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차원 너머의 적에게 한 방 먹이자(1)
39. 차원 너머의 적에게 한 방 먹이자(1)
“와, 크라운 간부진들 다 모인 건 처음 아니에요?”
상황파악 팀의 주지성이 회의장에 앉은 면면들을 확인하며 감탄을 터트렸다.
가장 숫자가 많은 혈장미 팀의 자옥, 마흔 명을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여진만 팀, 도깨비 팀, 비무장전설 팀의 여진만, 도비형, 황재승 팀장.
새로 합류해서 전투 팀으로는 숫자가 제일 많은 보국 팀의 박형렬, 도현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성희.
마지막으로 숨겨진 칼이라 불리는 김재홍까지.
크라운 길드의 길드 하우스 회의실에 모인 면면들은 그러했다.
“모두 들어서 알겠지만 5구역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들썩이는 주지성의 목소리를 도현의 한 마디가 찍어 눌렀다.
도현의 말이 시작되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5구역 점령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거죠?”
이에 자옥이 무슨 문제가 있느냔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가 이끄는 혈장미는 4구역까지 도착한 인원만 1천 명에 육박한다.
사실상 크라운의 혈장미 팀은 대한민국 여성 헌터들 대부분을 아우르는 조직이다.
혈장미에 속해 있지 않은 헌터들이라도 혈장미 덕분에 무시당하거나 불이익을 겪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혈장미는 여성 헌터들의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옥의 위상도 높았고.
“아직까지는 5구역에서 사망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스터께서 무얼 걱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5구역 클리어가 늦어지는 것이 문제입니까?”
박형렬 소령은 도현이 무얼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와이번으로 5구역 전체를 둘러봤다. 아직 와이번이 공격 받아서 위험할 상황은 겪지 못했고, 덕분에 5구역의 지도를 모두 완성했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며 옆에 준비해 뒀던 괘도를 펼쳤다.
둘둘 말려 있던 괘도가 주르륵 펼쳐지며 나타난 것은 5구역 전체를 표시한 지도였다.
“으음. 거기 파란 색으로 찍힌 점이 우리 길드가 점령한 거점들이군요.”
도비형이 지도를 보자마자 그 의미를 파악해냈고, 다른 간부들도 지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위로 길게 생긴 모양이군요. 그런데 완전 대칭이네요?”
주지성이 지도에 나타난 5구역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앙선을 기점으로 접어놓으면 위아래가 일치할 정도로 비슷했다.
“아니야. 조금 달라. 위쪽에 몇 부분이.”
이에 성희가 선인장 가시 같은 침을 몇 개 쏘아서 지도의 윗부분에 꽂았다.
그 침이 박힌 부분은 텅 비어 있었는데, 반대쪽 크라운 길드가 점령한 부분에는 거점 표시가 있었다.
“바로 그거다!”
도현이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괘도의 대칭이 틀어진 부분을 연이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명 같은 모양이어야 하는데, 여기 몇 곳이 달라. 이게 왜 그럴까?”
도현이 간부들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다시 지도 윗부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러자 그 부분의 지형이 사라지고 빈 공간이 되었다.
지도에 그렇게 빈 공간을 만들어 낸 후, 도현이 간부들을 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확인했을 때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지.”
“네?”
“그럼 구역 내의 땅이 사라진다는 겁니까?”
“아니 그게 어떻게······.”
간부들이 도현이 지워버린 지도의 한 부분과, 이미 사라진 부분들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물었다.
“간단하지. 5구역을 놓고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거야. 지금 우리가 점령한 거점은 우리 길드의 것이 되는 거고, 여기 이렇게 사라진 곳은······.”
“적들이 점령을 했다는 거군요.”
여진만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미지의 적, 그러니까 지구를 점령하려는 타차원의 존재들이 여길 먹어치웠다는 거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간부들의 표정을 살폈다.
당연히 모두들 많이 놀란 듯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우리의 적은 뉴어스에 있는 몬스터나 유적, 함정 따위가 아니야. 그건 우리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지.”
“그걸 놈들이 빼앗아 가고 있다는 거군요?”
“맞아. 나도 구역 전체를 확인하며 비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지.”
“적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까요?”
자옥이 도현을 보며 물었다.
“아마, 아닐 거야. 뉴어스의 시스템은 공정한 거 같으니까. 저 쪽에 나처럼 맵 전체를 밝힐 수 있는 능력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우리가 하는 것처럼 거점을 점령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겠지.”
“그래도 결과는 같은 거잖습니까. 어차피 저 위에 있는 거점들을 빼앗기고 있는 거니까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상황을 알았으면 놈들이 거점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박형렬 소령이 지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일단 여기 이렇게.”
도현이 지도 상단 몇 곳을 찍었다.
그곳은 아래쪽에선 이미 크라운 길드가 거점을 점령한 곳이었다.
“길목 차단!”
도현이 찍은 위치를 보자마가 여진만이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맞아. 저기를 지나지 않으면 다음 거점 공략이 어렵지. 병력 이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곳이야.”
도비형이 무릎을 쳤다.
“마스터는 지금 그곳을 우리가 먼저 점령하자는 겁니까?”
비무장전설 팀의 황재승이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여진만 팀과 도깨비 팀, 비무장전설 팀은 모두 마흔 명의 소수 정예를 추구하며 개인 전투력이 뛰어난 이들이다.
그리고 서로 에이스 팀의 자리를 다투는 중이었다.
만약 도현이 찍은 거점들을 점령하는 작전을 벌여야 한다면, 그 결과로 팀의 서열을 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진만이나 도비형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여기까지 침투해서 거점을 점령하는 건데?”
도현이 세 팀장을 보며 물었을 때였다.
“우리도 한 자리 주세요.”
자옥이 질 수 없다는 듯이 작전 참가를 선언했다.
“보국에서 거점 두 개를 맡겠습니다.”
이에 당연하다는 듯이 박형렬 소령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거점 두 개를 요구했다.
“어어? 그럼 우리는요. 아니, 아니지. 우린 빠질래요. 우린 이제 비전투 생산전문이라고요.”
이에 발끈했던 주지성은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상황파악 팀은 요즈음 전투인원을 줄이고, 생산직 인원을 늘리며 체질 개선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주지성은 빠르게 상황을 살펴서 손절을 선언한 것이다.
“그럼 거점 여섯 개는 각자 알아서 분배를 하고, 여기하고 여기, 두 곳은 내가 정리하는 걸로 하지.”
“아, 까다로운 곳을 마스터께서 맡아 주시면 일이 편해지겠습니다. 그런데 이쪽에 있는 거점들도 판박이처럼 같은 곳이 맞습니까?”
황재승이 꼭 확인해야 할 문제를 이제 생각해 냈다는 듯이 도현을 보며 물었다.
“맞아. 5구역은 완벽히 상하가 동일한 데칼코마니야.”
그런 황재승의 질문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저기까지 가는 것도 쉽지는 않겠군. 자자, 각자 어떤 거점을 노릴 건지 이야기를 해 보자고. 그리고 지도는······.”
“여기 몇 장 더 있으니까 나눠 가져!”
괘도 하나를 놓고 눈치를 보는 간부들에게 도현이 깔끔하게 복사된 지도를 꺼내 주었다.
아직 뉴어스에선 어려워도 지구에선 간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지도에 보면 파란 점이 있을 거야. 작전 시작하면 거기로 작전 인원들을 이동시켜 줄 거야.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작전 계획을 짜면 될 거야.”
도현은 지도와 함께 또 다른 선물을 간부들에게 던져 주었다.
“이곳까지 이동을 시켜주신다는 말입니까?”
“아니 어떻게?”
“인원이 많을 텐데, 와이번으론 어렵지 않겠습니까?”
도현의 말에 간부들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도의 축적을 생각하면 못해도 5구역은 아래위로 2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파란 점까지는 지금 크라운이 점령한 제일 앞쪽의 거점에서도 100킬로미터는 넘을 텐데.
“이동 방법이 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한 번에 안 되면, 사흘 정도 텀을 둘 수는 있지만 걸어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도착점에서 먼 곳에 있는 거점을 공격할 팀을 먼저 보낸다면 사흘 정도의 텀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 박 팀장 말대로 저쪽에 도착해서도 또 움직여야 하니까 그렇기도 하네. 어쨌건 거기 표시된 곳으로 작전 인원을 보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의논들 해 봐.”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먼저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 괜찮겠습니까?
그런 도현에게 에포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포르가 묻는 것은 그림자 게이트를 뉴어스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였다.
‘어쩔 수 없지.’
길드원들을 그 먼 곳으로 안전하게 보낼 방법은 그림자 게이트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그림자 게이트는 원래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보험처럼 아껴둔 것이었다.
언제든 위험에 처한 가족의 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이지.
그래서 도현은 뉴어스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림자 게이트를 쓰지 않았다.
아니 지구에서도 도혜가 위험했을 때에 한 번 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함부로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자 게이트를 이번 작전에 쓰기로 했다.
그만큼 타차원의 적들을 막는 것이 중요했다.
5구역의 거점 하나가 적에게 넘어가면 그만큼 적의 전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불안하긴 해도, 그림자 게이트를 이번 작전에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 로드.
‘왜?’
- 대한민국의 5구역은 로드께서 이렇게 막는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의 5구역에선 이렇게 거점을 독점하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 그럼 굳이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 머리 위에서 거점을 먹고 있는 놈들이 어떤 놈들일 거 같아?’
에포르의 질문에 도현이 다시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 어떤 놈들이라니요?
‘우리가 지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길드지? 가장 강력하고?’
- 그럼, 로드께서 상대하는 적도 같은 위치의 놈들이란 말입니까?
‘그거지. 저 쪽에서 제일 잘 나가는 놈들이 우리와 붙은 거야. 그럼 그런 놈들을 밟아 주면 어떤 효과가 있겠어?’
- 아, 그렇군요. 로드와 로드의 길드는 성장을 지속하고, 상대는 밟아서 크지 못하게 하고. 그런 거군요.
‘아직 직접 피를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엿을 먹여야지. 그래야 나중에 붙을 때,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는 거지.’
상대의 거점 수를 줄이는 것은 곧, 성장 원동력을 줄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점령한 거점은 곧 자원이기 때문이다.
‘후우, 그래도 불안하긴 하네.’
고작 3일.
그 사이에만 일이 생기지 않으면 되는데.
가족의 일이라 그런지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림자 게이트를 쓸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은 도현이었다.
- 흑영을 둘씩이나 붙여 두지 않으셨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괜찮냐고 물었던 에포르가 도리어 괜찮을 거라고 도현을 위로했다.
‘이럴 거면 물어보긴 왜 물어봐?’
- 저는 로드의 의전담당관이자 재산 관리인이며, 어심까지 케어할 진정한 충신 에포르가 아니겠습니까.
‘어째, 지구 문명을 배우면서 점점 혼종이 되어 가는 거 같다. 어심에 케어에 충신에······.’
- ······. 송구합니다.
‘아무튼, 이번 일도 가디언 가이드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야겠다. 여력이 되면 어떻게든 거점 점령에 속도를 붙이겠지.’
차원 너머의 적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
그러니 어느 정도 경각심을 심어줄 수는 있지 않을까.
도현은 그렇게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