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방장 카인 (2)
수감 건물 A동의 야간 당직, 페트로는 불 꺼진 복도를 걸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빳빳한 지폐 몇 장이 느껴졌다.
‘이것도 꽤 짭짤하단 말이지.’
죄수들한테 들어오는 꾸준한 부수입이었다.
페트로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복도 끝 방으로 향했다.
‘그 카인이라는 놈을 교육할 생각인 거 같던데. 지금쯤이면 끝났겠지.’
이고르는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신참은 어떻게든 무릎 꿇려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놓기로.
덕분에 A반은 다른 반에 비해 사건 사고가 적게 일어났고, 교도관들도 이고르의 편의를 조금씩은 더 봐 주는 편이었다.
끼익.
방 앞에 도착한 페트로는 감시구의 뚜껑을 위로 올리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침대에 잠들어 있는 어렴풋한 인영들이 보였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마무리가 되었나 보군.’
신참들은 헛된 생각을 많이 품기 마련이다.
반장이 되어 수감 생활을 편히 보내겠다거나.
어떻게든 기회를 노려 탈옥을 시도하겠다거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현실을 깨닫는다.
독기가 빠지고, 남은 형기만이라도 어떻게든 무사히 마치고자 아등바등하게 된다.
‘카인이라는 녀석도 밖에서는 한 가닥 날렸다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별수 없겠지. 보니까 팔다리도 제대로 못 쓰던데.’
페트로는 뚜껑을 내리고 몸을 돌려 당직실로 향했다.
자신이 순찰을 돌기 전, 이고르 앞에 무릎 꿇고 있었을 카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 * *
교도관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모두 원위치로.”
“예, 예!”
내 지시에 죄수들이 황급히 움직인다.
문틈에 젖은 수건을 밀어 넣고, 불을 켠다.
그 뒤 벽 쪽에 바짝 붙어 도열했다.
모두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눈높이가 안 맞는군.”
몸을 흠칫 떤 이고르가 내 앞으로 다가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뭉개진 손가락을 부여잡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교도관들 눈을 피해 의무실에 가라 해야겠군. 괜히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저,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왜 힘을 숨기고 계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드러내셨다면 제, 제가 알아서 모셨을 겁니다.”
위압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공손함만이 남아 있었다. 나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알 것 없다.”
내 냉랭한 목소리에 녀석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다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바, 방장 자리는 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바, 반장 자리도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내가 눈짓하자 몰핀은 잽싼 몸짓으로 이고르의 자리로 가 금고를 가져왔다.
“지, 지금 뭘 하시려는…….”
“열어라.”
“예?”
짝!
난 대답 대신 뺨을 날렸다.
바닥에 피가 튀고, 녀석의 거구가 옆으로 거세게 고꾸라졌다.
녀석의 머리에 발을 올려 그대로 꾹꾹 짓눌렀다.
“끅, 끄윽!”
“말을 두 번씩 하게 하지 마라.”
녀석이 바닥에 댄 손바닥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 했지만, 내가 마나를 쓰고 있었기에 벗어나지 못했다.
“몰핀, 이 녀석 베개 피를 뒤져봐라. 깊숙한 곳에 열쇠가 있을 거다.”
“끅, 그, 그걸 어떻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평소 행동거지나 습관을 고려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니까.
“차, 찾았습니다.”
“가져와서 금고를 열어라.”
“아, 안 돼! 안 됩니다! 그건 제 돈─!”
버둥거림이 거세지고, 발에도 더 힘을 준다.
탈출하기 직전의 맹수를 보는 것 마냥, 몰핀이 눈치를 보며 금고를 열었다.
달칵.
못해도 100만 실링은 될법한 지폐 뭉치와 각 잡혀 쌓여 있는 담뱃갑들.
죄수들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돈! 내 돈이다! 눈독 들이지 마라!”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어차피 너도 누군가에게 빼앗아 모은 돈일 텐데. 그걸 다시 빼앗긴다고 해서 억울한가?”
“끅, 끄윽! 내 돈! 내, 끄윽, 돈!”
나는 죄수들 쪽을 돌아보았다.
“이 녀석을 조용히 만들어라. 그러면 그에 맞는 보상을 주지.”
죄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소곤거렸다.
“그, 그랬다가 나중에 봉변당하는 거 아닌가.”
“난 자, 잘 모르겠어.”
혼란스러운 감정은 이해한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상황일 테니까.
오래지 않아 몰핀이 먼저 나섰다.
이고르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외쳤다.
“이 씨발 새끼!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네 힘 때문에 따랐지 좋아서 따른 줄 아나!”
응분에 찬 목소리.
저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다.
눈치 보던 죄수들이 몰핀을 따라나섰다.
“재, 재수 없는 새끼!”
“나, 나도 팰 거야! 평소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뺨을 날려 대고─!”
이고르가 머리가 눌려 있는 자세 그대로 몸을 웅크린다. 그 위로 순식간에 발길질이 쏟아져 내린다.
‘그동안 당한 게 많았겠지.’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는 일은 쉽다.
평소 억눌려 있던 욕망을 파악하고, 도화선에 작은 불씨를 놓아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만. 됐다.”
죄수들이 씩씩거리며 이고르에게서 물러났다.
“이 담배는 너희들이 나눠 가져라. 그리고 지금부터 이 돈을 세라.”
“다, 담배를요? 저희가 말입니까?”
“그래. 난 보상은 확실히 하니까. 그리고 앞으로 너희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죄수들은 멍한 표정을 했다.
이내 정신없이 지폐 뭉치에 달라붙어 돈을 세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 보이겠다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이고르.”
이름을 부르자 잔뜩 웅크리고 있던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앞으로 네가 어떻게 될 것 같나?”
“…….”
“반장 자리를 빼앗겼다는 소문이 나면 너에게 덤비는 녀석들이 많아지겠지. 힘들어질 거다.”
“…….”
“앞으로 안정적으로 돈이 나올 구석이 없으니 형기를 줄여 밖에 나가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고 말이야.”
“…….”
“제안하지. 반장 자리는 네가 계속 맡아라. 세금은 모두 내가 먹겠지만, 그 중 10퍼센트를 네게 떼어 주겠다.”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 의문의 빛이 역력했다.
“난 아직 교도관들 눈에 띌 생각이 없다.”
그동안 힘을 숨겼다.
죄수들에겐 그 말이 먹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끊긴 힘줄과 비(非) 마나 유저.
판정을 이미 명확히 받은 상태.
내가 몸을 멀쩡히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의심을 살 일은 분명하다.
“조건을 한 가지 더 붙이지. 내가 네 보호를 받는다고 알려라. 더 이상 귀찮게 달라붙는 놈들이 없도록.”
녀석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린다.
갈등하는 거겠지.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건 녀석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 * *
다음 날, 오후 노역이 끝난 운동 시간.
“후우.”
몰핀은 눈앞에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얼마 만에 피우는 담배인지 알 수 없었다.
“모, 몰핀. 담배를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나도 한 모금만 필 순 없을까?”
게다가 다른 방 녀석들이 부러워 죽으려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꿀맛이 따로 없다.
‘물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편히 피울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기본적으로 죄수는 불을 구할 수 없다.
흡연장에서 교도관에게 불을 빌려, 그 감시하에 피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우기라도 하는 게 어디야.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서고 볼 일이지.’
몰핀은 어제 같은 방 죄수들과 소곤거리며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카인 님을 따르는 게 맞겠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우리가 따질 처지가 아니긴 한데, 조건은 훨씬 괜찮잖아. 담배도 주고, 세금도 면제라고.」
그 대화 중 은근한 우월감을 느꼈다.
나는 너희들보다도 먼저 카인 님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작업장에서 이고르가 카인 님한테 우물쭈물 반말을 하는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몰핀은 킥킥 웃었다.
카인이 건 조건 자체도 별것 없었다.
자신이 힘을 숨긴 사실을 함구할 것.
명령에 충실히 따를 것.
자율 활동 시간엔 방에 출입하지 말 것.
‘지 기분 따라 주먹 날려 대던 이고르 새끼보단 훨씬 낫지.’
애초에 자율 활동 시간엔 방에 머물 생각도 없었다.
대다수 죄수가 그랬다.
운동을 하든, 매점을 가든, 모여서 체스를 두든 하니까.
‘혼자 있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고.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해야지.’
몰핀은 담배의 남은 마지막 부분까지 말끔하게 피워 버리고 흡연장을 떠났다.
아쉬운 시선과 탄식이 그 뒤를 따랐다.
* * *
아무도 없는 감방.
나는 문 쪽에 「알람」 마법을 걸어놓고 책상에 앉았다.
품에서 작은 목재 조각을 꺼냈다.
웬만한 금속에 버금가는 강도를 자랑한다는 흑단목이었다.
‘체스를 두는 무리 중에 목공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
물론 쉽게 구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일전에 내가 베풀었던 호의를 언급하고, 거기에 만족스러울 만큼의 돈을 얹어 주었다.
아무래도 작업장에서 몰래 자재를 빼돌리는 일 자체가 위험 부담이 크니까.
어차피 돈이야 여유로웠다.
이고르에게 빼앗은 돈은 105만 실링.
교도소 급료를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20년 가까이 모아야 달성할 수 있는 금액.
한화로는 1천만 원 정도밖에 안 되지만, 바깥보다 몇 배는 싼 교도소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우웅-
나는 바람을 일으켜 칼날 형태로 만들었다.
목표는 소장 집무실에 있는 설계도.
머릿속에 입력된 자물쇠의 내부 구조를 떠올리며 테두리를 깎아 나갔다.
작업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마나 소모도 큰 데다 아주 미세한 컨트롤도 요구되었다.
가끔 「알람」 마법이 울려 작업을 멈추기도 했고, 실제 교도관이 들어와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다.
“……이 정도 페이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리겠군. 수련에 쓸 시간까지 여기 투자하면 줄어들긴 하겠지만.”
자율 활동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열쇠의 모양은 얼추 잡혔다.
이제 여기서 디테일을 깎는데 시간이 들겠지.
탁.
에스텔에게 받았던 성경을 꺼내 펼쳤다.
가운데 부분을 네모 모양으로 파 수납공간을 만든 뒤 그곳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어차피 중요한 내용은 다 외웠다.’
화륵-
책상 가득한 나뭇가루와 종이 파편을 허공에 띄워, 불꽃을 일으켜 모두 태워 버렸다.
* * *
“……힌트를 드리자면 나이트를 움직여야 합니다.”
“끄응.”
소장은 내가 낸 묘수풀이를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기다려 보게! 내가 직접 풀 수 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집무실을 거닐었다. 그러다 창문 앞에 섰다. 소장의 집무실은 높은 곳에 있어 교도소 벽 너머의 풍경이 멀리 보였다.
끝없이 뻗은 황무지.
간간이 보이는 광산촌.
드문드문 자리 잡은 유적지.
시선을 안쪽으로 당기자 교도소 내부에서 노역으로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죄수들이 보였다.
‘딱 5일 걸렸군.’
주머니에 손을 넣자 열쇠의 촉감이 느껴졌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숙련도가 높아져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몰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독방 교도관들 말로는 키프텔이 매일 벽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던데요. 나오자마자 정신 병동에 격리될 겁니다.」
녀석은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카인 님 반장 자리를 위협할 만한 놈도 완전히 사라지는 거죠!」
‘아니, 녀석은 독방에서 돌아온다.’
정신적으로도 큰 이상은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치료를 받아 금세 호전되거나.
‘그래야 내가 부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정확한 시점은 4년 뒤.
주인공은 교도소를 습격해 시설을 점거한다.
정확히 말하면 습격보단 테러에 가깝다.
마법으로 곳곳을 터트리고 소장을 인질로 붙잡으니까.
교도소 정문의 개폐 장치는 마비되고 벽 안쪽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삼파전 양상으로 흘러가지. 교도관 측, 죄수 측, 그리고 주인공.’
그때 죄수 무리를 키프텔이 이끈다.
결국 주인공에게 제압되긴 하지만.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네. 너무 집중했더니 머리가 안 돌아가는군.”
등을 돌리자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다녀와서 금방 풀 수 있으니 다음 문제도 준비해 놓게.”
“예. 알겠습니다.”
끼익- 탁.
문이 닫히고 방 안엔 나 홀로 남았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곧장 유리장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부터는 시간 낭비할 틈이 없다.
소장이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길어야 3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2분 내로는 일을 끝내야 한다. 속으로 초를 센다.
[1초]
덜걱.
열쇠를 꺼내 자물쇠 구멍에 맞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열쇠는 마찰음을 내며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열쇠가 돌아가고 자물쇠는 내 손 안에 떨어진다.
[10초]
끼익-
유리장 문을 열어 목표했던 파일철을 꺼낸다.
침착하게, 하지만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건축 허가가 떨어진 날짜.
모든 내부 시설의 구조.
쓰인 자재의 종류와 그 수량, 무게.
[18초]
시간이 부족해 정보를 선별해 외울 틈이 없다.
보이는 모든 도면과 텍스트를 머릿속에 입력해 나간다.
[24초]
‘완공 연도는 72년 전. 그사이 시설 보수는 수감 건물을 제외하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32초]
‘외벽 동서남북에는 포탑이 장착되어 있다. 그래. 요새와 다름없다는 설정이었으니까.’
[39초]
‘……외벽 자재로 쓰인 아다만티움의 발주량과 실제 사용량이 맞지 않는다.’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김과 동시에, 획득되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조합해 나간다.
[47초]
‘외벽 완공 이후 건축 총책임자가 바뀌었다. 스스로 사퇴했다고.’
그리고 그때, 나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터벅.
터벅.
발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