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3구역 여포(2)
22. 3구역 여포(2)
도현이 밖으로 나오자 과거에 익숙했던 광경이 눈에 보였다.
통일된 복장을 한 남녀들이 사면의 벽에 책상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런 책상들 옆에는 또 몇 장의 종이들이 붙어 있고, 그 종이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입고 있는 복장이 비슷했다.
- 로드, 이건 또 뭡니까?
심상 속에 머물던 에포르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현에게 물었다.
“모두 군인이야.”
- 군인이라고요?
“그래, 콤모디 왕국의 군인들.”
- 왕국 이름이 콤모딥니까?
“뭐, 왕국 이름의 유래 따위는 나도 몰라. 그저 콤모디 왕국과 우리 대한민국이 동맹국이란 설정이지.”
- 그래서 그 레스폰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겁니까?
“맞아. 3구역에 도착한 헌터들에겐 길드에 대한 시스템이 열려. 길드를 만들거나 거기에 가입할 수 있다는 거지.”
- 그게 왜 필요한 겁니까?
“길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3구역을 통과할 수가 없어. 아니 통과는 할 수 있는데 전공 점수를 얻지 못해서 성장을 못하게 되지. 전공 점수는 길드원만 주거든.”
- 전공 점수란 것이 전쟁에서 얼마나 공을 세웠는가 하는 그런 겁니까?
에포르는 이제 3구역이 돌아가는 방식을 조금 이해 하게 된 모양이었다.
“맞아.”
- 그럼 그 점수를 일정 이상 얻으면 3구역을 통과할 수 있는 겁니까?
“아까 뭐 들었어? 점수 없어도 통과는 할 수 있다고 했잖아. 3구역을 통과하는 조건은 딱 하나야.”
- 그게 뭡니까 로드.
그래도 아직은 모자란 모양.
“콤모디 왕국이 레스폰 왕국을 멸망시키는 거.”
- 네?
“다 듣고 뭘 또 물어? 레스폰 왕국이 멸망하면 4구역으로 이동 되는 거야. 그리고 그 때까지 전공 점수를 따져서 보상을 얻는 거고.”
- 그럼 혹시라도 전쟁 막바지에 3구역으로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또 이런 때에는 핵심을 잘도 짚어 내는 에포르다.
지금 에포르의 질문은 3구역에서 길드에 가입하지 않는 것 다음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점수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4구역으로 날아가는 거지. 진짜 운 없으면 그런 꼴을 당할 수도 있어.”
- 그건 정말 곤란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그런 사실을 이 시스템이 알려주질 않아. 그래서 재수 없는 놈들이 그런 꼴을 당하기도 했고.”
그나마 도현은 과거에 전쟁 초기에 콤모디 왕국으로 넘어왔었다.
그가 3구역으로 왔을 때는 전쟁이 시작되고 오래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이다.
당연히 그 때는 전쟁이 끝나면 늦게 온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늦게 진입한 사람들은 전공 점수를 포기하고 2구역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3구역으로 넘어오면 새 판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3구역은 클리어 된 후에는 다시 리셋이 되어 반복되는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초기 헌터들이 몰랐을 뿐.
- 그래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핵심이란 사실은 모두 짐작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처음 3구역을 경험하는 헌터들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 4구역으로 이동하게 될 거란 사실은 알 수 없었지.”
- 그건 그렇군요.
“뭐 상관없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정보를 줄 거니까.”
- 그럼 크러운 멤버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실 겁니까?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걔들 오기 전에 첫 판을 끝내야지.”
- 네? 그럼 로드 혼자서 이번 전쟁을 끝내시겠단 말씀입니까?
“내가 끝나기 전까진 다른 놈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해야지. 여차하면 크라운 움직여서 관문 던전을 틀어막는 한이 있어도.”
- 그렇게까지 하실 거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뽑아 먹을 건 뽑아 먹어야지. 후반에 가면 절대 강자 한 명이 엄청 중요해. 그런 놈이 하나라도 있어야 다른 놈들을 찍어 누르고 제대로 된 판을 만들 수 있어.”
도현은 그 주인공이 자신이 되고자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과거처럼 타차원의 침략에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그 어떤 놈도 머리 위에 있게 하지 않겠다는 욕심도 없진 않았다.
과거처럼은 절대 살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에라도 최고의 헌터를 고집하는 것이다.
도현은 벽을 따라 놓여 있는 여러 책상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곳을 향해 걸었다.
어차피 벽에 붙은 임무들을 대충은 다 살펴볼 생각이었다.
길드에 소속된 이들은 이곳 작계실(작전 계획실)에서 전투에 관련된 계획을 미리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를 택해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다.
소규모 전투일 때에는 길드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규모가 클 경우에는 콤모디 왕국 군대와 합동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 소속인 헌터들은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진다.
전투 개시나 전투 목표 따위를 바꿀 수는 없지만 전투가 시작된 후에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두 헌터들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다.
때론 같은 편인 콤모디 왕국군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런 경우엔 전공 점수가 굉장히 깎인다.
그리고 마이너스 전공 점수가 되면 그 길드가 콤모디 왕국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 프랑스의 어떤 길드가 콤모디 왕국이 아닌 레스폰 왕국의 편을 들어서 레스폰 왕국이 전쟁에서 이기도록 한 적이 있었다.
혹시 하는 생각이 미친 짓을 한 것인데, 결과는 프랑스의 구역 공략이 한참 늦어지게 되었다.
완전 망해버린 콤모디 왕국 대신에 프랑스의 헌터들이 죽을 고생을 해서 레스폰 왕국을 멸망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전공 점수도 받지 못하고 3구역이 리셋 되었다.
레스폰 왕국이 멸망하지 않으면 3구역 리셋이 없으니, 당시 프랑스 헌터들은 엄한 놈들 때문에 정말 크게 고생을 했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레스폰 왕국을 멸망시킨 순간, 그 당시에 3구역에 있던 이들은 4구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전공 점수도 얻지 못하고.
그 때문에 레스폰 왕국을 지원했던 길드 간부들이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고 들었다.
그 중에는 골드 헌터도 있었다는데 예외 없이 처벌을 받았고, 현실로 도망친 골드 헌터도 다른 골드 헌터의 손에 죽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도록 정보를 좀 풀어야 하려나?”
도현은 작전 계획서들을 보면서 옛 생각이 나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하나의 작전 계획서를 보고 눈빛을 빛냈다.
“어? 이거?”
- 로드, 무슨 일이십니까?
“아, 이게 아직 시작이 안 된 거네? 하긴 내가 처음으로 도착한 거니까 이 작전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겠어.”
도현은 벽에 붙은 종이를 떼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책상의 여군에게 그 쪽지를 내밀었다.
“이거 크라운 길드도 참여하겠다.”
“아! 동맹군 크라운 길드군요? 알겠습니다. 크라운 길드의 작전 참여를 통보 받았습니다. 수고 하십시오.”
여군은 도현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들고 커다란 도장을 쾅쾅 찍었다.
그리고 한 장을 도현에게 건넸다.
“여기 작전에 대한 내용과 명령서가 있습니다. 해당 부대의 지휘부에 명령서를 전달하시면 작전에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하지만 기한 내에 지휘부에 도착해서 명령서를 전달해야합니다. 저 쪽에서 지도를 확인하시면 아시겠지만 거리가 먼 곳입니다. 서둘러 가셔야 할 겁니다.”
여군은 서류 몇 장을 건네며 중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그렇지. 과거에도 그래서 헌터들이 이 작전에 참가를 하지 못했어. 이 작전만 성공해도 콤모디 왕국의 승리가 훨씬 쉬워지는데 말이지.’
도현도 그 사실을 계획서를 보고서야 떠올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계획서는 다음 회차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첫 회차 한정 작전인 셈이다.
“그럼 서둘러야겠군. 알았다.”
도현은 여군의 말에 그렇게 대꾸하곤 몸을 돌렸다.
“수고하십시오. 악적 레스폰을 무찔러 승리를!”
“그래 수고, 악적 레스폰을 무찔러 영광을!”
도현은 뒤에서 들리는 구호에 등도 돌리지 않고 손을 흔들며 구호를 되돌려 줬다.
과거에도 길드마다 마지막 단어를 이리저리 바꿔서 나름 특색을 살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심지어 어떤 길드는 ‘악적 레스폰을 무찔러 대박을!’이란 구호를 만들기도 했다.
도현은 여군의 말대로 작계실 출입문 옆에 붙은 지도에서 자신이 선택한 작전이 벌어지는 지명을 확인했다.
과거에도 그 쪽에서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몇 번 있었기에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현은 자신이 받은 서류 중에서 명령서를 지도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작전 명령서에 이곳 작계실에서 작전지역까지의 지도가 복사되었다.
다른 내용은 없어도 그곳까지 이동하는 경로는 확실하게 나와 있었다.
이것 또한 경험이 쌓여야 알게 되는 팁이었다.
도현은 지도를 복사하고는 곧바로 작계실 밖으로 나왔다.
콤모디 왕국의 수도, 그 도시의 동쪽에 군부와 관계된 시설들이 몰려 있었다.
도현이 나온 작계실 건물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당연히 건물 밖에는 각양각색의 군인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도현은 그들에게 딱히 말을 걸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시스템이 만든 인형들이었다.
시스템이 짜 놓은 대로 톱니가 돌아가듯 정교하게 움직이며 두 왕국의 전투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도현은 그것을 알기에 딱히 인형들과 감정적인 교류는 하지 않았다.
- 로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밖으로 나오자 에포르가 도현에게 물었다.
“어쩌긴 시간이 없다니까 빨리 가서 명령서를 전달해야지.”
- 그렇습니까?
“만약 나한테 [와이번 소환]이 없었으면 진짜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야 했을 거다. 말을 빌려서 가다가 중간에 다른 부대에 들러서 또 갈아타야 하고, 그러다가 어쩌면 레스폰 왕국의 유격대를 만날 수도 있지. 아무튼 제 시간에 그곳에 도착하기는 무척 어려워.”
- 하지만 로드께는 와이번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거지. 하하하.”
도현은 에포르의 말에 기분 좋은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2구역 관문 통과의 보상으로 [와이번 소환]을 받은 것은 정말 대박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구역을 넘을수록 이동 거리는 늘어난다.
이곳 3구역만 하더라도 특별한 작전을 위해 왕실에서 게이트를 여는 경우가 아니면 항상 발로 뛰어야 했다.
사람의 발이든, 말의 발이든.
어쨌건 그렇게 버리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
물론 그렇게 뛰어다니는 것도 헌터의 기본 소양을 키우기 위한 장치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흙수저 헌터들이나 할 일이고!
도현은 그렇게 기본을 닦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하늘을 나는 쪽이 좋았다.
“그럼 가 보자!”
도현은 말과 함께 [와이번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즈이이이이잉!
그러자 3미터 정도 높이의 허공에 현란한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마법진은 은청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선들이 얽혀서 그려지고 있었다.
파차창!
쿠오오오오오!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싶은 순간 그것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나더니 빛과 함께 와이번을 소환했다.
와이번은 가볍게 땅 위에 내려서더니 길게 포효를 터트렸다.
지나던 병사들이 깜짝 놀란 듯이 잠시 허둥거렸지만 곧 아군이라 판단했는지 소란이 사라졌다.
도현은 눈앞에 소환된 와이번을 쳐다봤다.
굵은 뒷다리로 서 있는 와이번은 앞다리 대신에 피막으로 이루어진 큰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마법진의 색과 같은 은청색의 와이번이었다.
- 로드, 라이트닝 와이번입니다.
에포르가 그 와이번에 대해서 아는지 도현에게 정보를 전해줬다.
- 비행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녀석입니다. 게다가 공중전에선 당할 놈이 없다는 맹수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전투는 못 하는 놈이야. 저기 날개 위쪽의 등에 안장 보이지? 3인용 안장. 저 놈은 딱 저 용도로만 쓰도록 되어 있는 녀석이야.”
도현은 소환한 와이번이 공중전에 뛰어난 종(種)이라는 말에 전투 불가에 대한 아쉬움이 치밀었지만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하늘을 날아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건 적어도 7구역 정도가 되기 전까진 두고두고 이득이 될 요소였다.
도현은 [산성병 소환]으로 병사 하나를 소환해서 에포르를 빙의시켰다.
그리고 그 머리에 <꿈꾸는 월광초>를 소환해서 함께 와이번의 안장에 올랐다.
“그럼 가자!”
도현이 고삐를 힘껏 내리치며 와이번을 이륙시켰다.
와이번은 거대한 날개를 몇 번 퍼득이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다가 곧바로 몸체를 수평으로 세워 비행을 시작했다.
시스템은 전투 명령서에 있는 지도의 이동 경로를 와이번이 인식하도록 하는 편의까지 제공해 주었다.
말이나 마차를 타고 움직일 때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던 시스템이라 도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도현의 승용 와이번이 힘차게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