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 안마하신다-206화 (206/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06화

“왜요? 아무래도 한 대보단 두 대가 좋지 않나?”

아르힌의 반응에 마르케시는 조금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대답에 아르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솔직히 크루즈를 보낸 거 자체가 이상해, 이놈아.’

아르힌 또한 촬영장에 몸을 담은 사람이다. 감독으로서도 꽤 오랜 세월 머물렀고, 배우로서 머무른 시간까지 합하면 훨씬 더 긴 세월이 된다.

하나 그럼에도 촬영장에서 크루즈를 받아 본 적은 없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이야기는 배우 개인의 요트를 주변에 정박시켜 놓고 개인 휴게실로 이용했다는 것 정도다.

그야 물론 많은 도움이 되기는 했을 것이다.

촬영장에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할 수밖에 없고, 스태프들의 사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 섬처럼 열악한 환경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크루즈 한 대를, 그것도 상당히 고급 축에 속하는 물건을 통째로 대여하다니. 이익이나 효율 같은 건 완전히 배제해 놔야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었다.

“어렸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르힌은 잠시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러곤 옆에 앉은 마르케시를 흘깃 쳐다보며 덧붙였다.

“왜 이렇게 씀씀이가 커졌을까.”

“제가요?”

“그래. 예전에는 돈 좀 쓰라고 용돈을 쥐어 줘도 쟁여 놓았었는데 말이야. 꼭 써야 할 때만 쓰고.”

히죽 웃으며 그리운 기억을 입에 담는 아르힌. 그러자 마르케시가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써야 할 때만 쓰고 있는데요.”

“…크루즈를 보내는 게?”

“그게 써야 할 때죠. 아르힌, 당신을 고쳐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

“…허, 참.”

아르힌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벙찐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나 내심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지, 좌우로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말솜씨는 확실히 늘었단 말이지.”

“옛날부터 말솜씨 하나는 괜찮은 편이었죠.”

“그건… 그렇구만.”

마르케시의 말에 아르힌은 동의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마르케시는 빙긋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렸다.

“그럼, 그런 의미에서 크루즈 한 대 더 보낼까요?”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 센 것도 안 변했구만…….”

아르힌은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안 돼.”

“왜요?”

“거기 부두 시설이 섬 규모에 비해 나름 잘되어 있는 편이기는 한데, 그래도 크루즈 두 대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야. 오가는 길 막아 놓을 일 있어?”

“…아하. 그건 생각 못 했네.”

경제적이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부분이었다. 마르케시는 수긍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런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애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럼 무슨 선물을 해 드려야 하나…….”

“꼭 선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러자 아르힌이 말했다.

“적어도 내가 본 강 선생은… 딱히 그런 거에 크게 연연할 것 같은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는데. 애당초 그런 걸 바라고 선행을 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야 뭐… 그렇죠.”

마르케시는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야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릇이 넓다고 할까… 강태한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안목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 것도 사실인데.”

“흠… 그럼 안마 의자 사업이나 더 열심히 키워 보는 건 어떠냐. 그거 한 대 팔릴 때마다 강 선생한테 로열티가 들어가는 구조라고 하지 않았냐?”

“흐음… 그건 그렇죠.”

“그럼 그 사업을 번창시키면, 결과적으로 강 선생한테도 도움이 되겠지. 여러모로 말이야.”

“그렇게 되겠죠.”

“게다가 나는 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르지만, 네가 운영하는 팀이 큰 성과까지 거둔 모양이니… 사업을 확장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니다. 마르케시는 생각에 집중하듯 조용해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팀의 승리로 인한 흥분은 흐릿해지고, 사업가로서의 관점이 서서히 넓어지기 시작했다.

에버튼 FC가 바디케어의 안마 의자를 사용한다는 것.

그건 이미 업계 내에 꽤 유명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다름 아닌 강주완 선수 본인의 인터뷰 때문이고, 덕분에 이미 바디케어의 인지도와 해외 판로가 꽤나 많이 확장되었다고 알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선수 개인의, 그것도 인터뷰 중에 자기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파급 효과가 나타난 것. 한데 리그 3위와 챔스 출전이라는 성과가 확정된 지금, 아예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고 마케팅을 시작한다면.

‘이건 된다.’

물론 안마 의자 사업은 지금도 알아서 잘 순항하고 있는 중이다. 항해로 치자면 그야말로 순풍이 불고 있어, 돛만 펴 놓고 있어도 알아서 앞으로 쭉쭉 나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호재까지 겹친다면야.

말하자면 초강력 엔진을 달아 놓고 모터까지 돌리는, 그 정도 수준의 속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사업을 굴릴 생각은 없었는데.’

더 마이스터를 처음 수입해 오기로 했었을 때.

그때도 상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들여온 것이기는 했지만, 안마 의자 사업 자체를 키워 나갈 생각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단순히 유행을 일으킬 수입 전자 제품.

그가 기대했던 건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독점 유통으로 그룹 백화점 브랜드의 입지도 좀 끌어 올리고, 선물로 생색을 내면서 인맥 관리도 좀 하고.

하나 지금은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그의 생각대로 유행을 하긴 했으나 그 스케일이 너무나도 커진 상황이고, 인도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퍼져 나가고 있었다.

예상외의 돌발 상황이긴 하다만.

웃음이 나오는 돌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호재까지 겹친다면야, 아예 자본을 좀 더 투자해서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사업가로서 현명한 선택이었다.

“조만간 회의를 한번 해 봐야겠네요.”

벌써부터 대박의 냄새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느낌.

혼잣말을 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의 눈빛은, 스포츠의 팬의 눈빛에서 사업가의 눈빛으로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 * *

한편,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며 열광과 흥분의 기색이 어느 정도 사그라진 경기장.

“미스터 깁슨, 이번 리그 시즌에서 에버튼이 기적 같은 성과를 보여 줬는데요. 혹시 주장으로서…….”

“고드윈! 작년 시즌 마무리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계신데요. 지금 기분으로 한마디 해 주시죠!”

그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선수들의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 흥분했었던 탓인지 아직도 땀이 식지 않은 선수들과 그들을 중심으로 반원 모양을 그리고 있는 수많은 기자.

이번 시즌에 보여 줬던 성과 덕분일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자들의 숫자는 어지간한 빅 클럽의 대형 경기 때보다도 많아 보였다.

“하하… 우리가 대단하긴 대단했나 보다.”

“야, 이럴 만도 하지! 저번 시즌이랑 비교하면 순위만 봐도 몇 단계가 올라간 상황인데?”

인터뷰의 현장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에 모여 있는 그 외의 선수들. 비록 기자들의 포커스를 받진 못했으나, 그들 또한 감회가 새로운 것은 똑같았다.

스포츠 팀의 인기가 무조건 경기 성적에 따라 갈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됐거나 본인이 응원하는 팀이 이겨야 더 즐거운 법이니까.

성적이 안 나오는 팀은 자연스럽게 점점 인기가 떨어지게 되고, 인기가 떨어진 팀은 아무래도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에버튼 FC가 딱 그런 팀이었다.

나름 역사도 있고 정통성 있는 팀이기는 했으나, 그저 그뿐. 거의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지부진한 성적을 보이며 팬들이 지쳐 떨어진 상황이었다.

팬들도 지쳐 떨어졌는데, 언론의 관심은 어떻겠는가.

뭔가 비중 있게 언급이 된 적도 별로 없고, 경기 후에 인터뷰를 하러 찾아오는 기자들의 숫자도 당연히 적었다. 빅 클럽과 경기를 치른 후에는 괜히 비교가 되어서 씁쓸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한데 이렇게까지 몰려든 기자들이라니.

물론 강주완이나 고드윈, 깁슨처럼 인터뷰를 독점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와 높아진 인기가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는지, 선수 모두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그러는 상황에서도 가장 많은 기자가 몰려든 선수는 따로 있었는데.

“많은 타국 출신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 왔다가 적응을 못 하고 사라지는데요. 혹시 주완 선수만의 비결이 있다면 뭐가 있으실까요?”

“평소에도 한인 식당을 자주 찾아간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게 컨디션 유지의 비결입니까?”

다름 아닌 강주완 선수다.

고드윈과 함께 투 톱 체제로 달려온 팀의 에이스.

예전부터 좋은 성적을 뽑아 내기도 했지만, 특히 이번 시즌에서는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치며 두각을 드러낸 선수다.

그런 선수에게 인터뷰가 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으나… 기자들이 노리는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미스터 강! 지난번에 팀의 성공 요소 중 하나로 안마 의자를 꼽으셨는데요! 그 외에도 따로 언급해 주실 만한 부분은 없으실까요?”

바로 지난번 인터뷰에서 있었던 정보 유출!

팀의 컨디션 비결이 안마 의자라는,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정보였으나, 그 한마디가 가져온 파급효과는 제법 큰 편이었다.

실제로 다른 팀 선수들의 안마 의자 체험 후기가 SNS에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선수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찌 됐거나 팀의 비밀이라면 비밀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고, 원래 공개되어 있지 않은 정보였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도 비슷한 발언이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계속 물어보다 보면 실수로 뭐가 하나 더 튀어나오진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고 강주완 선수에게 몰려들었던 것이다.

“하하… 오늘은 기자분들이 참 많이들 오셨네요. 시즌 마지막이라 그런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강주완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하루 종일 있어도 인터뷰가 끝나지 않으리라. 그는 슬쩍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러분, 이쯤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한 분에게 하나의 질문만 받도록 하죠.”

그러자 경호원이 강주완과 기자들 사이에 반쯤 몸을 끼워 넣으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마지막 질문을 따내고자 모든 기자가 동시에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앞에 분,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리그가 끝나고 챔스까지 시간이 남게 되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해 두신 게 있나요!”

강주완이 왼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해당 기자가 크게 외치듯이 말했다. 행여 당장이라도 강주완이 자리를 뜰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 다급한 목소리였다.

“계획이라…….”

그 말에 강주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는지,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합숙 훈련.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다름 아닌 천마안마다. 챔스가 확정되기 전, 무려 두 달 전부터 기획을 하고 예약까지 마쳐 놓은 계획이다.

구단에서 지원을 해 주긴 하지만, 이 훈련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신청으로 이뤄지는 개인적인 일정이지 팀의 공식일정은 아니다.

하나 단 한 명, 기간 중에 아들의 생일이 있어 빠지기로 한 카밀을 제외하면, 주전급 선수들은 모조리 이 훈련에 참가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두 달 전부터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다려 왔던 일정이다.

‘벌써부터 설레는구만…….’

그 기대감과 설렘 때문일까.

강주완은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와중,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상황을 떠올리곤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음, 계획이라…….”

그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목을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고, 아마 조만간에 제 SNS에 근황을 올리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는 강주완이었다.

* * *

“…좋아! 컷!”

한참 동안 촬영이 이어지고 있던 세트장.

“으하, 길었다, 길었어.”

“다들 수고했어,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

감독의 컷 사인이 나오자, 고요하던 세트장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스태프들, 배우들이 서로 인사 한마디씩을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촬영한 장면이 마지막 신이었던 것.

이걸로 해외 로케는 마무리되었고, 긴장감이 맴돌던 현장의 분위기는 단번에 풀어지고 안도의 기색이 맴돌기 시작했다.

“근데 이제 이 섬에서의 나날도 끝인가…….”

“좀… 아니, 많이 아쉽네.”

하나 왜일까.

그러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얼굴 한편에는 내심 아쉬워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둘씩 부둣가, 멀찍이 보이는 크루즈선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좋았는데…….”

분명 세트장을 설치할 때만 해도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지금의 환경은 전혀 달랐다.

매 끼니 호화로운 식사에 무한히 제공되는 음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온수 펑펑 샤워 시설에다가, 에어컨 빵빵한 숙소까지…….

“역대급이었지, 진짜로.”

“트러플이었나? 전 그거 여기서 처음 먹어 봤어요.”

말이 섬에서의 촬영이지, 사실상 최상급 호텔에 머무르면서 촬영을 한 거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다. 아쉬운 기색이 나타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여기 또 올 일 없나…….”

“그때는 저 크루즈가 없겠죠.”

“그렇구만…….”

아쉬운 건 감독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한동안 크루즈선을 빤히 쳐다보다 조그맣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