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94화 (94/227)

#094. 수사관 (2)

“오랜만이군. 자비르 경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청장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손을 내려도 좋다는 청장의 고갯짓을 보고 다시 몸을 굽혀 정보국장을 부축해 일으켰다.

“국장, 자네는 신입 때부터 실수가 멈추지 않는군. 나라의 녹을 받아먹은 게 벌써 수십 년인데 이제는 좀 제대로 할 때가 되었지 않았나?”

“죄, 죄송합니다. 누락한 부분은 바로 찾아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30분 주겠네.”

정보국장은 비서실 밖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도, 도와줘서 고맙네, 경위.”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우웅.

청장이 손을 뻗자 바닥에 꽂혀 있던 레이피어가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

제르비아는 그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수백 명으로 이루어진 거대조직 하나를 단신으로 궤멸시켰다는 말이 정말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지도 몰랐다.

그는 긴 천으로 레이피어의 검신을 닦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전번에 받은 보고에 따르면 아직 휴가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서류는 올리지 않았지만 오늘 부로 복귀 할 생각입니다. 47번 구역의 수사와 관련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잠시 침묵 속에 시선이 오갔다.

“알겠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두 사람은 집무실로 들어가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끼익.

곧 비서관이 문을 닫고 실내엔 두 사람의 숨소리 말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말해 보게.”

“47번 구역으로 특무대 전 인원의 출동 명령을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내가 그런 지시를 내렸지.”

“카인이 나타났다고요. 아직 소문의 확인 단계입니다. 규정상 투입 가능한 대는 최대 둘입니다.”

“정보국의 요원들이 이미 현장에 나가 있네. 정황적 심증은 있는데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상황이지. 그래서 특무대를 보내는 것이네.”

“하지만 규정상….”

“규정. 세상 질서를 유지하는 게 규정이라지만 도리어 걸림돌이 되는 때도 있는 법이네.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 말이지. 뽑아서 한쪽에 치워 둘 필요가 있어.”

“…….”

“범죄자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불만인가?”

“일의 효율성이라면 차라리 인원을 분배해 다른 임무에 투입을….”

그녀는 말을 하다가 끊었다.

청장의 말이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니었으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의 선택을 돌릴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궁금증은 남았다.

분명 바마 때에는 모든 절차를 규정대로 밟았다고 들었다.

입수된 정보의 검증 단계를 철저히 거쳤기에 실제 특무대의 출동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청장이 물었다.

“규정을 들먹이니 묻지, 자비르 경위. 자네는 켄트락 교도소에서 잠시 근무한 적이 있지.”

“…….”

“카인은 당시 폭발에 말려 사망했다고 보고되었네. 하지만 정보원들의 첩보에 따르면 카인이 다시 나타난 것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지.”

청장의 매서운 눈빛이 쏘아져왔다.

“당시 자네는 규정대로 보고를 올렸나? 일부러 누락한 정보 없이?”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묻는 것이다.

카인이 살아서 탈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느냐고.

‘변명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해.’

간단한 일이다.

당시 현장에 나타난 상황만으론 그리 판단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수도에서 온 조사관도 그렇게 판단했었노라고 말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올곧은 성정과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할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카인의 탈옥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달간 단독으로 행동했던 것도 카인을 쫓던 것이겠군.”

“…맞습니다.”

“2년 감봉이네. 규정대로라면 수개월 근신 처분을 내려야 하나 당장 전력이 필요한 상황이니 그건 눈감아주겠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규정대로라면 근신 처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런다면 카인을 쫓을 수 없게 된다.

짧은 순간 수없이 갈등했지만 결국 입밖에 나온 말은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스스로 규정을 운운했으면서, 유리한 상황에는 묵인하는 자신에게 모순을 느꼈다.

가슴이 꾹 메는 기분이었지만 참아야 했다.

“0번 대는 현재 모든 대원이 활동 가능한 상태인 유일한 대지. 지휘관이 복귀했으니 이제 완전체가 되었군. 바로 수사에 착수하게. 곧 편성될 대들이 후속 지원을 나갈 걸세.”

“알겠습니다. 카인을 꼭 잡아 오겠습니다.”

“말했지 않나. 규정은 때론 한쪽으로 치워둬야 할 때가 있다고. 꼭 생포하지 않아도 좋네.”

청장은 손끝으로 레이피어의 검신을 매만지며 말했다.

“여의치 않다면 죽이게.”

* * *

[부활]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을 때 1회에 한하여 되살아납니다. 부활에는 3일의 시간이 소요되며 부활 시 기존의 모든 기억을 상실합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1]

[남은 특성 포인트: 2]

[해당 특성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나는 눈앞의 홀로그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회로레벨이 3에 도달하거나.

과업이 일정 수준 진척되거나.

두 가지 경우에 한해 특성 포인트가 늘어나고, 새로운 특성을 개화할 수 있다.

본래 작품의 진짜 주인공인 ‘라크센’에게만 허용된 특전이다.

작품 속의 다른 인물들은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니까.

나는 습득할 수 있는 특성의 목록을 살폈다.

[원소 친화성]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배울 수 있는 마법의 속성 제한이 사라집니다.

[마나 감응]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마나를 느끼고 다루는 능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내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특성들이 먼저 보였다.

특성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특성별로 보유한 이가 적은 ‘고유 특성’과 비교적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일반 특성’으로.

그 효과는 단연 전자가 뛰어났으며 목록에 있는 것은 모두 고유 특성이었다.

[진실의 눈]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상대 말의 진실과 거짓 여부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 2]

[다중 무기]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어떤 무기를 다루든 자신이 다루는 무기의 숙련도 중 가장 높은 수치가 적용됩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1]

[원소 친화성(火)]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화염속성 마법의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1]

빠르게 훑으며 목록을 내렸다.

그러다 손가락을 멈칫했다.

“…….”

[자각]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동기화 퍼센트가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이 수치는 50퍼센트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2]

작품의 주인공 ‘라크센’이 보유하고 있기도 한 특성.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이 게임 캐릭터에 빙의하고, 수도에서 마법사로서 성장한다.」

「과업을 따라 ‘벽’을 무너트리고, 대륙의 가난을 몰아낸 뒤 그 끝에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소설 속 인물이라곤 하나 그 역시 빙의자이니.’

그의 동기화는 ‘자각’의 활성화를 기점으로 100퍼센트에서 시작해 서서히 떨어지는 형태를 거친다.

다만 자각이 활성화가 되는 건 조금 더 나중의 일.

지금 시점에선 빙의자로서의 기억이 깨어나지 않았다.

동기화가 60퍼센트 대에서 시작해 빙의자로서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말이다.

나는 내 동기화율을 확인했다.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94.2%]

위험 수준은 진작 넘어섰다.

아직까지 ‘카인’에게 완전히 먹히지 않고 있는 이유.

나는 모든 정신 간섭에 면역되는 「불굴의 의지」특성 덕으로 보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100퍼센트가 되기까지 방치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지금 「자각」을 습득하면 위험요소 하나를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 특성 포인트: 2]

「자각」을 습득하려면 현재 가진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야 했다.

특성 포인트는 쉽게 얻을 수 없다.

과업의 진행.

혹은 회로레벨의 상승.

과업의 진행은 한동안 멈춰 있을 것이다.

다음 회로레벨까지는 12,500의 마나가 필요하다.

한동안은 새로운 특성 포인트를 얻을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스크롤을 위로 올려 다른 특성을 찾았다.

[부활]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을 때 1회에 한하여 되살아납니다. 부활에는 3일의 시간이 소요되며 부활 시 기존의 모든 기억을 상실합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1]

작품 후반부, 세계관 내 흑막이 보유하고 있는 특성.

‘그’는 주인공에게 목숨을 잃으나 특성으로 다시 한 번 되살아난다.

기억을 상실하나 그 폭력성과 무력은 그대로 남아 주인공 일행을 고전하게 만든다.

내 행동 원칙은 간단하다.

모든 상황, 모든 변수를 계산해 최대의 효율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나는 「자각」대신 「부활」의 습득을 고려하고 있었다.

필요 포인트가 적을뿐더러, ‘부활’은 다른 어떤 특성에도 비견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특성이다.

말 그대로 죽음의 위기를 한 번 넘길 수 있게 해 주니 말이다.

물론 걸림돌은 존재한다.

기억 상실.

‘카인’으로서든.

‘빙의자’로서든.

다만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기억력]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습니다.

한번 기억된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현재 내가 보유한 특성.

‘부활’은 기억을 상실시킨다.

‘기억력’은 기억을 보존한다.

명백히 서로가 상충하는 문구들.

‘부활 특성이 발동해도 기억은 날아가지 않는다.’

이 세계에 비어있는 설정은 ‘나라면 그렇게 짰으리라’하는 방향으로 채워져 있다.

설정의 상충 시 발생하는 일 역시, 내 예측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소 일부 기억은 보존될 것이다.

최소치의 기억만 있다면 미리 안배해 둘 장치들로 기억을 되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화 퍼센트가 한 번 리셋 될 것이다.’

동기화는 그 무엇보다 기억과 관련성이 높다.

‘그리고 만약 남는 포인트를 투자한다면.’

[내부 집중]

분류: 고유 - 패시브

효과: 마나의 정제가 회로 내에서 가능해지며 정제 속도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필요 특성 포인트: 1]

정제가 회로 내에서부터 가능하다면, 높은 위력의 마법을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제 속도가 한 단계 상승하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47번 구역의 전(前) 지휘관 역할을 했던 루이스가 들어왔다.

“에반님, 용병들 소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알겠다. 내려가지.”

47번 구역 외곽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용병들을 만났던 그 장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특성의 사용은 일단 보류하는 것으로.’

동기화가 100퍼센트에 달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게 비록 썩 여유롭진 않을지라도.

* * *

용병들은 강당에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는 분위기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우리도 다른 구역처럼 해산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작 그러지 않았을까.”

계약이 끝나고도 잔류하기를 원하는 인원들이었다.

숫자는 약 200.

보수 정산이 끝나고 떠난 이가 적지 않음에도, 거의 첫 인원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숫자가 남았다.

“우리가 블루서펜트를 이겼다는 사실이 아직도 안 믿겨.”

“이런 저런 전장에서 뒹굴어봤지만 그런 식으로 제대로 된 군대처럼 싸워본 건 처음이었지.”

“죽은 놈들도 모두 그럴만한 상황에서 죽었잖아. 최소한 개죽음은 아니야. 덕분에 우리가 살았던 거고.”

전쟁의 승리가 누구 덕이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휘관, 에반.

그의 정체에 관한 말은 많았다.

블루서펜트의 전 간부.

마탑에서 파문당한 흑마법사.

황실에서 근무했던 퇴역 군인.

다만 소문만 무성할 뿐, 확실하게 검증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확실한 게 있다면 단 하나였다.

지휘관은 자신들이 오랜 용병 생활 마주쳤던 그 누구보다 뛰어나며 결 자체가 다른 인간이라는 것.

전쟁이 종식되던 밤.

수차례 번개가 내리치며 세상이 점멸하던 순간은 모두가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텅. 텅. 텅.

그때 단 위에 발소리가 울렸다.

그 주인을 확인한 용병들이 순식간에 웅성거림을 멈췄다.

텅. 텅.

발소리가 멈추고, 남자는 용병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 충분히 휴식을 취했을 거라 생각한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남자의 말을 경청했다.

첫 만남 때와 같은 장소, 같은 구도이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중요한 공지사항이 있어 한 자리에 모았다. 47번 구역에 속한 용병, 즉, 너희들의 처분에 관한 이야기다.”

곳곳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적이 흐르고 용병들이 초조함을 느낄 때쯤 마침내 남자의 입이 열렸다.

“다른 구역과 마찬가지로 47번 구역의 인원들 역시 해체한다.”

용병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어라 말을 뱉으려 했으나, 다음 순간 허공에 그려진 빛의 표식을 보고 넋을 잃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새로운 조직을 창설한다. 너희가 그 조직의 첫 일원이다.”

강렬한 보랏빛 마나가 허공에 빛나고 있었다.

총과 방패가 겹쳐진 모양의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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