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55화 (455/517)

00455  i will find... you?  =========================================================================

알케마가 머무르는 연못의 한쪽에는 사방이 탁 트인 단층집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조립형 주택인 걸 보니 누나가 알케마를 위해 지어놓은 건가 보다.

1층짜리에 사방이 트인 기형적인 집이지만 가구나 화장실, 욕실도 다 갖춰진 걸 보면 사는 데 불편함은 없어 보이긴 한데, 거실 한복판에는 현대식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버 둥지 같은 나뭇조각 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저런 나무를 부수고 풀 같은걸 쌓아 만든 침대 같은 게 거실 한복판에 있었고 그곳에는 파란색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이 얼룩무늬로 수 놓인 타조 알만큼이나 큰 알 하나가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앗, 쥔님~!=

그리고 암흑이는 그 알 위에 앉아있었다.

내가 히아리드와 함께 공간 도약으로 알케마의 집인 연못가에 나타났더니 거의 타조 알만큼이나 큰 알 위에 앉아있던 암흑이가 손을 붕붕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알케마는 그 옆에서 곤란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안색이 밝아지며 암흑이 좀 어떻게 해달라는 듯이 내게 눈치를 보냈다.

…암흑이가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알 위에 올라타고 있는 건 좋지 못한 거 같아 녀석에게 다가가 안아 올리니 =이히히.=하고 웃으면서 내 목을 껴안아온다.

내 목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온몸을 부대껴오는 암흑이를 토닥이니 한 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깍지를 끼고 내게 고개를 조아리는 알케마에게 말을 걸었다.

“알케마. 잘 지냈어?”

=네. 시하 님께서 살펴봐 주신 덕분에 이런 집도 생겼습니다.=

알이 올려진 둥지 같은걸 제외하면 가구나 실내 바닥은 깨끗하게 청소되어있었는데 바깥의 청소도구함에 청소 도구도 사용한 흔적이 있는 걸 봐선 알케마가 직접 쓸고 닦고 하는 거 같다.

“집이 마음에 들어?”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골조가 드러나 있지만 튼튼하고 흠이 없어 무척이나 훌륭한 집입니다.=

“그래. 필요한 게 더 있으면 말해. 그런데 이 알의 아빠는 누구야? 혹시 결혼했는데 나 때문에 헤어진 거야?”

내가 변했다 하지만 성격이 어디 가진 않는지 이런저런 신변잡기로 대화의 분위기를 띄우려는 건 고역이라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아, 아닙니다. 결혼이라니….=

결혼이란 말에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던 알케마는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에 알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무성생식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새 환경에 적응해가다가 실수로 그만 산란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성생식이 된다고?”

도마뱀이 무성생식이 가능하다니… 무슨 말미잘이나 산호도 아니고. 차라리 무정란을 낳은 거라는 게 더 믿음이 갈 텐데.

=예. 알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체내에서 분해 흡수를 할 수 있는데 알게 됐을 때는 너무 늦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엇. 음. 난 무성생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놀라서 표정이 굳은 건데 알케마는 질책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다.

“아니, 혼내는 거 아니야.”

오해하고 있는 녀석에게 황급히 정정해주고 알록달록한 점박이 알을 바라봤다.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무성생식이 가능한 거지?

내가 알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알케마는 어딘가 부끄러워하는 듯한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뭐가 부끄러운지 희한하다는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는데… 어쩐지 녀석의 외모가 조금 바뀐 거 같다?

기억 속에 있던 알케마의 모습과 지금 알케마의 모습을 비교해보니 약간 달라졌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사람 체형에 머리는 완전히 도마뱀의 그것이었는데 지금은 도마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얼굴도 약간 둥글둥글해졌고 비늘도 조금 얇아진 거 같고….

지금도 안면이 불그스름해져 있는데, 전에도 얼굴빛이 불그스름해진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선명하다. 비늘이 많이 얇아진 건가?

이런저런 궁금증이 쌓이다 보니 안 물어보고는 못 견딜 거 같아서 대놓고 물어봤다.

“어떻게 무성생식이 가능한 거야? 알이든 수태든 임신하려면 수컷의 정자가 필요하잖아.”

=그것이… 저희는 기온에 따라서 성별이 바뀔 수 있습니다. 원할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약 5년 정도 기간을 두고 성별을 선택할 수 있지요.=

헉. 마음대로 성전환trans sexual이 가능하다고?

=물론 어렸을 때 태어나면서 정해진 성별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긴 하지만 간혹 성별을 바꾸는 자가 생기기도 하고 사제가 될 자는 강제적으로 반대쪽 성별로 바꾸어 일정 기간을 생활해보아야 하는 규율이 있습니다.=

“아. 넌 예비 사제랬지? 나랑 만났을 때가 원래 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렇게 성전환을 하게 되면 얼마간은 체내에 암컷과 수컷의 생식 장기가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성 생식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이 원해서 몸 안에 정낭, 혹은 난소와 난관을 만든 뒤 알을 만들거나 간혹 몸 상태가 나쁠 때 저절로 알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두 번째에 해당하지요.=

“몸 상태가 안 좋았어?”

=예. 저번에 서하 님께서 블루 스톤을 하사하시고 그것을 먹은 뒤로 얼마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눈치를 챘을 땐 이미 알이….=

잔뜩 부끄부끄하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황당함이 피어오른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스케일러의 허니콤에서 시끌벅적한 소음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걸 보니 미호가 에리와 카라를 데리고 스케일러들과 놀기 시작하나 보다.

허니콤쪽을 보다가 알케마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내 블루 스톤을 먹어서 몸 상태가 이상해졌단 거야?”

=아, 이상해진 건 아니고 뭐라고 할까,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바뀌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졌고요.=

알케마와 히아리드를 번갈아 보다가 미호를 떠올렸다. 미호는 블루 스톤을 몇 개 먹었어도 별로 변한 점이….

……있네.

녀석이 진화하기 전에 블루 스톤 몇 개를 먹인 적이 있었잖아. 혹시 지금처럼 여우귀 소녀가 된 건 설마…. 에리와 카라 녀석도 말로 표현하면 단어에게 미안할 만큼 못생긴 얼굴이었는데 내 TP를 주워 먹고 몸을 만든 뒤로는 비교적 평범해진 것도 그 이유인가?

녀석이 하는 말과 지금 변한 모습. 그리고 몇 가지 경험을 떠올려보니 뭔가 촉이 온다.

알케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있는 알케마의 두상과 지금 알케마의 두상을 겹쳐 보이며 비교해보니 확실히 두개골의 골격이 바뀌었다.

에리 녀석은 내 TP가 무진장 순수하고 농도가 짙은 위상력이랬었지? 아마도 그게 어떤 작용을 일으키나 본데.

…솔직히 말하면 알케마를 상대로 실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잔뜩 들기 시작했다.

블루 스톤은 내가 먹어도 멀쩡하고 미호가 먹어도 멀쩡하다. 암흑이에게도 전혀 영향이 없고. 위상석 또한 누나 말로는 섭취했을 때 다음날 똥과 함께 배출된다고 한 걸 보면 인체에 무해 할거란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블루 스톤은 나와 함께 살아야 할 알케마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이유는 없다. 또 잘하면 내 TP의 다른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거리낌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지?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내 시선에 어찌할 줄 몰라하는 알케마에게 아공간에서 블루 스톤 하나를 꺼내 들이밀며 말했다.

“이거, 한 번 더 먹어봐.”

=네, 네? 어째서….=

“먹어.”

=옛!=

난데없는 블루스톤에 당황해하던 녀석은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주둥이에 블루스톤을 내밀며 짧고 강하게 말했더니 덥석 하고 받아먹었다.

=앗, 주인님 나도나도!=

알케마에게 상위급 블루 스톤을 먹였더니 내 목에 메달려 얌전히 지켜보던 암흑이도 눈을 빛내며 졸라대기 시작한다.

“이건 상으로 주는 게 아니라 테스트를 해보려고 먹이는 거야. 안돼.”

=이잉. 나도 테스트받을래여. 받을 테니까 나도 블루 스톤~~.=

자기한테도 테스트해보라며 떼를 쓰는 암흑이에게 TP를 살짝 뽑아 쓰다듬어주며 달래주자 TP로 쓰다듬어주는 것도 좋은지 우헤헤 웃으며 내 목에 더욱 몸을 밀착해온다.

흠칫 오싹거리면서 블루 스톤을 입에 굴리며 먹는 알케마의 전신을 공간 지각으로 감지해봤다.

…해봤지만 별다른 차이점은 못 느끼겠다. 내가 처음 블루 스톤을 줬을 때가 거의 한 달 전이었으니 한 달에 걸쳐서 변화가 일어났다면 지금 바로 눈에 띄는 변화 같은 건 볼 수 없겠지.

알케마의 상태는 매일매일 체크하기로 하고 녀석이 낳은 알을 다시 살펴봤다. 알의 내부는 계란이랑 똑같은 거 같은데 이형종의 알이라지만 역시 위상력도 안 느껴지고…. 여기다 TP를 떨어트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블루 스톤을 먹고 변화하는 알케마를 봤더니 알에도 막막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그렇다고 알케마 몰래 시험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눈을 감고 블루 스톤의 맛을 음미하며 쇠몽둥이 같은 도마뱀 꼬리를 좌우로 붕붕 휘두르는 알케마를 돌아봤다.

직접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실수로 알을 낳았다고 해도 자기 자식으로 여기지 않을까? 이런 경우는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아기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랑 마찬가지라 좀 이야기를 꺼내기가 그런데.

으음…….

그냥 물어보자. 그게 속편 할 거 같아. 은근슬쩍 분위기를 봐가면서 안될 거 같은 필feel이 오면 포기해야지.

“알케마. 알은 무정란이야, 아니면 유정란이야?”

=크슈우우…. 후우. 흐르르르.=

황홀경에서 허우적거리는 듯이 꼬리를 흐느적거리며 눈을 감고 숨만 내쉬고 있던 알케마는 신경이 온통 블루 스톤의 감각에 쏠려있는지 내 말을 무시했다.

…블루 스톤이 뭐가 그리 좋은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알케마를 다시 한 번 힘을 줘서 불렀다.

“알케마.”

=후륵?!=

“니가 낳은 알은 유정란이야? 아니면 무정란이야?”

무정란과 유정란의 차이점을 모르는지 내 질문에 대답을 못 하는 녀석에게 설명을 해주니 유정란이라고 대답했다. 무정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나?

“그럼 부화시킬 생각이야? 아기를 키우려면 이런저런 양육 용품이 필요할 텐데.”

=그건… 곤란합니다.=

화들짝 놀랐던 알케마는 꼬리의 움직임을 자제하더니 날 내려다보며 내 질문에 난색을 보였다. 곤란한 표정으로 알을 바라보는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뭐가 곤란한데?”

=지금 기온과 환경은 새끼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헤츨링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온이 높고 물이 많고 바짝 마른 환경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기온이 높고 물이 많고 이건 여름이지만 바짝 마른 환경? 우리나라 여름은 습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인위적으로밖에 못 만드는 환경이군.

“알은 이대로 놔둬도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부화하지 못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산란한 지 오래된 알은 부화는 가능하지만 건강한 헤츨링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합한 상황이 아닐 때 산란한 알은 먹어버립니다.=

“먹어?!”

예상외의 이야기에 깜짝 놀랬다. 여왕개미가 튼튼한 알을 못 낳으면 그냥 먹어서 영양을 보충하고 다시 알을 낳고, 그걸 건강한 일개미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사비도 마찬가지로 자기 알을 먹어버린다니… 진짜 놀랍다.

무슨 악어처럼 기온에 따라 성별이 바뀌고 개미처럼 튼튼한 알이 아니면 알을 먹어버리고. 도마뱀 베이스의 이형종이 아니라 이것저것 특성이 혼합된 믹스 종족이냐.

“니가 낳은 알이잖아. 배 아파서 낳은 아긴데 먹어버려?”

=새끼는 알에서 자력으로 부화한 후 일정 기간을 생존해야 바다의 주인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비 일족의 헤츨링이 됩니다. 그 전에는 그저 단순한 알egg일 따름입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하는 알케마를 보니 새끼와 알의 기준이 명확한듯하다. 그렇다면 아까 암흑이가 알 위에 있는 걸 보고 곤란 해하던 표정은 알이 소중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괜히 지레짐작으로 내가 오해했었군.

그럼 이걸 달라고 해도 괜찮은 건가?

=서하 님께서 필요하시다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어, 진짜? 나 가져도 돼?”

=예. 제가 원해 낳은 알이 아니라 정통성도 부족하니 상관 없습니다. 사비의 알은 다른 종족들에게 진미로 통하는 식재로 여겨지니 서하 님께서 드신다면 저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조공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알케마가 먼저 주겠다고 하니 사양하지 않고 알을 주워들었다. 먹으라는 뜻으로 준거지만 나한테 준거잖아? TP를 먹여가면서 부화시켜봐야지.

왠지 이득 본 기분이라 공간의 벽을 치고 알케마와 눈이 마주 볼 높이까지 올라가서 비늘로 뒤덮인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줬다.

“고마워.”

=벼, 별말씀을.=

알케마는 내 이런 스킨십이 적응되지 않는지 얼굴을 붉히는데, 머리에 비늘이 아니라 뭔가 거슬거슬한 솜털 같은 감촉이 느껴진다.

…설마 머리카락도 나는 건가?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

============================ 작품 후기 ============================

시작은 미약하였을지라도 끝은 창대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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