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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02화 (202/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02화

‘그럴 때가 되기는 했지.’

지금까지 기감(氣感)에 눈을 뜬 것은 최성현뿐이었으나, 그건 최성현의 재능과 적성이 뛰어난 덕분이지, 앞으로도 최성현 혼자만 있으리란 법은 없었다.

다른 안마사들도 모두 기감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애당초 그게 강태한의 계획이자 그동안 수고를 들여 온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김성훈과 황태진.

두 사람은 최성현과 마찬가지로 장인 코스를 담당하고 있으며, 안마사로서 지내 온 경력과 경험 자체는 가게에서 손에 꼽힐지도 모르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강태한은 추가로 기감을 익히는 이가 나타난다면, 최성현의 다음 차례는 이 두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성현이처럼 무공에 대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안마사 일을 해 오면서 쌓아 온 감(感)이 있다고 할까. 아무래도 다른 안마사들보다는 이 두 사람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것이다.

‘짐작이 틀리지 않았군.’

그리고 역시나 그 생각대로 이뤄진 상황.

강태한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모습을 차분하게 살펴보았다. 역시나, 기감(氣感)이 막 트였을 때 보이는 특유의 현상들이 혈도 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역시 좀 당황스럽지? 하하,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니까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요 며칠 잠을 좀 설쳤는데, 그게 문제였나 봐.”

다만 그동안 흐른 침묵을 당황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일까, 김성훈이 두 손을 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럴 만도 했다.

느닷없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자 해 놓고는 이상한 뭔가가 느껴진다니. 자기가 봐도 수상하게 보일 만한 상황이다. 둘이서 이상한 종교를 권하러 온 거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 당황한 건 아니고요.”

하나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의 걱정과 달리, 그의 표정은 당황보다는 만족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마치 잘 익은 벼 이삭을 바라보는 농부와도 같은 표정이라고 할까.

“단지 여러분들이 기감(氣感)에 적응하고 있는지, 그걸 확인하려고 잠시 살펴봤을 뿐입니다.”

“기감……?”

강태한의 반응에, 김성훈과 황태진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자기들의 말을 믿는다는 것도 신기한 상황이었는데,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인 것이다.

“그럼… 이 느낌을 태한 씨도 알고 있었던 건가?”

“그렇죠.”

“혹시 이게 뭔지 설명을 좀 해 줄 수 있나?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이대로도 괜찮은 거지?”

“흐음, 설명이라… 직접 예를 좀 들어 드리자면…….”

황태진의 목소리에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초조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강태한은 길게 말하는 대신, 앞으로 손을 내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번 잡아 보세요.”

악수를 권하는 듯한 손짓.

그 손을 황태진이 붙잡는 순간, 갑작스럽게 그의 몸이 소파에서 펄쩍, 하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으어어억!”

“뭐, 뭐야? 왜 그래!”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지르는 황태진. 놀란 것은 옆에 앉아 있던 김성훈도 마찬가지다. 하나 황태진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강태한과 악수했던 자신의 오른손을 조용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성훈 씨도, 손 좀 잠깐 줘 보시죠.”

“어… 나, 나도?”

강태한의 말에 김성훈은 순간적으로 손을 뒤로 빼냈다. 옆에서 황태진의 반응을 지켜보았기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아, 안 아프게 해 줘야 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도 이내 앞으로 손을 내미는 김성훈. 그런 김성훈의 모습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내민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어허어억!”

그의 입에서도 방금 전과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나, 강태한이 앞서 말했던 대로 그건 고통으로 인한 비명이 아니었다. 단지…….

‘이… 이게 뭐야!’

온몸을 휘감는 낯선 감각에 감각이 곤두섰을 뿐.

자극이 강렬한 것은 아니다. 단지, 말 그대로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머리가 새하얘진 것이다.

맞잡은 손에서부터 시작된 그 느낌은, 전신을 훑어내듯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온몸의 감각을 깨워 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것조차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처음 느껴 보는 느낌이다. 평생 촉감을 느껴 보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 촉각이 깨어나게 되면 이런 느낌을 받게 될까.

“으헉, 허어…….”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난 뒤.

강태한이 맞잡은 손을 빼내자, 김성훈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방금 전 황태진이 대답을 하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낯선 자극이 훑고 지나간 그의 온몸에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몸 안에 작고 정교한 수도 시설이 하나 새로 설치된 느낌이라고 할까. 하나 황태진은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것을 이제야 느끼게 된 것이라고.

그렇기에, 당연히 뭔가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감각의 폭이 넓어졌을 뿐.

“어때요? 이제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넌지시 물어보는 강태한.

그 말에, 두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소 과격한 방식이기는 했으나,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 * *

그날 이후.

“태한 씨!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성현아, 혹시 시간 좀 되냐? 잠깐 나 연습하는 것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원래도 연습에 열심히 참가해 왔던 김성훈과 황태진이었으나, 요즘 들어 더욱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특히 요 근래에는 배우는 입장보단 신입 안마사들을 이것저것 도와주는 중간 교육자의 역할이 더 컸었는데…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는 듯, 연습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도 최성현에게 조언을 듣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제 막 기감을 열고 느끼기 시작한 상태. 말하자면,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자기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약간 의외인 건, 최성현이 생각보다 두 사람을 잘 지도한다는 점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눈높이 맞춤 교육이라고 할까.

“이쪽 부근에서 혈을 잡아내는 요령은… 일단 여기, 이 부근을 짚어 보는 거예요. 그러면 주변 흐름이 대강 잡히거든요?”

때로는 고수의 격언보다 비슷한 경지에 있는 초심자의 한마디가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는 법.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최근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극복해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성현의 조언들은, 아무래도 실전적이고 실용적일 수밖에 없다.

“태한 씨가 생각했던 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네.”

“그렇죠. 다행히도 말이에요.”

근처에서 같은 곳을 쳐다보고 있던 황 실장. 그가 넌지시 한마디를 건네자,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세 명뿐이지만, 앞으로도 기감을 깨우치는 안마사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재능과 노력에 따라 그 시기는 다르겠지만, 그 자체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되면 안마사들이 익힐 수 있는 기술의 영역도 넓어지고, 그에 따라 실력도 자연스레 향상될 터.

물론 기감을 익힌다고 해서 안마 기술도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마를 할 때 기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걸을 때 눈을 감고 걷는 것과 뜨고 걷는 것 정도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지금 성현이 정도의 수준만 되어도…….’

분점의 점장 정도는 충분히 맡길 수 있다.

혈도의 상태를 읽어 낼 수 있고, 기를 운용하여 어느 정도의 조치는 취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만 되더라도 필요한 자격은 갖췄다고 볼 수 있으리라.

“일단 성훈 씨랑 태진 씨가 점장 후보가 되나…….”

“예. 성현이는 부원장 자리가 더 어울리니까요.”

“그렇지. 본인도 지점장 생각은 없다고 했었고.”

현재 가게 하나에 국한되어 있는 조직도.

이미 이 상태로도 많은 유명세를 얻고 있고, 그에 따른 인기와 인지도도 쌓아 올린 상태다.

하나 여기서 사업을 더 키우고자 한다면, 지금 상태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가게 하나로 뭘 해 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더욱 넓게 가지를 뻗어 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안마사들의 기감을 틔워 내는 것은 이를 위한 첫 걸음.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인재의 육성이다.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태한 씨가 은근 욕심이 있단 말이지.”

“뭐가요?”

“사업 욕심 말이야.”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마냥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뭐, 따로 생각해 두고 있는 목표라도 있나?”

“…글쎄요.”

돈은 이미 많다. 물론 재벌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대청그룹과의 협력과 로열티만으로도 아마 돈 걱정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도 딱히 없다. 그는 이미 한 세계의 정점에 올라서 봤고, 그 자리를 짓누르는 책임과 무게감을 이미 경험해 봤다.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되도록 사양하고 싶다.

그럼에도 그를 움직이고 있는 목표는…….

굳이 입에 담기에는 다소 두리뭉술하고, 또한 유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태한은 적당한 이야기로 말을 얼버무렸다.

“사업하는 데 뭐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지.”

“하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네.”

강태한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황 실장의 모습.

그 반응에, 강태한도 빙긋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찌 됐거나,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순항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야, 임마. 캘리버!”

저녁, 영등포구의 한 인적 드문 골목.

사람보다 가게 간판과 주차되어 있는 차가 더 많이 보이는 한적한 골목에, 한 남자가 숨이 찬 목소리로 앞서가던 남자를 불러 세웠다.

“예? 왜요.”

그제야 뒤로 돌아선 이는 다름 아닌 캘리버 스미스.

프로 미식축구계에서 팀의 에이스로 한창 이름을 날리다 ‘사실상 재기 불능’의 판정까지 받았던 그였으나, 지금은 두 다리로 걸으며 얼굴엔 건강미 넘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도 좀 확인해 보고 나서 가자니까, 혼자 앞장서서 훌쩍 가 버리냐?”

왠지 뻔뻔하게 보이는 그 반응에 뒤를 쫓아온 남자, 에드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위치가 헷갈려서 지도를 좀 살펴보다 고개를 들었더니 벌써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기에, 뛰어서 겨우 뒤를 잡았던 것이다.

“에이, 코치님이 애도 아닌데, 설마 제가 멀리 떨어져서 좀 걷는다고 길을 잃으시겠어요?”

“내가 아니라 네가 잃으니까 문제지, 이 자식아!”

캘리버 스미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살릴 길을 찾아내는 쿼터백으로 유명했다.

막막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돌파해 내는 기적적인 패스 루트를, 도저히 패스를 던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본인이 직접 달려서라도 뚫어 내는 길을.

하나 그건 필드 위에서의 이야기고, 일상생활 속에서의 캘리버는 놀라울 정도로 길치였다. 몇 년 동안 머물렀던 숙소 앞에서도 길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길 잃을 거면, 그냥 택시나 타.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에이, 무슨 택시예요. 이런 이국적인 도시 속을 야밤에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버린다고요?”

캘리버는 주변을 보라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멋진 풍경은 아니다. 애초에 어디 관광지나 야경을 보는 곳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생활하는 골목이었으니까 말이다.

하나 이런 곳을 보는 것도 여행의 맛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런 골목을 해가 진 저녁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건, 더더욱 희귀한 경험이었다. 캘리버는 솔직히 자기 고향의 뒷골목도 밤에는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으니까.

“한국의 치안이 좋다고는 들었는데, 진짜였네요.”

“아냐. 너 앱플릭스에서 그 한국 드라마 못 봤어? 막… 사람들 납치해서 서로 죽이라고 그러는 거.”

“하하. 코치, 현실을 좀 사세요.”

그냥 농담이라기엔 사뭇 진지한 에드윈의 말에, 캘리버는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에드윈은 순간 발끈한 표정으로 뭐라 한마디를 던지려다,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몸 상태는 좀 괜찮아?”

“예. 어째 점점 더 좋아지는 느낌이네요.”

에드윈의 말에 캘리버는 스트레칭을 하듯 좌우로 허리를 돌리며 말했다. 그 말에 에드윈은 피식 웃으며 툭 내뱉듯이 말했다.

“하루 종일 재활 훈련만 해 댄 보람이 있구나.”

천마안마 원장과의 우연한 만남 이후.

손발이 떨리는 탓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던 캘리버의 몸 상태는, 혼자서 산책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물론 아직 떨림은 남아 있었으나, 부자연스럽던 손발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캘리버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자극이 되었던 것일까.

캘리버는 요 이틀 동안 미친 듯이 재활 훈련에 몰두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는지, 연신 웃는 얼굴로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정도는 별문제가 없고, 오히려 한눈을 팔면 자기 혼자 앞장서서 걸어가는 일도 있을 정도로, 캘리버의 몸 상태는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며칠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 같은 일.

한데, 캘리버에게는 그 기적 같은 일을 겪을 기회가 앞으로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어디 보자… 저쪽이 맞나?”

“저기, 저 간판. 라이너 호텔이라고 적혀 있는 거 아니에요? 라이너 빌딩이라 했으니 같은 건물일 것 같은데.”

지도를 쳐다보던 에드윈은 고개를 들어, 캘리버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거기엔 스무 층 정도 되어 보이는 큼직한 빌딩 하나가 서 있었다.

“맞는 것 같네.”

“어때요. 저도 길 잘 찾죠?”

“그래, 너 잘났다, 임마.”

멀리서도 보이는 큼지막한 라이너 빌딩.

그곳의 이십 층에 위치해 있는 천마안마가, 다름 아닌 그들의 목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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