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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80화 (180/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80화

“아… 방금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나대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본인의 생각을 말한 것뿐이었지만, 그게 다른 사람 귀에, 그것도 위의 사람들에게 들려서 좋을 게 없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다.

“그게, 그리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말이죠. 저희 협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라.”

그렇기에 나대원은 한번 말을 돌렸다.

장우영 회장은 협회의 중요한 후원인이다.

하나, 결국은 외부인이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협회 내부 일까지 간섭하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되니까.

물론 이런 VIP에게 굳이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좋을 건 없겠지만… 솔직히 말해, 자기가 회장님과 자주 마주칠 만한 직급도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은 단순한 돌발 상황일 뿐.

“그래? 그렇구만.”

아니나 다를까, 장우영 회장은 적당히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이 돌발 상황도 끝이 나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려던 찰나.

“그럼 구태여 내가 직접 말을 하도록 하지.”

나대원의 생각과는 달리, 장우영 회장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기분 탓일까, 왠지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압도되고 있었다.

“아… 저, 회장님?”

그렇게 바로 앞까지 다가온 장우영. 나대원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당황한 목소리고 새어 나왔다. 그 분위기에 압도된 탓인지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였다.

“왜, 왜 그러시는지…….”

“솔직히, 자네가 평소 어떤 태도로 근무를 하건 간에 나한테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애초에 내가 관리하는 곳도 아니고 말이야.”

장우영 회장은 올림픽 관련 사업에 오래전부터 후원을 해 왔다. 단순히 돈만 들인 것이 아니라 나름의 애정과 관심을 보여 왔으며, 꽤나 큰 기여를 했다.

하나, 어쨌거나 그는 외부인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외부인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그림이다. 설령 그게 바른 말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본인은 여기서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 그리고 그런 입장일수록 말과 행동을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장우영은 굳이 말을 꺼내더라도, 최대한 점잖은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내 주변 지인들을 깎아내리는 걸 듣고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넓은 사람도 아니라서 말이지.”

하나 저쪽에서 선을 넘어 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게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저쪽이 알고 그런 것이건 모르고 그런 것이건, 그런 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저쪽이 선을 넘어왔다는 것이고, 본인의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졌다는 것이다.

‘주변 지인을 깎아내렸다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애써 머릿속을 굴려 보는 나대원.

그게 누구를 말하는지 추측해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방금 전 이야기에서 언급된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아니, 일개 안마사가 대기업 전 회장이랑 연줄이 이어져 있다고……?’

그것도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꽤나 깊은 사이인 모양이다. 평소 점잖은 모습만 보이던 분이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고 계시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그 안마사 선생님께서 회장님 지인분이신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냥 단순한 지인도 아니지. 나한테는 은인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장우영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나 입 꼬리만 슬쩍 올라가고 눈에서는 여전히 형형한 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오히려 왠지 아까 전보다 더 두려워지는 표정이었다.

“이 정도로 적당히 알아들었으면 하는구만.”

탁, 탁. 장우영은 나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점잖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장우영의 손 자체가 큰 탓일까, 어깨를 두드리는 손맛이 꽤나 묵직했다.

“되도록이면 그 얄팍한 생각머리도 좀 고치고 말이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으면 하다못해 진심으로 감사할 줄을 알아야지, 수작을 부리면 쓰나.”

“죄, 죄송합니다…….”

장우영은 손으로 쥔 어깨를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냥 가벼운 제스처 수준이었으나, 그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나대원은 머리가 같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럼 이제 그만 가 보게.”

“알겠습니다!”

긴장이 들어간 목소리로 즉각 답하고는 자리를 벗어나는 나대원. 평소 사무실에 늘어져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빠릿빠릿한 모습이었다.

하나 그렇게 좀 멀어졌을까.

나대원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슬쩍 장우영 회장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저… 회장님.”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오늘 일은 제가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음? 생각하지 못한 예상외의 모습.

하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 장우영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다른 분들에게 말씀은 안 해 주셨으면…….”

“내 알아서 할 테니 들어가게.”

장우영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 눈가에 다시 힘줄이 돋아난 걸 본 것일까, 나대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 원 참. 저런 인간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똑같게 행동하는 건지.”

장우영은 작은 공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기업까지 일궈 낸 장본인이다. 당연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봤으며,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보아 왔다.

하나 저런 부류의 인간들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장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저, 회장님.”

그때쯤, 앞에 있던 남자가 슬쩍 말을 걸었다.

그동안 나대원한테서 세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던 우대석 팀장이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말인가.”

“강 원장님에 대한 대우 개선 말입니다. 솔직히 제가 말하는 정도로는, 저 인간이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게 뻔해서 말이죠.”

장우영은 잠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우 팀장인 모양이구만.”

“저를… 아십니까?”

“알지. 선수들이랑은 종종 식사도 하니까 말이야.”

최아람도 그렇고, 후원하는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언급되던 이름이다. 항상 호평을 받던 인물이었기에 신기해서 기억해 두고 있던 인물.

직접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냥 딱 보니까 이 사람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대석 팀장의 당황한 듯한 반응에 장우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곧은 심성을 가진 양반이군.’

호평 일색인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으니 그 전에도 ‘좋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다.

그게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눈빛을 봐도 딴생각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냥 순수하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보는 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장우영은 더욱 그랬다. 사회적 입지가 높다 보니, 단순한 감사 표현 하나에도 좀 더 잘 보이려 하는 흑심이 끼게 되는 것이다.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우대석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우대석 팀장이라. 운영 팀을 담당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맞습니다.”

장우영의 말에 우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장우영은 한차례 침음을 흘리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여기 선수촌장이랑 저녁 식사나 같이 하기로 했는데, 혹시 함께 갈 생각이 있는가?”

“…네?”

그 말에 우 팀장은 어안이 벙벙한 반응을 보였다.

선수촌장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이곳, 진천선수촌을 책임지는 장(長)이자 총책임자다.

말하자면 우두머리라고 할까.

다만 선수촌 자체가 체육회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선수촌장 또한 매우 높은 직급에 있으며, 당연하게도 우 팀장에게는 얼굴도 몇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아득히 높은 상관이다.

그런 상관과의 식사 자리에 동석을 한다니.

어찌 보면 우대석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별일은 아니네. 애초에 공적인 자리도 아니고, 그냥 사적인 자리니까 말이야.”

장우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방금 전의 입꼬리만 슬쩍 올라가는 웃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미소였다.

‘외부인이 굳이 내부 일에 간섭하는 건 그림이 영 좋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인재가 있다면야, 그 사람을 소개해 주는 것 정도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결정하는 건 그 친구 역할이기도 하고.’

본인은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 줄 뿐.

이 사람의 사람됨을 보고 주요 인사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지 결정하는 건 선수촌장의 역할이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그런 자리에 끼기에는 좀…….”

“으음. 듣기로는 평소 선수들의 애로 사항에 관심이 많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부담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거절을 하려던 우 팀장이었으나, 장우영 회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우 팀장의 눈빛도 순간 바뀌었다.

평소 보고를 올려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던 부분들. 개선은커녕 조치도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했던 것들.

장우영의 말만 들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머릿속에 그런 것들이 몇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같이 선수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그런 부분들이었다.

“나는 제안을 할 뿐이네. 선택은 자네의 몫이야.”

그 반응에 장우영이 덧붙이듯이 말했다.

얼핏 보기엔 느슨하게 풀어 주는 듯한 말이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박차를 가하는 역할이 되었다. 우 대석은 결심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기껏 초대해 주셨으니, 감사히 가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그 모습이 마음에 든 듯, 장우영 회장이 그의 어깨를 탁, 탁 두드리며 말했다. 분명 나대원 때에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터인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 * *

“근데, 세아 씨.”

강태한의 집 근처에 위치해 있는 한 레스토랑.

방금 앉았는지 한참 메뉴를 둘러보고 있던 강태한은, 맞은편에 앉은 유세아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원래 오늘 촬영 있었던 거 아니었어요?”

사실 원래는 없었던 약속이다.

갑자기 유세아 쪽에서 ‘오늘 태한 씨 집으로 놀러가도 돼요?’라고 카톡을 보내 와서 갑자기 성사된 약속.

물론 그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촬영을 한다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니 호기심도 생기고 걱정도 좀 드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있었었죠. 그것도 해외 로케로 있었었죠.”

한편 강태한의 말에 유세아는 과거형으로 답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출국 수속을 마치고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타 있을 시간이다. 그런 그녀의 말에 강태한이 애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배역에서 짤리셨다든가?”

“하하하. 재밌는 말을 하시네. 몇 년 전 신인 배우였을 땐 그런 일도 좀 있었는데, 요즘에는 없어요.”

걱정 어린 강태한의 목소리에 유세아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냥 현지 쪽이랑 이야기가 안 맞는 모양이에요. 뭐, 종종 있는 일이에요. 아무래도 중간에 업체가 몇 개 끼다 보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거죠.”

“으음… 좀 일이 꼬였나 보네요.”

“그렇죠.”

원래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지라, 1:1로 진행되는 계약도 일이 엉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데 중간에 다른 업체를 끼운다면야,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강태한은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인도 발리우드 쪽에서 자주 사용하는 곳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쪽이랑 겹쳤다나. 듣자하니 먼저 하기로 한 팀이 일정이 늘어지면서 그랬다는데, 뭐 이야기가 복잡한가 봐요.”

유세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컵에 담긴 물을 흔들며 말했다. 배우들이야 뭐, 촬영 일정이 좀 늦춰지는 정도지만, 감독님이나 스탭들이 고생하고 있을 게 뻔했기에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뭐, 어쨌거나… 갑자기 시간이 남게 되어서요. 태한 씨가 보고 싶어지기도 해서, 연락을 했죠.”

“잘하셨네요.”

그런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어쨌거나, 연인이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근데 여기 와인들이 좀 비싸네요.”

그러던 중, 메뉴를 둘러보고 있던 유세아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강태한의 눈치를 같이 살피고 있었다.

“그런가요? 다 이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아뇨, 비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식사는 여기서 하고… 술은 이따가 태한 씨네에서 따로 마실까요?”

아하. 유세아의 말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뭔가 자연스럽게 말해 놓고 이쪽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습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따가 집으로 오는 건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네? 아, 아니…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여기 술이 비싼 것 같아서요!”

“저도 다른 말은 안 했는데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강태한.

반면 유세아는 귀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강태한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음?’

그때쯤, 테이블에 올려 뒀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군가에게서 도착한 전화. 국제 전화인지 길게 나열된 수신 번호 위에는, 다름 아닌 마르케시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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