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와, 총질?!(1)
49. 와, 총질?!(1)
쿠롸롸롸롸!
쿠궁! 카가각!
거대한 덩치의 이족보행 괴수가 휘두른 방망이를 어슷하게 비껴내는 도현.
그와 동시에 좌우에서 금 입사 세공이 들어간 플레이트를 착용한 기사 둘이 달려 나가 괴수의 목을 잘라냈다.
“거 참, 시원하게 날리네.”
도현은 자신의 공격 기회가 사라진 것에 아쉬운 입맛을 다시면서도 호위 기사들의 움직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호위 기사단의 규모는 서른.
그들은 도현에게 위협이 될 대상을 철저하게 말살했다.
하나같이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산성병사의 천인장과 동급이다.
그 중에 지금도 도현의 곁에 붙어 있는 호위 기사단의 단장은 추정 등급이 익스퍼트 최상급.
중형 괴수들이 점령하고 있는 5구역 거점 하나를 박살내는 동안 단장은 아직까지 검을 한 번도 뽑지 않았다.
그저 도현의 왼쪽 한 걸음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도현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그 때는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뽑지 않을까?
“단장, 정리가 끝나면 전리품 수색을 꼼꼼히 하도록.”
“네, 군주님.”
도현이 단장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리자, 단장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 후, 단장이 따로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과정은 없다.
마치 기사단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듯, 단장에게 지시를 내리면 모두가 알아듣는 형태였다.
- 로드. 어떻습니까? 믿음직한 기사단이 아닙니까.
“그래, 뭐, 나쁘진 않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함께 하기는 어렵겠어. 워낙 화려해야 말이지.”
- 아쉽지만 그럴 때에는 흑영을 쓰시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저번에 새로 개방한 숲지기들을 불러 쓰시는 것도······.
“산성병사 부대를 운용하면서 내가 쓸 수 있는 갑옷이 숲의 성 갑옷뿐인데, 숲지기까지 부르면 난 뭘 입으라고?”
- 그래서 더더욱 군왕 시리즈를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군왕의 갑옷과 군왕검만 찾으면 기본 장비는 걱정하실 일이 없을 겁니다.
“그거 특수 아이템 항목에서도 거의 최상위에 있었던 것 같은데? 포인트를 언제 모으냐?”
- 이제 길드를 확장하고, 다른 길드를 복속시키면 로드께 필요한 것은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길드 확장이라······.”
하위 길드를 만들고, 다른 길드를 공격해서 복속시키는 것.
하지만 가디언이라는 공익 단체를 대표하는 도현과 크라운 길드는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놓고 다른 길드를 공격해서 항복을 받기엔 지금까지 쌓아놓은 이름값이 문제인 것이다.
“일단은 먼저 이빨을 드러내는 길드들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지. 그리고 빨리 5구역을 마무리하고 6구역으로 넘어가야 하고.”
- 적의 진출을 막는 작전은 좋았지만, 그 때문에 점령해야 할 거점이 너무 많아진 것도 문제입니다. 5구역 전체를 점령해야 6구역으로 갈 수 있다니.
“어쩔 수 없지.”
-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알케이네스 차원 놈들이 6구역을 도모하고 있을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아니, 괜찮아. 5구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6구역 공략이 쉽지 않아. 6구역은 섹터 하나를 점령하는데 몇 달이 걸리는 경우도 많아. 동원해야 할 인원도 많고.”
- 그렇습니까?
“어지간해선 쉽게 점령하기 어렵지. 손에 들어온 지역도 관리를 못하면 리젠 때문에 밀리기도 하니까.”
- 정말 보급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나마 안심이긴 합니다.
에포르는 크라운 시티의 변화를 떠올리며 굳은 표정을 풀었다.
도시엔 수많은 시설들이 있었다.
그리고 도시 주변에 있는 땅들은 광산이나 특산품 생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을 농축산의 1차 산업지대로 일구는 중이다.
거기에 거점마다 특성을 지니고 있는 5구역의 점령지들은 그런 4구역 생산기지의 자원 보급처로 바뀌는 중.
- 로드, 아무리 계산을 해도 과잉 생산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에포르는 이리저리 셈을 해 보고는 크라운 시티와 그 주변 영지에 5구역의 거점들까지 더하면 그 생산성이 크라운 길드가 쓰기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도현은 하위 길드를 만들어 또 다른 5구역을 만들어 점령하려 하고 있었다.
에포르가 보기엔 과해도 너무 과했다.
하지만.
“우리 크라운만을 위한 것이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알케이네스 놈들에게 밀리는 길드들이 나올 거야.”
- 그럼 그 길드들까지 지원하기 위해서 여유분을 만드시는 것입니까?
“그것도 있고, 뉴어스에서 생산된 것으로 지구의 부족함을 채워야 할 경우도 대비하는 거지.”
- 지구의 부족함이라면······.
“알케이네스의 침략은 중립 도시의 차원 회랑을 거쳐서 수정 기둥을 점령하고, 뉴어스를 삼킨 다음에 골드 게이트와 그레이 게이트를 통해서 지구로 밀고 들어가는 순서로 이루어져.”
- 그럼 지구는 걱정할 것이 없겠군요?
“그런데 이렇게 차원간의 싸움이 벌어지면 지구나 알케이네스를 감싸고 있는 차원벽이 약해지는 문제가 생겨. 그래서 엉뚱한 것들이 그 약해진 차원벽을 뚫고 나타나는 거지.”
- 아, 전에 지구에 게이트가 나타나고 몬스터가 쏟아진 것처럼 말이군요?
“그건 일종의 경고였지. 뉴어스 공략을 통해서 알케이네스 차원의 침략에 대비하라고 했더니,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시스템이 준 경고.”
- 그럼 앞으로 약해진 차원벽을 뚫고 지구에 나타나는 것들은 시스템과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과거의 우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우리와 알케이네스의 차원 전쟁으로 약해진 틈에 떨거지들이 쏟아져 오는 것으로.”
-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쩌긴, 지구도 만만찮은 시련을 겪게 되는 거지. 그래서 필요한 것이 뉴어스의 자원과 지식이다. 차원을 넘어 오는 것들이 뒤집어 쓰고 있는 차원 에너지를 깎아내기 위해서는 마력이나 오러 따위의 신비가 필요하니까.”
- 그렇군요.
“자, 그런 의미에서 집에나 한 번 다녀오자. 군왕성의 시녀와 시종들, 호신술 정도는 하겠지?”
- 그야 윗전을 모시는 입장에서 위기의 순간에 시간이라도 벌려면······. 설마 시종과 시녀를 가족들에게 내어주실 생각이십니까?
“기사들은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시녀와 시종이라도 시도를 해 보려고. 뭐 그것 때문에 가려는 건 아니야. 지구 쪽에도 해야 할 일이 많잖아. 가디언 가이드 발행도 밀려 있고.”
- 그건 그렇습니다. 로드께서 너무 많은 부담을 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아직은 부려먹을 골드 헌터가 마땅치 않으니까.”
도현은 한숨을 쉬고는 개인 포탈을 열었다.
* * *
“어서 오너라.”
“뉴어스의 일이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 큰 녀석이 제 갈 길을 가는데, 부모가 걸림돌이 될 수는 없지.”
“무슨 그런 말씀을.”
“그래, 여원의 베타 팀은 만났고?”
“네, 이번 가이드에 실을 내용을 정리해서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원 쪽에 마력수를 많이 넘긴 모양이지요?”
“왜? 뭐라고 하든?”
“공급량을 더 늘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걸 보니 기본적인 임상 실험의 규모를 넘은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마력수를 먹어서 탈이 났다는 케이스가 없어서 좀 여유 있게 실험을 잡았다. 그래도 문제가 생긴 케이스는 없었고.”
“그걸 여원의 회장님도 드신 모양이지요?”
“나하고 우리 가족들이 모두 먹고 있다니까, 노회장님도 먹겠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 쪽 가족들도 대부분 마시고 있지.”
“설마 이끼와 포자낭도 분양을 하셨습니까?”
“여원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몇 곳에 나가 있다.”
최성수는 슬쩍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이실직고 했다.
몸에 좋은 것이 있다면 그런 소식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은근히 부탁을 하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이런 부탁들은 대부분 거절하기 어려운 선에서 들어오는 것들이라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루에 1리터 정도 나오는 것들로 내 줬다.”
“괜찮습니다. 미안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제 본격적으로 [샘물 이끼]를 분양할 생각이니까요.”
“정말이냐? 도혜가 들으면 정말 좋아하겠구나.”
“도혜에게 [샘물 이끼]에 대한 지분을 준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 녀석이 다육이에게 이끼를 이식해서 벌어지게 된 일이니 5%의 지분은 받을 자격이 있지.”
“하하. 아버지 생각이 그러시면 그런 거죠.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결정한 걸로 알겠습니다.”
“고맙구나.”
“무슨 그런 말씀을요. 도혜는 제 동생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피붙이 사이에도 돈이 걸리면 칼부림을 하는 일이 흔한 세상 아니냐.”
“하하하. 그랬다간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찌릿합니다.”
“하하하하.”
도현은 최성수와 잠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의 표정은 진지하게 변했다.
“그래, 무슨 일이냐?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마법 아이템 생산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서 뉴어스 자원의 공급선도 만들어야 하고 말입니다.”
“음, 네가 가져온 마법진들을 데이터화 하는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고, 그 중에서 실용화에 성공한 것들도 제법 되지. 하지만 그 대부분이 전투와 관계된 것들인데······.”
“아버지, 그게 필요할 거 같습니다. 이번 가디언 가이드에 실릴 내용이긴 합니다만, 뉴어스에서 저쪽 차원 종족과 전투가 벌어지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차원 벽이 약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에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넘어올 수 있습니다.”
“다른 차원?”
“대부분 이성이 없는 짐승같은 것들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럼 더 위험하겠구나. 지구 인류는 야생의 폭력에 익숙하지 않으니.”
“네, 그래도 우린 우리대로 지금껏 키워온 문명이 있고, 거기에 뉴어스의 마력이 더해지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걸 위해서 네가 가지고 온 것들이 필요한 것이고?”
“아버지께서 먼저 움직이시면 다른 나라나 기업들도 움직일 겁니다. 골드 헌터들이 있으니까요.”
“그래. 알았다. 그럼 총알이나 폭탄에 쓸 합금, 마법진을 만들 마법시약과 마력을 품은 재료들, 샘물 이끼가 우리 주력이 되겠구나.”
“대충 여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키워야 할 겁니다. 아버지.”
“하하. 그 정도야 어려울 거 없다. 독점과 선점의 지원을 받는데 그걸 못해서야 사업가라 할 수 없지. 걱정하지 마라.”
“네, 아버지.”
“그래, 그럼 여기 볼 일이 끝났으니 다시 뉴어스로 갈 거냐?”
“네, 아버지. 급히 나오느라 시험을 봐야 할 걸 깜빡 했거든요.”
“응?”
“좋은 일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런데······.”
“여자 아닙니다.”
“끄응, 알았다.”
“그럼 집에 갔다가 뉴어스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최성수는 돌아나가는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배웅했다.
- 로드, 집과 회사 어딜 가든 따라붙은 눈길이 많았습니다. 괜찮겠습니까?
회사를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 운전을 하는 도현에게 에포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그 중에는 우리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팀도 있어. 여원에서 꾸린 팀도 있고, 정부에서 나온 요원도 있고.”
-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최후의 보루로 흑영과 그림자 게이트가 있잖아.”
- 거기에 이번에 집에 시녀와 시종까지 배치했으니 좀 더 안심이 되시지요?
“덕분에 어머니 일거리가 많이 줄었지. 시녀와 시종은 그것만으로도 소환한 가치가 있어.”
- 그렇군요. 그런데······.
“어?”
파직! 파직! 파팟! 카가가강!
“크윽!”
끼이이이이이익! 쿠구구궁!
- 로, 로드!
“이런 젠장! 대한민국에서 총질을 해?!”
도현은 앞 유리창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드는 타격에 어금니를 깨물고 핸들을 돌리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제법 속도가 있었던 때문인지 차는 미끄러지며 도로의 바깥쪽 가드레일에 충돌했다.
- 괜찮으십니까? 이마와 얼굴에 타격을······.
“크으, 괜찮아. 군왕의 크라운이 충분히 제 몫을 해 줬어.”
도현이 에포르의 걱정을 진정시키며 구겨진 문짝을 밀어내며 자동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는 도현의 모습은 전형적인 캐슬의 모습.
산성을 장착하고 눈과 코의 선을 이어주는 T자형 틈이 있는 투구를 쓴 그는 멀리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 로드! 보이십니까?
“그래, 도망치려고 법석을 떨고 있구나.”
- 잡으셔야지요?
“당연하지!”
도현은 말과 함께 심상에서 어둠의 성에 군왕성 점유율을 조금 투자해서 어둠의 성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올렸다.
그리고 불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흑영을 불러냈다.
“잡아 와!”
도현이 불러낸 흑영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단순히 잡아오라는 한 마디에 불과했지만 명령을 받은 흑영들은 도현의 의지를 읽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총이란 말이지. 총!”
도현은 이미 몸을 감춘 스나이퍼와 조수가 있던 건물 옥상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군왕의 크라운이 없었더라도 산성의 주인인 도현이 총알 따위에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도현의 능력이 뛰어나서 나온 결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첫 번째 탄환에 이마가 뚫려서 죽었을 것이다.
“으드드드득!”
이마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고통.
도현은 흑영이 목표물을 찾았다는 의식 전달에 이를 갈았다.
“제일 먼저 누가 나를 노렸는지, 그것부터 알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