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매니저 (6) >
주류파는 앉은뱅이 밥상 위에 육전이나 명태전 따위를 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네쌍둥이들을 비롯한 비주류파는 과일을 집어 먹으며 TV의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물론 양쪽 다 화제는 나였다.
“선우 너는 이런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재깍재깍 얘기 좀 하지. 모르고 넘어갈 뻔했네. 왜, 촬영할 때 잘 못 했어? TV에서 말 더듬고 떨고 그랬냐?”
“근데 쟤가 어디 가서 벌벌 떨 성격은 아니지 않아요?”
“그리고 어차피 이상한 부분은 다 편집되고 그럴걸?”
“방송은 그렇더라. 혹시 다 편집돼서 몇 초 안 나오는 거 아냐?”
나는 마음을 비우고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제일 늦게 도착한 사촌 형이 말했다.
“아, 그런데 밖에 주차공간 큰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거 아니에요? 어떤 개매너가 거기다가 차 받쳐놨던데? 하얀색 미니밴, 완전 새 차. 그거 우리 거 아니죠?”
“그거 내 거야.”
내 말에 사촌 형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네가 끌고 왔어? 회사 차야? 야, 그럼 그게 연예인 차냐?”
“아니, 내 차라고.”
이번엔 사촌 형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눈이 커졌다.
“뭐? 취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차를 뽑았어?”
“할부? 이 자식 간도 크네. 그거 다 갚으려면 허리 휘어!”
“얘가 산 게 아니라 회사 대표님이 사줬다더라. 일을 잘했다고.”
엄마가 불쑥 말했다. 아직도 내가 차를 받은 걸 꺼림칙하게 생각하시는지 표정이 안 좋다. 하긴 엄마만 그런 것도 아니다. 형이랑 형수님도 이상하다고, 몇 번이나 잘 알아보라고 당부했으니까.
사촌 형이 엉덩이를 끌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회사 대표가 차를 뽑아줬다고? 혹시 그 대표 여자냐?”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저씨야, 아저씨.”
“그럼 더 이상한데? 아무리 일을 잘했대도 그렇지, 보너스나 월급 인상도 아니고 신입사원한테 덥석 차를 뽑아줘? 거기 대표가 어떤 사람인데?”
백한성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고?
나는 쌍둥이들이 배달해온 단감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매니저들이 롤모델로 많이들 생각하는 사람이야.”
실제로 만나기 전부터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사 후에 가까이에서 접하고 나니 백한성 대표의 모든 부분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상상해왔던 이상적인 ‘대표’의 모습이랄까.
잠깐 딴생각에 빠져있는데 현실이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조용! 시작한다, 시작해!”
스타 매니저 타이틀이 TV 화면을 꽉 채웠다.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하던 거실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심지어 쌍둥이들마저 TV 앞에 쪼르르 앉아서는 댕그란 눈을 더욱 부릅뜬다. 화면 속에서 나를 찾아내겠다면서.
지미집 카메라가 부감 샷으로 스튜디오를 훑었다.
매니저 측 좌석 한편에 내가 스치는가 싶더니, 원샷이 딱 잡혔다.
“어머머, 형님. 선우, 선우! 저기 선우 있네요!”
“이야, 정선우! 진짜 방송 탔네! 너 근데 화장도 했냐?”
“연예인이 몇 명이야. 저 연예인들이랑 다 얘기해 봤어?”
난 한 손에 리모컨을 꽉 쥔 채,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했다. 방송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목이 탄다. 식혜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다가 사레들려 도로 토해낼 뻔했다.
MC들이 나를 소개하는 차례에, 인서트 컷이 쓱 들어갔다.
회사 책상에 앉아 열심히 스케줄을 조정하는 내 모습. 상대도 없는 전화기에다 대고 혼자 떠들고 있는 내 모습. 팔짱을 끼고 화이트보드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
이른바 프로필용 설정 샷이다.
“우와아, 삼촌 개멋있다! 저기가 W&U야? 블랙아웃도 있어?”
“선우 너 저러고 있으니까 딴사람 같다? 그럴싸한데?”
“저기가 사무실이야? 사무실에 괜찮은 여직원은 없어?”
“그냥 가만히 둬. 선우 쟨 연예인이랑 결혼하고 그럴지도 몰라.”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지나가라고, 빨리 좀.
다른 사람들 건 휙휙 넘어가더니 내건 왜 이렇게 길어?
마지막엔 홍보팀에서 넘긴 게 분명한, 넵튠 애들과 찍은 단체 사진과 이송하가 내 등짝에 달라붙어 있는 사진까지 보여준다. 거실이 또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월드컵 경기 날보다 더하다.
나는 TV와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보며 모니터링에 집중했다.
연휴에 집에 내려와서까지 일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은 의욕이 솟구친다. 일이라도 해야 앞으로 한 시간을 버틸 것 같다.
IBC에서 프로그램 홍보를 열심히 했나 보다. 본방을 보면서 글을 올리는 시청자들이 꽤 있다.
솔직히 스튜디오 녹화현장에서는 이 총체적 난국을 어떡하나 싶었는데, 방송을 보니 괜한 고민이었다.
과연 피디는 피디다.
연예인 출연자들의 멘트를 넉넉하게 붙이고, 우왕좌왕하는 매니저들은 자막과 편집으로 어떻게든 살렸다.
이러다 망하겠다고 구시렁거리는 박태평. 자기 매니저가 하는 짓을 보고 말문 막힌 연예인들. 그런 리액션 컷들이 더해지니 재미가 살아났다. 이 정도면 시청자 반응도 기대해볼 만하겠다.
일단 우리 집 반응만큼은 폭발적이다.
잔뜩 흥분한 네쌍둥이들이 내 팔다리에 매달려서 졸랐다.
“삼촌, 학교 가서 삼촌 TV 나온 거 얘기해도 돼?”
“나도! 삼촌이 말한 네쌍둥이 조카 우리라고 얘기해도 돼?”
물론 흥분한 건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머머머, 쟤 좀 봐, 쟤 어쩌면 좋아. 저거 왜 이렇게 재밌니?”
“아는 사람이 TV에 나와서 웃기고 있으니까 희한하다, 야!”
“선우 엄청 많이 나오는데? 연예인보다 많이 나오는 거 아냐?”
하지만 그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하던 흥분은, 이송하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돌변했다.
이송하가 드라마에 캐스팅되면서 시작된 온갖 논란들, 그리고 그 논란을 이겨내고 반전의 아이콘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빠르게 보여주면서 차곡차곡 장작을 쌓더니, 마지막에 불씨와 기름을 들이붓는다.
레슨 선생에게 들었던 폭언.
TV 화면에서는 출연자들이 분노했고, 우리 집 거실에서는 친척들이 분노했으며, 슬쩍 들여다본 인터넷 페이지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뭐 그런 또라이가 다 있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때맞춰서 엠바고 때문에 보도자료를 받고도 기다려야 했던 기자들이 일제히 기사들을 올렸다. 이 정도 화력이면 분명 명절 연휴 내내 화제가 될 거다.
심경택 선생도 명절이니 가족들과 함께 있겠지?
그 작자가 저 방송을 보고 있다면 지금쯤 어떤 표정일지, 그걸 상상하니 탄산으로 샤워하는 기분이었다.
양쪽 입꼬리를 찢으며 웃고 있는데 어디선가 간지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아버지였다. 뭐랄까. 좀 흐뭇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바로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린다.
둘러보니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엄마, 형, 친척들까지. 다들 새삼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TV를 보자마자, 왜들 그러는지 이유를 알아챘다.
화면에서 송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다.
“오빠는 이제 둘째 자식 걱정할 거 없겠네. 잘하는 모양이구만.”
고모의 말에, 아버지는 대답 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그리고 엄마는 어느 때보다도 밝은 얼굴로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넵튠 애들이 나에 관해 얘기할 때마다, 옆에 앉은 형과 형수님을 붙들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저 모습을 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정 때문에 나간 방송이지만, 뭐,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매니저 신상퀴즈로 코너가 넘어가자 거실은 다시금 떠들썩해졌다. 현장에서 저 코너는 이송하와 나의 미친듯한 독주였는데, 편집된 방송분도 딱 그랬다.
이송하가 손을 번쩍 들 때마다 친척들은 자지러지다시피 했다.
핸드폰 창을 보니 시청자들도 지금까지 중 반응이 제일 좋다.
-명절에 우울한 분들, 얼른 IBC 틀어보세요! 완전 꿀잼!
-저도 가족이랑 보는데 다 빵 터졌어요. 난리 났음. 요즘 본 예능 중에 탑이네요.
-넵튠엔 이송하만 알았는데 다른 멤버도 매력 쩌네요. 특히 아까부터 매니저가 하드 캐리 중.
반응이 폭발적인 건 참 좋은데, 넵튠 애들 이름만큼이나 매니저라는 단어도 같이 거론되는 것 같아서 난감하다. 그냥 방송 내내 활활 타고 방송 끝나면 재만 남아서 잠잠해졌으면 좋겠는데.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는 중인지 친구놈들을 포함해 별의별 사람들이 연락해오고 있어서 더 신경이 쓰인다. 안면 있는 방송국 피디들이랑 기자들 연락도 쏟아지고 있고.
방송 끝나고 심적 여유가 생기면 보려고 일부러 확인을 안 하고 있는데,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고준태 피디다. 서지준 섭외 불발된 후로는 나한테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었는데.
언뜻 이모티콘도 보이길래 궁금해서 확인해봤다.
-선우 씨! 지금 스타 매니저 본방 보는 중인데 선우 씨가 저렇게 예능감이 좋은 줄 알았으면 진작에 우리 프로에서······.
거기까지 읽다가 핸드폰을 껐다. 이 양반도 참 가지가지 한다.
아무튼, 고준태 피디가 이러는 걸 보면 오늘 방송이 성공적이긴 한가보다.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서 넵튠 인지도가 쭉쭉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거실의 분위기가 크게 술렁였다.
재빨리 TV를 쳐다봤다. 왠지 그럴 것 같더니만, MC들이 연예인 출연자들에게 매니저의 흑역사를 묻는 중이다. 거실 한편에선 흑역사가 뭐냐고 묻는 엄마에게 쌍둥이들이 재잘재잘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예능이라도, 뭐 저런 것까지 물어보고 그러냐?”
그렇게 말하는 작은 아빠는 이미 상체를 TV 쪽으로 반쯤 돌렸다. 다른 친척들도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척하고 있지만, 두 귀를 활짝 열고 들을 준비를 하는 게 다 보인다.
마침내 화면 속에서 엘제이가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은밀히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공개 수치사만은 피해 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랄까.
“뭐야, 왜 소리 안 나와? 저 여자애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음소거 눌린 거 같은데? 리모컨 어딨어, 리모컨!”
거실을 뒤집으며 리모컨을 찾던 사람들은 금방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눈치도 빠르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더니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가 설마 네 부끄러운 얘기를 듣고 비웃기야 하겠느냐고.
이미 표정은 비웃을 준비가 끝났구만, 뭘.
다행히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 없어서 리모컨을 든 손을 높이 들고 버텼다. 몇몇은 뭔지 들어나 보자고 아우성이고 몇몇은 구경하면서 웃느라 정신없다.
그리고 사촌 형은 별안간 핸드폰을 꺼낸다.
“벌써 누가 인터넷에다 언급했을걸?”
하면서 화면을 몇 차례 두드리더니 눈을 휘둥그레 뜬다.
젠장, 봤구나.
호시탐탐 리모컨을 노리던 작은 엄마가 재촉했다.
“왜, 뭔데? 흑역사가 뭐길래 그렇게 놀라?”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촌 형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나를 쳐다봤다.
“쟤 지금 실검 1위야.”
스타 매니저는 전국 시청률 11프로를 기록했다.
각 채널에서 선보인 설 특집 예능 중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2위를 차지한 프로가 8프로를 턱걸이로 넘겼으니, 독보적인 1위였다. 기자와 평론가들은 이게 단발성 특집이 아닌 파일럿이었다면 무조건 정규편성이 됐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실검 차트도 줄 세웠다. 공중파 특집인데다 방송도 잘 뽑힌 것 같아서 은근히 기대하긴 했지만, 파급력이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이송하가 주목받는 거야 예상하던 일이지만, 임서영에게 쏟아진 관심도 어마어마했다. 방송 다음날 인터넷이나 주위 반응을 확인한 임서영이 실감이 안 난다며 나한테 전화했을 정도다. 엉엉 울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넵튠의 인지도가 확 올라갔다는 거다.
경연 프로그램인 넥스트 K스타에서 차근차근 실력파 이미지를 쌓아올렸다면, 이번에는 지금까지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넵튠이라는 걸그룹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었다.
회사 직원들의 기획력을 짜내고 짜내도 쉽지 않던 게 예능 한편으로 되다니. 이래서 연예인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공중파 예능에 나가려고 하는구나.
이름값이 높아지니 변화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행사가 미친 듯이 들어왔다. 방송 섭외도 몇 개나 받았다.
이송하나 임서영을 찾는 곳을 중심으로, 넵튠 완전체 멤버들을 섭외하고 싶어하는 곳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까지는 엄두도 못 냈었던 굵직굵직한 공중파 주말 예능들도 있었다.
여기까지가 연휴 동안 벌어진 행복한 일들이다.
반면에 골치 아픈 일들도 있다.
스타 매니저가 줄 세운 실검 차트 꼭대기엔 내 이름이 걸렸다.
우리에게 섭외의 손길을 뻗어준 굵직굵직한 예능 프로그램 중 대부분이, 원 플러스 원 제품이라도 구매하는 것처럼 내가 넵튠 애들과 함께 출연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젠장.
이제 사람들이 날 알아본다.
< 스타 매니저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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