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화. 열차 (3)
난전이 계속되고 사상자는 속출했다.
“모조리 죽여 주마! 벌레 같은 것들!”
이리저리 날뛰며 손톱을 휘두르는 라이카의 모습은 맹수 그 자체였다.
콰직!
창이 깨지고 테이블과 룸이 무너져갔다.
분명 약효가 돌아 마나 운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중간중간 움직임이 멈칫거릴 때가 있으니.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이 속도라면…. 상황이 종료되는 건 15분, 아니 20분 뒤쯤.’
제르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라이카가 방어를 도외시 한 공격 일색이라면, 제르비아는 모든 공격을 유려하게 흘려 내며 하나하나 적을 제압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칸을 벗어났다.
소란을 듣고 모두 대피했는지 승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피스톨을 꺼내 천장을 조준했다.
여러 상황을 가정해 같은 마법의 각인이라도 종류를 여럿 나눠 놓았다.
소모 마나를 낮춰 대량으로 제작한 견제용 탄.
그리고 치명타를 입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마나를 불어 넣은 탄.
지금 것은 그 중간이었다.
쾅!
폭발과 함께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 좌석을 디딤대 삼아 열차 위로 올라갔다.
철컹- 철컹-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에일 듯 스쳤다.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지났다.
떨어지면 어떤 꼴이 될지는 명확했다. 아무리 마법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할지라도.
다리에 힘을 주어 중심을 잡았다.
싸움이 짧아진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열차가 계속해 달리게 하는 것.
멈추는 순간 전투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범죄자들이 열차 밖으로 달아날 테니까.
열차는 달려야 했다.
적어도 경찰이 대기하고 있을, 다음 정차 역까지는.
전방을 주시했다.
멀리 열차 위를 달리고 있는 라이카의 부하 둘이 보였다.
따라잡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거리였다.
판단과 실행은 빨랐다.
나는 곧바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 조립했다.
철컹- 철컹-
열차가 쉼 없이 기우뚱거렸지만, 조립엔 거침이 없었다.
채 15초도 걸리지 않아 라이플이 완성되었다.
바닥에 엎드려 몸을 밀착시키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착탄. 조준.
그리고 발사.
탕!
마법으로 안력을 강화하고 몸의 흔들림을 최소한으로 했다.
탄은 정확히 표적에 꽂혀 폭발했다. 명중 당한 녀석은 몸에 불이 붙은 채 열차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동료를 잃은 녀석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갈팡질팡하다, 내가 다음 탄을 장전하는 몸짓을 하자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탕!
한 발.
탕!
그리고 다시 한 발.
확실히 녀석이 이쪽을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탄은 모두 빗나갔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녀석이 나이프를 휘둘러 왔다.
몸에 걸려 있는 강화 마법들의 출력을 최대치로 높였다.
쨍!
방어에 사용한 스나이퍼 라이플이 부서져 내렸다.
그대로 옆으로 던져 버리고, 맨손으로, 또 가방을 휘둘러 가며 녀석을 상대해 나갔다.
이런 근접전에선 어설프게 방호 마법을 쓰기보단 신체 강화에 마나를 투자하는 쪽이 옳았다.
‘두 놈 이상이 붙었으면 위험할 뻔했는데.’
공방은 호각을 이뤘다.
부족한 능력치의 차이를, 타고난 전투 감각만으로 커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이프가 옷깃을 찢으며 피가 튀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몇 번인가 연출되는 와중, 목에 붙어 있던 패드가 바람에 떨어져 나갔다.
마나를 아끼려 별다른 마법은 걸어놓지 않은 상태였기에, 푸른 뱀 문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녀석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나는 얼굴에 걸려 있던 변용 마법을 풀었다.
“…너는!”
순간 생겨난 빈틈.
나는 몸을 한 바퀴 돌려 녀석의 배를 뻥 차버렸다.
열차 밖으로 떨어진 녀석은 순식간에 풍경 밖으로 밀려 나갔다.
[회로 레벨: 1]
[마나: 291 / 372]
마나를 흡수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별수 없었다.
다시 얼굴을 바꾼 뒤, 몸을 돌려 식당 칸의 천장 위로 이동했다.
레드 스컬이 침입하며 생겨난 구멍이 곳곳에 있어 걸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난전이 따로 없군.’
여전히 공방은 치열했다.
라이카의 부하 쪽도, 레드 스컬 쪽도 시체가 늘어나 있었다.
“하찮은 버러지들!”
상황을 살피던 중 라이카가 무릎을 굽혔다.
찰나의 순간, 놈이 열차 위로 도약해 올랐고, 나는 다른 쪽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놈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아직은.’
탁-.
「부유」를 이용해 실내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쫓아! 숫자에선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오늘이야말로 사자의 목을 따는 거다!”
라이카와 교전 중이던 녀석들이 주변 사물을 디딤대 삼아 라이카를 쫓아 올랐다.
“여기다! 여기도 적이 있다!”
라이카의 부하들과 싸우던 몇몇이 방향을 틀어 내게 달려들었다. 목의 문신에 반응한 듯 보였다.
쾅! 콰광!
마탄을 흩뿌렸다. 폭발 위로 녀석들이 도약해 왔다.
온갖 날붙이들이 방호 위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귀찮게 되었군. …아니, 어쩌면 마나를 늘릴 수 있는 기회인가.’
식당 칸을 벗어났다.
녀석들이 따라붙었다.
통로. 객차. 통로. 다시 객차.
좁은 공간을 활용해 녀석들을 하나씩 제압해 나갔다.
내구도가 다한 총기는 버려 몸의 무게를 줄이고, 쓰러진 녀석들의 마나는 흡수했다.
후퇴를 위장하며 도착한 곳은 화물칸이었다. 화물 중엔 내 바이크도 있었다.
드드드-
시동을 걸고, 입구를 향해 바이크의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녀석들이 진입한 순간 스로틀을 당겼다.
부아앙-!
“어? 어? 뒤로! 뒤로!”
앞바퀴를 들어 올리고, 차체에 방호 마법을 덮어씌웠다.
녀석들이 급히 후퇴했지만 연결 통로가 좁아 벗어날 길은 없었다.
선택지는 둘이었다.
“씨발! 뛰어!”
통로의 창을 깨고 몸을 던지거나.
“끄아악!”
바이크에 짓이겨지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다.
통로. 객차. 통로. 다시 객차.
목적지는 식당 칸이었다.
지금쯤 어느 진영이든 체력이 소모되어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쾅!
문을 깨고 식당에 진입했다.
난전 중이던 모두의 시선이 순간 내게 꽂혔다.
식당 중앙에 도착해 스로틀을 완전히 우로 틀었다.
끼이익-!
바이크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나를 이용해 스로틀을 조종하고 몸체를 바이크에 고정했다.
한쪽 다리를 시트 위에 올려 사격 자세를 잡고, 서브머신건 두 정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실제로는 십여 초도 되지 않을 그 순간, 시간이 무한히 느리게 흐르는 듯 느껴졌다.
「근력 강화」
「방호」
「안력 강화」
「염동」
「신속성 강화」
5종의 마법을 동시에 전개하는 와중, 그 출력을 초 단위로 세밀히 조정해 나갔다.
거기에 탄의 발사 각도와 폭발 시점까지 통제하고 있었다.
머리에 빳빳이 피가 몰린다.
수식계산이 미친 듯 이루어진다.
회로를 터트릴 기세로 마나가 온몸을 타고 질주한다.
눈동자에 선 실핏줄이 터져 나간다.
쾅! 쾅! 쾅!
「화염 폭발」이 각인된 마탄이 터져 나간다. 비명이 터진다. 폭발에 휘말린 녀석들의 몸이 터져 나간다.
폭발을 뛰어넘어 달려드는 녀석들이 있지만, 뒤이은 사격에 산화 당하거나 바이크에 깔려 짓이겨질 뿐이다.
그 와중, 제르비아 쪽은 피해 발사했다.
‘아직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적어도 내가 완전한 복수를 이룰 때까지는.’
이 정도의 공격은 알아서 회피하거나 방어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공격 범위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가진 총알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었을 때쯤 바이크를 멈추었다.
한계를 넘어선 회로 운용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어질거렸다.
‘그래도 이 정도 결과라면.’
사방은 초토화되어 있었다.
대다수가 죽거나 전투 불능에 빠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우웅-
손바닥을 조용히 위로 뻗자 죽은 이들의 마나가 빨려 들어왔다.
위험신호를 울리던 회로가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회로 레벨: 1]
[마나: 212 / 485]
소모한 마나가 많아 가용 마나는 여전히 적었다.
하지만 최대치 상승은 100을 약간 웃돌았다. 가히 폭발적인 상승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너였군. 카인.”
제르비아가 다가와 어느 정도 거리에서 멈춰 섰다. 자신의 추리가 맞았다는 얼굴이었다.
여전히 변용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채지만, 문신의 위치로 충분히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것 외에도 그녀가 내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는 단서는 존재했다.
바이크를 운용하는 방법이나 사격 자세 같은 것들.
“전후 사정은 서에 가서 듣겠다. 일단 순순히 체포를….”
탕!
레드 스컬 하나가 제르비아 뒤에서 쓰러졌다.
클럽을 내려치려던 자세 그대로.
총알에 이마가 꿰뚫려.
“…교도소가 아니니 존대할 필요가 없겠지. 아직 전투 중이다, 제르비아.”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마 이름에 반응했을 터였다.
극소수만 알고 있는, 자신의 진짜 이름.
그녀는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다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살아남은 녀석들이 몸을 추스르고 다시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란을 듣고 다른 칸에서 넘어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대상이 있을 텐데.”
나는 천장을 향해 눈짓했다.
떨어지고, 부딪히고, 뭔가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라이카가 날뛰고 있다. 다른 칸의 승객들이 휘말릴 가능성이 있겠지. 가라. 여긴 내가 맡겠다.”
그녀가 입술을 꾹 다물고 나를 노려봤다.
티 내려 하지 않지만, 혼란스러움이 엿보였다.
머릿속으로 갖가지 추리와 추측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겠지만.’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다음 역에서 지원 병력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주변 사물을 딛고 순식간에 열차 위로 사라졌다.
“죽여! 동시에 달려들어!”
곧이어 레드 스컬 잔당들이 달려들었다.
라이카의 부하들은 모두 제압당했는지, 혹은 다른 칸에서 전투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부아앙-!
전투를 속행했다.
상대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적의 숫자가 많아, 몸과 정신의 피로가 순식간에 누적되어갔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을 때, 옷은 너덜너덜해지고 찢어진 부분 사이로는 잔 상처가 가득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쓰러져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이크를 한쪽에 기대어 놓고 열차 위로 올랐다.
“제법이야! 시체를 보고 토하던 애송이 경찰이 몇 년 사이 이렇게 성장하다니!”
“입 닥쳐! 범죄자와 말을 섞을 생각 따윈 없다!”
깡! 깡!
마나를 두른 손톱과 검이 부딪혔다.
멀지 않은 거리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라이카와 제르비아.
둘 다 레드 스컬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력을 다하고 있었으며,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태롭고도 치열한 상황이었다.
‘…움직임이 처음보다 빨라졌다. 약효가 벌써 다 한 건가.’
라이카. 예상보다도 더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분명 양측 다 빠르게 체력이 소모되고 있으니까.’
빈틈을 노린다면 지금보다 적기는 없었다.
라이플을 꺼내 탄창과 조준경을 장착했다. 곧바로 무릎을 굽혀 사격 자세를 취했다.
마법으로 강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킨 탄환이었다.
거기에 할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바람 칼날」을 각인시켜 넣었다.
어지간한 보호막쯤은 우습게 관통할 수 있을 터였다.
탕!
마탄이 공기를 찢으며 날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순간.
라이카가 이쪽으로 몸을 틀어 허공에 손톱을 그었다.
쐐액-!
직선 모양으로 응축된 3개의 마나 줄기가 마탄을 갈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쇄도했다.
“……!”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열차 밖으로 떨어진 순간, 위쪽의 돌출부를 잡아 가까스로 추락은 피할 수 있었다.
‘…반응 속도가 말도 안 되는군.’
돌출부에 매달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작해 둔 마탄 중 방금 것보다 일인 살상에 특화된 것은 없다.
체력이 더 빠지길 기다렸다간 제르비아가 위험해질 수 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는데.’
창문을 통해 식당 칸 2층에 진입했다.
주변을 살피던 때, 검은 서류 가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워렉과 라이카가 거래를 진행 중이던 그 방.’
순간 가능성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탕!
자물쇠를 제거한 뒤 가방을 열었다.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 팩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개중 하나를 열어 질감과 냄새를 살폈다.
‘붐케인.’
귀족층에서 유행하는 초고가의 환각 물질.
폭약 제조에 사용되는 것과 거의 유사한 성분이 사용되었지만, 단 한 끗의 배합 차이로 강력한 성능의 마약이 되었다.
다만 인화성과 폭발성이 강해 취급에 주의를 요하며, 사고 위험으로 전문가가 아니면 쉬이 제조할 엄두를 못 낸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비닐 팩도, 내화성을 갖춘 특수 팩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창밖을 내다보았다. 열차는 바다를 옆으로 한 채 절벽가 위를 달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도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류 가방을 닫은 뒤 다시 열차 위로 올랐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라이카와 제르비아, 두 사람 모두 몸 곳곳에 상처가 늘어나 있었다.
우웅-
마나를 그러모아 근력을 최대한으로 강화했다.
그리고 서류 가방을 있는 힘껏 던졌다. 두 사람의 머리 위, 허공을 향해서였다.
‘이게 네 마지막이길 빈다. 라이카.’
탕!
첫 탄환은 애꿎은 방향으로.
탕!
두 번째 탄환은 가방을 향해.
라이카가 첫 탄환을 향해 손톱을 휘두르고.
두 번째 탄환이 가방에 닿기 직전의 순간.
─뛰어라. 제르비아.
나는 마법을 이용해 제르비아의 귓가에 목소리를 속삭였다.
그리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콰광!
등 뒤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