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19화 (119/227)

#119. 큐어올 (5)

우리는 차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일스는 자꾸 뒤쪽을 흘끔거리는 거로 보아 아직 추격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어느 대기업 회장이 설립했다 했나.”

“음, 아? 그렇소. 설립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아 추측일 뿐이지만.”

실로 거대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도서관이었다.

설립자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거대 기업 라티움의 수장, 라이티노.

나를 따라오며 나일스가 말했다.

“이쪽에선 나름 전설적인 일화요. 다들 일하기 바빠 방문객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요즘 시대에 책 읽을 여유가 되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소?”

라이티노에게 딱히 기업 단지의 직원들에게 인문학적 지식을 배양하겠다는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말년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속칭 ‘돈 지랄’ 행위 중 하나였을 뿐.

따분한 얼굴을 한 경비를 지나쳐 들어가자 방대한 서고가 나타났다.

중앙에는 위쪽 다른 서가로 향할 수 있는 나선 계단이 솟아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달리 보이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가야 하오. 지식을 원한다면 직접 몸을 써야 한다는 것이 이 도서관의 일종의 좌우명이오.”

“…도서관에 사람이 적은 이유가 뭔지 알 것 같군.”

숭고한 이념보다는 단순히 이용객을 고생시키려는 악취미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자료의 위치는 도서관의 최상층인 15층의 D번 열람실.

우리는 계단을 올랐다.

10층에 도달했을 때 나일스가 난간을 붙잡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잠시, 잠시만 쉬었다 가오.”

이 높이까지 쉼 없이 올라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계단의 경사가 가파른 점과 그가 평소 운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한다면 마법을 걸어 주지. 발걸음이 가벼워질 거다.”

“고맙소. 하지만 내 힘으로, 내 발로 직접 오르고 싶소.”

맨 처음 봤을 때의 미적지근함은 사라지고, 그의 태도는 점차 적극성을 띠어 가고 있었다.

난간 아래 끝 1층은 조용했다.

아직 이곳까진 적이 쫓아오지 않아 상황에 여유가 있었다.

“그쪽 뜻을 존중해 주지.”

그의 숨이 찰 때마다 멈췄다가 다시 계단을 오르기를 반복했고, 몇 분 정도가 지나 최상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중앙에 테이블이 여럿 놓인 넓은 공간. 이용객은 한 명도 없어 고요했다.

“저쪽이오! 저쪽!”

벽 쪽에 난 여러 문 중 하나를 가리키며, 흠뻑 젖은 몸으로 나일스가 외쳤다.

문을 열고 서가로 진입했다.

밝은 조명과 수십 개의 책장.

그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나일스를 보며 나는 문을 닫았다.

탁.

안쪽에서는 곧 책을 빼는 소리와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바깥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이쪽으로 올라왔다고 했지.

─흩어져. 서고 모두를 뒤져.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자료를 찾아온 나일스의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나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뜻을 전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문 양옆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드륵-

“……!”

안으로 진입한 적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고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였다.

퉁!

두꺼운 책이 적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눈동자 초점이 점차 흐려지며 적은 바닥에 쓰러졌다.

드륵.

나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문을 닫았다.

손에 생성해 두었던 작은 전류를 소멸시킨 후, 책을 휘두른 상대에게 말했다.

“제법이군, 나일스.”

나일스는 책을 들고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행동에 놀란 눈치이나, 어떤 희열감이 엿보였다.

“주, 죽었소?”

“안심해라.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자료는 정확한가?”

“마, 맞소. 정확하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더군.”

“그러면 바로 출발하지.”

“아니, 바깥에 적이 깔려 있으니 숨어 있다가 나가는 것이….”

─이쪽이다! 이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다!

“…….”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같군.”

“어, 어떻게 해야. 저, 적이 오고 있소!”

나는 나일스의 팔을 잡고 서가 끝에 나 있는 창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자, 잠시만! 어쩔 생각이오?”

창문 앞에 도착했을 때쯤, 서고의 문이 열리며 적이 외쳤다.

“저기다! 저쪽이다!”

“죽일 각오로 붙잡아! 놓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무기를 꼬나 쥔 적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어, 어떻게 하느냔 말이오!”

“우리는 갈 길을 가면 된다.”

탁.

나는 창문을 열고, 마법으로 근력을 강화했다.

“무슨─!”

“자료를 놓치지 않게 꼭 붙들고 있도록.”

나일스가 대응할 틈도 없이, 그의 몸을 붙잡아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뒤따라 몸을 날렸다.

“아아아아악─!”

나일스는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겁에 질렸는지 눈을 질끈 감았으나, 지시대로 자료는 꼭 붙들고 있었다.

시선을 뒤로 돌리자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적의 모습이 보였다.

우웅.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켜 몸을 감쌌다.

지면과 채 1미터도 남지 않았던 순간 우리의 몸은 두둥실 떠올라 허공에 멈췄다.

탁.

나는 지면에 발을 디디며 말했다.

“가지. 발표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

나일스가 질끈 감았던 눈을 뜨더니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확인하고는 더 없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 이게 대체….”

그는 허공에서 몸을 허우적거리며 자세를 잡더니 가까스로 지면에 발을 디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내 뒤를 따랐다.

* * *

펠릭스는 손목을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했다.

시곗줄은 수수한 디자인이나, 프레임과 시곗바늘은 고가의 귀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치는 부리고 싶으나, 대외적으론 검소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기에 내린 절충안이라 할 수 있었다.

‘발표회 시작까지 10분도 남지 않았군.’

펠릭스는 미소를 지었다.

발표회는 벨포트가 진행할 테니 자신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발표 중간에 단 위로 올라가 기자와 업계 관련인, 그리고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얼굴을 비추면 될 뿐이다.

‘누군가 나일스를 차에 태워 달아났다고 했지.’

20여 분 전 들어왔던 보고.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나,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니만큼 실력은 만만치 않다. 분명 붙잡을 것이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면 자료를 찾아 발표회를 망치려 들 수도 있겠지.’

그것도 상관없었다.

사옥 전체에는 슈프림 시큐리티의 경비가 쫙 깔려 있어, 녀석이 온다 해도 단 한 층도 오르지 못할 것이었다.

이 구역의 신문사들 역시 모두 매수해 놓았으니 제보를 하러 간다면 오히려 제 발로 입안으로 걸어들어와 주는 꼴이었다.

‘나일스. 나는 네 머리 꼭대기에 있지. 처음부터 말을 잘 들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호의호식할 수 있었을 것을.’

마병 환자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일 수는 없다는 같잖은 양심.

자신도 젊을 때는 나일스와 비슷한 성격이었지만, 나이를 먹으며 깨달았다.

그런 부류의 감정들은, 인생을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옆에 있는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대표님. 이제 슬슬 올라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그때였다.

두 명의 남자가 사옥의 입구로 들어왔고, 펠릭스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걸음을 순간 멈췄다.

그리고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나일스?”

“오, 오랜만입니다. 소장님.”

한 명은 나일스였다.

옆에 있는 남자는, 나일스를 데리고 달아났다던 인물로 추정되었다.

무의식중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일스의 손에 들린 자료를 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어딘가로 빼돌렸다 싶었지. 집이야 수십 번도 더 뒤져보았으니 아닐 테고, 어디에 숨겨 두었었나? 이리 내게. 자네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야.”

나일스가 우물쭈물하자 펠릭스는 ‘어서!’하고 크게 소리쳤다.

“자, 자료를….”

나일스는 말을 더듬었다.

자료를 찾아 소장을 윽박지르겠다 수백 번도 더 상상을 해 왔지만,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상하 관계는 몸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나일스의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때, 누군가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세게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

예의 무심하기 짝이 없는 눈빛.

하지만 나일스는 그 안에서 왜인지 모를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이 남자가 뒤를 봐 줄 거란 안도감, 그리고 확신.

약간의 용기를 얻은 나일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외쳤다.

“소장! 늦지 않았소! 지금이라도 발표회를 중단하고 사람들에게 사실을 밝히시오!”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말했다.

“사실이라니, 무슨 사실 말인가?”

“약이 가짜라는 사실 말이오! 지금 세상을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치고 있다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나일스, 약은 틀림 없는 진짜이네. 마병으로 고통받는 자가 사라진 세상을 만들 열쇠이지. 오랜 시간 폐인처럼 생활하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나일스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료를 앞으로 펼쳐 보이며 외쳤다.

“당신이 확인 도장까지 찍은 연구 자료요! 내가 위로 올라가 발표회장에서 이 자료를 공개하면 당신은 끝이오!”

“나일스. 마병이 사라진 세상이 오는 것이 그렇게 싫었던가? 문서를 위조해 올 정도로?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언제나 인정받는 건 아니라지만, 안타깝군.”

“끝까지 발뺌을…!”

“옛 친분을 생각해 좋게 넘어가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이 자들을 제압해주시오.”

펠릭스의 말에 주위에 몰려든 슈프림 시큐리티의 경비들이 나일스와 옆의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나일스가 움찔 놀라는 모습을 보고 펠릭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단 위험한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몸수색을…. 아, 오셨습니까?”

그때 복도 뒤쪽에서 회색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허리엔 검이 매여 있었다.

슈프림 시큐리티에서 꽤 직급이 높은, 밀시안이라는 인물이었다.

대표인 에반보다는 못하나 마나유저 중에서도 최상에 속하는 실력자라 들었기에 든든한 마음이 컸다.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어 제압하려던 참입니다.”

“…….”

밀시안은 말없이 나일스와 그 옆의 남자 쪽을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 입구가 다시 한번 열리며 용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안쪽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군.’

펠릭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일스와 정체불명의 남자는 양쪽에 둘러싸인 형국으로, 이제 뒤쪽으로도 달아날 수 없게 되었다.

“순순히 자료를 내놓게. 괜히 저항하려 했다가 어디 한군데 총이나 칼을 맞아도 나는 책임질 수 없네.”

나일스와 남자에게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밀시안을 보며, 펠릭스는 나일스와 남자가 벌벌 떨며 무릎을 꿇는 모습을 상상했다.

탁.

하지만 밀시안이 둘 앞에 도착해 취한 행동은,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반 님.”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표하는 밀시안을 보며, 그리고 그가 언급한 이름을 듣고서, 펠릭스가 눈을 부릅떴다.

이어서 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다행히 발표회 시간에 늦지는 않았군.”

밀시안의 인사를 받은 남자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떼자, 그곳엔 펠릭스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 나타났다.

“쓰레기는 치워 버리고 어서 올라가지.”

그가 손짓하자 1층에 존재하는 총구의 방향이 일제히 돌려졌다.

펠릭스와, 그 옆에 붙어 있는 몇 명의 개인 호위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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