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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91화 (19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91화

“네, 아버지.”

라이너 빌딩 인근의 조그마한 카페.

그곳의 한 테이블에 앉아 있던 강태한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태한아, 나다.]

“예.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그냥 뭐, 점심시간에 안부차 전화 좀 했지. 하하.]

강태한의 아버지, 강호연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 안부를 묻지 않아도 별일이 없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어제도 통화했던 것 같은데.”

[어제 통화했지만 오늘도 목소리가 듣고 싶더라고.]

그런 아버지의 말에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예전의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대화였다.

[오늘 아침에도 말이다, 네가 꼬박꼬박 채워 놓는 그… 뭐라 해야 하나, 약차?]

“뭘 말하는 건지 알 것 같네요.”

[그래. 어쨌거나 그걸 마시는데 네 생각이 나지 뭐냐. 그래서 이따가 전화나 한번 해야겠다, 했었지.]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 계신가 보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준 건데 챙겨 먹어야지. 그리고 먹다 보니까 생각보다 입에도 잘 맞더라.]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그냥 약차(藥茶)가 아니고, 아버지의 체질에 맞춰 따로 약재들을 배합하여 만들어 낸, 일종의 맞춤 영약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그냥 체질에만 맞춘 것이 아니라, 대전에 찾아갈 때마다 주기적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고, 매주 그에 맞춰 성질이나 영기의 양을 조절한 물건이다.

말하자면 특별히 만든 물건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강태한 본인이 먹을 영약보다도 훨씬 더 신경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됐네요. 앞으로도 계속 챙겨 드세요.”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은 거라도 본인이 챙겨 먹지 않으면 말짱 꽝인 것인데, 다행히 꾸준히 드시고 계신 모양이다. 강태한은 괜스레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아버지,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누구를 좀 만나고 있어서요.”

[아, 그러냐?]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통화 자체는 그리 오래 이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방을 힐끗 쳐다보며 말하는 강태한. 그러자 강호연은 순간 당황한 목소리를 입에 담았다.

[이거 내가 좀 방해가 됐나?]

“아뇨. 그런 건 아닌데, 통화가 너무 길어지면 안 될 것 같네요.”

[그래, 알았다. 몸조심하고 잘 지내라!]

강호연은 그 말을 남기고는 잽싸게 전화를 끊었다.

갑작스레 불쑥 전화를 걸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업무를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라서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닌가 싶어 안 받을 수가 없었네요.”

강태한은 통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곤,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은 상대방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다.

전화를 받기 전에도 양해를 받아 두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무례하게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 전화인데요.”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 현재 대청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장태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좌우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

* * *

“그건 그렇고,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던 와중, 장태현 회장이 먼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 말에 강태한은 머쓱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뭐… 그런 편이긴 하죠.”

머쓱하게 말하긴 하지만, 본인이 직접 노력하여 얻어 낸 결과이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 한구석에는 내심 뿌듯해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장태현 회장은,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예전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서먹했다가 요 근래 가까워진 경우였으니까.

물론 그가 강태한의 가정사를 알고 있을 턱은 없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끼리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

그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짓고는, 앞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 어찌 됐거나, 아까 전에 말씀드렸었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자면…….”

그러고는 안쪽 주머니에 넣어 뒀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바탕 화면에 나와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하나 실행했다. 그러고는 강태한에게 보여 주듯 화면을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이렇게 거의 완성이 된 상태입니다.”

“…이게 전에 부탁드렸던 그거군요?”

“예. 일단은 임의로 데이터들을 넣어 놓은 상태인데… 반대로 말하면 선생님 쪽에서 데이터만 좀 수정하시면 지금 당장도 기능은 할 겁니다.”

기존의 예약 방식이었던 전화 예약을 어플리케이션.

지난번 장태현 회장과 만났을 때 부탁했었던 내용인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완성된 모양이었다.

강태한은 장태현 회장의 손에 쥐인 화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흥미를 띤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제가 직접 건드려 봐도 되나요?”

“아, 물론입니다. 애초에 개발용으로 사용 중인 스마트폰이거든요. 얼마든지 상관없습니다.”

건네받으라는 듯 스마트폰을 앞으로 내미는 장태현.

품속에서 꺼내기에 개인 스마트폰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강태한은 사양하지 않고 건네받은 후, 화면을 누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퀼리티가 좋네요?”

강태한이 이쪽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관심이 좀 생기면서 다른 비슷한 어플리케이션들을 다운받아 훑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펴보면서 그가 느낀 것은, 어플리케이션의 퀼리티가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라는 것.

잘 모르는 자기가 봐도 깔끔하고 편리하게 잘 만들었다 싶은 것도 있었고, ‘고등학생이 수행평가 과제용으로 만들었나’ 싶은 것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강태한이 살펴보고 있는 이 어플리케이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 쪽에 속하는 수준의 퀼리티였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디자인.

간소하면서도 필요한 건 다 갖춰진 인터페이스.

거기에 가장 중요한 예약 신청 기능도, 적어도 지금 강태한이 보기에는 굉장히 편리해 보이는 구조였다.

먼저 잡혀 있는 예약들을 확인하는 것도, 특정 시간대에 어떤 안마사들의 예약이 비어 있는지도, 그냥 몇 번 눌러보기만 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방금 장태현 회장이 직접 말했듯 여기에 나와 있는 건 모두 임의로 입력한 데이터값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지만… 제대로 작동을 한다는 게 중요하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어떠십니까?”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네요.”

이게 자본과 기술력의 힘이라는 것일까.

강태한은 결코 빈말이 아닌, 진심 그대로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꼴이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어찌 됐거나 닭 한 마리는 기가 막히게 잡아 놓은 느낌이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아,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만, 원장님이 원하신다면 선결제나 계약금 시스템도 도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일단 알아만 두겠습니다.”

이미 기대를 웃돌아도 한참 웃도는 상황인데, 여기에다 기능을 더 얹어 줄 수도 있다는 말에 강태한은 짐짓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제가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쪽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 퀼리티의 완성품이 그리 흔하지 않다는 건 강태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그냥 부탁 한 번 하고 받게 된 상황.

딱히 대가를 지불한 것도 아니었기에, 강태한으로서는 여러모로 부채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하나 그런 강태한의 반응에 장태현은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 회사가 얻은 이익이 얼만데요.”

직접적으로는 자회사 바디케어의 안마 의자에서부터 간접적으로는 인도의 대형 정유 플랫폼 수주 건 그리고 연이은 호재들로 인한 폭발적인 주가 성장까지.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대청그룹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게다가 저도 얼마 전에 전달받은 내용인데… 이번에는 에이플러스와의 협업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지 않습니까.”

후후후후.

장태현은 참기 어려운 듯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아직 자세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차세대 에이워치와 에이폰 모델의 헬스 어플리케이션에 이쪽 안마 의자와의 연동 기능을 넣고 싶다, 그런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저쪽에서 먼저 제안을 건네 왔으며, 이쪽에서도 신제품 개발에 관련 기술들이 필요한 참이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절실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었는데, 알아서 문 앞까지 직접 배달된 느낌이라고 할까.

게다가 다른 회사도 아니고 그 에이플러스이고, 그것도 주력 제품군의 차세대 모델 개발에 참여하는 셈이다. 이것만 한 대형 호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회사 일도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저희 아버지와 제 은인이기도 하시지 않습니까.”

다만 장태현이 강태한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런 이득적인 부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조금 쑥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로서는 뭐라도 도움이 될 때마다 그저 기쁠 뿐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선생님께서는, 조금만큼이라도 부담을 가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까.

강태한은 왠지 모르게 만족스러워 보이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그 미소를 가리려는 듯 조심스레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 * *

“…후우우우.”

침대와 책상이 공존하는 작은 방 안.

그곳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최성현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나지막하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떠 냈다.

‘…좋아.’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머리도 차분하고, 몸도 평온한 기분이다. 자신의 상태를 체크한 최성현은 책상 위에 올려놨던 병의 뚜껑을 열고는, 정량을 재듯 천천히 컵에 따라 한 번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액체. 그와 동시에 입안 가득히 산삼의 짙은 쓴맛이 퍼져 나간다.

원래였다면 딱 이 정도 감상에서 끝날 일. 그냥 ‘입에 쓰니까 몸에는 좋겠지’ 정도로 마무리되었겠지만, 새롭게 기감이 열린 최성현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진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칡차랑은 느낌이 완전 다르긴 하네.”

목을 넘어가자마자 자연스레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영기. 단지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혈도 내에 영기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느낌이다.

하나 그러면서도 그 느낌이 거북하지는 않다.

딱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절묘하게 양이 조절되어 있다고 할까. 최성현은 그 상태에서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으려는 듯 두어 차례 자세를 고쳐 앉고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단은… 내면에 집중을 하고.’

평소에는 미세하게만 느껴지던 혈도의 감각에 집중하고, 조금씩 안쪽으로 감각을 확장해 나간다.

처음보단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낯선 감각.

마치 피부 표면을 감싸고 있던 촉감을 안쪽으로 뒤집어 놓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다만 이 상태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안 된다.

마치 물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듯, 감각이 점점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것을 방관하듯 천천히 지켜본다.

그렇게 되면.

희미했던 혈도의 감각은 보다 선명해지고, 그 안을 타고 흐르는 기의 흐름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게 된다. 방금 전 마신 영약의 영향인지, 혈도의 순환은 평소보다도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특정한 부분에 기를 모은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강태한이 말해 준 부분은, 다름 아닌 배꼽 밑.

이곳은 최성현도 예전에 느껴 본 적이 있는, 일반적인 혈자리들보다도 훨씬 크고 넓은 공간이 존재했다.

이곳을 하단전이라고 부른다 했었던가.

조용히 정신을 가라앉히고 내면에 집중한 상태에서, 그 하단전에 기가 모여드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요하게 시간을 보낸다.

사람의 의지에는 힘이 있다.

물론 그 힘이라는 게 외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이고, 심검(心劍)의 영역에 다다라야 겨우 이뤄 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본인 스스로의 내면에서는 상당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요소다.

그리고 그 의지라는 건 결국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직접 마음대로 의지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온전히 내면에 집중한 상태로 계속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면, 어느 정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 최성현이 의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실제로 그 상태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혈도 전체에 흩어져 있던 영기들이 하나둘씩 하단전으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준비 과정일 뿐이다.

강태한이 제시한 목표는 직접 영기를 움직이는 것.

준비가 갖춰졌다고 판단한 최성현은, 그 상태에서 하단전의 영기를 조심스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히는, 시도하려고 했다.

“…아.”

하지만 그 순간 모여 있던 영기가 흩어지더니, 물풍선이 터지듯 다시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단번에 집중이 깨진 최성현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며 눈을 뜨고는,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쉽지는 않구만.”

뭔가 감이 잡힐 듯하면서도 전혀 모르겠는 느낌.

마치 물을 집게로 집어 들려고 하는 것처럼, 기를 끌어올리려 시도하는 순간 스르륵 흘러내리고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후우우우.”

어찌 됐거나 횟수를 거듭해 갈수록 뭔가가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며, 최성현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내쉬며 내면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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