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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61화 (26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61화

“요, 아들!”

“푸큭!”

강호연의 인사에, 리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먼저 튀어나와 버리는, 그런 부류의 웃음이었다.

“아버지, 새로운 인사법이네요?”

“이거? 미국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하더라.”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은 방금 전에 인사를 하며 보였던 손동작을 다시 한번 보여 줬다.

그걸 본 리겔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강호연의 손동작이 힙합 계열 래퍼들이 주로 하는, 약간 슬랭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제스처였던 탓이다.

“그… 누가 그렇게 말하더랍니까? 아버님.”

“어제 관광 마치고 돌아와서 술 한잔하려고 여기 바에 들렀었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가 알려 주더라고. 우정의 표시라고 했던가?”

“아하… 그랬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고,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제스처도 아니다. 다만 얼핏 진중하고 엄격해 보이던 인상의 강호연이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터트리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왜, 별로인가?”

그런 리겔의 반응에 강호연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막 좋아하던데.”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친근감이 물씬 느껴지기는 하네요.”

그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아무리 외국인과 마주치는 것에 친숙해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처음 만나게 되면 살짝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공기가 흐를 수밖에 없다.

업무적인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더라도,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가기는 여러모로 어렵다고 할까. 특히나 서양 쪽과 문화가 많이 다른 동양 쪽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허나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 쪽이 먼저 저런 익숙한 제스처로 인사를 건네 오면 여러모로 거리감이 좁혀질 수밖에 없다. 딱히 무례하거나 문제가 생길 만한 제스처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혹시라도 정중한 자리에 가시게 된다면 좀 삼가시는 편이 좋기는 할 겁니다. 아무래도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인사법이거든요.”

“아하… 미국에서 요즘 애들이 하는, 뭐 최신 유행, 그런 느낌 같은 건가?”

강호연은 그제야 리겔이 왜 웃음을 터트렸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러면서도 만족스레 미소를 짓는 것이, 그 인사를 그만둘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잘 지내고 계셨던 모양이네요, 아버지.”

“나야 잘 못 지낼 이유가 없지. 여기저기 몸만 가지고 돌아다니면 되는데 말이야. 하하.”

강호연은 털털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들의 말에 답했다. 그는 정정하듯이 덧붙이며 말했다.

“아니지. 돌아다니는 것도 여기서 알아서 다 준비를 해 주니 그럴 필요조차도 없더구나.”

강태한이 일정대로 헤비나이츠 선수들을 만나 안마를 해 주고, 그 과정에서 짧은 헤프닝까지 겪는 동안, 강호연은 주변 여행지들을 돌아다니며 관광객으로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전날 여행사 직원이 인근의 여행지들을 소개해 주고, 거기서 강호연이 흥미를 보이면, 그걸 바탕으로 알아서 이동부터 식사까지 모든 일정을 준비해 주는… 그런 굉장히 낯선 방식의 관광을 말이다.

“그래서, 일은 다 끝난 거냐?”

“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은 어제 다 마무리했어요.”

헤비나이츠 쪽에서 거금을 들여가며 강태한을 초대한 것은, 팀의 선수들을 한 번씩 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뢰를 끝마친 강태한은 이제 말 그대로 노는 일만 남겨 둔 상황이었다.

“그… 듣자하니 무슨 문제도 있었단 거 같던데…….”

“문제요?”

강호연의 말에 강태한은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리겔도 살짝 놀란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가 걱정하실 테니 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귀에 들어가기는 한 모양이다.

“뭐… 문제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거기 감독님이 온다고 그랬다면서?”

“근데 별일은 없었어요.”

강태한에게는 오히려 실망스러웠을 정도인, 정말 별일이 아닌 일이었으나, 강호연에게는 다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강태한은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자세를 고쳐 앉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아버지, 그랜드캐니언은 어떠셨어요?”

“그랜드캐니언? 아직 안 다녀왔는데?”

“어? 그래요?”

강태한은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미국에 가고 싶다고는 했었으나, 사실 강호연이 딱히 미국의 여행지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들은 알고 있었는데, 그랜드캐니언이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첫날에 가장 먼저 다녀오셨을 줄 알았는데.”

더군다나 그랜드캐니언은 라스베이거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주변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다. 때문에 이미 다녀왔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아직 다녀오지 않았다고 하니 의외였던 것이다.

“원래 여긴 꼭 가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오늘까지 아껴 놓은 거 아니냐.”

그런 강태한의 말에 강호연은 머쓱하게 웃음을 흘리더니, 강태한을 쳐다보며 넌지시 말했다.

“기왕 같이 온 거, 나 혼자 갔다 오는 것보다는 아들놈이랑 같이 다녀오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강태한은 잠시 동안 말없이 강호연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멋쩍어하는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뭐,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지?”

“그럼, 오늘 목적지는 그랜드캐니언인가요?”

강태한의 질문에 강호연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스으읍…….”

깊은 호흡과 함께 천천히 올라가는 묵직한 바벨.

중심이 살짝 휘어질 정도로 좌우에 큼직한 무게추들을 달고 있는 쇠막대는, 그게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 공중에 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겁게 보였다.

“후우우…….”

허나 그 쇠막대를 들어 올린 남자의 얼굴은 꽤나 평온해 보이는 것이었다. 비록 동작이 느리기는 했으나, 느긋하게 천천히 오르내리는 모습은 오히려 그 남자의 힘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워우, 세드릭! 컨디션이 장난이 아닌가 본데?”

그리고 마침내 그가 바벨을 내려놓는 순간.

그를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박수까지 동반하며 감탄을 터트렸다. 그는 그가 기록하고 있던 내용을 앞으로 내밀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오늘 웬일이야? 그냥 전체적으로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정도는 올라온 수준이라구!”

그가 이렇게 들뜨는 것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헤비나이츠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그는 선수들의 트레이닝에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었으며, 특히 세드릭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담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랫동안 담당을 맡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세드릭의 트레이닝 기록은… 몸이 삼 년 정도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경력적으로 그리고 피지컬적으로도 그의 최고 전성기라 할 만한 바로 그때 수준으로 말이다.

“후우… 그래요?”

“그렇다니까.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야.”

미식축구는 굉장히 과격한 축에 속하는 스포츠다. 다른 시합에서는 곧바로 퇴장 선언이 나올 법한 태클들이 여기서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미식축구 선수들의 신체 능력은 프로 경력과 반비례한다. 아무리 탄탄한 몸이라고 해도 햇수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깎여 나가고 소모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모된 신체 능력은 회복되기 힘들다.

이건 미식축구계에서 상식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고, 특히 선수들의 몸 상태를 직접 체크하고 있는 입장에선 매번 체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오늘 세드릭이 보여 준 트레이닝 결과는 말 그대로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단순하게 바벨의 중량이라든가 운동 시간, 운동량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호흡, 심장박동, 혈압 같은 바이탈 데이터들은 오히려 안정되어 있었다.

딱히 억지로 무리를 해서 낸 결과도 아니라는 뜻.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가 이렇게 감탄을 터트리는 것도 마냥 호들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구나, 세드릭.”

“뭘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다만 세드릭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말대로, 주변에서 각자 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선수들 또한 평소보다 훨씬 열정으로 운동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했으나, 세드릭처럼 단기간에 눈에 띄게 올라온 기록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진짜 안마의 효과가 장난이 아니라니까…….’

스태프의 칭찬에 괜스레 머쓱해져 싱겁게 답한 세드릭이었으나, 그 또한 이 상황에 감탄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감탄을 넘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불과 삼십 분.

고작 삼십 분 동안 안마를 받았을 뿐이었는데, 안마를 받기 전과 후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다. 잘은 모르지만 설령 피지컬 강화제를 투약하더라도 이 정도 효과는 없을 거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걸 두 명만 받고 더 못 받을 뻔했으니.’

선생님의 신통한 솜씨에 감탄하고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을 무렵, 문득 다시 떠오른 생각에 세드릭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다름이 아니라 팀의 쿼터백, 폴 레이즌이 저지른 일이었다.

느닷없이 일반인을, 그것도 자기들 안마해 주겠다고 먼 나라에서 오신 분을 때리려고 들다니.

어이가 없고 도덕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짓이기도 했지만, 팀에게도 막대한 손해가 될 뻔했다. 그의 차례가 세 번째였으니, 일이 더 커졌다면 앞의 두 명만 안마를 받고 그 뒤로는 한 명도 안마를 받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피터, 폴 녀석은 언제쯤 낫는대요?”

“폴? 글쎄. 적어도 한동안은 입원하고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근데 왜? 역시 주장이라 그런가 못난 놈이라도 걱정이 되는 건가?”

“아뇨. 한 대라도 좋으니 그냥 좀 패 주고 싶어서요. 아무래도 환자를 팰 수는 없으니.”

“어… 농담이지?”

“그렇죠, 뭐.”

세드릭은 싱긋 웃으며 답했으나, 그의 말은 딱히 농담조가 아니었다. 남자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 * *

“…어라.”

알베르토 감독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주변을 둘러보다, 뒤늦게 시간을 확인하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이 시간에 일어났지?”

창밖이 너무 밝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눈을 뜨던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다. 약간의 불면증 증세가 생긴 이후로는 굉장히 보기 드문, 아니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피곤하다거나 불쾌한 느낌은 없다.

이럴 때면 너무 잠을 오래 자 몸이 무겁거나 컨디션이 나쁘기 마련인데, 그런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가볍다. 마치 그동안 쌓아 놓은 잠을 한 번에 처리한 느낌이라고 할까.

“매일같이 꾸던 꿈도 하나 안 꿨고…….”

여러모로 묘한 느낌이다.

상쾌하고 가벼운 기분이지만, 그게 너무나도 오랜만의 일이라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그런 묘한 느낌.

그렇게 멍하니 있던 알베르토는 문득 머리 쪽으로 손을 올리더니 이마 부근을 긁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두피 쪽에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어라?”

그러다 그는 순간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방금 전에 손가락으로 긁적인, 이미 진즉에 황폐해진 광활한 이마를 조심스레 더듬기 시작했다.

“어어……?”

소심하게 작은 M자를 그리다가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기세가 올라 정수리까지 확장되어 버린 드넓은 황무지.

지금에 와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고, 모근을 잃고 단단해져 가던 두피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알베르토다.

잡을 수 없는 희망을 찾는 대신 택했던 가발.

허나, 알베르토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텅 비어 있던 그 황무지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는, 갓 자라난 새싹들의 까끌까끌한 그 감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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