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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90화 (19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90화

“으하.”

천마 안마의 안쪽에 위치해 있는 사무실.

그곳에 있는 소파에, 최성현은 가벼운 탄성을 내뱉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방금 전에 운동을 하고 목욕까지 하고 난 참이라 그런가, 그의 얼굴에는 묘하게 나른한 기색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때 느낌이 참 노곤하면서도 개운하단 말이지.”

강태한을 따라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몇 개월.

이제는 나름 몸에 습관이 배어, 강태한이 없어도 혼자서 운동을 다니고 있는 최성현이다.

예전에는 ‘안 그래도 피곤한데 뭐 하려고 시간까지 써 가면서 운동을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르다.

오히려 몸을 풀어 주지 않으면 찌뿌둥하다고 할까, 심지어는 쉬는 날에도 자취방 근처 헬스장에서 몸을 풀어 주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운동으로 땀을 빼 주고, 바로 위층의 사우나에서 시원하게 목욕까지 하고 나오면… 그야말로 깔끔한 하루의 마무리. 이제 이러고 집에 가서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소 최성현의 일과였다.

다만, 당연하게도 이 모든 일들은 최성현이 퇴근을 한 이후에 이뤄지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 사무실에 앉아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슬슬 시작해도 되려나? 아니면 좀 더 쉴래?”

최성현이 한참 노곤한 숨을 내쉬고 있던 와중, 맞은편에 앉아 있는 강태한이 넌지시 물었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최성현의 얼굴에 기합이 들어가더니,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꼿꼿이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니. 첫날부터 설렁설렁할 수는 없지.”

오늘 낮에 강태한과 약속했었던 이야기.

일정 기간 내에 필요한 실력을 갖추기만 한다면, 다음 주에 찾아오는 정가인의 안마를 최성현에게 맡기겠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어찌 보면 굳이 들어줄 필요가 없는 일이다.

본래 공과 사는 구분되어야 하는 것. 하지만 이건 최성현의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사적인 부탁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강태한은 딱 잘라 거절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제안했다. 그것만으로도 최성현에게는 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작 본인이 첫날부터 나른하게 늘어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성현은 자세를 고쳐 잡더니, 의욕이 충만한 눈빛으로 강태한을 쳐다보았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자세부터 잡아 볼까?”

“알았어.”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천천히 눈을 감고는, 몸에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모아 배꼽 아래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

방금 전까지 충만해져 있던 의욕마저 가라앉은 것이, 말 그대로 평온하게 보이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무협에서 명상이나 운기조식에 들어간다 하면 가부좌의 자세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강태한 또한 가부좌의 자세를 종종 이용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가부좌는 거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상당히 불편한 자세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약간 상급자의 자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가부좌를 트는 것도 내면에 집중하기 위한 것인데, 정작 그 자세가 불편하여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면 어불성설이지 않겠는가.

그럴 바에는 이런 식으로, 되도록 편안한 자세를 잡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편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적성이 좋은 편이란 말이지.’

자세를 잡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한 최성현의 모습.

물론 그게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부 혈도 흐름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다면 얼추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꽤 제법인 최성현의 모습에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간략하게 시범을 보여 줄게.”

“어… 시범을?”

“아니, 직접 볼 필요는 없어.”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눈을 떴으나, 강태한은 손을 저으며 그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그의 뒤로 천천히 다가가, 그의 목 뒤쪽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냥 직접 체험해 보면 되는 거니까.”

그러고 난 후, 강태한은 그 상태로 최성현의 혈도를 활성화시켰다. 내부의 감각을 좀 더 끌어 올리고, 그 상태로 기의 흐름을 증폭시켰다.

“어억……!”

“계속 집중해.”

그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자극.

최성현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고통이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으나, 강태한은 그런 그를 다그치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그 느낌을 느끼는 것 자체가 시범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숨이 가빠 와…….’

한편, 최성현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이 낯선 감각에 당황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기감이 열리고 단련되어 본인의 혈도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건 또 생소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기존의 상태가 자연스레 혈도를 따라 기가 흐르던 느낌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약간 인위적인, 마치 펌프로 끌어 올리는 듯한 느낌이 난다.

“중단전에서부터 천천히 순환시킨다.”

그러던 와중, 강태한은 그 말과 함께 목에 얹은 손에 살짝 힘을 더했다. 그와 동시에, 최성현은 온몸에 흐르던 기운들이 가슴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덩어리진 느낌 그대로 그의 몸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가슴에서부터 시작해 복부, 하단전을 거쳐, 혈도를 돌아 그의 양손까지.

만화나 소설 같은 곳에 나오는, ‘기를 끌어모은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아니, 그런 느낌인 게 아니라 그 자체였다.

최성현은 자신의 두 손에 충만해진 기운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씰룩거렸다. 뭔가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은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자, 여기까지.”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강태한이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두 손 가득히 모여 있던 기운이 서서히 흩어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증폭되었던 기의 흐름과 기감 모두 진정시킨 이후, 강태한은 최성현의 목 뒤에 얹어 놓았던 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허어어억……!”

그 순간, 최성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은 사람처럼 격한 호흡이었다.

진정시키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 여파가 남아 있었던 것. 최성현은 심호흡을 반복하며 애써 호흡을 진정시켰고, 강태한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후우우.”

“어땠어?”

그렇게 좀 호흡이 진정된 기색이 보였을 즈음.

강태한은 넌지시 최성현에게 소감을 물었다. 최성현은 잠시 대답을 미룬 채,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엄청 신기했어.”

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미 꽤 지난 일이고, 기감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는, 이 정도 힘은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불가능했던 것도 가능해질 것 같은 느낌.

말 그대로 힘, 힘이다. 어찌 보면 이 섬세한 감각에 비해 너무 조잡한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것만큼 가장 적절한 표현도 없었다.

단순하게는 물리적으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부터 해서, 이 자체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기(氣)라는 건 모든 사람의 몸속에 흐르는 개념이지만…….”

그러고는 강태한은 최성현에게 보여 주듯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 손에는 은은한 푸른색 빛이 표면을 둘러싸듯 감싸여 있었다.

“인위적으로 다뤄 내면, 단순히 몸에 생기를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사람의 손이 빛을 발하는 꽤나 이질적인 모습.

누군가 본다면 속임수건 자신의 눈이건 어느 한쪽을 의심할 만한 일이다. 하나, 지금의 최성현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만… 강태한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최성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아.”

‘기’라는 것을 이제 나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완전히 다른 영역을 인지한 느낌.

그리고 그 영역은 아찔할 정도로 넓어서, 마치 좁은 동굴에서 빠져나왔더니 광활한 평야의 수평선을 발견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다행이네. 그럼 첫걸음은 디딘 셈인가.”

그런 최성현의 반응에 강태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최성현이 되물었다.

“첫걸음?”

“이게 내가 너한테 요구하는 조건이거든.”

“…방금 했던 거를?”

최성현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자기가 직접 겪어 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반응에 강태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방금 전 걸 그대로 하라고 하지는 않지. 그냥, 인위적으로 기의 흐름을 다룰 수만 있으면 돼. 조금이라도 말이지.”

최성현은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초심자의 위치.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이 그런 사람에게 지나치게 무리한 이야기를, 그것도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내세울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 그렇게 말이지.”

다만 최성현에겐 그것도 충분히 막막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아직 몰랐으니까 말이다.

체내의 혈도를 파악하고 기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어 낼 순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조절하라는 것은, 최성현에겐 혈관 속의 혈류를 조절해 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들리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처음에도 말했지만, 충분히 가능하지.”

다소 자신감이 없어진 최성현의 말. 반면, 강태한은 그 말에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아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한은 무림에 있는 동안 직접 후계자나 제자를 둔 적이 없었고, 후진 양성을 해 본 경험도 없었다.

다만 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르며 갖가지 무공들을 익혀 왔었고, 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재능과 잠재력을 헤아리는 안목만큼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봤을 때, 최성현에게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마냥 쉬운 일은 아니고, 이 정도 기간 안에 달성한다면 무림에서도 괜찮은 성장 속도라 할 수 있겠으나… 그만한 의욕과 동기도 있어 보였으니까.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최성현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고민해 봤자 소용없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세한 건 모르겠다. 하지만, 강태한이 불가능한 걸 시킬 만한 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뭐부터 하면 돼?”

“내면에 집중한 상태로, 기를 모은다는 생각을 계속해 봐. 일단… 여기쯤으로 모은다는 이미지를 상상하면 도움이 될 거야.”

강태한은 자신의 배꼽 아래를 짚으며 말했다. 일반적으로 하단전이 위치해 있는 곳. 내공을 쌓아 두는 근원이자 체내의 기가 자연스레 모여드는 위치였다.

“그렇게 하면 돼?”

“뭐, 일단은 그렇지. 그리고…….”

그러면서 강태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구석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거기서 1L 정도 용량이 되어 보이는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거 마시면서 해. 도움이 될 거야.”

며칠 전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넣어 놨던 물건.

그 안에는 흐릿하게 갈색빛을 띄고 있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병을 건네받은 최성현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뭔데?”

“산삼 달인 거.”

원활한 후진 양성에는 좋은 영약이 필수.

제자를 키워 본 경험은 없지만, 그래도 그 정도 상식은 알고 있는 강태한이었다.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 최성현의 반응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흐아암.”

이른 아침, 일찍부터 눈을 뜨는 강호연.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한 차례 하품을 하고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는, 곧바로 잠을 떨쳐 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양치부터 하고, 세수도 하고.

그러는 동안 신문의 헤드라인도 좀 훑어보고.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된 아침의 일과다. 일련의 과정들을 마친 그는, 순식간에 아침까지 차려 먹고는 출근할 준비를 갖췄다.

“…요즘에는 기운이 좀 남아돈단 말이지.”

하지만 아무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라고는 해도, 원래는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점심 장사를 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매일 그 준비들을 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뿐이다.

더군다나 휴일까지 없었으니,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고 손님이 없을 땐 가게 주방 의자에 앉아 쪽잠을 청하기도 했었던 나날.

하나, 요즘에는 달랐다.

기운이 넘쳐흐르는, 아니 남아돈다고 해야 할까.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은 몇 배로 늘어났고, 당연히 하루에 들어오는 주문의 숫자도 부쩍 늘어나 쉴 새 없이 웍을 흔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찌된 게 그럼에도 피곤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쓰면 쓸수록 개운해지는 듯한 느낌.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가게 일을 쉬는 수요일에도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 조 사장과 함께 인근 산들의 봉우리를 등산할 정도였다.

게다가 더욱이 신기한 것은, 어찌된 게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이런 느낌이 더 강해진다는 것.

아들, 태한이에게 안마를 받았을 때부터 건강이 부쩍 좋아졌지만, 그 뒤로도 몸에 활기가 점점 더 늘어 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나야 좋은 일이긴 한데… 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신발을 신고 있던 강호연.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시 신발을 벗고는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냉장실 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걸 깜빡할 뻔했네. 아들이 챙겨 준 건데.”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진한 갈색빛의 액체.

이것저것 넣고 끓인 거라고 했었던가. 잘 기억은 안 났지만, 그래도 아들 녀석이 몸에 좋은 거라며 챙겨 줬으니 매일 꾸준히 한 잔씩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후으.”

시원하게 한 컵을 그대로 들이켠 강호연.

그는 짧은 탄성을 터트리고는, 다시 냉장실에 유리병을 넣고 신발을 신으러 걸어갔다.

안마사들의 몸에 자연스레 기(氣)가 쌓이고, 익숙해질 수 있도록 가게에 영약을 배치해 놨던 강태한.

목적은 약간 다르지만, 그 계획은 그의 유일한 가족, 아버지에게도 예외 없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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