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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39화 (23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39화

라이너 빌딩에 도착하고 난 이후.

베네릭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마안마가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에 탄 그는, 호텔 로비가 위치해 있는 5층으로 향했다.

“오, 왔구나.”

지난번에도 찾아온 적이 있는 호텔 로비의 카페. 그곳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이보르는, 베네릭의 모습이 보이자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바로 갈까?”

“쉬고 있던 거 아니야? 아직 음료가 꽤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괜찮아. 그냥 앉아 있기 뭣해서 주문한 거니까.”

베네릭이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보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답하고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정은 빼놨지? 한… 넉넉하게 두 시간 정도 비워 놓는 게 좋을 텐데.”

“걱정 마. 저녁에는 아무 일정 없으니까.”

“잘됐네.”

베네릭의 답에 이보르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로비 앞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한동안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을 즈음.

“…고맙다, 이보르.”

베네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것저것 신경 써 줘서.”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천마안마의 예약을 잡는 건, 특히나 강태한이 직접 담당하는 천마 코스의 예약을 잡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제 천마 코스를 받으려면 최소 한 달, 평균적으로 대략 두 달가량은 먼저 예약을 잡아 둬야 겨우 가능한 수준이 되었으니까.

당연히 베네릭이 미리 예약을 잡아 뒀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안마를 받으러 갈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옆에 있는 이보르 덕분이었다.

원래 그쪽 원장님과 개인적으로 만날 약속이 따로 있었는데, 그 시간을 베네릭이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 뒀다는 모양이었다.

“뭘, 새삼스레.”

잘은 모르지만, 아마 본인에게는 나름 중요한 약속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귀국을 하지 않고 굳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그 때문인 것 같았으니까.

애초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같이 동행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은 꽤나 어렵사리 부탁을 한 게 아닐까. 베네릭이 그런 추측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가지고.”

허나 이보르는 딱히 그런 내색을 보이진 않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담담한 말투로 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직 치료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그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잖아.”

“뭐… 그건 그렇지.”

“물론,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보르는 확신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사이 도착한 엘리베이터. 이보르는 문이 열리자마자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베네릭은 한차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어서 오세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반겨 주는 직원의 목소리. 해당 직원은 이내 아는 얼굴을 발견했는지, 이내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앗, 이보르 씨 오셨군요?”

“예. 원장님은 지금 계신가요?”

“안 그래도 오시면 바로 안내해 드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쪽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직원은 사무실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두 사람은 가볍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는, 그가 말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영어가 자연스럽네. 한국에서 영어로 응대하는 가게는 별로 못 본 것 같은데 말이야.”

“요즘 외국인 손님들도 부쩍 늘었을 테니까. 일단 나부터 해서 말이지.”

이보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고는, 어느새 도착한 사무실의 문을 두 차례 두드렸다. 그러곤 꽤나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선생님. 이보르입니다.”

“들어오시죠.”

대답이 돌아오자 이보르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왜일까.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마음에, 베네릭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 * *

“…그렇군요.”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본인이 들은 내용을 확인하듯 베네릭에게 다시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본인의 문제로 불임 상태에 있다. 문제의 원인은 예전에 남용했었던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이 의심된다… 라는 거죠?”

“예. 맞습니다.”

베네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왠지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압박 면접이라도 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네가 저 사람에게 존칭을 쓰던 이유를 알겠어.”

“그렇지?”

베네릭이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이보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강태한의 첫인상은, 상당히 의외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젊은 외모였고 처음엔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허나 몇 차례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도 나눠 보니…….

이보르가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안마는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중압감부터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왜 이런 사람이 안마사를 하는지도 의문스러울 정도. 만약 종합 격투기에 나간다면, 과장 조금 보태서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였다.

‘확실히, 탁기가 많이 고여 있기는 하군.’

한편, 두 사람이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강태한은 유심히 베네릭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다. 허나, 이렇게만 봐도 그 원인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베네릭의 혈도 상태는 엉망이었다.

‘막혀 있는 곳도 많고, 혈도도 복잡하게 뚫려 있고.’

탁기라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기운이 체내에 들어왔다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남아 버린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물질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물질이란 것이 대부분 그러하듯, 탁기 또한 일정 수준 이상 쌓이게 되면 별개의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멀쩡한 혈도를 막는 것은 물론이요, 자체적으로 독기를 내뿜기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때문에 서서히 몸이 병들어 가고, 심각할 경우 기혈이 뒤틀려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혹시 등을 좀 짚어 봐도 되겠습니까?”

다만, 베네릭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 경우다.

강태한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베네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죠.”

“좋습니다.”

싱긋 미소를 짓고는 그의 뒤로 돌아가는 강태한.

그는 곧바로 베네릭의 등 위에 손을 얹었고, 내부에 직접 기감을 펼쳐 한차례 혈도를 순환시켰다. 이윽고 그는 확신을 가진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물복용 때 상당히 크게 앓으셨겠는데요.”

“예? 예… 맞습니다.”

“고열은 기본이고, 알레르기 반응에, 불면증에… 이 정도면 사실상 죽다 살아난 수준이시네.”

베네릭은 순간 놀란 눈으로 이보르를 쳐다보았다.

혹시 미리 말해 둔 거냐고 물어보는 눈빛.

그와 눈을 마주친 이보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애초에 부작용 때문에 크게 고생했다는 것만 알지, 상세한 증상은 모르고 있던 이보르다.

애초에 베네릭 본인도 어디서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말했던 기억은 없다. 집에서 혼자 끙끙 앓다가 어느새 자연스레 나았었기에, 병원에 진료 기록조차도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정말 말 그대로 본인의 기억 속에만 있는, 어디서 정보를 캐낼 수도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알아냈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해졌고요. 점점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느닷없이 확. 그렇죠?”

“…그것도 맞습니다.”

이 또한 사실이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야기가 거듭되어 언급되니, 베네릭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안마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점성술이라도 받으러 온 기분이었다.

한편, 베네릭의 말에 강태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진단은 끝난 상황이고, 베네릭에겐 그저 확인을 구했을 뿐이었다.

‘짐작했었던 대로구만.’

사람의 몸은 본인의 생존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상처가 생기면 이를 아물게 하며, 병이 생기면 면역력을 끌어 올려 어떻게든 회복시켜 보려 한다.

혈도에 생긴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혈도 또한 당연히 신체를 이루고 있는 구조의 일부이며, 본인에게 기감이 있건 없건, 인식을 했건 하지 못했건 존재하는 곳이다.

헌데 여기에 만약 문제가 생긴다?

이 또한 당연히 몸에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혈도를 뚫고, 상한 혈도를 과감하게 폐기시켜서라도 어떻게든 순환이 끊어지지 않도록 수단을 강구해 낸다.

이 남자, 베네릭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복용했다는 스테로이드.

비록 강태한이 약물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그게 어지간히도 이 남자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몸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면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체내에 극상성의 탁기가, 그것도 덩어리 채로 쏟아져 들어온 느낌이라고 할까.

그쯤 되면 온몸이 반발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고, 과장 없이 속이 뒤집어지는 수준의 부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잘은 몰라도, 이쯤 되면 어지간한 주화입마(走火入魔)와도 비견할 만한 수준이다.

다만 그 상황에서도 몸은 생존의 길을 찾는다.

그리고 당시에 택한 생존의 길은, 중요한 기능을 포기해서라도 어떻게든 혈도를 살려 놓는 것이었으리라. 그 과감한 선택으로 그는 살아남았고, 겉보기에는 아직까지도 별문제가 없는 멀쩡한 몸이다.

‘꽤 보기 드문 경우이긴 한데 말이지.’

그 기능은 다름 아닌 생식(生殖)의 기능. 다음 세대를 이어 나갈 자식을 만들어 내는, 생물에게 있어 생존 다음으로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기능이다.

당연히 몸에서도 생존 다음으로 우선시하는,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기능이지만…….

체내에 쏟아져 들어온 탁기는 하필이면 영 좋지 않은 혈로 쏠려 버렸고, 그 결과 몸은 과감하게 해당 부분을 포기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기적적으로 주요 혈 몇 개가 살아 있어 관계는 맺을 수 있겠으나, 그 결실은 얻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씨가 생산될 수가 없는 환경이었으니 말이다.

“…저, 선생님.”

그렇게 강태한이 결론이 내렸을 즈음.

베네릭의 옆에 앉아 있던 이보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한의 표정이 짐짓 진지해 보였던 탓인지, 그 또한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회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보르는 마치 본인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과 우려가 담겨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정도로 깊은 우정인가.

하긴, 어지간한 사이였다면 이렇게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강태한은 옅은 미소와 함께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글쎄요. 좀 어렵겠는데요.”

“…그렇군요.”

그 대답과 동시에, 이보르의 시선은 베네릭에게 향했다. 베네릭은 강태한에게 등을 내준 채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 눈꺼풀이 흠칫 떨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친구에게 괜한 기대감을 심어 준 것일까.

가슴속 한편에 자리 잡는 미안함, 죄책감, 후회.

허나 그런 감정들을 갖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강태한은 입가에 손을 얹고 셈을 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윽고 덧붙이듯이 입을 열었다.

“당장 상태가 진전되는 건 힘들고, 주에 한 번씩 상태를 본다고 했을 때… 짧으면 삼 주, 길면 두 달?”

강태한은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번에는 확실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강 그 정도 걸리겠네요.”

“…그, 그렇다는 말은.”

그 말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베네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 적어도 베네릭 씨의 경우에는 말이죠.”

그리고 강태한은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베네릭의 떨리는 목소리와 대조되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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