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뉴어스에 들어온 헌터들(1)
13. 뉴어스에 들어온 헌터들(1)
“결국 들어가는구나.”
“그러네요.”
도현은 가족과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는 중이었다.
TV에서는 최초의 헌터가 그레이 포탈을 넘어가는 모습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중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포탈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가족들이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열을 하는 모습이 화면에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인류의 미래와 안전,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오늘 5천 명의 재능자들이 포탈을 넘어갑니다.”
“저들은 다시는 이곳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희생한 의인들입니다.”
“저 너머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는 저분들이 안전하게 포탈 너머에서 생존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익명의 소식통에 의하면 포탈 너머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오늘 포탈로 들어간 1기 재능자들은 포탈 너머에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며, 저 너머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악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후로 3개월 간격으로 총 12회, 6만 명의 재능자를 투입하기로 했으며······.”
“애초에 5만 명이었던 인원은 각국 정부의 조율을 거치는 동안 6만으로 늘어나, 그 때문에 이번 1차 투입도 계획보다 일주일 늦게 이루어지게······.”
딸깍!
“그것 참,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최성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TV를 껐다.
그는 오늘 출근도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집에 있었다.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듣자니 일부 국가에서는 강제로 사람들을 밀어 넣는 경우도 있다던데요.”
도현도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그보다는 나은 상황이긴 하지. 그래도 보상이라도 받고 가는 거니까.”
“5억이 크게 보면 크고, 작게 보면 작은 돈이지만 일단 그걸 받고 저기 들어가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니까요. 누가 강제한 것은 아니니 그래도 사회적 파장은 덜 한 편이죠.”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된 거냐? 뭔가 한다더니 영 소식이 없구나.”
최성수가 더는 포탈에 들어간 이들에 대해선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이 화제를 바꿨다.
도현은 최성수의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아직은 자세히 말씀 드릴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일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금속 합금에 대한 연구팀이 필요합니다.”
“음? 합금?”
“네, 신물질을 이용한 합금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십시오.”
“신물질?”
“그게 어디서 나올 지는 짐작하시겠지만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러니······.”
“알았다. 준비하마.”
도현이 뭐라 더 말을 하려는 순간 최성수가 그 말을 끊었다.
“아버지.”
“괜한 말을 꺼낸 모양이다. 앞으론 네가 먼저 이야기 할 때까지는 모른 척 하마. 대신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최대한 지원을 해 줄 테니까.”
최성수는 화제를 돌린다는 것이 괜히 아들의 신경을 쓰이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여원 그룹과도 선을 좀 대어 놓았으면 합니다.”
“여원과?”
“네.”
“그건 좀 설명이 필요하구나.”
“여원이 왕따를 당하는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이번 포탈에 대한 사태에서 지분 확보를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원 그룹이 재계와 정계에서 소외를 당한다?”
“다른 문제에선 이전과 같겠지만 포탈에 대한 문제에서는 그렇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과거에도 여원은 뉴어스 혜택을 보지 못하고 밀려난 그룹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파트너로 삼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보일 패가 필요할 텐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준비를 하겠습니다. 적어도 다른 쪽보다는 몇 걸음 앞선 걸로요.”
“음, 그렇다면 믿어 보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도현아!”
“네?”
“조심해라.”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
* * *
도현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마친 후, 곧바로 방으로 올라와 뉴어스로 넘어왔다.
미리 1구역의 포탈 홀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지구로 넘어갔던 도현이었다.
그래서 뉴어스로 오자마자 멀리 포탈 홀에서 나오는 헌터 1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포탈 홀의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피다가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미리 짜 놓았던 조직표 대로 무리를 지었다.
100명씩 묶은 중대, 그 중대 다섯이 모인 대대와 대대 다섯이 모인 연대.
그런 연대가 둘.
이것에 도현이 알고 있던 조직 구성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기에도 모여 있는 모습이 어설펐다.
군대처럼 오와 열을 맞춘 것도 아니고, 꼭 숫자에 맞게 나뉜 것도 아니었다.
“역시 오자마자 문제가 생기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포탈을 넘을 때까지는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통제에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별 위험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통제가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밖에.
게다가.
웅성웅성웅성!
우와아아아아!
멀리서 헌터들 사이에 소란이 일어났다.
그 소란의 중심에는 손에서 불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헌터 능력을 발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포탈을 넘은 5천 명은 모두가 헌터 능력을 가지게 된다.
시스템이 판단한 재능에 따라서 가지게 되는 능력은 무척 다양하다.
다양하지만, 포탈을 넘은 이들 중에서 능력을 얻지 못하는 이는 없다.
헌터들 사이의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우와아아아!
콰과과광!
또 다시 함성소리와 함께 뭔가가 터지는 폭발음이 들렸다.
한쪽에서 화염이 터지는 모습이 도현의 눈에 잡혔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질서가 만들어지겠지. 이전에도 그랬다니까.”
누가 우두머리가 될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틀이 잡힐 것이다.
그 때까지는 도현도 저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 * *
여진만은 1437번을 받고 포탈을 넘어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포탈을 넘었다.
포탈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포탈을 넘어 엄청난 넓이의 홀에 도착했을 때에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나온 포탈을 돌아보며 다시는 지구로 돌아가지 못할 거란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런데 포탈을 넘어 얼마 되지 않아서 여진만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몸에 힘이 가득한 느낌.
게다가 뭔가 몸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 힘을 끌어냈다.
불쑥!
동시에 그의 손이 이상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침 그 순간, 익명의 제보자가 보냈던 서류를 떠올렸다.
여진만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끌어 올렸던 힘을 억눌렀다.
그러자 손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런 여진만의 변화를 알아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여진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갔으니 당장 위험한 일은 없을 거란 판단에 따른 행동이었다.
밖에선 벌써부터 목소리를 높이며 사람들을 모으는 이들이 있었다.
포탈에 들어오기 전에 짠 부대 구성을 하려는 것이다.
1437번인 여진만은 열다섯 번째 중대로 세 번째 대대의 5중대에 속했다.
하지만 여진만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상황을 지켜봤다.
소대장과 중대장, 대대장 보직을 받고 들어온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뭐하는 겁니까? 어서 모이십시오.”
“언제 어디서 위협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모두 약속대로 행동하십시오.”
“1연대 2대대는 이쪽으로 옵니다.”
“1연대 3대대는 이곳입니다.”
“어서 모이세요.”
하지만 간부들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굼떴다.
“지랄, 내가 제대한지가 언젠데?”
“지금 예비역 무시하냐?”
“군대는 무슨, 여기까지 와서 군바리 할 생각 없는데?”
“다시 돌아가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니들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포탈 넘으면서 내 할 일은 다 한 거니까 귀찮게 하지 마라.”
두드러지게 비협조적인 이들은 그렇게 불만스런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런데 그런 중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야야야, 이거 봐. 이거 보이냐?”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손에는 배구공 크기의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우아아아아! 뭐야? 손에서 불이 나와?”
“저거 뭐야?”
“미친, 실화냐? 저게? 뭐 여기가 게임 속이야?”
사람들이 모여들며 떠들었다.
“미치겠네? 응? 야! 나도 뭔가 될 거 같거든?”
그런데 또 다른 사람 하나가 옆사람을 건드리며 말했다.
“뭐?”
“속에서 뭔가 불끈불끈 하지 않냐? 응? 몸도 훨씬 건강해 진 거 같고.”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우아아아아 씨이발! 기분 죽이네!”
그러다가 고함을 질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생겼다.
“뭐야? 저 사람? 헐크야?”
“모, 몸이 커지고 있어!”
“미쳤어! 미쳤다고! 여기 뭐야? 이거 도대체 뭐냐고!”
여진만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다.
몇몇 사람들이 초인적인 능력을 보인 것이다.
여진만은 자신의 신체 변화도 그런 능력 중에 하나임을 알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시합이라도 하듯이 서로의 능력을 뽐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진만처럼 냉정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 * *
“얘들 다 모았어?”
자옥이 동생을 보며 물었다.
“거의.”
“거의가 뭐야? 빠진 것들이 있어?”
“그게, 민자하고 성희 얘들이······.”
“하! 이것들이 정말! 정신을 못 차리고!”
“믿을 게 생겼다는 거지. 봤잖아 언니도.”
자옥의 분노에 동생이라 불린 희애가 그럴 법도 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그래 그 알량한 재주 하나 생겼다고 지 멋대로 한다고?”
자옥이 그런 희애의 말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따지듯 물었다.
“솔직히 그 정도면······.”
“야, 이 년아. 우리들이 여기 들어온 이유를 몰라? 응? 우리가 다 합쳐서 2백이야. 그리고 시커먼 놈들이 4천8백이고.”
자옥이 한심하다는 듯이 희애를 보며 말했다.
“그거야 알지.”
“그럼, 그 시커먼 것들이 2백 뿐인 우릴 뭐로 볼 거 같은데? 응?”
자옥이 희애를 보며 물었다.
이번 5천 명의 1기 헌터 중에서 여자는 고작 2백이었다.
더 많은 숫자를 받고 싶었지만 지원자가 적었고, 여자 보다는 남자가 전투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숫자가 줄었다.
그런데 막상 뽑아 놓은 200명의 여자들은 대부분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자옥은 예비 소집이니 뭐니 하면서 모였을 때부터 그런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위기감을 느꼈다.
5억에 눈이 뒤집혀서 포탈을 넘기는 하지만, 그 후에 남자들의 욕구를 풀어주는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는 상황이 여차하면 그런 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탈 너머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지리란 보장은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될 수 있으면 200명의 여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세력화 하려고 했다.
포탈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음알음으로 서로 연락하며 그 기반을 다졌다.
그런데 포탈을 넘고 힘을 각성한 몇몇이 계획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휴유, 좋아. 그래서 남은 아이들은?”
“응, 그래도 뭔가 위기감은 있는지 160명 정도 남았어.”
“좋아. 이제 더는 떨어져 나가지 않게 잘 챙겨. 우린 우리끼리 뭉쳐야 해. 안 그럼 진짜 더러운 꼴을 볼지도 몰라.”
“알아 언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밖으로 나간 아이들도 우리하고 완전히 척을 진 건 아니니까 서로 도울 수 있어.”
“그래, 그 정도라도 해 두면 좋겠지. 그나저나 벌써 사흘인데 언제쯤 안정이 될까 모르겠네.”
“포탈에서 지원 물자가 넘어오긴 하는데 한계가 있는 모양이야.”
“그건 어떻게 알았데?”
“어떻게 알긴, 쪽지가 같이 넘어와서 안 거지. 사람 말고는 하루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는 모양이야.”
“잘못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단 소리네?”
“그래서 지금 사냥팀을 만든다, 밭을 일군다 하면서 말들이 많아.”
“좋아. 그럼 우리 몫으로 땅을 확보해야겠네? 집도 지어야 하고, 농사도 지으려면.”
“언니, 그게 무슨?!”
“이 년아. 그럼 저것들한테 공짜로 얻어먹을래? 그래서 그 뒤엔 뭐로 값을 치르려고?”
자옥이 희애의 반발에 차가운 표정을 하며 물었다.
희애는 자옥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줄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 년아! 정신 바짝 차려! 알았어?”
자옥이 그런 희애를 보며 단단히 벼르듯이 일렀다.
그렇게 미지의 세상에서 또 하루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