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방장 카인 (1)
“제퍼. 이번 달 급료다.”
“예.”
점호 시간.
방에 들어온 교도관이 이름을 부르자 죄수들은 차례대로 앞으로 나갔다.
봉투 하나씩을 받고 파일철에 급료를 받았다는 서명을 했다.
“카인.”
나 역시 봉투를 받았다.
“벌써 이곳에 들어온 지 한 달째군. 밖에서 들었던 물이 완전히 빠진 것 같진 않지만, 처음보단 많이 나아졌어.
“…….”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차례는 이고르였다.
“이 방, 오늘 특이 사항은 없나?”
“없습니다. 하지만 점호가 끝나고 생길 것도 같습니다.”
이고르가 내 쪽을 흘긋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소란스럽지만 않게 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교도관은 문을 활짝 연 채 복도로 나갔다.
다른 방을 돌아다니는 듯했고, 오래지 않아 복도에서 외침이 들렸다.
“오늘 점호는 여기서 마친다. 10분 내로 모든 활동을 마치고 소등 뒤 잠에 들 수 있도록.”
곧 다른 방 방장들이 찾아와 이고르에게 봉투를 건넸다.
“이번 달, 저희 방 인원들 세금입니다.”
“제퍼. 금액을 세라.”
“예.”
침대 위에 지폐가 수북이 쌓여갔다.
방장들이 모두 돌아간 뒤, 이고르는 지폐를 모아 직접 세어 보았다.
그리고 흡족한 얼굴로 자신의 금고, 일명 저금통에 돈을 모두 넣었다.
“너희들도 내야 한단 사실을 잊진 않았겠지.”
이고르는 부하들에게도 금고를 들이밀었다.
부하들의 표정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다만 찍소리 내지 못하고, 주섬주섬 돈을 꺼내 지폐 몇 장을 금고에 넣었다.
“네 녀석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지 않나.”
금고를 든 이고르가 내 앞에 다가와 말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녀석은 예상했다는 투로 뒤로 돌아 명령을 내렸다.
“몰핀. 거기 내 침대 위에 따로 빼둔 봉투가 있다. 교도관님께 가져다드려라. 방이 소란스러워질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이야. 아직 밖에 계실 거다.”
“예.”
봉투를 집어 든 몰핀은 복도로 나가며 불안한 얼굴로 이쪽을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곧, 몰핀과 함께 교도관이 나타났다.
“11시까진 순찰이 없을 예정이네.”
현재 시각은 밤 10시.
말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철문이 닫히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교도관은 위쪽에 뚫린 감시구로 내부를 잠시 들여다보다 사라졌다.
딱-!
이고르가 손가락을 튕기자 부하들이 젖은 수건으로 감시구, 그리고 문과 바닥 틈새를 막았다.
“내가 여기에 들어와서 깨달은 게 있다면.”
이고르가 음흉하게 웃었다.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는 거다. 죽이진 못해도 죽을 만큼 고통을 느끼게 만들 순 있지.”
부하 한 녀석이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벽돌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구석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어차피 오른손이 이미 병신이라 손가락까지 못 쓰게 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겠지.”
이고르와 부하들이 킬킬거리며 다가온다.
몰핀은 적당히 연기하기로 했으니 상대할 숫자는 4명.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회로 레벨: 1 - 마나 200 / 200]
신체 강화 마법 3종을 걸고 4분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마나 양.
하지만 다른 마법도 사용해야 하기에, 실제 유지 가능 시간은 그것보다 짧다.
‘그래도 상황을 잘 이용하면.’
“겁먹은 건가? 아무 말도 못 하는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내일 일 하는 데엔 아무 지장 없을 테니까.”
방 천장 중앙에 달린 전등을 바라보았다.
마나를 일으켜 그 안에 작은 간섭을 일으켰다.
팟!
전등 안쪽 무언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방 안에 어둠이 찾아왔다.
몇 분 후엔 다시 불이 켜질 테지만, 그 정도 시간만으로 충분했다.
“뭐, 뭐야!”
“불 켜! 얼른! 스위치 가까이 있는 놈 누구야!”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허리를 숙인 채, 주위를 감싸오는 포위를 뚫고 방 중앙으로 달려나갔다.
“움직인다! 잡아!”
“멍청한 녀석들, 불부터 켜라!”
나는 「감지」마법을 사용했다.
마나 유저의 강화된 시력에 마나가 깃들며 주변 사물이 은은한 붉은 빛 형체로 보여 왔다.
달칵달칵.
“이고르 님, 안 켜집니다! 고장 났나 봐요.”
“일단 놈부터 잡아라!”
이고르와 부하들이 달려들었다.
창으로 달빛이 들어온다고 하나 실내는 그래도 어둡다.
내 모습은 기껏해야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보일 것이다.
휘오오-
창밖에 밤바람이 분다.
허둥대는 손길들이 몸이 스친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옷자락 하나 잡지 못한다.
[회로 레벨: 1 - 마나 175 / 200]
「기민한 발놀림」의 출력을 최대로 높인 탓에 마나가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일단 전등 스위치 옆에 있는 녀석부터.’
나는 거리를 좁혀 녀석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막무가내로 내질러 오는 주먹.
손등으로 쳐낸 뒤 녀석의 등 뒤로 돌아 정강이 부분을 짓밟았다.
“아악!”
순간 자세가 무너지며 내 눈높이로 보기 좋게 내려오는 목.
그대로 팔을 둘러 힘을 주었다.
“끅! 컥!”
털썩.
순식간에 의식을 잃은 녀석이 바닥에 허물어져 내렸다.
죽이진 않았다. 잠깐 기절시켰을 뿐.
“이 쥐새끼 같은 놈!”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고르가 주먹을 날려 왔다.
나는 옆에 얼쩡거리던 다른 부하를 끌어당겨 방패로 삼았다.
와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방패는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일어나지 않는 걸로 보아 기절한 듯했다.
“주먹이 꽤 매서운데 그래.”
“이익!”
내가 이죽거리자 당황한 목소리가 바로 앞 어둠 속에 울린다.
이고르가 양팔을 뻗어 오는 걸 피한 뒤 옆에 놓여 있던 탁자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탁!
“이 새끼가!”
이고르의 어깨를 2차 도약대 삼아 허공을 날았다. 뒤에 머뭇거리고 있던 부하 녀석의 가슴팍을 뻥 차 버리며 착지했다.
쿵!
침대까지 쭉 밀려난 녀석의 몸은 철제 프레임에 세게 충돌한 뒤 축 늘어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발에 마나를 집중했으니 쉽게 일어나긴 힘들 것이다.
“죽어!”
나머지 한 녀석, 몰핀이 달려든다.
뻔히 보이는 어설픈 연기.
괜히 힘 조절을 할 생각은 없다.
퍽!
“욱!”
다른 죄수들과 공평한 세기로, 배에 주먹을 꽂자 녀석이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다.
지직.
그 순간 불이 켜지고 방 풍경이 드러났다.
“……!”
이고르가 찡그렸던 눈을 떴다.
주위에 나부라져 있는 부하들을 확인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녀석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쳤다.
당황. 경악. 분노.
그리고 끝에는 애써 평정을 가장한 긴장.
“놀라운걸. 입소 때부터 기를 꺾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날뛸 힘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폭력 따위로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군.”
내 빈정거림을 듣고도 녀석은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 상황을 판단하고 가늠하는 걸로 보였다.
“어둠 속에서 네가 움직이는 걸 봤다. 말도 안 되는 동작이 많았지. 아무리 네가 전에 대단한 조직에 있었다 해도, 몸이 불편한 사람의 움직임이라기엔…….”
“말해 두지만 난 이곳에 들어와 내 입으로 내 몸이 불편하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녀석은 눈동자가 더없이 크게 떠졌다.
“……설마 몸이 멀쩡하다고?”
나는 대답 대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벽돌을 들어 올렸다. 평소 힘을 쓰지 못했던 오른손으로.
살짝 힘을 주자 잡은 부분이 으스러져 내렸다.
“뭣하면 다른 방법으로도 증명해 주지.”
“아니, 아니. 됐다.”
녀석이 허둥지둥 손을 저었다.
그리고 침착하려 애쓰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상황, 확실히 네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내가 널 이길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힘이 꽤 많이 들겠지. 5천 실링 뜯자고 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아.”
“…….”
“그래서 제안을 하겠다. 지금 일은 여기서 없던 걸로 하자. 그러면 앞으로 너를 건드리지 않겠다. 물론 세금을 낼 필요도 없다. 협상이다.”
내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무슨 말이 그렇게 장황한가 했더니 결국 개소리였군. 못 배워먹고 자라 협상이 뭔지 모르는 건가?”
“뭐, 뭣?”
“내가 제안하지. 이 방의 방장과 A반 반장 자리를 넘겨라. 그러면 오늘 밤 사지 멀쩡히 잠들 수 있게 해 주겠다.”
녀석이 잠시 멍했다.
이내 말뜻을 이해하고는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건방진 새끼가!”
녀석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제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힘으로만 밀어붙이고 기술이 없다. 단순히 타고난 체격과 맷집 덕에 반장이 될 수 있었을 터.’
묵직하지만 느리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며, 오른발에 「근력 강화」 마법을 걸었다.
약간의 여유분을 남겨 두고 모든 마나를 발에 끌어모아, 녀석의 왼쪽 발목에 킥을 박아 넣었다.
빠직-!
“크읍!”
녀석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마치 거대한 절벽이 무너져 내리듯.
나는 주저 없이 배에 주먹을 박아 넣어 녀석이 앞으로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이런 녀석들은 타격만으로 제압하기엔 무리가 있다.’
연이어 목덜미에 올라타 다리로 녀석의 목을 감쌌다.
“컥, 커걱!”
정신을 차린 녀석이 버둥거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숨통만 조여 올 뿐이다.
“그, 그만! 그만! 거, 거래에 조건을 붙여 주겠다!”
빠져나갈 수 없다.
자신의 상황을 깨달았는지 녀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발에 주었던 힘을 잠시 느슨히 풀었다.
녀석이 바닥에 엎어진 자세 그대로, 헉헉대며 말했다.
“워, 원한다면 돈도 주겠다.”
“……금액.”
“전체 상납금 중 20퍼센트를 네게 떼어 주겠─컥! 컥! 억!”
다시 다리에 힘을 준다.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되, 쉽게 기절하진 않을 정도의 세기로.
“상납금의 100퍼센트. 그리고 금고에 있는 네 돈 전부. 그러면 생각해보지.”
“마, 말도 안- 컥, 컥!”
나는 옆에 떨어져 있던 반쯤 부서진 벽돌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녀석의 숨통을 잠시 틔워 주었다.
“이걸로 뭘 하려고 했지?”
“헉, 허억, 아, 아무것도 할 생각 없었다.”
나는 팔꿈치로 녀석의 어깻죽지를 찍어 내렸다.
빠직.
“크악!”
“같은 말 두 번 반복 안 한다. 이걸로 뭘 하려고 했지?”
나는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 손가락을 찧으려고 했다. 손가락 며, 몇 개 없어도 공장 일엔 지장 없으니까. 부, 부하 한 놈이 저지른 걸로 해서 처벌은 내가 받지 않도록-.”
“좋은 생각이군.”
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 녀석의 오른 손목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눌렀다.
“뭐, 뭘 하려고.”
불안감을 느낀 녀석이 남은 힘으로 팔을 빼내려 버둥거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반인은 물리적인 힘에서 절대 마나 유저를 이길 수 없으니까.
나는 벽돌을 높이 치켜들었다.
“폭력으로 상대의 의지를 꺾는 건.”
그리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쿵!
“이렇게 하는 거다.”
“끄아악─!”
방 전체에 방음 마법을 걸어 두었으니 소리가 새어나갈 염려는 없다.
“그, 그만! 그마안─!”
쿵! 쿵! 쿵!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내리찍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가락이 뭉개지고 으스러질 때까지.
살갗이 벗겨져 뼈마디가 훤히 드러나 보일 때까지.
“내, 내가, 끅! 내, 내가 잘못했다!”
쿵! 쿵! 쿵!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기억력」 특성 덕에 녀석이 내게 폭력을 가할 때의 순간이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때 느꼈던 분노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로.
녀석이 내 뺨을 때리고 배에 주먹을 꽂았던 횟수만큼,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빻는다.
“밖에서 사냥개 짓을 하다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맞나?”
“마, 맞다! 그러니까 그만, 제발 그만…끅.”
쿵! 쿵! 쿵!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주변 마을을 수탈해 생계를 이어가는 놈들.
머리가 차게 식는다.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녀석들을 다루는 방법은 단 하나.’
압도적인 무력 차로 찍어 누를 것.
머릿속에 공포를 각인시킬 것.
어설프게 다뤘다간 후에 기회를 노려 뒤통수를 때려온다.
쿵! 쿵! 쿵!
열 번, 열한 번, 열두 번.
“손가락을 뭉갠 정도론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좋은 팁을 알려 줘서 고맙다. 설령 독방에 가도 상관없는 일이고, 내가 한 일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에게 덮어씌워도 되는 일이지.”
나는 옆으로 흘긋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깨어난 다른 죄수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차마 덤벼들진 못하고 말이다.
‘역시, 이고르에 대한 충성심은 기대할 수 없군.’
나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이고르의 머리채를 들어 올렸다.
“생각해 보니 네가 자학했다고 둘러대는 게 좋겠군. 갑갑한 교도소 생활에 순간 정신이 나갔다고 의무관과 교도관에게 네 입으로 말하는 거지.”
띵.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69.8%]
……알고 있다.
이미 충분히 계산하면서 움직이고 있으니.
녀석은 어느새 말이 없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채, 필사적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이 정도면 되었다.’
나는 녀석의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검지와 엄지로 눈꺼풀과 눈 밑을 잡아 눈을 감지 못하게 했다.
꼼짝없이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 꼴이 되도록.
우웅.
내 눈에서 일반인들은 감지할 수 없는 마나가 흘러나와, 녀석의 눈에 스며들었다.
암시 마법은 눈을 통해 발현된다.
이제 한동안 녀석이 내게 느끼는 공포심은 증폭될 것이다.
마법의 효력이 다하거나 누군가 해제해 주지 않는 이상 최소 몇 주간은.
손을 놓자 녀석의 머리가 풀썩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찧자, 녀석의 떨림이 멎었다.
죽진 않았다.
고통에 못 이겨 잠깐 실신했을 뿐.
나는 자세를 풀고 이고르의 등 위에 걸터앉았다. 죄수들이 벌벌 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조금 피로한 시선으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죄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 방의 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