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동행 (1)
텅!
가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카인은 바다에 빠졌다.
절벽의 높이가 까마득해, 마법으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충격이 상당했다.
텅!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삐이이이이─!
희미한 경적, 그리고 폭발로 인한 매캐한 연기를 흩뿌리며 열차는 시야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가장 가까운 해안가는 저기 한 곳뿐인가.’
한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거센 파도에 밀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시선을 흘긋 돌리자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제르비아가 보였다.
먼저 도착한 것은 카인이었다.
가장 먼저 과업의 달성 여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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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업 - 증오의 불길]
목표: 배신자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으십시오. (0/3)명
획득스킬: 과감성, 불굴의 의지. 냉철함.
보상: 현실 세계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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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오르지 않았다.
라이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폭발을 피했거나, 혹은 폭발을 견뎌냈거나.’
마음 같아선 열차를 쫓아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으나 지금 당장으로선 불가능했다.
‘그리고 백진우가 이 세계에 떨어졌다면, 라이카에게 빙의했을 가능성은….’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론 알 수 없었다.
라이카는 완벽한 라이카였다.
적어도 겉모습과 행동만으론.
‘에스텔과 같은 「진실의 눈」특성이 있었다면 유도 신문을 통해 그 자리에서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어찌되었든 크게 괘념치는 않았다.
백진우의 빙의는 아직 가설에 불과했으니까.
그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라이카의 숨을 끊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탄약은 물을 먹고…. 총기는 지금 이 상태론 쓸 수 없겠군.’
스릉.
“움직이지 마라.”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 목에 검이 드리워졌다.
카인은 고개를 돌렸다.
제르비아였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와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지금부터 너의 신변은 내가 구속한다. 지시에 없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바로 베겠다.”
그녀의 얼굴은 앞선 전투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달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듯 보였다.
카인은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말했다.
“죽여라.”
“…뭐?”
“죽이라고 했다. 질문이 뭐든 난 대답해 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녀의 얼굴이 벙 쪘다.
카인이 계속해 말을 이었다.
마치 그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리라 확신이라도 하듯 거침없는 말투였다.
“죽일 생각이 없다면 치워라. 네 목의 것과 같은 상처를 내게 남기고 싶은 게 아니라면.”
상처.
순간 제르비아는 목 밑이 화끈거려 옴을 느꼈다.
아득.
이를 악물었다.
이마를 찌푸리고는, 검을 쥔 반대 편 손으로 옷깃을 올려 목을 가렸다.
‘카인을 죽인다면 지금 죽여야 한다.’
카인은 분명 마법을 익혔다.
교도소를 빠져나간 방법.
열차에서 보여 준 몸놀림.
강력한 위력의 총탄들.
그 모두 마법 외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전, 체포당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인은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오히려, 조금의 마나도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이제껏 숨겼거나.
혹은 교도소 내에서 익혔거나.
확률은 후자가 높았다.
녀석에겐 굳이 힘을 숨겨 와야 했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수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법을 어떻게 익혔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녀석은 늘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으니까.
중요한 건, 그렇지 않아도 괴물이던 녀석에게 날개가 달렸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죽여야 해. 성장 할 틈을 주면 감당 못할 괴물이 될 거야.’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닻처럼 내려 앉아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을 막고 있었다.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경찰이 된 첫해 카인에게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역으로 자신의 목에 단검이 겨눠져 있었다.
목의 검상도 그때 생겨난 것이었다.
자신이 뱉었던 말도 생생히 기억이 났다.
「죽여라.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을 박멸하고 가지 못하는 게 이가 갈릴 뿐이다.」
녀석은 빤히 이쪽을 바라보다 단검을 거뒀다.
그리고는 건조한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흥미가 식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를 살렸지.’
열차 위에서 벌어졌던 전투.
순간 귓가에 울린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폭발에 휘말렸을 것이다.
대체 왜?
단순한 동정심?
어떤 계획에 이용하기 위해?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꾹 메어오는 걸 느끼며 그녀는 가까스로 물음을 뱉어냈다.
“먼저 묻지. 왜 나를 살렸지? 그대로 두었으면 폭발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었을 텐데. 너와 나는 분명 적이다.”
“…….”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로 제르비아를 응시할 뿐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그녀의 감정엔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대답해! 내가 묻고 있다! 4년 전 그때도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제르비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무슨!”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아도, 속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모래와 얼음으로 만들어진 듯 건조하고도 차갑기만 한 얼굴.
늘 그랬다.
녀석을 상대할 때면 늘 평정을 잃고, 거대한 미로 속에 갇힌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의도가 있어서 나를 살렸다는 말인가?”
“앞서 말했다. 질문이 뭐든 원하는 만큼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고.”
검 끝이 점점 목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카인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위협은 먹히지 않아.’
제르비아는 생각했다.
무슨 수를 쓰든, 녀석에게서 더 이상의 대답은 나오지 않으리라고.
‘여기서 녀석의 목을 벤다면.’
정말로 쉬운 일이었다.
녀석이 아무리 마법사라도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순 없다.
검에 마나를 실어 앞으로 밀어내기만 한다면, 녀석의 숨을 끊을 수 있다.
죽여야 한다.
녀석은 범죄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아직도 네 오빠를 죽인 이가 나라고 생각하고 있나.”
정신이 퍼뜩 들었다.
“뭐?”
“가족의 복수를 위해 대륙 끝 교도소에 지원하다니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 여전하군.”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이유가 전부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예 없다고도 부정할 수 없다.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반박하듯 크게 소리쳤다.
“착각하지 마라. 내가 너를 쫓는 건 네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독한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카인은 대답이 없었다.
언제든 자신을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듯.
검 끝이 떨려왔다.
그 떨림은 카인의 목이 아닌 제르비아의 손에서 전달되어져 오고 있었다.
짧은 시간 수없이 갈등했다.
그 끝에 결국, 검을 거뒀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겐 알아내야 할 것이 많았다.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는지.
또 오빠가 죽은 그 날, 다리를 무너트린 흑막은 누구였는지.
녀석이 죽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토해낸 다음이어야 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었다.
쐐액-
대신 허공을 내리그었다.
검기가 쏘아져 나가 뒤편의 나무 하나를 무너트렸다.
일종의 경고였다. 허튼수작을 부렸다간 같은 꼴이 될 거란 경고.
“알아 둬라. 내가 지금 널 죽이지 않는 건, 너를 재판부에 넘겨 탈옥에 대한 죄까지 추가적으로 묻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품에서 수갑을 꺼내 카인의 양손에 채웠다.
마탑에서 제작된 물건으로 마나 운용을 제한하는 구속 도구였다.
카인은 수갑을 보고 픽 웃고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양발과 오른 손목의 힘줄이 끊겼다. 마나를 아예 쓰지 못하게 한다면, 네가 나를 업고 이동해야 할 텐데.”
“…….”
제르비아는 수갑에 달린 작은 버튼을 조작해 최소한의 마나는 운용 가능하도록 제한을 낮추었다.
“뭐, 걸을 수는 있겠군.”
카인은 수갑을 양쪽으로 팽 당겨 보고는 주변에서 가지를 모아왔다.
그리고 작은 불씨를 일으켜 불을 붙였다.
화륵.
순간 일렁인 마나는 흑적색.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데다 아직까진 색의 비율이 미묘해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일단 옷부터 말리지. 마을에 닿으려면 한참 걸어야 할 테니.”
제르비아는 카인을 쏘아보다 불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최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마을에 도착하는 즉시 너는 경찰에 호송될 거다.”
검은 여전히 빼어 놓은 채였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으며, 언제든 공격이 가능함을 알리는 표시였다.
‘여긴 어디쯤일까.’
짙푸른 바다와 모래뿐인 해변.
절벽 아래 끝없이 뻗은 황야.
그녀는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카인이 말했다.
“112번 구역 외곽에서 시작하는 황야 끝이다. 가장 가까운 구역까진 직선거리로 103킬로미터. 열차의 방향과 속도를 계산하면 그렇다.”
그녀는 카인을 흘겨보았다.
그 빠른 계산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메마른 바람이 불고 모래가 대지를 뒹굴었다.
“계속 그렇게 뒤에서 감시하듯 걸을 생각인가?”
“위험인물을 호송할 때는 후방에 자리 잡는 게 원칙이다.”
몇 걸음 떨어진, 언제든 달려들어 나를 제압할 수 있는 위치였다.
위협을 가장한 목소리나 실제 내겐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녀의 마음은 여러 면에서 결핍되어 있다.
아버지의 무관심.
주변의 기대.
시기와 질투.
믿었던 학교 동기들의 배신.
유일한 안식처이던 오빠의 죽음.
종종 맞닥트리는 현장에서의 극단적인 상황, 선을 넘어선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
그 결핍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혈육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카인’을 쫓으며 채워졌다.
수년의 시간 동안.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적어도 대상을 쫓는 순간에는 마주하기 싫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테니.’
범죄를 박멸하겠다는 그녀의 꿈이 거짓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카인에 한해 결정적인 약점을 지녔다.
집착의 대상.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자기 삶의 동력이 되어온 상대.
그것이 일순간 뽑혀져 나갔을 때 가슴에 생겨날 구멍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할 기회가 없는 건 아니나 그건 더 나중의 이야기이지.’
“넌 마지막 순간 열차에서 라이카를 공격했다. 계획된 움직임인가? 내분? 네가 체포되었을 때 퍼졌던 소문은 잘못되었다 보는 게 맞겠지.”
그녀는 끝없이 유도 신문을 던졌다.
무의식중에라도 내가 대답하길 바라며, 자신의 추리를 완성시키려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으로서 그녀의 답답함을 가중시켰다.
잘그락.
마탑에서 제작된 수갑.
내가 짠 중요 설정 중 하나였기에 작동 원리는 꿰뚫고 있었다.
미량의 마나를 주입해 복잡하게 얽힌 내부 센서를 정해진 순서로 건드리면 해제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 당장 그러지 않는 것은, 제르비아에게서 달아날 틈을 엿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103킬로미터.
순수 걸음만으론 20시간을 꼬박 걸어야 주파할 수 있는 거리.
비교적 안전하던 118번 구역 외곽과 달리 이곳은 위험한 생물들이 출몰한다.
어느 정도 안전지대에 진입한 뒤 제르비아를 따돌릴 생각이었다.
‘안전지대부터는 사냥개들이 활동을 시작할 테고 바이크를 탈취할 수도 있겠지.’
나는 흘끗 뒤를 보며 말했다.
“수갑을 조금 약하게 해 줄 생각은 없나? 이곳에 나타나는 녀석들은 혼자 상대하기 까다로울 텐데 말이야.”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몬스터 상대법 따윈 모두 꿰고 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
실제로 수도의 기사 학교에선 야생 몬스터의 상대법을 배운다.
수도에서 근무한다면 평생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말이다.
그리고 제르비아 정도의 무력이라면 상대법을 크게 알고 있지 않더라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를 제압할 수 있다.
‘일부 괴물들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특정 장소에서만 서식하는 희귀한 몬스터들.
제압을 위해서는 습성과 서식환경에 대한 완벽한 이해, 그리고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단순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불가능하니, 제 아무리 그녀라도 고전을 면치 못할 수 있었다.
휘오오-
외투로 몸을 가리고, 모래를 맞으며 계속 나아갔다.
중간중간 거대한 몸집의 사막 늑대나 전갈 따위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제르비아의 검격에 채 몇 초 되지 않아 무너져 내렸다.
중간중간 광부들이 쓰던 폐가가 나타났고, 난 모래로 덮인 바닥을 뒤져 숨겨진 보존식을 찾아냈다.
“광산이 고갈되어 떠날 때 광부들은 조난자들을 위해 이렇게 식량을 남겨두지.”
제르비아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내가 건넨 통조림을 받아 들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모래가 석양에 빛났다.
“……!”
그렇게 걸은 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구구구구-
발밑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열차와 같은 기세로, 이쪽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놈이다.’
한 놈이 아닌 듯 진동은 사방에서 느껴졌다.
제르비아 역시 진동을 감지한 듯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왼쪽. 아니, 오른쪽…!”
그녀가 검에 마나를 불어 넣은 채 대응 자세를 취했다. 정확한 방향은 잡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말로 전하면 늦는다.’
나는 몸을 날려 제르비아를 밀쳤다.
그와 동시, 등 뒤로 놈들의 긴 몸체가 사방에 모래를 흩뿌리며 솟구쳐 올랐다.
끼이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