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14화 (114/218)

< 수면 아래에서 오가는 것, 거래 (1) >

스타써치. 스타써치라.

낯선 이름이다. 그동안 내가 직간접적으로 접한 기자만 거의 수백 명이고, 내 핸드폰 기자 카테고리에 저장된 이름만 수십 개인데도. 스타써치라는 언론사 이름은 들은 적이 없다.

윤태경이나 박도진쯤 되는 탑배우의 스캔들, 그것도 열애소식 같은 귀여운 게 아니라 마약 스캔들이면 어마어마한 건인데. 그런 큰 스캔들을 이름없는 소규모 언론사에서 터뜨렸다는 건가?

혹시나 싶어서 홍보팀 박 팀장이나, 박우정 기자한테 넌지시 윤태경이랑 박도진에 관련된 루머가 있는지 떠봤는데, 둘 다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될만한 루머는 없었다. 마약에 대한 얘기도 전혀 나오는 게 없고.

스타써치라는 회사에서 단독 취재해서 터뜨린 스캔들이라는 건데.

의문을 눌러놓고 일단 포털에서 스타써치를 검색했다. 일단 주소부터 알아내고. 계획도 세워야지. 무작정 언론사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캐물었다간 미친놈이라고 기사가 날지도 모르니까.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려면 머리를 바쁘게 굴려야겠지만, 실마리도 없어서 막막하기만 했던 때와 비교하면 머리를 굴리는 거야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한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스타써치라는 이름을 가진 언론사가 없다. 포털 뉴스 카테고리를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스타써치라는 언론사명은 등록조차 안 되어 있다.

설마 내가 회사 이름을 잘 못 들었나? 아니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대체 왜 없는 거지?

“팀장님, 혹시 스타써치라는 신문사 아세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홍보팀 박 팀장을 찾아가 물었다. 박 팀장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스타써치? 그 망할 놈의 신문사는 왜? 자긴 그 이름 어디서 들었어?”

그 반응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없는 회사는 아니었구나.

“아는 기자한테 들은 이름인데, 인터넷 뒤져봐도 없는 걸로 나오길래요. 포털에도 기사가 하나도 없고.”

“국내 포털엔 당연히 없지. 그거 홍콩 파파라치 전문 신문사야.”

뭐라고? 어디?

“홍콩이요?”

“응. 하긴 자기도 이젠 해외까지 신경 써야 할 시기긴 하다. 송하가 중화권에서 반응이 오고 있으니까, 앞으론 더 조심해. 그쪽 동네는 여기보다 훨씬 더 악질이거든. 국내에선 소송 때문에 함부로 못 내는 기사도 거기선 아무렇지 않게 터뜨리니까. 특히 홍콩은 할리우드 저리가라야.”

잠깐, 잠깐. 생각 좀 해보자.

스타써치가 홍콩에 있는 신문사라면 어떻게 접근하지? 당장 비행기 타고 홍콩에 있을 신문사를 찾아갈 수도 없고, 가도 말도 안 통할 텐데. 국내에도 언론사가 수두룩한데 왜 하필이면 홍콩이야?

박 팀장이 이맛살을 확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

“특히 스타써치 거기는 한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 언론사라, 한류스타들 스캔들 기사도 많이 써. 거머리 같은 놈들. 물론 그것보다 더 악질적인 거머리는 거기다 사진이랑 정보 팔아먹는 국내 찌라시 회사지만.”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국내 찌라시 회사에서 정보랑 사진을 팔아먹는다구요? 스타써치에서 독자적으로 캐는 게 아니라요?”

“다른 언론사는 그렇게도 많이 하지만, 스타써치 거긴 파파라치 전문이라 돈 주고 많이 사. 특히 국내 한류스타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국내에서 넘어가는 거야. 스타써치랑 거래하는 거지 같은 회사 하나 있거든.”

나는 득달같이 물었다.

“거기가 어딘데요?”

*

DM 미디어.

박 팀장 입에서 나온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등록된 언론사 하나가 뜬다.

성인광고 몇 개가 붙어있는 홈페이지에는 그 흔한 인터뷰 기사 하나 없다. 있는 거라곤 연예 관련 어뷰징 기사, 노출도가 높은 연예인 사진, 그리고 이니셜을 사용한 자극적인 찌라시성 기사들뿐이다.

한참 뒤져서 주소 한 줄을 찾아냈다. 금천구. 그렇게 멀지는 않다.

내려가는 길에 김현조를 찾아 말했다.

“실장님, 저 오늘 스케줄 관우한테 넘기고 기자 좀 만나러 갈게요.”

“기자? 갑자기 무슨 기자? 너 인터뷰하려고?”

“아뇨. 좀 안 좋은 기삿거리가 있다는 소리가 들려서요. 찜찜하니까 확인 좀 해보려구요.”

김현조의 표정이 떨떠름해진다.

“딴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러면 불안한데.”

“확실한 건 아니니까 일단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게요.”

두루뭉술하게 둘러댔다. 이번 일은 대책 없이 입 밖으로 꺼내놓기엔 사이즈가 너무 크다. 일단 둘 중에 누가 문제를 일으키는 건지도 확실치가 않으니까.

윤태경이나 박도진이나 출연료로 오가는 금액만 십억 대가 넘는 거물들인 데다가, 그 캐스팅에 웰메이드 프로덕션이랑 중국 투자자들까지 얽혀있다.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문제가 생기면 진짜 큰일 난다.

“그래, 확인해 봐. 뭐 있으면 바로 나랑 박 팀장님한테 연락하고.”

“네.”

신입한테 오후에 있는 이송하 개인스케줄을 넘기고, 나는 곧장 미니밴을 몰고 DM 미디어의 주소지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 해답이 있길 바라면서.

금천구 가산동 금산빌딩. 301호.

주소는 맞는데. 해답은커녕 회사도 못 찾겠다.

건물 외부에 간판도 없고, 1층 로비와 엘리베이터 내부에 붙어있는 인포메이션 패널에도 301호의 자리는 텅 비어있다.

3층으로 올라가 봐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처럼 생긴 건 있는데, 역시 간판은 없고 문은 굳게 잠겨있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다. 두드려봐도 전혀 반응이 없다.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도 신호만 갈 뿐 연결이 안 된다. 통합 메일 주소가 있길래 메일을 보내봤더니, 그마저도 재깍 반송된다. 이쯤 되면 정상 운영 중인 신문사가 맞나 싶다.

파파라치 회사라 이거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DM 미디어 소속 기자를 만날 수 있을까. 미니밴으로 돌아와서, 블라인드가 쳐진 3층 창문을 올려다보며 궁리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방법을 좀 바꿔보기로.

나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로. 내가 못 찾는다면 저쪽에서 날 찾을 수 있도록, 나를 미끼 삼아 던져볼 생각이다.

부디 파파라치들에게 내가 먹음직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는데.

먼저 1층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점원은 물론 손님들까지 날 알아본다. 지난번에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지만, 이번엔 아예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았다. 아는 척하며 말을 걸어온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응했더니 그 뒤로는 앞다퉈서 말을 걸어온다.

서서히 빌딩 안에 소문이 번졌다. 다른 층 사람들이 날 구경하겠다고 내려올 정도로. 계획대로다. 이대로 뻗치고 있다 보면 DM 미디어에도 얘기가 들어가지 않을까. 명색이 파파라친데.

한 시간쯤 커피를 되새김질하다가, 두 번째로 간 곳은 2층 한의원이다.

어깨가 결리던 참인데 잘됐지. 침 맞고, 부황 뜨고, 시커멓게 죽은 핏덩어리를 구경하고, 전기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그렇게 빌딩 안에 머무른 게 벌써 두 시간. 아직 파파라치 그림자도 못 봤다.

어떤 방식으로든 좀 접근해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했을 때였다.

핸드폰이 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저기요, 혹시 정선우 씨 되시나요?

낯선 여자 목소리다. 좀 당황한 것처럼 들린다.

“네, 맞는데요.”

-하얀색 미니밴 차주 맞으시죠? 죄송해요. 제가 주차하다가 실수로 차를 살짝 박았어요.

어라. 설마 이건가?

물리치료를 팽개치고 당장에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반쯤 쭈그리고 앉아서 내 미니밴 뒤꽁무니를 살피고 있던 젊은 여자가 벌떡 일어난다.

굴곡을 드러내는 짧은 스커트. 속이 살짝 비치는 커피색 스타킹에 하이힐. 내가 지금껏 봐온 여기자들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수상하다.

주차장이 이렇게 널널한데 왜 하필 내 차 옆에 대다가 박았을까.

게다가 상당한 미인이다. 사실 그 부분이 더 의심스럽다.

“어떡하죠, 이거 새 차 같은데. 제가 다 보상할게요. 죄송합니다.”

“뭐 수리만 제대로 해 주시면야, 괜찮습니다.”

“저, 그런데······.”

여자가 긴 파마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내 얼굴을 힐끔거린다.

그리고 잠깐 머뭇거리다가 물어왔다.

“혹시 그분 아니세요? 얼마 전에 ‘지금우리’ 출연하셨던, 넵튠 매니저 하시는 실장님. 그분이랑 닮으신 것 같은데. 이름도 똑같고. 사람들이 막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르는···.”

“마지막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그 사람 맞습니다.”

내 말에 여자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웬일이야, 저 유명한 사람 처음 봐요!”

날 바라보는 눈빛에 흥분이 가득했다. 진짜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이라 등골이 근질근질하다. 인터넷에서 내 짤을 엄청 봤다느니, 신기하다느니 떠들던 여자가 곧이어 부탁하듯 말했다.

“저, 저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커피 한잔 사도 될까요?”

“커피요?”

“제 실수로 새 차에 흠집 낸 것도 죄송하고, 제가 이송하 씨 팬이거든요. 고양이 수호령도 다 챙겨봤어요. 이송하 씨 얘기 조금만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 딴 데 가서 얘기 안 할게요. 네?”

살살 졸라대는 목소리에 애교가 넘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애교가 많은 게 임서영인데, 걔도 여기 갖다 대면 게임이 안 되겠다.

보통 상황의 남자였으면 수리비고 나발이고 이게 웬 횡재냐 했겠다. 커피가 아니라 까나리라도 넙죽 받아마실지도. 하지만 내 생황이 이렇다 보니 여자가 붙잡을수록 의심이 더 깊어졌다.

이젠 거의 확신에 가깝다.

지금 대놓고 물어볼까. 아니면 저쪽 하는 대로 장단을 맞춰볼까.

어떤 쪽이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커피 한잔 하면서 떠볼 수 있는 만큼 떠보자.

연락할 방법까지 몽땅 막아놓은 음침한 회산데, 다 까놓고 접근했다간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감이 안 잡혀서. 더군다나 여기서 답을 못 얻으면 진짜 홍콩에 가야 할 판이라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된다.

“그럼 한잔 마시고 가죠, 뭐. 우리 송하 팬이시라는데.”

“감사합니다!”

뭐, 그쪽이 파파라치 회사 직원인 게 맞다면 나야말로 감사하지.

미끼를 물어줘서.

여자의 이름은 정혜성이었다.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혜성이 안내한 곳은 맞은편 빌딩의 작은 커피숍이었다. 손님도 거의 없고 아늑한, 대화하기 딱 좋은 장소다.

초반의 화제는 거의 시답잖은 신변잡기였다. 나는 최대한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면서, 간간이 맞장구도 좀 쳤다.

주문한 커피가 적당히 식었을 때쯤. 정혜성이 말갛게 웃으며 물었다.

“이번에 이송하 씨 차기작 기사 뜬 것도 봤어요. 빨리 촬영하고 빨리 방송됐으면 좋겠다. 아직 남자주인공은 결정 안 된 거예요? 네티즌들은 누구다, 누구다, 엄청 떠들던데 확정 기사는 아직 못 본 것 같아서요.”

“네, 아직인데. 금방 결정될 거예요.”

“진짜요? 누구예요? 살짝만 알려주시면 안 돼요?”

정혜성의 눈이 번쩍 빛난다.

설마 녹음 중인가, 하는 의심이 솟았다. 틈틈이 핸드폰도 확인하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이런 거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는데, 확정되기 전에 추측성 기사들 뜨면 난리 나거든요.”

“저 어디 가서 이런 거 말할 사람도 없어요!”

“네티즌들은 누군 것 같다고 그래요?”

답을 해주는 대신 물었더니, 정혜성이 살짝 뜸을 들이고 입을 열었다.

“지금 쉬고 있는 한류스타는 한 번씩 다 소환되던데요? 윤태경 아니냐, 성도원도 가능성 높다. 박도진인 것 같다······.”

그 뒤로도 정혜성의 입에서 몇 명의 이름이 더 거론됐다. 하지만 앞부분을 말할 때 내 눈치를 슬쩍 봤던 것과는 달리, 뒤에 던진 이름들은 대충 구색만 맞춘 느낌이었다.

DM 미디어에서 마약 사실을 증거와 함께 스타써치에 넘긴 거라면, 꽤 오랫동안 쫓아다녔겠지.

열애 스캔들도 몇 달은 따라다녀야 그럴듯한 증거를 잡는데. 훨씬 더 은밀했을 마약 스캔들의 증거를 금세 모으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도 문제의 배우를 쫓아다니는 중이라면, 그 배우가 차기작으로 로열패밀리를 염두에 두고 협의 중이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 것 같은데.

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방금 말한 사람 중에 있어요. 주인공으로 논의 중인 사람.”

“어, 진짜요?”

“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서 계약서에 도장 찍고 진행해도 괜찮을지 좀 더 알아보는 중이에요.”

정혜성이 멈칫하더니, 곧장 입을 열었다.

“문제요? 어떤 문제요?”

“좀 안 좋은 사안이라 정말 말 못해요. 확실치도 않은데 얘기 퍼지면 큰일 나는 문제라서.”

“안 좋은 사안이라면, 악성 찌라시 루머 같은 거요?”

정혜성이 나를 떠보는 것처럼 물었을 때였다.

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내 건가 싶었는데 저쪽 핸드폰이다. 힐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정혜성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 회사 선배라서. 잠깐만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정혜성이 전화를 받으면서 사람 없는 테라스로 나간다. 동시에 이번엔 내 핸드폰이 울렸다. 타이밍 한번 희한하네. 그리고 이쪽이야말로 회사 선배다.

나는 통유리창 너머를 곁눈질하면서 김현조의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너 지금 어디야? 아니, 어디든 지금 바로 회사로 들어와! 빨리!

그 순간 창 너머로 정혜성과 눈이 마주쳤다.

뭐 때문인지 깜짝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다.

“네? 저 지금 누구 좀······.”

-기자 만날 생각하지 말고 바로 들어와! 지금 기자 만나면 야단난다.

김현조가 혀를 차며 말했다.

-네가 아까 찜찜하다고 했던 그 기삿거리가 아무래도 이거 같은데. 어떤 정신 나간 기레기가 송하 스캔들 기사 냈어!

······뭐? 스캔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뜬금없이 웬 스캔들? 어떤 정신 나간 기자가 또 소설을 기사랍시고 써 올린 건가?

“상대가 누군데요?”

이송하랑 스캔들 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너, 임마! 너!

“네?”

-너라고! 너!

< 수면 아래에서 오가는 것, 거래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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