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6 혼란인 듯 혼란아닌 혼란 같은 날 =========================================================================
그 뒤로 약 두 시간가량 긴급회의를 지속해나갔는데, 간부들은 통합과 통로의 폐쇄는 확정된 사항으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이 닥쳐왔을 때 혼란이 일어나지 않게끔 내부적으로 계획을 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도 5일간 위상 세계에 사냥을 다녀오셨다죠? 돈 많이 버셨습니까?”
히죽거리면서 묻는 김표충 부장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누나랑 프랑을 돌아보니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린다.
“……대충 고위 이형종 70마리분 사체랑 이런저런 위상석을 다 합쳐서 3100만 TP 정도 모아왔어요.”
쿨럭! 콜록콜록.
잠시 생각해보고 대답해주니 모여있던 간부들의 입에서 사레들린 기침이 뿜어져 나온다.
“…….”
그와 대조적으로 약간 허탈한 표정인 화연이랑 멍한 얼굴의 박지웅 보스를 보고 있으니 간신히 숨을 가다듬은 김표충 부장은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유화연 보스와 박지웅 보스가 그랑 블루의 열둘의 전투 팀 중 여섯 팀을 끌고 한 달간 죽도록 레이드 한 결과물이 고위 이형종 시체 열일곱에 상위 이형종 서른 아홉 마리의 부산물과… 920만 TP 분량의 위상석이었죠?”
“…예.”
힘없이 대답하는 박지웅 보스를 보며 조금 황당해졌다. 수입이 그렇게 적어? 인원수만 따져도 200명이 넘는 대인원이 한 달간 레이드를 한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좀 빈약하다고 생각, 켁!
갑자기 누나가 도끼눈으로 내 옆구리를 콱 찔러왔다!
“왜, 왜?”
“여섯 레이드 팀이 모여 이룬 결과물로는 세계 탑 클래스야. 고작 한 달 만에 10조가 넘는 이득을 올린거라구. 너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 좀!”
“큭, 좀 말로 해! 누난 진짜 툭하면 주먹 나가는 버릇을 좀 고쳐!”
“넌 네 분수부터 좀 알아야 해! 아랫사람들이 잘했으면 칭찬도 하고 그래야지, 애가 어쩜…!”
“아, 누가 못했대? 난 암말도 안 했단 말이야!”
장소도 잊고 누나랑 티격태격하고 있으려니 화연이는 그냥 피식거리면서 웃기 시작하고 혜령이 이모들도 못 말린다는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듣고도 믿지 못할 능력이시네요. 세계 랭킹 1위부터 10위의 레이드 팀이 한 달간 올릴 수익을 전부 모은다고 해도 그만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혜령이 이모와 하유철 부장은 우리 남매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누나랑 투닥거리다가 프랑의 중재에 뿔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앉아있으니 화연이가 웃으면서 물었다.
“대체 5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떻게 해서 그만한 숫자의 이형종을 잡은 건가.”
그래서 설명과 함께 인증기를 켜서 5일간 있었던 일을 보여주었다.
영상 재생이 끝나자 다들 할 말을 일은 표정으로 내 얼굴만 바라본다.
“…저희도 나름 그곳에서 겪은 일을 평생의 자랑으로 여겨도 되겠다 했거늘… 회장님의 탐색… 아니, 모험을 보니 그러한 생각을 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아니, 회장님이 대단하신 거지 박 보스께서 못하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상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것는 2일 차 바닷속 전투뿐이었고 나머지 4일간 지형 탐색 중에 그냥 주워 드셨네요.”
“허, 바닷속에 산만한 크라켄이라니, 오트로스라고 했던가요? 대해의 창도 무시무시한 아티펙트군요. 바다에서는 상대할 자 없이 무적이겠습니다.”
“인어라니….”
간부들의 감탄사를 들으며 겉으로는 근엄한 척 앉아 속으로 히죽히죽 웃는데 누나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게 보였다. 마음대로 생각 좀 읽지 말라고 쏘아주고 싶은 기분이다.
내 탐색 영상 기록을 본 뒤로 분위기가 약간 산만해지자 누나는 가볍게 손뼉을 쳐서 회의의 종료를 알렸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의가 끝나자 혜령이 이모들을 비롯한 간부들이 업무 처리를 위해서인지 자기 집무실로 내려간다. 누나랑 화연이도 회의 때 쓰던 서류를 챙겨 드는 모습을 보다가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5시다.
이제 집에만 가면 되겠…는 데, 화연이는 왜 원목 책상 앞에 앉는 거야?
“퇴근 안 해?”
“밀린 업무가 많아서 오늘은 좀 늦을듯하군. 미안하지만 먼저 집에 돌아가라.”
헐. 퇴근하고 나서 화연이랑 꽁냥거릴 생각에 불끈불끈하고 있었는데!
“바로 집에 가지 말고 부산물 처리장에 이번에 잡은 이형종 사체 쏟아놓고 가. 아니다, 통관 체크해야하니까 같이 가자.”
서류를 가슴에 끌어안은 누나가 종종걸음으로 나한테 다가와 팔짱을 껴오니 서류 검토용 안경을 꺼내쓰던 화연이의 눈썹이 움찔한다.
“…화해 한 건가?”
“후후.”
화연이는 가볍게 미소를 흘려주는 누나의 모습에 알았다는 듯이 슬쩍 웃음을 내비치고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누나의 미소는 애매한 느낌이었는데….
어쨌든 화연이도 돌아왔으니 그간 밀린 일을 모두 해치울 요량으로 좀 일찍 들어오라고 해야겠다.
“중요한 이야기도 있고 할 말도 많으니까 빨리 와.”
“최대한 빠르게 들어가지.”
군인 같은 딱딱한 저 말투도 한 달 만에 들으니 귀에 착착 감기는 거 같다.
돌아가면서 문자나 보내놔야지. [늦게 오면 집무실에서 아헤가오 더블피스하게 만들어버릴꺼야.] 라고.
한쪽에는 누나가 달라붙고 다른 쪽에는 프랑이 달라붙으니 진짜 양손에 꽃을 쥔 느낌이라 팔이 두 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모두 다 안아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 했다고 A 클래스에 들어서면 팔이 막 두 개가 더 솟아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대로 부산물 처리공장, 누나는 처리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도약했더니 저녁 먹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십수대의 노란색과 녹색과 주황색의 지게차들이 위상 세계 부산물용 위험요소 마크가 찍힌 직사각형 상자를 마구마구 나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직 안 끝났어?”
그 모습을 본 누나가 쌍심지를 키더니 지게차들이 들락거리는 대형 출입구 근처의 양복을 입은 직원한테 걸어간다. 그리고 양복을 입은 직원은 누나를 발견하더니 허둥거리면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연락한 지 3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작업이 안 끝나다니, 지시받은 즉시 작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나요?”
“토, 통합관리부장님. 그게 아닙니다. 7동의 적재 컨테이너를 가지고 가기로 했던 인천 공장 쪽에서 오던 트레일러가 교통사고로 발이 묶이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작업이 늦어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컨테이너를 일단 야적장에 적재해놓아도 되는 일 아닌가요? 오면서 보니 7번과 12번 야적장이 비어있던데 그곳에 임시 처치를 해놓아도 될 것을, 회장님께서 힘들게 사냥해오신 부산물 사체를 빠르게 정리해드리지 못할망정 밖에서 기다리게 하다니 처리장 관리책임자의 업무 자질이 의심되는군요.”
조용한 어조로 갈구기 시작하는 누나를 보며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렇게 꾸짖는 거지? 그냥 좀 기다렸다가 넣거나 아니면 내가 빼는 걸 도와줘도 되는데… 한 걸음 나서려 하는데 프랑이 내 팔을 꼭 껴안고서 살짝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
“이건 저 관리 책임자분이 잘못하신 거에요. 시하 님은 충분한 시간과 스케줄을 체크해서 3시간 전에 지시를 내렸는데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으니까요. 회장님이신 서하의 체신에 관련된 일이라 시하 님이 저렇게 혼내시는 거에요.”
“음.”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누나가 명령을 내릴 때면 만에 하나 일어날 변수까지 계산하고 지시를 했을 텐데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지시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교통사고라는 간단한 트러블이 일으키는 작업지연도 해결 못할 정도라면 혼나야겠군.
그나저나 정장이 좀 낀다. 그새 살이 좀 찐 건가? 좀 많이 먹긴 하지만 신체 강화로 돌릴 때 쓰는 열량이 큰 편이라 이만큼 먹어주지 않으면 몸이 축나는데.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대충 헐겁게 풀려고 하니 프랑이 조심스러운 손동작으로 넥타이의 조임을 조절해준다. 프랑의 손길을 받으며 누나 쪽을 바라보니 누나한테 크게 꾸짖음 당한 책임자는 이 이상 실수할 순 없다는 표정으로 직접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지게차를 여러 대 추가 투입해 직접 순환 코스를 지정해주고 동시에 3동의 컨테이너를 야적장에 빼내도록 시켰다..
뭐야, 혼나야 일 잘하는 타입이야? 누나가 뒤에서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으니까 어째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인 관리책임자는 2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2동과 3동의 창고를 모두 비우는 데 성공했다.
“…실수는 두 번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옛!!”
…내가 어릴 적에 막 실수할 땐 저런 말 안 했는데. 어쨌든 비워진 창고에 고위 이형종의 시체를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하니 누나는 옆에서 인증기를 켜서 종류와 수량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포유류가 마흔 네 마리. 파충류가 열일곱 마리, 곤충형이 아홉 마리, 어류가… 이게 뭐니?”
“아, 이건 그냥 갑각류야. 우리 먹으려고 따로 챙겨왔어.”
실수로 꺼낸 길이 1.5m짜리 바닷가재를 본 누나와 프랑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걸 보고 다시 아공간에 쏙 집어넣으니 누나랑 프랑이 놀랐다는 얼굴로 다가왔다.
“세상에, 무슨 로브스터가 그렇게 커? 이형종이니?”
“그 정도로 크려면 십수 년은 족히 살았을 텐데, 로브스터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껍질이 두꺼워 먹을 게 별로 없겠어요.”
“아냐~. 이놈들은 이형종도 아니고 껍질도 얇아. 내가 직접 본 거야.”
그중에서도 살이 꽉꽉 들어찬 놈만 챙겨왔으니까 이거 한 마리면 능력자 세 명이 양껏 먹을 수 있을 거다. 이형종이 아니라는 말에 더 황당한 표정이 된 누나는 한쪽 눈썹을 살짝 들더니 꺼낼 건 다 꺼냈냐고 물어왔다.
“이걸로 끝. 위상석은 어떻게, 지금 줘?”
그때 묵직한 배기음과 함께 공장에 들어선 은색의 중후한 레인지로버에서 유채린과 두 명의 관리부 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려서 우리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다.
“응. 채린 씨한테 주면 돼. ”
“그럴게. 누난 또 회사?”
“회사. 난마저 검수하고 알아서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흠흠. 나도 회사 일 좀 하는 게 좋으려나? 인증기로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는 누날 보니 내가 너무 놀고먹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위상석 보관용 특수제작 케이스를 열고 기다리는 유채린에게 다가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빠릿빠릿한 움직임으로 위상석 봉인 시료를 꺼내 보관할 준비를 한다.
웅크리면 성인 한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대형인데다 위상석 보관용이다보니 되게 무거운지 케이스를 들고 있는 남자 직원 두 명이 겨울인데도 땀에 젖어가는 게 보인다.
“수고하시네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냥 수고한다는 말만 했는데 뭐가 감사 하단 거야?
여튼 유채린도 날 보고 절도있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걸 받아주고 아공간에서 블루 스톤을 제외한 위상석을 전부 쏟아내니 고위 상위 중위 가릴 것 없이 70개의 크고 작은 위상석이 케이스에 쌓였다.
꿀꺽.
3,100만 TP, 순수 원화로만 30조가 넘는다. 여기 있는 70개의 위상석 중 하나만 빼돌려도 두 사람이 평생 놀고먹어도 될 돈이 나올 테니 저렇게 침을 꼴딱 삼키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유채린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른 동작으로 위상석에 봉인 시료를 칠해 3단으로 열린 케이스에 위상석을 크기별로 분류하는 걸 보다가 누나가 혜령이 이모와 전화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야기를 엿들어보니 내가 가져온 사체 중 몇 마리는 고부가가치를 지녀서 해체작업을 거치지 않고 어디에 팔아넘기고 어떤 부위는 어디에 제공하고 어떤 건 어디에… 죄다 고위 이형종의 시체라 그런지 누나가 직접 판매 대상이나 분량 등을 지시하는 거 같다.
바빠 보이니 그냥 가자.
나와 함께 누나 쪽을 바라보는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고 저택으로 공간 도약을 펼쳤다.
저택 앞에 나타나 전체적으로 공간 지각을 돌려 살펴보니 영은이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는지 집 안에는 소피아와 수한만 보였다. 미호와 암흑이와 알케마는 남쪽 허니콤에서 스케일러들과 놀고 있고… 시선을 들어보니 히아리드가 저택의 첨단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서하? 그 바닷가재 몇 마리만 꺼내주세요.”
“어, 여기.”
살이 가장 통통하고 큰 바닷가재 2마리를 꺼내주니 프랑의 만면에 웃음이 떠오르면서 바닷가재 두 마리를 들고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홀에서 대기 중이던 메이드 누나들이 프랑이 들고 있는 걸 보더니 깜짝 놀라며 치맛자락을 잡고 프랑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시 시선을 들어서 히아리드를 보니 녀석은 특이하게 첨탑의 피뢰침처럼 뾰족하게 솟은 곳에 손을 기댄 채 여섯 장의 날개를 하늘거리고 있었는데, 나와 시선이 마주하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며 우아한 날갯짓으로 내 앞에 내려섰다.
=평온히 지내셨습니까, 하늘님.=
“응. 다친 곳 없이 잘 다녀왔어?”
=네. 화연 마님과 함께 이형종의 소탕을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전부 서하 님께서 저를 진화시켜주신 덕분입니다.=
정말… 훈훈한 얼굴로 미소 지어주니까 정말로 천사 같아 보인다. 그런데, 어라?
“키가 좀 작아졌네?”
2.2m는 되던 키가 2m까지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키가 좀 많이 큰 사람으로 봐 줄 만하지만… 어째서 갑자기 키가 줄어든 거지?
=누호디에게 부탁해 소인화의 비술을 배웠습니다. 저는 이형종이라 그리 효과가 크지 않은지, 이만큼 줄이는 게 한계였습니다.=
봄바람처럼 훈훈한 목소리로 대답해준 히아리드는 쿡쿡 웃으며 다가와 내 뺨을 살며시 보듬더니 이마에 키스해준다.
이크, 주방에서 바닷가재를 손질하던 프랑의 움직임이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 마.”
히아리드의 어깨를 잡아 밀어내며 짐짓 눈을 부라렸지만, 녀석은 날개를 하늘거리며 미소를 지을 뿐이다. 어째 암흑이도 그렇고 이 녀석도 자기 개성이 강렬해지면서 행동이 내 손바닥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이 보인다.
물론 내 명령에 따르고 날 위하는 모습이 바뀐 건 아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는 느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접근하고 터치하려는 건 연인들 때문에 곤란한데… 그렇다고 혼내기도 뭣하고.
이제는 부루퉁한 얼굴로 바닷가재 껍질을 벗기다 못해 쾅쾅거리면서 다지기 시작하는 프랑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 너한테 소개해줄 녀석들이 있어. 그 녀석들의 관리에 너도 손을 보태줘.”
=서하 님의 분부 시라면.=
그렇게 말하고 남쪽으로 공간의 벽을 펼치며 뛰어오르니 히아리드도 하얀 날개를 펼쳐 따라 날아올랐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스케일러들을 씻기고 있는 미호네들의 옆에 뛰어내리니 미호가 냉큼 달려와 내 품에 안겨들었다.
- 주인님! 보고 싶었어!!
“그래그래.”
명주실 같은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니 미호의 목덜미에 메달려있던 암흑이도 잽싸게 손을 타고 내 어깨로 넘어왔다. 잠시 녀석들을 쓰다듬어주고 간지럽혀주다가 알케마를 돌아보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이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알케마 너한테 소개해줄 녀석이 있어. 미리 말해두지만 싸우지 마.”
=…? 그러하겠습니다.=
싸우지 말라는 명령에 궁금증을 얼굴에 그린 알케마는 내 명령이니 따르겠다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히아리드는 막무가내로 날뛸 성격이 아니니 알케마만 제지해두면 사비 vs 플라비우스 대혈전은 일어나지 않겠지.
타이밍 좋게 도착해서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온 히아리드는 얼굴에 한가득 웃음을 띠며 다가오…다가 알케마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그 모습에 알케마도 잠시 굳었다가 온몸의 비늘이 솟을 듯이 경계하는 모습이 되었다.
=날개 달린 년…!=
=사비 종족이군요.=
=어떻게 여섯 날개인 네년이 이곳에 있는 것이냐!?=
……싸우지 말랬는데. 비늘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리는 알케마의 뒤로 돌아가 꼬리를 콱 밟으니 =키잇!= 하고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오른다.
“내가 방금 뭐랬냐.”
=엇, 그게… 싸,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기에는 싸우려 드는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걸까?”
=아닙니다….=
“그럼 날 무시하려고 한 거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기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알케마를 약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는 히아리드를 보면서 말했다.
“너도 사비 종족이 싫어?”
=저에게는 서하 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저에게 좋은 것이며 서하 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제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히아리드의 표정에는 진심밖에 없어 알케마는 히아리드가 미친 건 아닌가가 의심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날개 달린 것들은 첫째도 종족, 둘째도 종족인 종족주의자들이라 했는데….=
“히아리드는 내 도움으로 플라비우스 종족의 굴레에서 벗어났어. 니가 아는 종족이랑 겉은 똑같이 생겼어도 속은 다르니 으르렁거리면서 날 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
조금은 납득하기가 힘든지 알케마는 볼록 솟아 나온 눈두덩을 찌푸렸지만 이내 자기 입장을 떠올렸는지 두 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푹 숙이며 히아리드에게 사과한다.
=초면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사비 종족의 전前 예비 사제이자 제7전사단의 부단장이었으나 지금은 서하 님의 종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뒤노이의 알케마라합니다.=
정중하고 예의가 가득한 모습을 보이는 알케마에게 히아리드도 같은 자세로 마주 허리를 숙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과거는 모두 잊고 서하 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히아리드 아르피스입니다. 첫 대면의 실수는 같은 분을 모시는 처지에서 보아 넘겨드리겠습니다. 뒤노이의 알케마.=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사비 종족의 역사상 플라비우스 종족을 깊게 증오하는 거 같기에 히아리드와 알케마 사이에 싸움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알케마는 아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이해하고 있어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려 노력하는듯하고 히아리드도 딱히 그런 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케일러들은 새로 나타난 이형종에게 위압감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입 한번 뻥긋하지 않고 나와 히아리드의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미호는 히아리드와 알케마 사이에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얌전히 둘을 지켜보다 내 옷자락을 살살 잡아당기며 물었다.
- 주인님. 히아리드하구 알케마는 서로 싫어해?
“아니야. 처음 만나는 거라 어색해서 그런걸꺼야.”
- 그런 거야? 우웅… 그럼 이러면 되겠다.
내 대답을 들은 미호는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만만하게 히아리드와 알케마 사이로 걸어가서 둘의 손을 잡아 서로 악수하게 만들었다.
- 악수하면 친구래. 악수했으니까 둘은 이제 친구지?
=…….=
알케마의 벙찐 표정이 묘하게 희극적이다.
어쨌든 내가 거두어들인 고등 지적 생명체들이 한곳에 모였기에 히아리드와 알케마에게 미호를 도와서 스케일러들이 사고 안 치게 잘 돌보라고 해주고 미호는 히아리드와 알케마의 말 잘 들으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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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업로드는 시간이 정해져있네요.
다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