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38화
“괜찮습니다. 게스트라고 너무 배려만 받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이한건의 사과에 베네릭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연스레 되물었다.
“그런데… 거기가 그렇게 효과가 좋습니까?”
“아유, 두말하면 잔소리죠. 어지간한 수준이면은 제가 이렇게 촬영 중에 말도 안 꺼냈습니다.”
“근데 뭐, 아무리 그래 봤자 안마잖아요.”
베네릭은 헛웃음을 흘리며 실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이한건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글쎄요. 뭐 그렇게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만 이한건도 국민 MC라 불릴 정도로 오랜 경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믿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거기 원장님이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시거든요.”
“생명의 은인… 목숨을 구해 줬단 말입니까?”
“예. 그분 덕분에 암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베네릭의 반응은 두 박자 늦게 나타났다.
중간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던 통역사가 당황하면서 한 박. 그리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베네릭이 흠칫 놀라며 또 한 박자.
“…암이요?”
한동안 얼을 타던 베네릭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안마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암. 영어로는 Cancer.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아직까지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단어 자체가 난치병의 대명사와도 같은 그런 병이다. 그걸 안마사 덕분에 치료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놀랄 수밖에.
“아뇨아뇨, 안마로 암을 치료했다는 게 아니고요.”
다만 이한건의 말뜻은 그게 아니었다. 너무나도 큰 오해에 이한건은 기겁을 하며 두 손을 젓더니, 이내 침착한 말투로 정정을 덧붙였다.
“거기 원장님이 뭔가 느낌이 안 좋다고, 건강검진을 받아 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랬더니 위장에 악성종양이 딱! 발견됐지 뭡니까.”
진단 결과 완전 초기 상태의 위암이었고, 이한건은 별다른 위험 없이 간단한 수술을 통해 조기에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당시 그를 담당했던 의사는 이렇게 발견되는 건 정말 드문 경우라고, 운이 정말 좋은 경우라며 심심한 축하를 보냈었다.
이 정도 단계에선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고, 설령 검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정밀 검사가 아니면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마냥 빈말은 아닌 것 같았던 것이, 이한건 본인이 봐도 사진에 나온 종양의 크기는 정말 작았다. 의사 선생님이 따로 짚어 주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생명의 은인이군요.”
“예. 뭐, 물론 지금 계속 다니고 있는 건, 그냥 선생님의 안마가 워낙 시원해서 그런 거지만요.”
이한건의 말에 베네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보르에게 추천을 받았던 날, 베네릭은 천마안마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조금 찾아봤었다.
확실히 친구의 말대로 상당히 유명한 곳이기는 했다. 페르모 가이드에도 언급이 되어 있는 곳이고, SNS에는 수많은 후기와 경험담이 적혀 있었다. 개중에는 외국인이 남긴 후기도 적지 않았다.
거기에 있는 내용들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마를 통해 자신의 불임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영역의 문제라고 할까.
안마 솜씨가 엄청나게 훌륭하다는 것은 믿고 있다.
허나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시원한 안마가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의 아이를 원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있는 불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 하신 말이 사실입니까?”
“예? 예.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뭐, 저처럼 암과 관련된 건 아니지만,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선생님 덕을 좀 봤다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헌데 암을 치료할 수 있었다는 이한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는 베네릭이다. 그는 오늘 촬영에서 가장 관심이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거듭 입을 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요?”
“예. 부러진 뼈가 나았다는 사람도 있고, 지병이었던 편두통이 사라진 사람도 있고… 그리고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가 정력왕이 된 형님도 계시고.”
이쯤 되면 이제 촬영용이 아니라 그냥 사담이다.
담당 피디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고, 통역사는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통역을 전해 들은 베네릭.
“…그 밤의 슈퍼맨이 되었다는 분의 이야기, 혹시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아, 뭐 이게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이번에 형수님이 둘째를 가지셨는데… 알고 보니 넷째까지 가지신 거야.”
“오 마이 갓! 트, 트리플!”
“예스, 트리플.”
흠칫 놀라며 되묻는 베네릭의 반응에, 이한건은 히죽 웃으면서 손가락 세 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베네릭은 갑자기 그 손을 꼬옥 붙잡더니,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야기, 부디 꼭 좀 듣고 싶습니다!”
“아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이시면 말씀을 안 해 드릴 수가 없네. 그러니까 이게…….”
이한건의 이야기를 메모라도 할 기세로 경청하는 베네릭. 결국 두 사람의 이야기는 중간에 식사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이게 다 뭐야?”
천마안마의 휴게실에 마련되어 있는 탕비실.
그곳 구석의 테이블에 앉은 최성현은, 그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 반응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긴 뭐야.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그렇기는 한데…….”
최성현은 여전히 당황한 눈빛으로 테이블 위에 올라온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일단은, 전부 안쪽이 들여다보이는 유리, 플라스틱 통들이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인삼같이 생긴 약초, 뭔가 두툼한 나무뿌리, 큼직한 나뭇잎… 그런 보기만 해도 씁쓸한 향이 올라올 것 같은, 그런 것들이 진한 연갈빛 액체에 잠겨 있었다.
물론 강태한의 말대로 처음 보는 것들은 아니다.
매일 칡차를 우릴 때 쓰이는 칡청도 약간 이런 느낌이 있고, 가끔 가다 따로 가져올 때도 있었으니까. 예전에 최성현에게 산삼차를 따로 갖다준 적도 있었고 말이다.
허나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예전에는 간혹가다 필요할 때에 몇 개만 따로 특별하게 챙겨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이것들로 테이블이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거 다 귀한 것들 아니냐?”
“뭐 그렇기는 한데… 좀 남는 편이라서.”
강태한은 계속해서 테이블 위에 새로운 통들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쯤 되면 어떻게 혼자 들고 왔는지가 의문일 정도인 양이었다.
게다가 최성현이 놀란 건 그 양 때문만이 아니었다.
병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주변에 어른거리듯 새어 나오고 있는 영기. 예전이었다면 뭔가 공기가 묘하다는 것 정도밖에 느끼지 못했겠으나, 지금의 그라면 꽤나 선명하게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건 다 어디서 구해 오는 거야?’
사실, 요 근래 따로 시간을 내어 몇 차례 서울의 약재상들을 돌아다녀 봤었던 최성현이다.
그동안 경지가 어느 정도 오르면서 내공의 중요성도 자연스레 체감하게 되었고, 영약의 중요성도 덩달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강태한에게 영약을 더 달라고 보채는 것도 머쓱하여, 일단은 따로 구해 볼 생각으로 돌아다녔던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꽝이었다.
영기를 머금고 있기는커녕 ‘도움이 되기는 할까’ 싶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산삼들 중에서는 괜찮은 놈들이 좀 보였으나 이건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걸 사 먹을 바에는 그냥 탕비실에서 칡청을 퍼먹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의 가격.
나름 천마안마에서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안마사인 만큼 최성현도 벌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선뜻 구매를 결정할 정도의 가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는 그때 봤었던 물건들보다 훨씬 영기가 충만한 놈들이, 그것도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울 정도로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사기라도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마냥 묘한 기분에 멍하니 쳐다보고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집에 계속 쌓아 두기에는 양이 좀 많아져서 말이지. 그리고… 나한테는 이제 그렇게까지 큰 도움이 되지도 않고 말이야.”
영약에도 적절한 복용 시기와 때가 있는 법이다.
풋내기 시절에는 싸구려 단약만 먹어도 내공에 큰 진전이 생길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경지가 쌓이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정련(精鍊)된 내공에 이물질을 집어넣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경지가 쌓이게 되면, 별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몸에 해가 된다고 할까.
대환단(大還丹) 같은 최상급 영약이 나타났을 때, 평소 고명하고 도도하던 고수들이 체면 같은 건 집어던지고 개처럼 다투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지가 높아진 만큼 수련의 벽은 훨씬 더 높아졌는데, 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영약은 너무나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는 꽤 도움이 될걸?”
지금의 강태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필요한 건 간혹가다 나오는 몇십 년 단위의 산삼들이었지, 이런 자잘한 약재들은 이제 와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태한의 이야기다.
최성현과 김성훈, 황태진 그리고 이제 막 기감이 열리기 시작한 다른 안마사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탁월한 효과를 지닌 물건들이다. 조금 과장을 덧붙이자면, 작은 기연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말이다.
“그럼… 이걸 다 우리가 먹어도 된다는 거?”
멍하니 강태한의 말을 듣고 있던 최성현.
이윽고 그의 말을 이해한 그는, 여전히 놀란 기색이 담긴 눈으로 강태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에게는 이 물건들의 가치가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그럼 구경하라고 가져왔겠냐. 그럴 생각으로 가져왔고, 애초에 그런 생각으로 담근 거기도 하고.”
그런 최성현의 반응에 강태한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당부하듯이 덧붙이며 말했다.
“대신 각자 적정량만 먹을 것. 안 그러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거든. 적정량은 내가 개인별로 나중에 알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야, 무슨 식단 조절까지 해 주는 느낌이네. 하하.”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흘리는 최성현. 그런 친구의 모습에 강태한 또한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도 이건 굉장히 중요한 투자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인재는 더욱 많이 필요해질 테니까.’
일정 수준 이상의 안마를 할 수 있는 사람. 그것도 기감이 트여 혈도를 다룰 수 있는 사람.
이런 인재는 어디서 따로 구해 올 수가 없는 인재다. 그 말인즉슨, 강태한이 직접 육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과정을 좀 단축시킬 수 있다면…….
쌓아 두고 있던 영약들을 좀 나누는 것 정도야, 뭐 그리 대수겠는가. 더군다나 집에 약재가 쌓여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강태한은 기꺼운 마음으로 영약들을 내줄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던 와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
강태한은 옮기고 있던 통을 내려놓더니, 옆으로 시선을 슬쩍 돌렸다. 거기에는 탕비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선반과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이거 다 들어갈 수가 있나?”
“좀 많기는 하네…….”
아까 전에도 느꼈지만, 혼자 이걸 어떻게 들고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양이다. 최성현은 슬쩍 둘러보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몇 개는 내가 따로 가져갈까?”
“가져갈 건 내 차에 따로 있는데.”
“…여기서 더 있다고?”
장난스럽게 꺼내 본 한마디. 허나 담담한 말투로 돌아온 강태한의 대답에, 오히려 다시 한번 더 벙찐 표정을 짓는 최성현이었다.
* * *
적막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차 안.
허나 빠른 속도로 뒤로 사라져 가는 창가의 풍경으로, 지금 이 차가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그 뒷좌석에는 한 남자가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심경이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을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미안해, 베네릭.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적어도 나는 그래.]
남자는 다름 아닌 베네릭 브라운. 그리고 휴대폰 화면에는 그의 아내에게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메시지가 떠 있었다.
[나야말로 미안해.]
그리고 그 밑에 떠 있는 건 그가 보낸 메시지. 그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의 메시지는 오가지 않았다. 그도, 그녀도, 적어도 메시지상으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뭔가 크게 다퉜다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니다. 싸운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크게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그냥 서로 지쳤을 뿐이다.
둘이서 같이 바라 왔던 소망이, 그동안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해 왔던 것들이 전부 헛수고였음을 알게 되고 우울감이 찾아왔을 뿐이다.
허나 그렇기에 더욱 상황은 좋지 못했다.
잘못이 있었다면 고치면 된다. 싸웠다면 화해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부부 관계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혹시라도 이게 해결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소원이 없을 텐데.
베네릭은 슬쩍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찍이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서 오늘의 목적지, 천마안마가 있는 라이너 빌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