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03화
“…근데 괜찮겠죠?”
“뭐가?”
멀찍이 보이던 빌딩이 이제 코앞에 다가왔을 쯤.
걱정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캘리버의 말에 에드윈이 되물었다. 캘리버는 약간 난감한 기색이 어린 얼굴로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지금 가서 안마받는 거요. 듣기로는 예약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던데, 이렇게 길거리에서 한번 마주쳤다고 낼름 받아도 되는 건가… 싶네요.”
“…허, 참. 별생각을 다 한다.”
캘리버의 말에 에드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리액션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황당해서 터져 나오는 헛웃음이었다.
“일단 네 몸 고칠 생각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심 마음에 걸리네요.”
“너는 그냥 초대를 받아서 가는 사람일 뿐이야. 그걸로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고,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네가 참견할 만한 일은 아니지.”
“으음… 그런가?”
“그렇지. 애초에 그 원장님이 생각 없이 어영부영 일을 진행할 만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에드윈은 그날 맞닥뜨렸던 남자, 강태한 원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딘가 비범함이 느껴졌던 그 모습.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겁이 날 정도였다. 어지간한 갱단과 마주쳐도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는 에드윈이지만, 그 순간에는 왠지 위압감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캘리버가 말한 내용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원장 본인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다른 손님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강태한이라는 남자가 그런 일에 연연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문제가 생길 구석을 남겨 둘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너는 네 걱정이나 좀 해라, 몸도 성치 않으면서.”
“이젠 제법 성한 편인데요?”
에드윈의 말에 캘리버는 제자리에서 크게 뜀걸음을 하면서 말했다. 장난스럽게 과장한 몸짓. 그 모습에 에드윈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하지만 이제 더 성해지러 가야지.”
“하하, 그래야죠.”
어느덧 도착한 빌딩의 입구 앞.
입구 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에드윈의 말에, 캘리버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 * *
“여기서 조금만 계시면, 선생님이 오실 겁니다.”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직원. 그러자, 곧이어 조금 머쓱한 표정의 외국인 남성 한 명이 뒤따라 들어왔다. 다름 아닌 캘리버였다.
“아, 예. 안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좋은 시간 되세요.”
직원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 요 근래 외국인 손님이 많았던 탓일까, 직원의 영어는 제법 유창하고 자연스러워진 느낌이었다.
“으음…….”
그리고 잠시 동안 방 안에 혼자 있게 된 캘리버.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단 평범한 분위기네.’
인테리어가 빈약하다거나 외관이 초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인테리어 자체는 깔끔하면서도 갖출 건 모두 갖춰져 있는 게, 미관과 실용성을 모두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 방향이 달랐을 뿐.
일단은 페르모 가이드에도 이름이 올라간 업체이고, 여행사에서도 티켓을 구할 수 없었으며, 들리는 바로는 재벌들도 예약을 잡아야 찾아올 수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휘황찬란한 분위기를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찾아와 보니 그가 생각했었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좀… 편안한 느낌이라고 할까.
동양풍의 인테리어로 약간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그조차도 과하진 않다. 정말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코치님은 잘 있으려나.’
당연한 말이지만, 안마를 받는 것은 캘리버 한 명이었다. 지난번 초대를 받은 건 그 혼자뿐이었고, 애당초 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캘리버뿐이었으니까.
에드윈이 이 건물까지 같이 온 건 어디까지나 그냥 보호자의 느낌으로 따라온 것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조치를 취할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게 좋을 테니까. 물론, 겸사겸사 밤 산책도 하고 말이다.
하나 그렇기에 자신이 안마를 받는 동안은 자연스레 혼자 남아 있게 된다. 이 낯선 곳에서, 아무래도 심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긴, 뭐 알아서 하겠지.’
다만 캘리버는 이내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에 천마안마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이십 층이 넘는 이 빌딩에 넘쳐나는 게 콘텐츠들이다. 호텔의 부대시설도 있고, 식당도, 카페도, 술집도 있다.
어련히 알아서 시간을 보내겠지.
방금 전 에드윈이 말했었던 ‘네 걱정부터나 좀 해라’라는 격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캘리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똑똑.
그때쯤이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길에서 마주쳤었던 남자, 강태한 원장이었다.
“…으음?”
그리고 안에서 눈을 마주치는 순간.
뭔가 의외라는 듯이, 강태한의 눈꺼풀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한동안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캘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상태가 생각보다 양호해지셨네요.”
강태한이 손님과 처음 마주쳤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상대방의 몸 상태를 간략히 훑어보는 것이다.
직접 접촉을 하거나 내부에 기감을 펼쳐 보는 것보다는 당연히 정확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부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체가 건장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렇기에, 강태한은 조금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캘리버의 몸 상태가 그가 짐작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호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며칠 사이에 열심히 움직였던 모양이군.’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의 몸은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똑같은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릴 수 있다.
안마의 효과 또한 마찬가지다.
받은 직후 몸을 잘 풀어 주고 적당한 휴식을 취해 주었는지, 그 이후에도 적절히 몸을 움직여 줬는지 그 유무와 정도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강태한이 안마를 마친 이후에 되도록 숙면을 취할 수 있게 시간을 빼놓는 것 또한, 충분한 휴식기를 가질 수 있도록 취하는 조치였으니까.
“아직 몸이 꽤 불편하셨을 텐데, 운동을 좀 열심히 하신 모양이네요.”
“아, 티가 나나요? 하하… 갑자기 팔다리가 자유로워지니, 이거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혹시 문제가 되나요?”
강태한의 말에 캘리버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강태한은 칭찬의 의미로 말한 것이었으나, 그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아뇨.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면, 생각보다 빨리 원상태로 되돌아가실 수 있겠네요.”
강태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말은 듣기 좋으라고 입에 담는 말이 아니었다.
물론, 캘리버의 몸 상태는 그동안 봐 왔던 손님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좋지 않았다.
그의 혈도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충격에 노출되고, 손상되었다가 회복되고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손발을 저는 정도의 증상으로 끝난 게 다행이었던 수준. 조금만 더 악화되었어도 연쇄 작용처럼 온갖 증상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 만큼 며칠 사이에 쉽게 끝낼 만한 일도 아니다. 별도의 조치가 필요한 부분도 많고, 충분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부분들도 존재한다.
그나마 강태한이 조치를 취해 크게 호전시켜 놓기는 했지만, 어디가지나 일시적인 완화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형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대략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터.
하나 방금 캘리버의 몸을 살펴본 순간, 강태한의 계산은 다소 유동적으로 바뀌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충분히 뒤따라 주고, 이 정도의 높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된다면야 충분히 그 시간을 앞으로 당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한편, 강태한의 말을 누구보다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캘리버 본인이었다. 본인의 몸이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다. 한데 그 시기를 좀 더 앞으로 당길 수도 있다니. 그로서는 믿기 힘든 수준의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혹시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지도 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글쎄요. 이 정도 수준의 재활 훈련을 계속 병행하신다면, 어림잡아서… 적어도 열 달 안에는 마무리할 수 있겠죠.”
“아… 열 달이요.”
순간, 캘리버의 얼굴에 조금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가슴속 한편에 남아 있던, ‘이번 시즌에도 참가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사라진 탓이었다.
NFL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는 9월.
지금부터 열 달 뒤라면, 리그는 거의 후반부에 들어섰을 무렵이다. 그때는 이미 한참 늦은 때다.
‘하긴, 몸이 회복되는 걸로도 모자라 올해 시즌까지 참가하려고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지.’
속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천천히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거리는 캘리버. 하나, 강태한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적어도 열 달이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다소 힘들고 과격한 과정이 되겠지만… 본인이 감당하실 수만 있다면야, 좀 더 앞으로 당길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앞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세 달입니다.”
“예?”
강태한의 말에 캘리버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러고는 본인의 열 손가락을 전부 피더니, 손가락 세 개를 하나씩 접고는 남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원래는 열 달이 걸리는 일인데… 거기서 일곱 달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요?”
“예. 맞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
만약 앞서 길거리에서 보여 준 솜씨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반면,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예. 다만, 안마가 본인의 몸에 부담이 가는 수준으로 과격해질 겁니다. 몸을 풀어 주고 치유한다기보다는, 뜯어고치는 느낌에 가깝겠죠.”
다만, 담담하게 말하던 강태한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뜯어 고친다’라는 말을 언급할 때에는 낮게 깔렸다. 짐짓 경고를 하는 듯한 음색이었다.
‘세 달, 고작 세 달…….’
하나 지금의 캘리버에게 그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이 이미 희망찬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버린 탓이었다.
그를 걱정해 주던 수많은 팬과 동료들, 가족들!
하루에도 몇 번씩 도착했던 팬레터들과 경기장의 열기와 성원 그리고 동료들과 가족들의 얼굴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듯 떠올랐다.
그들이 마음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경기장에 복귀하여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합니다, 당연히 합니다.”
캘리버는 강조하듯이 거듭 답했다.
그 모습에 강태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몸을 뒤집어 달라는 손짓.
그 말과 손짓에 캘리버는 곧바로 몸을 뒤집고 베개에 얼굴을 묻으려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원장님.”
“예. 말씀하시죠.”
“혹시… 미식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예?”
갑자기 엉뚱한 질문.
의아해하는 강태한의 반응에 캘리버가 고개를 저으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아니, 혹시 절 알아보고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해서요.”
“…미식축구 선수셨군요.”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이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그는 이제야 이 우락부락한 몸의 이유를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잘해 주시는 겁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캘리버의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자신의 팬도 아니다. 자길 알아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생판 처음 보는 남을, 그것도 외국인을 이렇게까지 챙겨 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단순합니다.”
하나 강태한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띤 채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판 처음 보는 할머니를 돕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저도 당신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하기로 결정한 일은 어지간하면 끝까지 하는 것이 강태한의 방침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렇군요.”
그 말에, 캘리버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직 납득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뭉클해진 가슴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는 애써 그 말만 남기고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 마음을 표현할 좀 더 적절한 말도 있겠지만, 당장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감사의 표현뿐이었다.
“별말씀을.”
그리고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답했다. 그러고는 위치를 잡아내듯 그의 등 위를 두어 차례 더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순간, 강태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금 전과 같이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뭔가 달랐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비유를 들자면, 잔잔한 호수와 잔잔한 용암만큼 달랐다.
“많이 아플 걸세.”
왜일까.
강태한의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캘리버의 등골에 오싹한 한기가 서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지키고자 몸을 움츠렸다. 말 그대로, 생존 본능이었다.
하나, 생명의 위협을 느낀 반사 신경보다도 강태한의 손짓이 더욱 빨랐고.
“노오오오오오옥!”
천마안마의 복도에는, 고통에 가득 찬 한 외국인의 절규 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