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6 학교. =========================================================================
자신은 육체가 없다는 말.
딱히 내 행동의 어느 부분을 꼬집어서 말한 게 아니라 그녀는 사심 없는 마음 그대로를 말했을 거다.
그런 프랑의 말에 나는, 내가 프랑에게 했던 짓과 프랑은 몸이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게 계속 머릿속을 들쑤셨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은 멍하니 있는 날 보며 걱정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한 말에는 후회가 없는 표정이었다.
“아들?”
“야, 밥 먹다말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순간 허리에서 무시무시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
얼래?
나는 어느샌가 아침상을 앞에 두고 가족과 둘러 앉아있었고 내 손에는 젓가락이 들려있었다!
“밥 안 먹어?”
“어, 아냐. 먹을 꺼야.”
그제서야 멍하니 앉아있다가 엄마가 아침 먹으라는 소리에 좀비처럼 걸어 나왔던 기억이 난다.
프랑의 이야기가 끝나고, 고백…을 했지만, 마음만 받아준 프랑의 행복한 얼굴이 눈동자에 새겨진 채 지워지지 않는 거 같다.
콩!
“윽.”
“자꾸 무슨 생각 하길래 밥도 먹다 말구 이야기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슬쩍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누나가 보인다.
내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는지 꿀밤도 별로 안 아프고 말투는 한껏 화난 투지만 날 이리저리 살펴보는 게, 어딘가 아픈 건 아닌가 하는 얼굴이다.
“…누나는 사랑을 해봤어?”
“응?!”
아차, 저런 눈치 귀신한테 내가 무슨 말을!
“아냐, 음식 다 식겠다. 빨리 먹자.”
겨우 세 단어에 또 뭔가 눈치를 챘는지 눈빛이 이상하게 바껴간다. 어휴 진짜.
난 일부러 누나의 눈빛을 무시하면서 내 앞으로 몰려있는 반찬들을 남김없이 입안으로 쓸어 넣었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 누나는 나한테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일부러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궈버렸다.
잠궈봤자 누나 방이랑 맞닿은 벽이 미닫이문이라서 들어오려고 하면 전혀 소용없는 짓이지만, 내가 문을 잠그면 누나는 억지로 밀고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프랑은 공중에 둥둥 떠서 날 걱정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침대에 모로 누워 그런 프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게 예쁜 모습이다. 여성의 굴곡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는 프랑의 나신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프랑을 어떻게 생각하지?
아름답고, 착하고, 귀엽고,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프랑을 좋아하나?
응
사랑하나?
응
없어지면 죽을 만큼?
…죽을 만큼 힘들겠지.
프랑이 가슴 아파하면 나도 가슴이 아플 거 같다. 프랑이 기뻐하는 모습과 웃는 모습이 좋다. 슬퍼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이 더 좋아.
프랑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 같은 건 못하겠지.
날 좋아한다고 말한 그녀는 더더욱 나에게 거짓말을 못할 거다.
그러니, 몸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서 사랑을 하라는 말도 프랑의 진심일 꺼다.
…난 아직 어리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다.
“몸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어.”
갑작스런 내 말에 눈이 커지는 프랑의 얼굴. 물속에 떠 있는 것 처럼 몸을 둥 둥 띄우고 있는 프랑은 난데없는 이야기에 조금 당황한 눈빛이다.
-서하, 그것은….-
“프랑 말대로면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어떻게 사는 거야?”
그제서야 줄곧 자신이 했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는지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생겨난다.
-서하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알아요. 하지만 서하는 아직 어리잖아요?-
“안 어린데?”
-…….-
순간 말문이 막히는지 프랑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저대로 놔두면 틀림없이 날 설득하기 위해 긴 이야기를 늘어놓을걸!
잽싸게 말을 끊었지만, 다시 말을 꺼내려는지 살짝 입을 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선수 필승!
“아, 좋은 생각이 났다.”
- 사랑은 육체와 정신이…. 네?-
“위상력은 기적의 에너지. 미라클 파워잖아. 찾아보면 프랑이 육체를 얻을 방법도 있을 거 같아.”
응. 틀림없이 있을 꺼야.
“당장은 찾기 힘들지 몰라도, 꾸준히 찾아 나간다면 틀림없이 있을 꺼야.”
-서하….-
“내가 좀 청개구리에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편이거든?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따지고 보면 먼저 반한사람이 손해랬어. 프랑이 날 먼저 좋아했으니까 프랑이 손해 봐야지!”
프랑은 어처구니없는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응. 찾자. 찾으면 프랑이 몸을 가질 수 있는 방법. 틀림없이 찾을 수 있어.”
이건 나한테 하는 약속이다.
-하지만,-
“아몰라! 찾을꺼야! 더이상 설득하려고 하면 영혼석 막 주물럭거려버린다?”
말도 안 되는 협박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짓던 프랑은, 가슴 속 깊이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사르륵 날아와 내 등에 가슴을 기대며 말했다.
-네. 제가 손해 볼게요. 잔뜩 손해 볼 테니까, 서하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주세요.-
나도 살금살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바닥으로 비비며 힘있게 말했다.
“응! 나만 믿어!”
오후에는 교복을 맞추러 가기로 했으니까 점심때까지 남는 시간에 위상력 컨트롤 연습이나 해야겠다.
그동안 짬 날 때마다 해본 결과인데, 집중해서 위상력 컨트롤에 정신을 쏟아붓는 것도 좋지만 멀티 태스킹으로 여러 가지를 하면서 위상력을 움직이는 것도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었다.
그래서 인증기를 켜서 능력자 커뮤니티에 접속해 이것저것 웹서핑을 하는데 호기심이 가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작성날짜는 22일 전.
[엘프 발견]
[어딘지는 알려줄 수 없다. 증거 샷 첨부.][elf.jpg]
엘프? 엘프라면 판타지 단골 주민 아냐?
제목에 호기심이 들었는지 등에 달라붙어 있던 프랑도 내 어깨에 올려놓은 얼굴을 홀로그램 쪽으로 조금 가까이한다.
제목을 클릭했더니 큼지막한 사진 한 장이 올라와 있었다.
배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쓰러져서 죽었는지 기절한 건지 알 수 없는, 프랑보다 조금 못하지만, 그럭저럭 예쁜 녹발의 여…자? 여자 맞나? 남자 아냐? 아무튼, 꽤 이쁜 사람이 눈을 감은 채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최수한을 봤더니 여자를 감지하는 내 눈에 믿음이 없어진 거 같아.
뭔가 위치를 특정지을 수 있는 요소는 모두 배제하려는 듯이 옷도 안 보이고 쇄골까지만 사진에 찍혀있었다. 바닥은 그냥 흔한 땅바닥에 풀도 다 뽑았는지 여기저기 파에 쳐진 게 보인다.
사람 같진 않은데…. 화면을 내려 댓글을 살펴봤더니 의외로 그럴 줄 알았다는 댓글들이 많이 보이고 거짓말이라던가 조작이라는 이야기는 하나도 안 보인다.
-역시 판타지에 엘프가 없으면 이상하지?
ㄴ현실이 판타지냐?
ㄴ217년전 사람들이 보면 판타지라고 볼걸?
-졸라 이쁜데? 어디서 찾았냐?
-포획하신겁니까? 구매의향 있습니다.
ㄴ헐 시발. 사서 뭐하게? 위상 세계 생물은 반출금지인거 몰라?
ㄴ존나 멍청돋네. I 클래스냐? 이미 빼돌릴 인간들은 다 빼돌리고 있구만
ㄴ님이랑 윗님한테 집행부 찾아감 ㅋㅋㅋㅋ
ㄴi will find you.
ㄴand i will kill you.
-엘프가 발견됐으면 좀이따 드워프도 노움도 오크 트롤 이런것들도 줄줄이 발견되는거 아냐?
ㄴ친구의 친구가 정글에서 녹색피부의 근육질 인간을 얼핏 봤다고 하던데 그게 오크일지도.
-꼴린다. 박고싶다. 헉헉.
ㄴ박고자되는거지.
ㄴ뭐라냐.
ㄴ박고 고자된다고 병시나.
ㄴ넌 뭔데 욕하고 지랄이야.
ㄴ꼬우면 덤벼.
ㄴ팝콘 팝니다.
ㄴ구운 오징어도 있어요.
ㄴ콜라는 없나요.
-걱정된다. 위상 세계가 어찌 변하려고 이러나 모르겠네.
ㄴ학자들은 이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하던데.
ㄴ한국에 우민구 박사가 얼마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변화가 가속되고있지만 위상력에 의한 완전 변이는 없을거라고 하던데.
ㄴ무슨뜻이야? 변종 아종에 희귀종까지 생겨나고있는 판국에.
ㄴ그러니까 위상력으로 세상 말아먹을 이형종은 안나타날거라는게 주된 내용이더라고.
ㄴ하긴 그런 아변종들은 기존보다 쎌 뿐이지 특별히 위상력을 이용하진 않더라
ㄴ오, 귀중한 정보 감사.
ㄴ뭐 이정도에 정보라냐;;? 좀 더 공부해라 죽기싫으면.
…어른들이 왜 이렇게 유치하냐. 변태도 보이고 시비 종자도 보이고 참, 그래도 마지막에 보이는 댓글은 좀 도움이 됐다.
“능력자가 되도 사람 인성이라는 게 어디 안 가나보다.”
게임에서도 얼굴 안 보인다고 패륜드립치는 새끼들이 꼭 있지. 그런데 우민구 박사라면…. 설마 검사실에 우 박사님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하고 검색해봤는데 그 사람 맞네. 되게 유명한 사람이었구나. 연구 성과도 많고 논문도 많이 발표하고.
-네, 그런데 엘프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응. 엘프라면 역시 정령도 다룰 수 있겠지?”
-그런가요?-
“한국 양판 소에서 엘프가 정령 못 다루면 이상한 취급받아.”
-푸훗.-
작성자의 아이디는 fallsexmachine …이었는데. 뭐야? 추락한 섹스기계? 무슨 아이디가….
“아무튼 기억해둬야겠다. 정말 엘프인지는 둘째치고…. 아니다. 쪽지 하나 보내봐야지.”
프랑은 내가 뭐라고 보낼지가 궁금한지 작성 중인 글을 봤는데 별거 아니다.
[엘프가 정령도 사용하던가요?]
[정령이 실존하는지 궁금해서 쪽지 날려봅니다]
그리고 작성자로 검색해봤는데 이전에 올렸던 글은 대부분 시시껄렁한 잡담들뿐이라 참고해볼 만한 게 안 보였다.
나는 인증기를 종료하면서 프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프랑. 영국으로 빨리 가고 싶지 않아?”
-네? 그다지…. 마을이, 가문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냥 궁금한 정도에요. 신경 쓰실 필요 없답니다?-
“아니, 그러니까…. 뭐랄까, 프랑이 말하던 둘째 마님이라는 분 말야.”
-아….-
“이제 세수로 계산하면 108년에 태어나고 지금 216년이니까 108살이겠다. 잘하면 살아계시지 않을까?”
-…….-
“일반인의 수명이 평균 90세에, 신체 강화자는 180세가 넘고 기타 능력자들도 120세까지는 산다고 하니까. 살아계실 확률이 높잖아.”
-괜찮아요. 기회가 된다면 좋겠지만,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엥. 그런 게 어딨어? 일찍 만나러 가면 볼 수 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지요.-
“음….”
-만날 인연이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테고, 인연이 없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둘째 마님이라는 분이?”
-네, 둘째 마님의 성함은 시노미야 미레이세요. 서하가 그렇게 부르실 필요는 없어요.-
“응.”
나는 프랑의 이야기를 듣고 알디온과 시노미야 미레이 두 단어를 키워드로 검색해봤다.
알디온은 세계 랭킹 975위의 레이드 팀이었고 가문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현 가주는 브란트 멜드 알디온. 회복 타입 C 클래스 능력자였다. 인원은 클래스에 따른 분류는 없었고 단지 총원이 300명이라고만 되어있었다.
“총원은 되 게 많은데 세계 랭킹이 어째서 975위지? 화연이 누나의 타임리버는 113명…. 아아! 타임리버 총원은 1,000명이 넘는댔지….”
대충 알겠다. 능력자 숫자가 모자란 거겠지. 가주가 C 클래스의 회복능력자인 건 좀 놀랍지만, 100위권 안으로 들어가긴 턱없이 모자랐겠지.
슬쩍 프랑의 표정을 살펴봤더니 약간 슬픈듯한 표정이긴 하지만 괴롭다거나 그렇진 않은 거 같다.
-가주님은…. 레이드 도중 사망하셨군요.-
“…브란트 멜드 알디온은 올해 마흔 두 살이네, 프랑은 안면식이 전혀 없겠다.”
-후훗. 저는 145년에 위상 세계에 들어갔는걸요?-
사실 프랑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능력자라면 몰라도 일반인이 살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겠지. 그러니까 알디온 가문은 프랑과는 이제 연관 점이 거의 남지 않았을지도.
약간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랑을 보니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바로 시노미야 미레이로 검색해봤지만, 게시글은커녕 관련 검색어도 없다. 인터넷에서도 검색해봤지만, 배상을 위해 파견된 능력자의 정보는 모두 삭제되었거나 그냥 기억 속에서 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디온 가문에 대한 기사는 몇 개 있었는데.
알디온 가문은 148년, 그러니까 프랑이 위상 세계로 들어간 지 3년 뒤에 사막 위상 세계에서 고위 이형종인 샌드웜 안타로스를 레이드 하던 도중에 가주인 알버트 멜드 알디온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거기다 같이 들어갔던 알디온 레이드팀 174명 중 128명이 죽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살아남은 46명은 다들 멀쩡했다는 걸 보면 조금이라도 다쳤던 사람은 다 죽었다고봐야할려나….
그나마 가문에 장로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정기사와 평기사들은 멀쩡했기에 멸문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세계 랭킹에서는 1,00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가문의 위세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실질적인 무력집단이 전멸한 셈이니까.
그 뒤로 정통 계승자 중에서는 능력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위상 세계에 몇 명이 빨려 들어갔지만 다들 생환하지 못했다고….
그러다가 194년에 현재의 가주인 브란트 멜드가 회복 타입 능력자로 생환하면서 가문의 지원을 받아 겨우 1,000위권 순위 안에 들었다고 했다. 레이드 팀은 수천 개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진짜 레이드 팀으로 봐주는 건 100위권 안이라야 한다니까, 명예 회복은 턱도 없는 이야기지.
1,000위권 밖이라면 그냥 뛰어난 그룹과 비슷한 수준이란 말인데.
“아들~! 밥 먹으러 나오렴~!”
벌써 점심인가? 프랑의 고백에 대한 답을 한참 고민하다 결론을 내고 위상력 컨트롤 연습을 하면서 능력자 커뮤니티 좀 봤더니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
방문을 열고 나왔더니 손을 씻었는지 화장실에서 나오는 누나랑 마주쳤다.
“이제 괜찮아졌나 보네?”
“응? 뭐가?”
“아님 말구.”
별 소용은 없을 것 같지만, 누나의 물음에 일단 모른척했는데, 보통 때였으면 꼬치꼬치 캐물어 왔을 누나가 웬일인지 얌전히 물러난다?
맛있게 차려진 점심을 먹으면서 엄마의 요리 솜씨를 찬양하고 후식으로 매실차를 마시는데 누나가 말을 걸었다.
“교복 보러 언제 갈래?”
“바로 나갈까?”
“음. 그럼 조금만 기다려, 누나 옷 갈아입고 나올게. 너 교복 봐주고 학교에 가봐야 할 거 같으니까.”
“응. 아! 누나, 비상식용 벨트 꼭 차고 다녀. 위상 세계에서 그거 없었으면 나도 큰일 날 뻔했었어. 그러니까 36살 될 때까지 몸에 떼지 말고 언제나 챙기고 다녀. 알았지?”
내 걱정어린 충고가 누나를 기쁘게 했는지 화사하게 웃으면서 양손으로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후훗. 누나 걱정도 다 해주고, 우리 동생 많이 컸네?”
“걱정해주는 거야 당연하잖아. 그리고 누나 걱정은 언제나 하고 있어.”
“그랬어? 누나도 만약에 대비해서 몸도 단련하구 물품도 챙기고 다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뭐야, 거짓말쟁이 같으니. 그저께 화연이 누나 만나러 갈 땐 그냥 속옷에 평범한 원피스랑 가디건만 걸쳐놓고서는.”
그 순간 누나 얼굴이 빨개지면서 내 뺨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으갸갹!?”
“너, 너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앗! 속옷 이야기 때문인가! 아차!
“내 느려억! 가히헤무헤! 가히!”
“요 꼬맹이가 감지 능력을 그런 데다 쓰는 거였어?! 어디서 그런 못된 짓을 배워 쓰는 거야?!”
히익~!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호되게 꼬집어 비틀던 누나의 손에서 풀려난 건 두 뺨이 사과처럼 새빨개졌을 때였다.
“으으…. 주변 살피는 습관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본 거란 말야…. 글구 옷 너머로 굴곡만 보인 건데…!”
…진실은 전혀 다르지만, 그 진실이 드러나면 내 목숨이 위태로울 테니 숨기자. 글고 딱히 거짓말은 아닌걸! 속옷도 옷이니까!
엄마는 나와 누나가 벌이는 헤프닝을 그냥 웃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아빠는 책을 덮더니 안경을 벗고 말했다.
“위상 세계에서 들인 습관은 어쩔 수 없지만, 능력을 네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도록 언제나 수련을 게을리하지말거라.”
얼굴이 붉어진 채 씩씩거리던 누나는 아빠의 말을 듣고 나서야 화가 조금 누그러지는지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는 날 한번 흘겨보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버렸다.
“크으으으. 능력 컨트롤 하는 연습은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단말야.”
“하고있는걸로는 부족하다. 네가 헌터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너의 능력을 눈치챈 여성 능력자가 너의 감지를 공격으로 판단하면 어쩔 셈이냐.”
뭘 어째! 하늘이 두 쪽 나도 자기 몸이 스캔 됐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텐데!
하지만 솔직히 말했다간 아빠한테 잔소리 들을 테니 그냥 알았다고만 대답해줬다.
으으. 뺨 아프다.
나도 옷을 갈아입으러 내 방에 들어왔는데 프랑이 얼굴을 마주하며 내 뺨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했다.
-뺨이 많이 부어올랐어요….-
“괜찮아. 위상력으로 자연 치유력 올리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꺼야.”
그녀는 손으로 내 뺨을 살짝 쓸어내려 보고는 살풋 웃었다.
-언니분은 서하를 정말 귀여워하시네요.-
“…프랑은 귀여워하는 동생의 뺨을 찢어질 정도로 꼬집고 비트는 거야?”
-엑…. 그런 뜻이 아니라, 애초에 그건 서하가 잘못한 거였지요!-
갈아입을 옷을 옷장에서 꺼내고 있는데 프랑까지 누나 편을 들어주니까 왠지 심통이 난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계속 궁시렁거리고 투덜거리니 프랑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붓기가 조금 가라앉은 내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서하와 언니분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말 돌리기는, 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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