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93화 (93/227)

#093. 수사관 (1)

“47번 구역에 출현한 인물에 관한 보고입니다.”

“계속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헤롤드는 순간 흠칫했다.

‘대장님의 눈빛이 돌아왔다.’

최근 소문이 돌고 있었다.

차기 국장으로까지 거론되던 이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그 위명 높던 특무대 0번 대도 곧 해체되어 다른 대에 흡수되고 말 것이라고.

대원들 모두 소문을 부정하나 불안감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장은 최근 한 달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무기력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대장의 눈빛은 현장을 누비던 그때의 그것과 같이 돌아와 있었다.

“정보과에 따르면 47번 구역에서 두 범죄조직 간의 대규모 전쟁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41번 구역에 바마가 나타났었죠. 블루서펜트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41번 구역에 나타났던 바마.

여러 ‘대’가 참여했던 당시 작전에 0번대는 대원들‘만’ 참여했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먼저 할게요. 대장 없이 작전에 참여하게 하다니 직위를 박탈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특무대는 늘 인력 부족 상태다.

대원은 반드시 자신이 속한 대의 대장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원칙을, 종종 어겨야만 할 때가 있을 정도로.

인력 부족의 이유는 크게 둘이었다.

‘벽 안쪽’의 치안 유지에 인원 대다수가 투입되어 있기에.

지원자가 적지 않음에도 상부는 인력 보충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기에.

“아닙니다. 저희는 대장님이 다시 기운을 차리실 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마는 결국 놓쳤다고 들었어요.”

헤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힘든 속도였습니다. 시가지에선 잡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예전에 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맞았습니다. 특히 손톱에 조금이라도 스친 이들은 온몸이 마비가 되어 아직도 운신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녀석은 경찰을 농락하듯 도시 곳곳에 출몰하다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이쪽에 수많은 부상자만을 남긴 채로.

참여했던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당장 현장의 복귀가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우리 대원 중에도 부상자가 있나요?”

“아뇨. 아홉 명 전원 무사합니다. 작전에 참여했던 10개 대 중 부상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은 0번 대가 유일합니다.”

“고마워요. 다치지 않아 줘서. 현장에서 그 밖의 특이 사항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헤롤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실 거슬렸던 것은 있다.

「그렇게 앞뒤 모르고 달려가기만 하다가 언제 크게 한 번 고꾸라질 줄 알았지.」

「출신 성분 자체가 좀 그렇긴 하잖아. 죽은 제 어미가 벽 바깥에서 온 인간이니까. 더러운 피가 섞여 있겠지.」

임시 작전처에서 엿들었던 다른 대 대장들의 발언.

0번 대가 현장에서 그들의 대리 지휘를 따르지 않고 단독으로 움직인 이유였다.

‘질투에 눈먼 자들. 대장님은 너희들 따위와는 격이 다르다. 언젠가 청장 자리에 오르실 분이니.’

0번 대 대원은 모두 그녀를 충심으로 따랐다.

처음엔 핏줄로 무시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그녀의 실력과 신념에 감화된 이들이었다.

“47번 구역에서 일어난 전쟁은 말씀하신 대로 블루서펜트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간부들이 모습을 보인 건가요? 아니면 일반 조직원들만 목격되었나요?”

“저희가 쫓던 파르테르가 나타났습니다. 상대는 퍼틸랜드라는 신생조직이었다고 합니다.”

파르테르.

그 이름이 나온 순간 헤롤드는 상사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친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제르비아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관련된 그 인물이 카인이기를 무의식중에 바라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나에 대한 추적을 멈추고 블루서펜트에 관한 모든 수사에서 손을 떼라.」

납골당에서 녀석이 뱉었던 그 말은 더 이상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전쟁은 퍼틸랜드 측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제대로 된 확인이 필요하지만, 구역 경찰서장의 보고에 따르면 파르테르는 전쟁 중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퍼틸랜드 측에 카인의 모습이 보였다는 소문이….”

그 순간, 외투 밑자락을 찢어 손을 감고 있던 그녀가 동작을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죠?”

“카인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소문뿐이라 직접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현재 작전과에서 수사를 나갈 인원을 편성하고 있습니다.”

“가죠. 가면서 나머지 보고를 듣겠어요.”

제르비아는 성당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채 다 감기지 못한 천 조각이 허공에 나풀거렸다.

끼익-!

거칠게 문이 열리고 수도의 거리가 나타났다.

잘 닦인 넓은 거리.

여유로운 표정으로 거리를 거니는 행인들.

부드럽게 움직이는 마차, 혹은 고가의 차량.

곳곳에 심어진 가로수와 조화를 이루어 솟은 고급 저택들.

그리고 어디선가 울려오는 잔잔한 음악 소리.

탁. 탁. 탁.

그녀의 급박한 발걸음이 그 모든 풍경을 빠르게 거슬러 올랐다.

“인원 편성이라고요.”

“예. 사실상 현재 활동이 가능한 특무대 전 인원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47번 구역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청장님의 특별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의문의 빛이 어렸다.

아버지, 아니 청장은 이제까지 레드스컬이나 블루서펜트 같은 거대조직의 수사에 별달리 관여를 해 오지 않았다.

그저 모든 수사를 치안국장에 위임한 채 자신은 보고만 받을 뿐이었다.

다른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집에도 반년에 한 번 올까 할 정도로 바쁜 사람이니.

‘그런데 갑자기 왜 치안국에 직접 지시를….’

이해할 순 없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카인.’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어떻게 다시 뒤를 쫓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이건 하늘이 준 기회라 볼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추적의 실마리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녀석을 잡는 것은 반드시 자신이어야 했다.

“작전과에 가서 이야기하죠. 현 인원 편성이 어떻게 되는지.”

“알겠습니다.”

탁. 탁. 탁.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건물 사이를 돌아 움직였다.

“경위님, 본부는 저쪽입니다.”

“…….”

그녀는 몸을 돌렸다.

다시, 탁. 탁. 탁.

곧 화강암으로 된 높은 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입구에 선 제복 차림의 경찰 둘이 그녀를 발견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올렸다.

“내리세요.”

입구를 지나쳐 빠르게 안으로 향했다.

넓은 부지, 중앙에 있는 분수를 중심으로 교통국이나 과학국 같은 여러 건물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걸음이 향한 곳은 가장 규모가 큰 건물, 경찰청 본부였다.

삑.

─ 치안국 수사과 특무대 0번 대, 자비르 경위.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자동으로 열린 문을 지나 안으로 진입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몰렸다.

「일을 그만둔 게 아니었어?」

「교도소에 한 번 부임 다녀온 뒤엔 한동안 모습이 뜸했었잖아.」

「들리는 말론 최근에 나갔던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던데.」

그녀는 그런 시선들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일과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났다.

계단을 오르고 건물 구석으로 향할수록 인적이 뜸해졌다.

똑똑.

‘작전과’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안에서 응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칸막이로 나뉜 책상들.

눈앞에 띄워진 복잡한 홀로그램을 보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

일순 시선이 쏠렸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따로 떨어진 큰 책상 앞에 가 말했다.

“47번 구역으로 전 인원의 출동명령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책상에 앉은 남자가 서류 작업을 하다 말고 고개를 슬쩍 들었다.

「치안국 제1 작전과 미하일 경정」

그 앞, 명패가 빛났다.

“아직 휴가 중이지 않나? 경찰이 되고 한 번도 쉰 적 없던 사람이 두 달 휴가를 올렸단 보고를 받고 놀랐었는데.”

“남은 기간은 반납하겠습니다. 그보다 앞선 질문에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일병이 도진 거지. 얼마 안 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제런, 내가 이겼다!”

─젠장.

거리가 꽤 떨어진 책상에서 고액권 동전이 날아왔다.

착.

미하일은 그것을 잡아 셔츠 포켓에 넣었다.

아마 제르비아의 복귀 시기를 두고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방금 경위가 말한 그대로야. 전 인원 출동. 부상자나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인 이들은 제외하고 싹 다.”

“총 몇입니까?”

“현재 확정된 건 세 개 대야. 41번 구역에서 부상자가 너무 많이 나왔었거든. 여러 대의 인원을 섞어 새로운 임시 대를 편성하고 있어. 0번 대는 부상자가 없어 현 인원 모두 그대로 들어갈 수 있겠지만.”

“단순 소문 확인 단계에서는 최대 두 개의 대까지만 운용이 가능한 게 원칙입니다.”

“나도 알아. 근데 청장님 특별 지시가 떨어졌다고.”

원칙과 상황의 특수성을 두고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녀는 우려하고 있었다.

만일 카인이 다른 이의 손에 의해 체포당하거나 숨이 끊긴다면.

‘…그럴 수는 없어. 절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두 가지 경우 어느 쪽이든, 그 일을 행하는 것은 자신이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청장님에게 직접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녀가 몸을 돌렸다.

미하일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꼈다.

「면담이 가능하겠지. 청장이 자신의 아버지이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독 면담 신청은 ‘딸’의 특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무대’ 대장의 특권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경찰 생활을 하며 한 번도 아버지의 뒷배를 이용한 적 없음을.

머뭇거리다 한마디 던졌다.

“힘내라.”

“…감사합니다.”

끼익- 탁.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헤롤드는 제르비아가 나오자 자세를 바로잡았다.

“대원들에게 전파하세요. 활동 준비를 해 놓으라고.”

“예, 알겠습니다.”

헤롤드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곧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제르비아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5F

6F

7F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벽 너머, 수도의 찬란한 풍경이 멀리 보여 왔다.

건물 사이에 뾰족하게 솟은 마탑.

어마어마한 규모의 황실 궁전.

1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라티움의 연구소 단지.

효율성보단 외적 아름다움을 중시한 화려한 건물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보호하듯 에워싼 거대한 ‘벽.’

고대 악마의 침공에 맞설 때 세워졌던 벽이라고 했다.

가까이 가면 당시의 전투 현장이 조각 형식의 벽화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1F

12F

13F

띵.

풍경을 바라보던 사이 최상층에 도착했다.

넓게 펼쳐진 복도엔 단 하나의 문이 존재했다.

‘하아.’

그 앞에 서 노크를 하기 전 심호흡했다.

지금부터는 그녀로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접점이 부족한 아버지라는 점을 떠나, 청장은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전설을 써 내려갔던 인물이었으니까.

똑똑.

─들어오세요.

고급스러운 방 안.

오른편 벽에 위치한 책상에 은발의 여성이 앉아 사무를 보고 있었다. 청장의 비서관이었다.

입구와 마주한 벽에는 다음 방으로 통하는 문이 나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치안국 수사과 특무대의 자비르 경위입니다. 청장님께 면담을 청하기 위해 왔습니다.”

여자가 생긋 웃었다.

“청장님은 지금 정보국장님과 대화 중이세요. 잠깐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한쪽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무수히 많은 상패와 훈장, 그리고 온갖 종류의 무구가 눈에 띄었다.

‘대부분이 황실에서 수여받은 것들.’

여기에 있는 것들은 대다수가 장식용이긴 하나, 청장은 실제로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떠한 장비든, 일평생 그것을 다뤄 온 달인보다 높은 숙련도를 보인다고.

그리고 저택에서 청장이 수련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 있는 그녀는 그 이야기가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쾅!

안쪽 집무실로 통하는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날아와 바닥을 굴렀다.

47번 구역에 수사를 나가는 것은 0번 대 하나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던 때였다.

“국장님! 괜찮으십니까?”

“콜록! 콜록!”

그녀는 쓰러진 정보국장에게 다가가 몸을 부축하려 했다.

팅!

그때 레이피어 한 자루가 날아와 국장의 얼굴 바로 옆에 꽂혔다.

바닥에 꽂힌 얇은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다시 한 남자가, 집무실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정보국장. 서류 하나가 누락되었어. 내 업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을 텐데?”

국장에게 머물던 남자의 시선이 곧 제르비아에게 향했다.

꿀꺽.

그녀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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