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3구역의 여포(4)
24. 3구역의 여포(4)
콤모디 왕국군이 관문을 지나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몇 시간 후.
도현은 하늘을 보며 시간을 짐작해 보았다.
“이제 왕국군이 레스폰 왕국의 관문에 도착할 때가 된 거 같은데?”
병사들의 행군 속도를 생각하면 때가 되었다.
콤모디의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 레스폰 왕국의 관문을 공격할 것이다.
단단한 레스폰 왕국의 관문으로 물밀 듯이 밀려가는 콤모디 왕국의 병사들.
거대한 재방을 향해 몰아치는 거센 물결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관문에 닿기 전에 이변이 일어나리라.
쿠구구구구구궁!
“끝났군.”
도현은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굉음을 듣고 짧은 한 마디를 뱉었다.
- 로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끝나다니요?
에포르 병사가 도현의 곁에서 물었다.
“조금 전의 그 소리 못 들었어?”
- 그야 들었습니다만.
“저렇게 멀리서 일어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어. 걸어서 꼬박 서너 시간을 가야 할 곳에서 난 소린데.”
- 엄청난 일이 벌어졌겠군요?
“레스폰 왕국 놈들이 자기 관문 앞쪽을 무너뜨렸어. 관문 바로 앞에서 계곡을 따라서 500미터를 주저 앉혔지.”
-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콤모디 왕국의 병사들은요?
“끝도 안 보일 정도로 까마득하게 바닥이 내려앉았어. 전멸이야.”
도현은 마치 눈으로 본 듯이 말했다.
-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관문 좌우에 왕국의 산악병들이 매복하고 있었을 텐데요?
“그들도 끝장났지. 산에는 상곡풍과 하곡풍이란 것이 있어. 낮에는 주로 밑에서 위로 상곡풍이 불고, 밤에는 위에서 아래로 하곡풍이 불지.”
-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 레스폰의 계곡 관문은 우리 콤모디 쪽에서 계곡을 따라 바람이 불어. 그리고 그 바람이 놈들의 관문에 막혀서 좌우로 갈라지며 산으로 올라가는 상곡풍이 되지.”
- 저, 로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중요합니까?
“콤모디의 산악병들이 그 바람 때문에 모두 포로가 되었으니까 중요하지.”
- 네? 포로요?
“레스폰 놈들이 산악병의 존재를 알고 그 상곡풍에 약을 풀었어. 심하면 죽고, 아니면 온 몸이 마비되는 독.”
- 그래서 몽땅 잡혔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많이 죽기도 했지만 포로가 더 많지.”
- 그래서 여길 지키신다고 하신 겁니까?
“내가 가봐야 계곡으로 전진한 병사들이나 겨우 구할 수 있었겠지. 산악병들은 이미 당한 후니까.”
- 그런데 여기 계신 이유는······.
“조금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아직 시간이 안 됐거든.”
도현이 그렇게 말을 하고 계곡 쪽을 지켜보길 두세 시간.
“온다! 내가 여길 지키고 있었던 이유가 드디어 왔다.”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에포르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 도현의 시선에 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콤모디 왕국의 병사들이 보였다.
완전한 패잔병들.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두려운 얼굴로 관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살려줘! 도와줘!”
“으아아아! 제발!”
“지옥이야! 지옥!”
“나, 나도 데리고 가!”
병사들은 따로 진영도 갖추지 않고 무작정 관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숫자는 고작해야 3백 정도.
이번 작전을 위해 계곡으로 들어간 병사의 수가 3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담한 숫자였다.
“어서 아군을 구해라!”
“추격을 저지하라!”
“기병대! 출진!”
“궁병들은 제압사격을 준비하고 대기!
이쪽 관문을 지키던 병사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
패잔병들을 구하기 위해 기병대가 달리고, 그 뒤를 관문 수비병들이 따라갔다.
그리고 관문의 궁수들은 성벽 위에 늘어서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저 멀리 패잔병들을 추격해 온 레스폰의 병사들이 보였다.
조금 전에 출진한 기병과 관문 수비병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벽 위의 궁수들은 화살을 쏘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사거리 밖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어도 적군과 아군이 뒤섞인 곳에 제압 사격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현의 관심은 관문 앞의 전투에 가 있지 않았다.
도현은 [산성병 소환]으로 최대한 많은 산성병사를 불러냈다.
그 수는 150.
대신에 도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산성장착]의 갑옷이 사라졌다.
도현은 산성갑옷 대신에 숲의 성을 불러 몸에 둘렀다.
[숲의 성 장착]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몸을 휘감으며 넝쿨들이 자라더니 그 넝쿨에서 넓은 잎이 무성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갑옷과 투구를 완성했다.
짙은 초록과 연록색, 거기에 갈색이 더해진 갑옷을 입은 도현이 활시위를 당겼다.
- 로드! 어디를 겨누시는 겁니까?
에포르가 깜짝 놀라 외쳤다.
피이잉!
퍼억!
“크아악!”
“뭐? 뭐야? 누가 쏜 거야?”
“저기다!”
“저 놈이 공격했다.”
관문 안으로 들어와 대열을 정비하던 패잔병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도현의 산성병사들이 그들을 덮쳤다.
차장!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아군을 공격하다니!”
관문 위에 있던 지휘관이 검을 뽑아들고 도현을 겨누었다.
그 곁에 있던 부관들과 병사들 역시 도현을 향해 검과 창을 겨눴다.
“병신 같은 소리 그만하고 저 놈들이나 쳐! 저것들 레스폰 놈들이야!”
피잉! 피잉! 피잉!
도현이 다시 연속으로 화살을 날리며 고함을 질렀다.
“쳐, 쳐라!”
그러자 패잔병들 중에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이미 들킨 상황이라 최대한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작전은 실패한 작전이었다.
도현의 소환체인 산악병사 150기의 존재가 컸다.
원래는 시간을 조금 번 뒤에 수비를 돕겠다며 성벽으로 올라가 궁수를 처리하면 끝이었다.
그들 외에는 거의 남아 있는 전투병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성벽을 점거하고 관문을 닫아버리면 계곡으로 들어간 기병대와 수비병들은 오갈 곳이 없어진다.
그렇게 이쪽 관문을 점령하는 것으로 작전은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어야 했다.
도현의 존재만 없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되었을 터다.
“저, 적이다!”
“부상병으로 위장하고 들어왔다.”
“궁수! 놈들을 잡아라!”
정체가 들킨 레스폰의 위장병들은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성벽 위의 궁병들이 그들을 향해 화살을 겨눴다.
성벽 아래에 모여 있는 삼백의 레스폰 위장병들은 그들을 포위한 도현의 산악병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했다.
“무기를 버려! 허리띠를 풀고 상의를 벗어!”
“준비된 놈들만 이쪽으로 나와!”
“어설프게 움직이는 놈은 무조건 쏴버려!”
“동작이 굼떠도 죽는다!”
“움직여! 움직여!”
관문 수비대의 간부들이 레스폰 위장병들을 위협하며 무장해제를 시키기 시작했다.
도현도 성벽 위에서 내려와 그들과 함께 레스폰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 간단하게 끝이 났군요. 로드,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에포르 병사가 도현의 곁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지만 도현이 손을 내밀어 그런 에포르 병사의 행동을 막았다.
그리고 막 무장해제가 되어 포로로 분류되는 레스폰의 병사 하나를 향해 다가갔다.
“멈춰!”
도현이 그 병사를 끌고 가려는 콤모디 병사를 잡았다.
“뭐지? 무슨 일인가?”
그러자 조금 떨어져 있던 중간 간부 하나가 도현을 향해 다가왔다.
도현은 레스폰 왕국의 포로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에 십여 기의 산악병사가 주변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되어 유감이다. 알젝스 본 데일리 레스폰 2왕자.”
그렇게 도현이 레스폰의 포로를 향해 인사를 하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갑자기 조용히 있던 레스폰 왕국의 포로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놈들!”
“죽여!”
“전하를 지켜라!”
몇 명의 병사들이 콤모디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일반 병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커억!”
“난동이다!”
“죽여!”
“궁수! 제압해라!”
갑작스런 소란에 성벽 위에서 지켜보던 지휘관들이 급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콤모디 병사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상황은 끝나고 말았다.
“아아악!”
“멈추지 않으면 다음엔 아예 팔을 잘라버리겠다!”
도현의 곁에 있던 에포르 병사가 2왕자의 허벅지를 찔렀다.
그리고 도현이 고함을 지른 것이다.
순간 난동을 부리던 레스폰 병사들이 우뚝 멈춰섰다.
“놈들을 따로 구속해서 감금하라!”
성벽 위에서 지휘관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괜히 피를 볼 이유가 없지. 자, 2왕자 너는 이리로 가자.”
도현은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2왕자를 재촉해서 성벽 위로 올랐다.
마침 밖에는 콤모디의 기병대와 수비병들이 관문까지 밀려와 있는 상태였다.
도현은 레스폰의 2왕자를 계곡에서 잘 보이는 곳에 내세웠다.
그리고 고함을 질렀다.
“멈춰라! 레스폰의 악적들은 멈추지 않으면 이놈의 팔다리를 차례로 잘라 주겠다.”
이미 에포르 병사는 2왕자의 뒤에서 검을 높이 든 자세로 기다리는 중이었다.
확실한 시각적 효과.
그 때문인지 레스폰의 군대가 전진을 멈췄다.
“놈들에게 항복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나? 2왕자의 목숨을 위협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도현이 2왕자를 이용해서 레스폰 군대를 멈추자 관문의 지휘관이 욕심을 냈다.
도현은 그런 지휘관을 쳐다봤다.
“지금까지는 레스폰 놈들이 큰 손해를 보지 않아서 말을 듣는 거지. 여기서 더 나가면 2왕자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걸?”
“그, 그렇겠지?”
지휘관도 너무 욕심이 과했다는 것을 느낀 듯 얼굴을 붉혔다.
“자, 지금부터 너희는 이 2왕자를 인질로 관문을 지켜!”
도현이 그런 지휘관을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쯧, 사령부에서 지원군을 보내 줄 때까지 이 관문을 지켜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2왕자를 내세워서 저 놈들의 움직임을 막으라고.”
도현이 혀를 차며 지휘관에게 설명을 했다.
“그렇군.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어. 저 악적들도 지 놈들의 왕자가 여기 있는데 공격을 하긴 어렵겠지.”
지휘관이 도현의 말을 알아듣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시간 싸움이 될 거야. 저 놈들도 언제까지나 기다리진 않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2왕자를 포기하고 관문을 공격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전령을 보내서 지원군을 불러!”
“아, 알겠네. 그렇게 하지.”
도현의 말이 끝나자 지휘관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현은 관문의 성벽 위에서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 로드, 그럼 이제 지원군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겁니까?
레스폰의 2왕자를 관문의 병사들이 데리고 가자 에포르 병사가 도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도현은 그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 끝내면 아쉽지. 아직 안 끝났어.”
- 네? 또 뭐가 남았습니까?
에포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있지, 아주 먹음직스러운 메인 디쉬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성벽을 내려갔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관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탑승용 와이번을 소환했다.
- 로드, 뭘 하시려는 겁니까?
에포르 병사가 물었다.
“이걸 왜 불렀겠어? 갈 곳이 있으니까 불렀지. 어서 타!”
도현은 에포르 병사를 와이번의 안장에 올리고는 재빨리 고삐를 쳐서 와이번을 이륙시켰다.
- 로드!
“빈집 털이를 가는 거야. 반대쪽 레스폰 왕국의 관문에는 여기보다 군사가 더 없어. 이쪽으로 거의 모든 병사를 보냈지.”
-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런데 나는 혼자지만 곧바로 관문의 성벽 위로 올라가서 150의 산성병사를 소환할 수 있단 말이지. 성벽을 빼앗는 건 숨 쉬는 것처럼 쉽지.”
- 그렇군요. 그렇게 지형의 이점을 챙긴 상태로 싸우면! 관문을 빼앗을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로드.
에포르가 도현의 계획을 듣고 잔뜩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양파라고 아냐? 까도까도 끝이 없는 거 말이야. 이번 작전은 그런 거야. 그러니까 서둘러 가자. 이랴!”
도현이 다시 한 번 고삐를 챘다.
와이번은 그런 도현의 재촉에 날개짓에 더욱 힘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