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투신 (4)
탕!
첫 번째 총알이 파르테르의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 나는 그의 마나를 흡수했다.
[회로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회로 레벨: 3]
[마나 517 / 2,521]
[마나의 품질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나의 회복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마법사용에 요구되는 마나 양이 감소합니다.]
[새로운 특성창이 해금됩니다.]
[새로운 특성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상승치는 약 500.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꾸준히 흡수했던 것에 더해 마나는 단번에 2,500을 넘어섰다.
온몸에 충만감이 번지며 촉매의 후유증으로 인한 피로가 일부 경감되었다.
‘…특성 포인트라고.’
생각지 못한 메시지에 순간 당황했으나 곧 평정을 찾았다.
다만 지금 그것을 자세히 살필 여력까지는 없었다.
가용한 마나는 500.
객관적으로 많은 양은 아니나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같은 마나 양이라도 회로레벨 2와 3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니까.
탕!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순간 두 번째 총알이 발사되었다.
제이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묶고 있던 머리가 풀리며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냉기가 흘러나왔다.
쩍!
총알은 그녀의 눈앞에서 얼어붙었다.
탕!
숨을 멈추고 사격을 이어 갔다.
그녀는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몇 발짝 뒤의 위치에 다시 나타났다.
근거리 내 공간으로 자신의 좌표를 바꾸는 「점멸」.
그녀가 들고 있던 통신 기기는 바닥에 떨어져 전원이 나가 있었다.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탕!
그녀가 나타나는 자리마다 사격을 계속했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곧 주위에 무수히 많은 마나의 변곡점이 나타났다.
쩡!
사방으로 가시를 삐죽 뻗은 얼음결정이 피어나 내게 쇄도해 왔다.
원소의 융합 속도와 농도를 보고 단계를 추측할 수 있었다.
정제 1단계.
그녀 수준의 마법사라면 즉발과 다름없었다.
탕!
앞서 날아오는 일부는 피스톨로 쏘아 깨트리고, 다른 일부는 궤도의 마나를 비틀어 튕겨 냈다.
발걸음을 가속해 뒤이어 날아오는 나머지를 피해 냈다.
내가 있던 자리에 얼음 결정이 꽂히며 터져 나갔고 그 여파로 주위에 있던 지폐가 흩날렸다.
속성마법 중 기초에 속하는 마법, 그것도 정제 1단계에 불과하지만 수(水)계와 빙(氷)계 원소에 특화된 그녀가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방아쇠를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회피를 계속하며 마법을 사용했다.
파직.
그녀 주위, 막 피어나던 얼음결정이 힘없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부서졌다.
“…말도 안 돼!”
“마법은 일단 사용한다고 끝이 아니다. 원소가 온전히 결합을 마칠 때까지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배우지 못했나?”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간섭을 …!”
간섭.
원소가 결합을 마쳐 마법이 되기까지의 순간, 원소의 흐름을 비틀어 마법의 발동 자체를 무위로 돌리는 일.
본래라면 이 정도 빠르기의 시전 속도를 가진 마법에 간섭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녀도 그것을 알기에, 또 경험상 그래왔을 것이기에 마법을 사용하고 난 뒤 원소의 움직임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간섭’당하는 건 오랜만이겠군.”
“그 입 닥쳐요.”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피어나는 얼음결정의 수가 줄며 내가 간섭하던 원소에서 반발력이 느껴졌다.
그녀가 마법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확실히 원소를 운용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내가 우위다. 주도권은 내게 있다.’
이렇게 동시에 다수의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비유하자면 왼손으로는 글씨를 쓰고 오른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일.
그것보다 십 수 배 어려운 난이도의 일이었다.
파직.
여전히, 얼음결정 중 삼 분의 일 정도는 완성되지 못한 채 허공에서 사그라졌다.
“감히 카인 님에게 살수를!”
“일단 아군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챙!
천장에 난 구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검과 메이스가 제이나가 펼친 방호 마법에 튕겨 나왔다.
“제압해라. 여의치 않다면 죽여도 좋다.”
“알겠습니다.”
“…노력해 볼게요.”
두 사람은 자세를 바로잡고 곧장 자리를 박찼다.
계속 마법으로 자리를 바꾸는 제이나를 쫓아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나는 제이나를 향해 있던 총구를 내렸다.
자칫하면 밀시안이나 에스텔이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대신 세 사람 주위에서 감지되는 마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
회색 마나와 금색 마나.
각기 고유의 색을 지닌 마나가 밀시안과 에스텔의 몸을 덮고 있었다.
그 두께는 손에 쥔 무기에서 최대에 달해, 덮는 것을 넘어 일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제이나는 마나가 몸을 덮고 있지 않았다.
대신 신체 부위와 일정 간격을 둔 위치에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의 마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회로에 연결돼 있는가.
혹은 방출돼 나왔는가.
마법사와 그렇지 않은 일반 마나유저 사이의 마나운용방식 차이였다.
체내에서 원소의 결합이 완료되는 강화계열의 마법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마법은 발현점이 ‘체외’로 설정된다.
필연적으로 외부의 간섭에 대해 열린 가능성을 가지게 되며, 그것은 그녀가 연달아 사용하고 있는 「점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은빛 마나가 일정 간격을 두고 그녀의 몸을 감싼 순간, 나는 정신을 집중해 결합되고 있는 원소를 뒤흔들었다.
“……!”
그녀의 치켜뜬 눈이 나를 향했다.
어느새 접근한 검과 메이스가 떨어져 방호 마법을 내리쳤다.
끼기긱!
‘역시 단번에 깨트리기엔 두 사람 모두 너무 지쳐 있나.’
검과 메이스가 방호를 내리누르며 스파크를 튀겼다.
방호에 옅은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깨트리기엔 아직 한참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우웅.
「점멸」을 이루는 원소는 격렬하게 요동쳤다.
두 마법사 사이 힘 싸움에 끼어.
지진에 흔들리는 탁자 위의 그릇처럼.
‘…거리가 먼 것이 아쉽군.’
원소의 통제는 거리가 멀수록 극단적으로 어려워진다.
마법사들이 괜히 공격마법을 먼저 근처에 생성하고, 그 후에 쏘아 보내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원소의 위치는 제이나 바로 ‘옆’이었다.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오직 나만을 노리고 날아드는 얼음결정들 때문에 접근이 여의치 않았다.
‘마법의 시전을 조금 늦추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팟.
제이나의 몸이 사라졌다가 다시 근처에 나타났다.
그에 반응한 밀시안와 에스텔이 곧장 방향을 틀어 몸을 날렸다.
끼긱!
제이나의 방호에 충격이 조금씩 누적되어갔다.
몇 번 더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점멸」을 사용할 때마다 그녀는 내게 방해를 받아 주춤거렸다.
생각을 바꾸었는지 이동을 멈추고 방호에 마나를 쏟았다.
동시에 얼음결정의 생성 역시 멈췄다.
끼기긱!
나는 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세 사람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 방호 위에 피스톨을 겨눴다.
“저에 대한 공격은 보스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란 걸 알고 있겠죠. 이 사람들을 당장 물러요. 후회하기 싫으면.”
그녀의 얼굴에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짜증과 불쾌감만이 잔뜩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조직은 이미 나를 버렸다. 나는 더 이상 조직의 일원이 아니니, 그자 역시 더 이상 내 보스라 할 수 없다.”
“카인, 그쪽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당신은 보스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전혀 알고 있지 못해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보스 역시 내가 설정한 인물이었기에.
본인 스스로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사람이 바로 나였다.
“웃네요. 제 말을 전혀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군요.”
“이쪽의 전력조차 계산하지 않고 너를 혼자 보낸 인간이다. 생각이 깊지 않다는 뜻이니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겠지.”
“말해 두지만 호위 없이 온 건 제 독단적인 판단이에요. 방심한 건 인정할게요. 마법 수준이 높은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보스의 눈 밖에 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에요. 혼자 힘이 강하다고 해서는 절대―.”
“난 내가 혼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옛날 부하도 한 명 있네요. 하지만 실력자들 몇 있다고 보스에게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이 아니다.”
제이나의 눈동자에 순간 의아함이 떠올랐다.
방호와 검, 메이스 사이의 마찰음이 불협화음처럼 들려왔다.
“난 조직을 만들 생각이다.”
“…미쳤네요. 제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따로 조직을 만들겠다니. 보스가 당신을 더더욱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일이지.”
나는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마법이 각인된 총알이죠. 제법 신기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제 방호를 뚫지 못해요.”
“시험해 보면 되겠군. 몇 발이나 버틸 수 있는지 보지.”
“오늘 내린 선택, 후회할 거예요.”
“후회하지 않는다.”
끼릭.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파직.
제이나가 찬 목걸이의 보석이 갈라지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음에 봐요.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다음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냉기가 쏘아져 나와 지하 공간 전체를 덮쳤다.
* * *
“에, 에, 에취!”
에스텔이 기침을 했다.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싼 채 몸을 덜덜 떨었다.
지하는 벽이고 천장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었다.
제이나의 목걸이엔 빙결 계열의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단순한 탈출용이었던 듯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펼친 방호로 큰 타격은 없이 넘길 수 있었다.
다닥, 다닥.
에스텔이 이를 부딪쳤다.
“…….”
나는 아공간에서 두꺼운 코트를 꺼내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얼어 있는 지폐 더미 하나를 녹여 불을 피웠다.
그녀는 ‘아’하고 작게 소리를 냈다가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벽난로 앞의 고양이처럼 불 앞에 다가와 몸을 녹였다.
시선을 밀시안에게 돌렸다.
춥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이 그의 현재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적당한 외투를 꺼내 그에게도 던져주었다.
“…이 정도 추위도 견디지 못하다니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에스텔과 마찬가지로 불가에 다가와 앉았다.
타닥.
두 사람은 텅 빈 눈동자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지치고, 피로했다.
긴 전쟁 동안 온몸을 채우고 있던 긴장감이 일시에 빠져나간 탓이었다.
에스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스라고 했죠. 아까 그 여자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나요?”
“그래. 전에 말했던 블루서펜트 간부 중 하나다. 보스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여자지.”
“마법사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선전 포고를 했으니 이제는 진짜, 진짜 전쟁을 치르게 되겠네요.”
“전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나도 준비는 되어 있어요. 그냥 어떤 싸움이 될지 궁금해서 그런 거죠.”
전쟁 중 내 정체를 흘린 순간부터 보스가 접선을 취해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온갖 감시가 달라붙고 행동에 제약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보스 밑으로 들어가 기회의 때를 노린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선전 포고.
단지 그 시기가 조금 이를 뿐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큰 틀에서는 계획에 하등 지장이 없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딸려 올라왔다.
“앞으로 더 힘든 순간이 많이 찾아올 거다. 그래도 나를 믿어 줬으면 좋겠다.”
“언제는 내가 안 믿었다는 것처럼 얘기해요, 서운하게.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는걸. 죽은 사람처럼 살던 때보다는 차라리 지금이 훨씬 나아요.”
“저 역시 카인 님을 믿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두 사람 모두 고맙다.”
에스텔이 눈을 크게 떴다.
“놀랐다는 반응이군.”
“아뇨. 그냥 뭐랄까, 당신한테 들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이라….”
“카인 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입니다.”
“저도… 그렇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말을 직접 들을 줄은 몰라서.”
방심하고 있다가 펀치를 맞은 사람처럼 그녀는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뒤쪽에 있는 파르테르의 시체를 보며 물었다.
온몸이 꽁꽁 얼어 얼음조각상 같은 모습이었다.
“그, 확실히 죽은 거죠? 그 사람은?”
“총을 주지. 불안하면 확인사살을 해도 좋다.”
“에에, 됐어요.”
그녀는 파르테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앞에 다가가 눈을 감고 양손을 모았다.
짧은 기도가 끝나고 그녀가 말했다.
“묻어 주기라도 할까요? 여기에 그대로 두기에도 좀….”
“내가 하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마나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나는 영면에 든 그를 「염동」으로 들어 올려 위층으로 향했다.
경기장 바닥에 세운 뒤, 그 앞에 섰다.
“…….”
“…….”
뒤따라온 밀시안과 에스텔이 숨을 죽이고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웅.
화(火)계 원소를 끌어올리자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얼음조각상의 가슴 부근에 그대로 가져다 대었다.
치익.
엄청난 고열에 얼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번개에 직격당한 그의 몸은 이미 극도의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한 방울 한 방울 스며들었다.
수없이 많은 투사가 흘린 피와.
그들의 무기로 인한 무수히 많은 긁히고 부서진 자국과.
관객들의 야유와 함성이 녹아 있는.
그가 태어나 죽기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경기장 바닥에.
그는 자신이 죽는다면 경기장에서 싸우다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건 일종의 존중의 표현이었다.
행동이나 사상의 악독함은 변호할 수 없으나 그의 삶이 취한 치열함만은 거짓이 아니기에.
오래지 않아 얼음조각은 모두 녹아 바닥에 흡수되었다.
“가지.”
나는 몸을 띄워 구멍을 오르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파르테르가 운영하던 사업체의 본격적인 점령도.
앞으로 취해올 보스의 행보에 대한 분석과 계획 수립도.
이야기 속 진짜 주인공의 행보와 이 세계의 운명에 대한 고민도.
모두 내일의, 아니 지금 당장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끼익-
유리창과 손잡이가 다 부서져 기능을 못 하는 입구의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바로 앞에는 명령에 따라 전장을 이탈했던 용병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경외심이 가득했다.
건물 꼭대기에 번개가 내리치는 광경을 모두가 보았을 것이다.
감이 좋은 이들은 파악했을 것이다.
그 번개가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파르테르는 죽었다.”
나는 그가 끼고 있던 반지를 용병들 앞에 던졌다.
까맣게 타버렸지만, 형체는 남아 있어 식별이 가능했다.
“우리의 승리다.”
순간 분위기가 술렁였다.
여러 감정이 용병들의 얼굴을 스쳤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누군가를 시작으로 용병들은 고개를 푹 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일종의 경의의 표현임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도열해 있는 용병들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쏴아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아직 진정한 폭풍은 시작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