 어울려요.”
“그럼 너한텐 무슨 꽃이 어울리는데?”
“마리화나.”
오늘따라 증세가 심각하구만.
“아니면 끈끈이주걱. 파리지옥.”
“그건 이미 꽃이 아니거든.”
“맞아요. 제 인생엔 꽃이 없어요. 제 인생은 정글이니까요.”
“정글에도 꽃은 있을걸.”
대기실 문을 잠가놓고, 이송하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상담 받으면서 한동안 괜찮은 것 같더니.”
“해리성 정체감 장애자가 된 것 같아요. 아니면 간헐적 폭발 장애자.”
“그건 또 뭐야?”
“다중인격이랑 분노조절장애 정식 명칭이래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웃기지 말고 캐러멜이나 하나 더 먹어.”
영화촬영이 끝난 지 오랜데, 이송하는 여전히 도시정글의 여주인공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담사 말로는 배우가 배역에 과몰입해서 일체화가 심해지면 이렇게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는데.
겉보기엔 진짜 귀신들린 것 같다.
지난 작품들도 몰입하는 건 비슷했지만, 촬영 끝나고는 금방 말짱해졌었는데. 도시정글의 배역이 유난히 강렬했나. 뒤에서 어깨를 건드렸다고 엘제이를 메다꽂은 적도 있고, 고기를 입에 못 댄 적도 있었다. 배역이 채식주의자라.
영화 결과물만 걱정했지, 이런 일로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문제 있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라니까.”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했어요. 계속 이럴 수는 없잖아요. 오빠랑 있을 때가 제일 현실감이 느껴지니까, 오빠 미니어처를 만들어서 들고 다니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어요.”
그거 다행이네.
“대신 3D프린터로 제작해주는 데를 찾았어요.”
“그냥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이미 주문했어요. 머리는 벌써 완성됐대요.”
이송하가 캐러멜을 반항적으로 씹으며 말했다.
“그래, 해라, 해.”
내가 좀 수치스럽고 말지 뭐.
이송하의 머리가 슬금슬금 기울어지더니 내 배에 이마를 툭 기댄다. 그러다가 딱따구리처럼 쿡쿡 박기도 하고, 사나운건지 안타까운 건지 헷갈리는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종래에는 제가 쓰다듬듯이 머리를 비볐다.
그리고 고개를 빠끔히 들고 웃는다.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
도시정글 크라우드 펀딩 주식회사.
펀딩 프로젝트를 목적으로 만든 회사의 미팅에 관련자들이 모였다.
“펀딩기간은 개봉 전주로 일주일정도 어때요?”
“어차피 마케팅이니까 목표액은 적게 잡죠? 만에 하나라도 목표액 못 채우면 입소문 안 좋아져요. 기대감이나 화제성도 떨어지고. 쪽도 팔리고.”
“아니죠. 반대로 너무 적게 가면 자신 없어 보입니다. 쫄려서 몸 사리는 걸로 보인다고요. 언론에서도 주시하고 있는데, 목표액 쥐꼬리만 하게 잡으면 안하느니만 못해요!”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서류를 들춰봤다.
영화소개와 투자 포인트, 관객수 대비 투자수익률 예상표, 시장분석, 과거 크라우드펀딩 사례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다. 스태프와 배우 소개란에는 내 이름도 한줄 들어가 있었다.
맨 뒷장에는 같은 시기 경쟁작들 포스터가 나열돼있다.
국내외 블록버스터 작품들부터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극장판까지, 경쟁작들이 만만찮다. 월드아트에서 이 시기에 배급하려고 했던 블록버스터를 미루고 도시정글을 끼워 넣었는데, 벌써부터 버리는 패라고 추측하는 기자들도 있다.
뭐, 아예 틀린 추측은 아니고.
포스터들을 훑어보다가 시선을 멈췄다.
초능력자.
에이스 배급사. 차재호 감독. 허가경, 한서연 주연. 손익분기점 420만 명.
도시정글과 거의 동시개봉이다. 같은 주, 어쩌면 같은 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잡겠다고 P&A비용 수십억을 쏟아 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내가 작년에 차재호 감독한테 뭐라고 했더라? 폭삭 망할 것 같은 영화라고 했었나? 그 양반이 나한테 저주를 했던 건 확실하게 기억나는데. 어째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입맛을 다시고, 다시 도시정글의 투자대비 수익률 예상표를 들춰봤다.
손익분기점은 160만 명.
일반인 투자는 최소액 10만원부터 최대 200만원까지 가능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투자이익이,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면 투자액 손실이 발생한다.
이제 남은 건 펀딩 목표액을 얼마로 잡을 것인가.
“적은 게 낫다니까요? 1억에서 1억 5천 어때요?”
“그럼 완성도에 자신 없는 것처럼 보인다니까요? 맥시멈 3억은 돼야죠.”
제작자와 프로듀서들의 갑론을박이 줄줄 이어졌다.
나는 볼펜 끄트머리로 노트를 두드리다가 말했다.
“그냥 내부시사 후에 완성본보고 결정하면 어때요?”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소규모로 하자는 쪽을 밀던 월드아트 픽쳐스 부장도, 규모를 키우자는 쪽을 밀던 SBE필름 대표도, 이쪽저쪽 거드느라 바쁘던 영화사 숲의 대표도 표정이 복잡하다.
월드아트 부장이 입을 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가편 어떻게들 보셨어요?”
“가편은 어디까지 가편이고. 완성본을 보고 평가해야죠. 지금 감독이 죽자 사자 편집중인데.”
“말이 가편이지, 칸 영화제 출품용이잖아요. 완본이라도 봐도 되죠.”
사람들이 그런 일도 있었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초봄. 도시정글 편집본을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 본선진출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제영화제 출품작이라는 키워드를 국내홍보용으로 써먹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어쨌든 오현경 감독은 그때 잠깐 바깥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편집 완성도를 높인다며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슬쩍 들여다보고 온 스태프들은 오현경 감독이 편집하다가 편집증에 걸렸다며 혀를 내둘렀다.
SBE필름 대표가 내 쪽을 돌아봤다.
“영화제에서는 잘 먹힐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운이 좋으면 프랑스에 갔다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에 SBE필름 대표가 슬그머니 가슴을 문질렀다. 마치 내 말이 신경안정제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미래를 틀어버렸으니 결과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도 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을법한 영화라는 건 확실하다.
월드아트 부장이 입맛을 다셨다.
“영화제도 좋은데, 흥행도 중요하잖아요. 영화 좋아요. 좋은데. 시나리오 봤을 때부터 느꼈고 가편 보면서도 생각한 거지만, 상업성은 확실히 떨어진단 말이에요.”
“까봐야 알죠. 작년에 그대와의 17일도 내부시사에선 상업성 떨어진다고 관객수 백만 예상했는데, 결국 250만까지 찍었잖아요.”
“안 그런 경우가 더 많죠. 사실 우리 쪽에서는 큰 기대는 안하고, 손익분기점만 잘 넘어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펀딩으로 모은 돈은 고스란히 홍보비용으로 나갈 거 아니에요?”
“홍보마케팅에는 돈을 아꼈으면 좋겠다, 그런 겁니까?”
“그게 아니라, 펀딩액수만 커지고 관객수 어정쩡하면, 수익배당 할 때 좀······.”
“그러니까······!”
다시 시끄러워졌다.
회의가 있었던 날로부터 얼마 후.
마침내 관련자들만 참여한 내부시사회가 열렸다.
그날 밤, 도시정글 크라우드 펀딩의 목표액은 3억으로 결정됐다.
*
“정 팀장님 촬영한다고 메이크업 하신 거예요?”
“했네, 했어. 눈썹정리까지 했나본데?”
저 양반들이.
고개를 홱 돌리자 팀장실 문에 달라붙은 사람들이 딴청을 피웠다.
“오디오 섞이니까 좀 나가요. 그리고 눈썹은 안 건드렸거든요.”
“자, 오디오 섞이니까 조용히 하랍니다!”
나갈 생각들은 않고 입만 다문다. 가장 앞에 있는 3팀장과 김현조, 이봉준 실장을 보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던 감독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감독의 말에 헛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도시정글 크라우드 펀딩의 홍보영상이었다. 남조윤과 이송하를 비롯한 배우들은 영화촬영하면서 이미 찍었고, 내가 마지막이었다. 편집이 끝나면 언론에도 뿌리고 펀딩 페이지에도 올릴 예정이다.
이미 보도 자료는 쭉쭉 풀리기 시작했다. P&A용으로 빼놓은 제작비를 바닥까지 긁어서 제작보고회와 이벤트, 프로모션도 속속 시작하고 있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중반응도 올라오고 있다.
물론 가장 관심을 끄는 건 펀딩이라, 홍보담당자들도 유독 공을 들이는 중이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미리 만들어둔 멘트를 읊고 있을 때였다.
“잠깐만요!”
홍보팀 여직원이 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왔다. 흥분한 얼굴이다.
“팀장님! 촬영 잠깐만 멈춰주세요! 초능, 초능력자 있잖아요! 우리 경쟁작!”
“그게 왜요?”
“거기서 크라우드 펀딩 시작했어요!”
뭐?
“지금 기사 쫙 깔리고 있어요! 거긴 목표액이 8억이래요!”
······뭐?
< 매니지먼트사업부 4팀, 팀장 (2)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