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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79화 (179/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79화

“그럼 됐군요. 팀장님이 날짜를 좀 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양쪽 일정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건 팀장님이실 테니까요.”

“아, 그야 물론이죠!”

강태한이 웃으며 넌지시 묻자, 우 팀장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받는 입장은 우 팀장 쪽. 그렇기에 먼저 일정을 잡는 건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만큼 적극적이기도 하고, 일정을 잡는 순간부터 일이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 도중에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꽤 줄어들기 때문이다.

친구끼리 ‘언제 밥이나 한 끼 먹자’라고 말하는 것과 ‘이번 주 금요일에 저녁이나 한 끼 하자’라고 말하는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안 그래도 자기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낼까 하던 참이었는데, 강태한이 먼저 말을 해 주니 그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럼, 혹시 원장님은 쉬는 날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수요일이랑 목요일이 쉬는 날입니다.”

“그 외에 일정은 딱히 없으시고요?”

“흐음… 이번 달은 군데군데 약속이 있어서 좀 힘들 것 같고. 다음 달로 잡아 두는 게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선수들이랑 조율을 한번 해 보고 꼭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우 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방금 전 이야기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최아람이나 이미 다녀온 선수들의 경험담을 보면, 사실상 이게 가장 중요한 안건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저… 근데, 강 원장님.”

그렇게 메모를 마치고 난 후.

문득 어떤 의문이 들었기에, 우 팀장이 강태한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이렇게까지 잘해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제가 죄송해서 말이죠. 뭔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최대한 맞춰 드리고도 싶고.”

솔직히 강태한이 그들에게 이렇게까지 손을 빌려줄 이유는 없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곳이지만, 협회의 진행 방식은 굉장히 복잡하고 답답하다.

이것저것 절차를 따지다 보면 단순한 금전적 보상조차도 제대로 준비하기 힘들 것이 뻔하다. 그리고 강태한이 그런 걸 짐작하지 못할 사람이라고는, 우 팀장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라…….”

한편, 우 팀장의 말에 강태한은 짐짓 생각에 잠기는 듯한 시늉을 했다. 물론, 이유라면 있다.

이번에 강태한이 안마하는 대상은, 한 명 한 명이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들이다. 적어도 국내에선 특정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향후 스포츠 업계 곳곳에서 활약을 펼칠 것이다. 비단 올림픽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대표 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각자의 영역에서 본인들의 재능을 펼칠 것이란 말이다.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예를 들자면, 코치와 감독.

어딘가 대학의 교수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나름 인기가 있는 종목이라면 선수 생활을 계속해 나갈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업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영향력은 종목에 따라, 개인에 따라 나뉘겠지만, 어찌 됐거나 ‘국가 대표’ 출신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중심 인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두는 것은, 단순히 몇 명에게 선행을 베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스포츠 업계에 인지도를 쌓아 두는 셈이 된다.

물론 지금의 천마안마는 이미 손님들이 꽉꽉 들어차 오히려 손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애초에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진행하는 일이 아니었다.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될 터.’

언젠가 하나둘씩 지점을 늘리면서 뻗어 나가기 시작할 때, 이것이 도움이 될 날이 올 것이다.

말하자면 브랜드의 이미지를 미리 구축해 놓는 셈이라고 할까. 하다못해 진천 선수촌에 입점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크게 이유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만 이런 내용들을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

바라는 게 있다면 직접 말을 꺼내는 것도 때로 나쁘지 않다만,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말하지 않는 쪽이 더 큰 효과를 얻는 법이다.

애당초 그가 꺼낸 말도 마냥 없는 말은 아니었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새싹에 도움을 주는 건, 썩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자신의 손길이 닿은 새싹이 발화까지 해낸다면 더욱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얼핏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그 말을 꺼내는 강태한의 목소리와 얼굴은 꽤나 진중하고도 무게감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정말 넓으신 분이구나.’

그 때문인지 우대석 팀장은 저도 모르게 감동을 먹어 버렸다. 강태한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느껴 버린 것이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우 팀장은 감동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한때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선수들의 애로 사항이나 마음고생들을 십분 공감하고 최대한 들어 주려 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별다른 이유나 욕심은 없었다.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그냥 보기만 해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된다고 할까.

그냥 예전에 자기가 선수 생활을 할 때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유를 꼽으라 한다면.

올림픽이라는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실력을 갈고닦은 선수들이, 그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을 최대한 막고 싶었다.

다만 그동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었고, 그나마도 현역 코치진에서나 좀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외지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그로서는 새삼 반가우면서도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저 근데, 슬슬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다만 이야기는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강태한이 곁눈질로 슬쩍 시계를 쳐다보고는 넌지시 입을 열었던 것이다.

“곧 손님이 오실 시간이라서 말이죠.”

“아, 물론입니다. 이거 제가 너무 오래 있었네요.”

우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에 담긴 커피를 한 번에 쭈욱, 들이켰다. 그가 꽤 오래 앉아 있었다는 걸 말해 주듯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아, 이거 바쁘신 분을 너무 붙잡아 둔 게 아닌지…….”

“아닙니다. 어차피 점심시간이었는데요.”

“그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일정은 나오는 대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변경 사항이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우 팀장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왜인지 오늘 처음 만났을 때보다 좀 더 정중해진 듯한 분위기였다.

‘뭔가 필요 이상으로 고평가가 된 느낌인데…….’

단지 고마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좀 더 깊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 분위기의 변화에 강태한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뭐 나쁠 건 없나.’

강태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대전 동구에 위치해 있는 한하 호크스의 야구장.

원래 지금쯤이면 시즌 개막 시기의 관심도 살짝 시들해지고, 관중들의 숫자도 자연스레 서서히 줄어드는 시기였지만.

짝, 짝, 짝짝짝

“최! 강! 한! 하!”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응원 소리는, 말 그대로 주변 일대가 들썩거릴 정도로 격렬한 수준이었다. 가히 시즌 말 순위 결정전에 비견할 만한 정도.

“회차 넘어가기 전에 1점만 더 내자!”

“김태평 안타! 제발 안타!”

“한하 파이팅!”

그런 만큼 경기장에 찾아온 관중들의 숫자도 꽤나 많다. 그야말로 활기찬 응원 분위기. 한하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요 근래 한하의 팬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하가 무려 시즌 1위를 달성하고 있었으니까!

지난 시즌 말에 뒤늦게 폭발적인 성적을 뽑아 내더니, 이번에는 시즌 초부터 연승으로 시작해서 성공적으로 1위의 자리에 안착했다.

물론 아직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하의 팬으로서는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크흐! 뒤에서 일등만 하던 한하가 일등이라니!”

“솔직히 난 아직도 어리둥절하다. 이게 맞나 싶네?”

얼마나 꿈만 같은지 팬들도 신기해하는 상황! 다만 응원의 열기가 뜨거운 것은 한하뿐만이 아니었다.

짝, 짝, 짝짝짝

“무! 적! 도! 원!”

오늘 한하와 함께 경기를 치르는 어웨이 팀.

도원 드래곤즈를 응원하러 찾아온 관중들의 응원 소리 또한, 홈팀에 밀리지 않는 기세다.

이번 시즌에 가장 주목을 받는 팀은 한하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 시즌 자체가 역대급이었다.

한하 못지않게 다른 팀들도 역량이 잔뜩 올라온 모습을 보여 주면서 경기력 자체가 한껏 끌어올려진 상태인 것이다.

원래는 경기 한 번에 볼 만한 장면이 적으면 서너 개, 많아도 예닐곱 개 정도에 불과했다면.

요즘은 하이라이트급 장면들이 매회마다 나오는 수준이고, 그때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경기 자체가 흥미진진해진 것이다.

말 그대로 보는 맛이 있다고 할까.

야구에 관심을 잃었던 팬들도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어찌 된 게 시즌 초 때보다 지금이 관중 숫자가 더 많아진 수준이었다.

“아, 요즘 야구할 맛나네.”

한편, 구석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한하의 김태평 선수. 휙휙 좌우로 허리를 돌리고 있던 그는, 마침 들려오는 ‘최강한하’란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팬들이 즐거우면 선수들도 즐겁다. 한껏 분위기가 들뜨고,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평소보다 힘이 나는 느낌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시즌 각 팀의 경기력이 역대급이라는 것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선수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필드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팽팽하다고 할까.

여기에 부담을 느끼는 선수들도 꽤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김태평은 이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매일매일 승부욕이 불타는 느낌인 것이다.

“태평이 형! 슬슬 오시랍니다!”

“그래, 가고 있다.”

이제 다시 타석 위에 올라갈 차례.

김태평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 타석은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잠시 후.

[아! 김태평 선수! 깔끔하게 쳤습니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구!]

[넘어가나요, 넘어가나요!]

[아슬아슬하게 팬스를 넘어갑니다! 김태평 선수, 이번 시즌 몇 번째 홈런인가요!]

허겁지겁 주루를 하던 김태평은, 공이 넘어가는 걸 보자마자 조깅을 하듯 가벼운 뜀걸음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정말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음… 보상?”

진천 선수촌에 위치해 있는 한 건물 바로 앞.

육상용 트랙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한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못마땅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쪽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어?”

“아뇨. 그렇지는 않았는데요.”

“그럼 우리가 먼저 말을 꺼낼 필요도 없잖아?”

우 팀장의 말에 그 남자, 기획부의 부장을 맡고 있는 나대원은 아리송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마치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쪽에서 호의를 베풀어서 손을 빌려주시는 건데, 나름 성의를 보여야…….”

“생각 좀 해 봐, 우 팀장.”

나대원은 답답해하며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 천마안마라고 했었던가?”

“네. 강태한 원장님입니다.”

“그래. 자네 말마따나 그 사람이 호의를 베푼 거 아니야. 뭐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야? 아니잖아.”

“…그렇죠.”

“그러면 우리는 고맙습니다, 하면 되는 일이지, 거기서 뭐하려고 일을 더 키우느냔 말이야. 굳이 일거리 늘릴 필요가 있어?”

그의 말에 우대석 팀장은 순간 말을 잊었다.

이런 사람인 건 알고 있었다. 비슷한 반응이 나올 거라 알고 있었다. 다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아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자기 예상을 훌쩍 넘어 버리는 나 부장의 반응에 우대석은 한동안 벙쪄 있었다.

“그러기보다 자네는 그 누구야, 강태한 원장? 그 사람한테 부탁이나 좀 더 해 봐. 자주 와줄 수는 없냐고. 물어봐서 손해 볼 거는 없잖아.”

“…아니, 부장님.”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대석은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탁, 집어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거기 자네, 기획부장이었던가?”

바로 뒤 건물의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 꽤 가까이에 있었던 듯, 들리는 목소리가 크다.

약간 나이가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 한데 왜일까, 표정을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목소리에는 약간 분노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엇, 회장님!”

고개를 돌린 나대원은 곧바로 담배를 놓고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름 아닌 대청그룹의 장우영 명예회장.

예전부터 협회를 후원하고 있는 큰손 중의 한 명으로, 협회에 막대한 이바지를 한 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역도나 핸드볼 같은 몇몇 종목들은 이분 덕분에 선수 육성이 가능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야말로 VIP 중의 VIP라고 할까. 평소 이쪽에 관심 자체가 꽤 많은 편이며, 당연히 협회 윗분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밀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후원하는 선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러 오는 건데, 일일이 말을 하고 와야 하나?”

어라? 순간 나대원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했는지, 장우영 회장의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 보였던 것이다. 분노를 떠나 적대감을 가지신 듯한… 그런 느낌.

“그보다, 방금 자네가 했던 말을 다시 들어 보고 싶은데 말이야.”

한편 장우영은 그런 나대원의 반응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잔잔했으나, 거기엔 여전히 분노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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