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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41화 (24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41화

소위 ‘텐트를 쳤다’라고 표현되는 이 현상.

딱히 뭔가 특이한 현상이라기보다는, 남자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그런 당연하고 흔한 생리 현상 중의 하나다.

다만, 아무래도 나이를 먹고 힘이 빠질수록 보기 드물어지는 현상인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베네릭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오랜만에 겪어 보는 현상이었다. 마지막으로 겪어 본 게 언제였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하…….”

조금 낯부끄러울 수도 있는 상황.

베네릭은 반사적으로 주변에 누가 없는지 한 번 더 둘러보았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뭔가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다.

물론 베네릭의 고민과는 상관없는 일일 수 있다.

그가 갖고 있던 문제는 이런 정력적인 부분이 아니라 내부적인 부분에 있었으며, 딱히 크게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더군다나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현상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몸속에 맑은 기운이 흐른다고 해야 할까.

아까 전부터 힘이 넘쳐나는 하반신은 둘째치고, 몸의 컨디션부터가 달랐다. 몸 안쪽이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런 게 실제로 가능한지, 불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허나 적어도 베네릭 본인이 느끼는 바로는 그러했다. 마치 그동안 막혀 있던 뭔가가 시원하게 뻥 뚫리고, 안쪽에서부터 몸을 재조립한 듯한 느낌이다.

그 전까지의 몸 상태가 출퇴근 시간의 실리콘밸리 도로였다면, 지금은 텍사스 평야의 텅 비어 있는 국도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흐하, 흐하하하……!”

덕분인지 몸도 너무 가볍고 개운하다.

그야말로 최상의 몸 상태라고 할까. 가볍게 손발을 흔들어 보던 그는, 이윽고 큰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하다 아예 방 안을 뛰어다니는 수준으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우우웅.

“음?”

그때쯤 테이블 위에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름 아닌 베네릭의 스마트폰.

한참 동안 뛰어다니고 있다 테이블 쪽으로 다가온 그는, 기분을 가라앉히듯 몇 차례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흐흠, 흠. 여보세요?”

[오, 베네릭! 접니다, 케니.]

전화를 걸어온 것은 다름 아닌 소속사의 매니저.

베네릭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알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다른 건 아니고요. 오늘 친구분이랑 약속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별일 없나 물어도 볼 겸, 잘 계신지 확인해 보려고 전화했죠.]

말하자면 그냥 으레 있는 안부 전화라는 뜻이다.

[근데 잘 계시고 있는 것 같네요.]

다만 케니는 베네릭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그렇게 말했다. 마치 이미 다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확신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야, 요 근래 들어 본 목소리 중에 제일 기분이 좋아 보이는걸요. 뭐라고 할까, 약간 근심 같은 게 살짝 걷힌 것 같은?]

케니의 말에 베네릭은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본인도 알 것 같았다.

한동안 자신의 목소리가 어둡고 침울했다는 것. 그리고 말투도 냉소적이었다는 것. 모두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었으니까.

“내가 요즘 목소리가 좀 안 좋긴 했지, 미안해.”

그렇기에 베네릭은 짧은 사과를 입에 담았다.

물론 정말 그럴 만한 근심이 있었던 탓에 그렇게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여길 만한 부분도 아니었으니까.

[에이, 뭘요. 솔직히 힘들 수밖에 없는 와중에 일정 소화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죠.]

“뭐 그것도 그런가.”

베네릭이 피식 웃음을 흘리자, 수화기 너머에서도 소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매니저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긴 하지만, 뭐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한동안 계속 한국에 계실 거죠?]

“음, 한 달 정도는 여기 계속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겹치는 일정이나 문제라도 있나?”

[제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은데… 잠깐만요.]

잠시 동안 키보드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바로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예. 문제없네요. 다음 작품도 촬영 일정이 좀 미뤄져 있는 상태고… 뭐 이참에 아예 두 달? 정도는 푹 쉬어도 상관없을지도요.]

“두 달까지 되면 쉬는 게 아니라 방치 같은데?”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일단은 그렇게 한 달 계시는 걸로 알고 있으면 될까요?]

“그래. 그렇게 해 줘.”

[알겠습니다.]

대답 소리와 함께 들려오기 시작하는 키보드 소리. 그렇게 관련 문서를 수정하고 있는 동안, 매니저는 계속해서 또 다른 질문을 입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뭐 불편한 건 없으세요? 회사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일이라든가, 일정을 좀 잡아 드린다든가, 뭐 집에서 놓고 와서 곤란하다든가.]

“글쎄… 딱히 도움이 필요한 건 없을 것 같은데.”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서 구하면 그만이다.

어디 이상한 동네에 있다면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물건들은 다 여기서도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음?”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필요한 게 하나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금 전에 막 생긴 참이었다. 베네릭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케니, 혹시… 병원 좀 찾아 줄 수 있나?”

[한국에서요? 그야 물론 가능하죠.]

케니는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가, 이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근데 어디 아픈 곳이라도 생긴 거예요? 어디 찰과상 같은 걸로 이렇게 물어볼 리는 없을 거고.]

“아니, 어디 다친 건 아니야. 그냥… 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검사를 좀 해 보고 싶다고 할까.”

[검사라… 뭘 확인하시려고요?]

“내가 불임인지 아닌지, 다시 검사해 보려고.”

베네릭은 담담하면서도 자신감이 담긴, 그런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으로 불임 판정을 받았던 날 이후.

그는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 뒤로 똑같은 검사를 다섯 번이나 더 받았다. 믿을 수 없다기보다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를 받아들이게 된 뒤로는, 단 한 번도 불임 검사를 받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바꿀 수 없는 현실은 외면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어차피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한데, 괜히 시간과 공을 들여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바뀐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그의 담당 의사 또한 딱히 검사를 권유하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이라면 뭔가 다르게 나올 것 같은,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대감이, 베네릭의 가슴 한편에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 * *

“스읍… 후우우우.”

마지막으로 내뱉는 긴 숨.

마치 명상의 마지막을 고하듯 숨소리가 크다.

이윽고, 동시에 긴 숨을 내뱉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보르와 최성현.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던 와중, 최성현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 집중력이 장난이 아니시네요, 이보르 씨.”

“그러는 성현 씨야말로 깊이가 다르시던데요.”

그리고 가볍게 오고 가는 서로에 대한 감상.

옆에서 보기엔 그냥 각자 말없이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으나, 기감이 트인 두 사람에겐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래도 걸음마 정도는 뗀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도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인데요. 게다가 이보르 씨는 경기까지 뛰시면서 익히신 거 아닙니까.”

두 사람은 서로 덕담을 이어 가더니,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급격하게 가까워진 관계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슬쩍 다가온 강태한이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쟁반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찻주전자와 찻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어, 강 선생님. 언제 오셨습니까?”

“한 사십 분 정도 됐죠?”

순간 흠칫 놀라는 이보르의 반응에 강태한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주변 상황도 인식 못 할 정도로 집중했던 건가.

명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름 신경을 써 주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집중력이 나오는 것은 대단하다. 기감이 트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저어… 근데, 그건 뭡니까?”

한편, 이보르는 강태한이 차를 따르고 있는 찻잔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따라지고 있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고 있는 진한 영기.

안 그래도 방금 전까지 명상에 집중해 있다가 나온 터라 기력이 쇠해진 참이었는데, 그 와중에 저런 게 눈앞에 있으니 거의 본능적으로 저도 모르게 눈길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도라지차입니다. 향이 좋죠?”

“정말… 정말 좋네요.”

이보르는 찻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말했다. 마치 사막에서 헤매다 물 한 잔을 발견한 듯한, 그런 반응.

“드시죠. 아마 도움이 좀 될 겁니다.”

“제가… 마셔도 되는 겁니까?”

일전에 이런 걸 본 적은 없었다.

평소에도 이런 기(氣)가 간혹 가다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공기 중의 먼지와도 같은, 아니 그보다도 더욱 희박한 수준에 불과하다.

허나 이 차 한 잔에는 영기가 담뿍 담겨 있었다.

찻잎이 아니라 영기를 우려 낸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이게 얼마나 수련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구하기 힘든 것인지.

“그럼요. 드시라고 준비한 건데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사양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저도 모르게 넙죽 받아들이는 이보르다. 그는 인사를 남기더니 곧바로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으하아……!”

진하다. 그리고 스며든다!

향긋한 약초의 향이 입안 가득히 퍼지는 동시에, 짙은 영기가 몸속 깊이까지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쇠해졌던 기력이 단숨에 채워지는 충만감에 이보르는 만족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거, 좋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강태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곧바로 다음 한입을 마시는 이보르. 본래 차라는 것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즐기는 것이지만, 그런 다도(茶道)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상황이었다.

“혹시 여기 원장님 계십니까?”

한편, 그렇게 이보르가 강태한의 도라지차를 탐닉하고 있는 사이, 휴게실 안쪽으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다름 아닌 베네릭 브라운이었다.

“아, 여기 계셨군요.”

“네. 잘 주무셨나요?”

“하하… 예. 덕분에 말이죠.”

베네릭은 다소 머쓱해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다만 그 전까지 있었던 묘하게 암울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는 드리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그는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하더니, 바로 자세를 잡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부부의 삶에 희망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걸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허나, 그의 인생에서 정말 커다란 불행이었다는 건 사실이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손님의 진심이 담겨 있는 감사.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에게도 굉장히 기쁜 일이다. 꽤나 자주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질리지가 않는다고나 할까.

‘뭐 물론 아직 회복 과정이기는 하지만…….’

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회복이 끝난 게 아니다. 증상에 쾌차는 있겠으나 완치는 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벌써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에는 다소 머쓱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 머쓱하게 반박을 할 필요도 없으리라. 강태한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자연스레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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