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34화 (34/218)

< 재능이 발아하는 순간 (1) >

방금 발음이 좀 이상했던 것 같은데.

복댕이라고 하지 않았나?

날 이상하게 부르는 건 그 직원만이 아니었다.

“복댕이 이제 출근해?”

“아아, 쟤가 걔야? 쟤가 3팀 복댕이야?”

말 한번 나눠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아는 척을 하고 지나간다. 멀찍이서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뭐지?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어제 일이 소문이 퍼져서 그런가? 물어보려고 그나마 편한 사람을 물색하고 있는데 누가 등을 툭 친다.

“복댕이 왔냐?”

김현조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그런데 뭐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복댕이가 뭐예요?”

“어제 니가 성도원 깠다는 소문 쫙 퍼졌거든. 이놈의 바닥은 뭐 비밀이 없어. 어쨌든 그래서 니 별명이 3팀 복덩이에서 3팀 복댕이로 바뀌었어. 복을 내동댕이친 놈이라고.”

“아…….”

“본부장님이 직접 지은 별명이라더라.”

내 사회적 이미지,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심각하게 생각 좀 해보려는데 김현조가 서두른다.

“빨리 내려가자. 좀 있으면 촬영팀 올 거야. 건영이가 데리러 갔어.”

“촬영팀이요?”

“애들 연습하는 거 인서트 그림 찍기로 했잖아.”

오늘 넵튠 촬영 스케줄이 있긴 하다. 내일부터 넥스트 K스타 미션 녹화에 들어가는데, 나중에 편집할 때 끼워 넣을 연습 장면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런데 5시로 픽스 된 거 아니었어요?”

“원래 다른 팀 먼저 찍을 예정이었는데 그 팀이 지방 촬영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는 바람에 스케줄이 엉켰대. 그래서 우리 먼저 찍고 거기로 넘어갔으면 하더라고. 하여간 제일 만만한 게 우리라니까.”

지하 연습실로 내려가는 길에 김현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지은씨가 애들을 빡세게 굴려야 하는데. 카메라 앞이라고 너무 사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지은씨라면 오늘 촬영을 도와주기로 한 보컬 트레이너다. 지난번에 회의 때 봤는데, 얼굴은 귀염상이고 키가 엄청 작았다. 얼굴 없는 가수로 몇 년 활동하다가 트레이너로 전향했댔지.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한다, 노력했다, 그런 인터뷰 백번 하는 것보다 그런 그림 한 컷 나가는 게 효과가 더 좋거든. 그래야 시청자들이 그거 보고 쟤들 정말 고생하면서 연습하는구나, 걸그룹도 쉬운 거 아니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실 문을 열었다. 미션 준비 때문에 반주도 없이 춤추며 노래하는 애들이 보인다. 트레이너는 팔짱을 끼고 서서 지켜보고 있다.

나도 조용히 들어가서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특히 이태희는 음악에 일가견이 없는 내가 듣기에도 대단하다. 50킬로도 안 나가는 날씬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성량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역동적인 안무를 소화하면서 노래를 하는데도 벅차하는 기색이 없고, 목소리도 흔들림 없이 쭉쭉 뻗어 나간다. 특히 고음을 너무 편하게 불러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게 되게 쉬운 건 줄 알겠다.

흐뭇하게 웃으면서 보고 있을 때.

“이송하!”

깜짝이야.

트레이너의 고함에 애들이 우뚝 멈춘다. 이름을 불린 이송하가 땀을 닦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반년 넘게 연습한 타이틀곡도 이러면 다른 미션은 어떻게 할래? 너 나 쪽팔리게 할 거야? 전국에 얼굴 까고 방송 나가는데, 내가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애를 데뷔시켰다고 욕 바가지로 먹었으면 좋겠니?”

“죄송합니다.”

“그렇게 할 거면 니 파트만 AR로 틀어달라고 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켜보는 내가 움찔움찔할 정도로 매서운 지적이 쏟아진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지 이송하는 박력 넘치게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한다. 저러다 우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럴 기미는 전혀 안 보인다. 오히려 다른 애들이 안쓰러운 눈으로 힐끔거릴 뿐.

아니, 그런데…… 저렇게 혼날 만큼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넵튠 매니저가 되고 나서 요즘 잘 나간다 하는 걸그룹들 음원이나 음방 방송영상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송하는 평균이다. 콩깍지를 씌우고 보면 평균보다 살짝 낫고.

쟤 노래 진짜 잘한다, 이런 수준은 아니지만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지.

문제는 같은 팀인 이태희가 너무 압도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데다가, 엘제이도 랩으로는 어디 가서 묻히는 실력이 아니고, 댄스에 특화된 임서영까지 노래를 잘하는 편이라 비교가 돼서 상대적으로 못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 송하 쟤도 다른 팀에 가면 이렇게 구멍 취급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그리고 연습은 또 얼마나 하는데.

실력이라는 게 연습한 시간만큼 쑥쑥 늘어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지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제삼자인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어, 오셨어요?”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트레이너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실장님, 이제 촬영 시작하는 거예요?”

“곧 촬영팀 들어올 거예요.”

“촬영할 때 제가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냥 하던 대로 하시면 돼요. 지금처럼.”

김현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몇 분 후 배신자가 넥스트 K스타의 촬영팀을 데리고 들어왔다. 지난번 회식 때 봤던 젊은 피디와 작가 한 명.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감독과 기다란 붐 마이크, 조명을 짊어진 스텝들까지.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오자 연습실이 순식간에 북적거린다.

“잘 부탁합니다. 딱 삼십 분만 찍고 갈게요.”

피디가 하품을 쩍 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촬영팀은 정말 딱 삼십 분만에 촬영을 끝내고 갔다. 내가 보기에는 애들이 연습하는 거 한두 컷, 그리고 나머지는 애들이 지적당하는 모습, 특히 이송하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모습만 나갈 것 같다.

부디 그 장면을 보고 네티즌들이 ‘너무한다. 저렇게 까일 정도는 아니구만.’ 하고 생각해주면 좋을 텐데.

“선우야.”

뒷정리하고 있는데 김현조가 다가와 말한다.

“다른 애들은 건영이한테 맡기고, 넌 송하 데리고 B회의실에 가 있어. 영훈이 형 찾아서 갈 테니까. 어제 못다 한 얘기해야지.”

“아, 네!”

안 그래도 언제쯤 그 얘기를 꺼낼까 기다리던 참이었다.

기진맥진해서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촬영은 잘 된 것 같다고 두런거리는 애들 사이를 지나, 이송하를 찾아냈다. 제일 구석에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채 엎드려있다.

기절한 거 아냐?

“송하야.”

“네.”

부르자마자 벌떡 일어난다.

“실장님이랑 팀장님이 얘기 좀 하자는데, 괜찮겠어?”

“네, 저 괜찮아요.”

이송하가 가방을 들고 따라나선다. 뒤에서 다른 애들이 한마디씩 하며 배웅한다.

“송하, 얘기 잘하고 와.”

“갔다 와.”

“팀장님한테 니가 들은 얘기 다 하고 와, 답답아!”

엘리베이터에 타고 4층 버튼을 눌렀다.

좁고 밀폐된 공간이라 가쁜 호흡 소리가 울린다. 이송하를 보니 전속력으로 달리기하다가 온 애처럼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다. 이마나 턱, 그리고 가느다란 목까지 온통 땀투성이라 딱해 보일 정도다.

그래도 힘들다는 말 한 번 안 하니…… 장하다고 해야 할 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 지. 그것도 아니면 독하다고 해야 할 지.

사실, 더 힘든 건 몸보다는 마음일 것 같은데.

“보컬 선생님 무섭더라.”

“네?”

“오늘 촬영팀 와서 일부러 더 심하게 하신 걸 수도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 말인데 이송하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선생님 오늘 촬영한다고 되게 부드럽게 하신 건데요.”

“……그게?”

“진짜 연습할 때는 한 열 배쯤 더 무서워요. 그러고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친다.

저렇게 심하게 혼나도, 그리고 그보다 열 배쯤 더 무섭게 혼났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앤데. 연기 레슨을 받을 때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했단 말이지. 밤마다 야식을 3인분씩 먹으면서 우울해 하다가 결국에는 그만뒀을 만큼.

빌어먹을 놈. 애를 대체 어떻게, 얼마나 잡은 거야?

아직 만난 적도 없는 레슨 선생은 내 안에서 괴물이 돼가고 있다.

이송하를 B회의실에 넣어 놓고, 아까 출근하면서 사온 머핀을 가져왔다. 연습하랴, 촬영하랴, 혼나기까지 하느라고 당 뚝뚝 떨어졌을 텐데 간식이라도 먹여야지.

“송하야, 이거 머핀인데 먹….”

“먹을래요.”

“그래. 다 같이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온 건데, 너 먼저 하나 꺼내 먹어.”

머핀 상자를 덥석 잡고 열려고 하던 이송하가 멈칫한다.

“하나만요? 종류 다른 거예요?”

나를 쳐다보면서 심각하게 묻는다.

왜 자기를 그렇게 엄청난 선택의 기로에 세우느냐는 듯이.

하지만 난 네쌍둥이 삼촌이지.

“아냐, 다 똑같은 거야. 고를 것도 없어.”

“와. 잘 먹겠습니다.”

이송하가 망설이면 누구한테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머핀 하나를 덥석 집는다. 호두가 올라간 주먹만 한 머핀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진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눈 깜짝할 사이에.

뭐야, 머핀을 마신 거야?

이송하는 테이블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까지 다 주워 먹고 아쉽게 입맛을 다시고 있다. 쟤는 어쩌면 푸드파이터, 그런 쪽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비주얼도 어마어마하니까 인터넷 방송에서 먹방을 찍으면 떼돈 벌지도 몰라.

“내 것까지 사긴 했는데, 난 별로 안 좋아하니까 하나 더 먹어.”

“진짜요?”

“진짜.”

“감사합니다.”

좋아한다, 좋아해. 되게 맛있나 보네.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앤데 먹을 때만큼은 참 행복해 보여서 좋다. 하나에 사천 원이라는, 나 혼자라면 절대 내 돈 주고 안 사 먹을 정신 나간 가격이었지만, 저 모습을 보니까 전혀 아깝지 않다.

이송하가 머핀 두 개를 해치울 때까지도 김현조와 3팀장은 오지 않았다. 힐끔힐끔 회의실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송하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방을 뒤진다. 그리고 A4 뭉치를 꺼낸다.

고양이 수호령의 시놉시스.

“주신 거… 다 봤어요.”

“그래? 어땠어?”

시놉시스는 진짜 별거 없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언니들은 그냥 그렇대요.”

역시나.

“저는 재밌었어요.”

“……정말?”

“특히 맨 뒤에 있는 소설이 재밌어요.”

이송하가 시놉시스를 착착 넘겨서 보여준다.

시놉시스의 제일 뒷부분에는 고양이 수호령 초반부의 줄거리가 소설형식으로 첨부돼 있다. 이렇게 소설 형식으로 줄거리를 쓴 시놉시스는 많지만, 홍주미 작가가 로맨스 소설 작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건 진짜 소설처럼 본격적이다. 나도 그 부분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너는 어떤 캐릭터가 제일 마음에 들어?”

이송하가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더니 손을 든다.

“이 사람이요.”

나는 하마터면 탄성을 흘릴 뻔했다.

동시통역사 정해원.

이송하가 딱 그 배역을 가리켰다.

나도 저 시놉시스를 손에 넣은 뒤로 수십 번이나 읽었다.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에 이송하를 대입해 보면서 뭐가 제일 어울릴지 상상했다.

그리고 이송하가 이 드라마를 한다면 정해원 역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래에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캐릭터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이송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 재능이 발아하는 순간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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