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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76화 (176/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176화

“하아,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김 코치는 쌓아 놨던 걱정을 터트리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국가 대표 선수들을 대체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선발된 직후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미 훈련이 한참 진행되어 호흡까지 맞춰 놓은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선수 교체보다는 사고를 당한 선수들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스태프진 대다수의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기적적으로 회복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실력과 기량조차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이니, 그로서는 그야말로 안도의 한숨이 절로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다른 애들도 차례차례 받고 오면 되겠다.”

부상을 입은 선수는 정가인뿐만이 아닌 상황.

물론, 정가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해서 다른 선수들도 이 정도로 큰 효과를 볼 것이란 보장은 없다. 원래 몸에 좋다는 약이나 보양식도 사람에 따라 약효가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런 가능성이 열린 것만으로도 김 코치로서는 그저 감사한 일이다. 슬슬 내부에서 선수 교체까지 고려해 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태권도랑 펜싱 쪽 애들은 어떻게 한대요?”

“그쪽에서도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기다리고 있더라. 네가 이 정도 효과를 보였으니, 아마 우리를 따라서 하나둘씩 보내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이 상황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김 코치뿐만이 아니다. 양궁 팀과 함께 사고를 당했던 태권도, 펜싱 팀도 같은 심정인 것이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이 소식을 가장 반길 만한 곳은 다름 아닌 펜싱 팀.

양궁이랑 태권도는 그래도 후보 선수 풀이 꽤 있어 교체를 고려할 수라도 있지만, 펜싱 쪽은 사실상 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표 선수들 외에는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모양이다.

“정말, 그 선생님 덕분에 다들 숨통이 좀 트이네.”

아직 그 안마사 선생님을 뵌 적은 없지만, 김 코치는 진심 어린 감사를 품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기적을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요즘에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시들해진 편이고, 국위 선양 같은 느낌도 흐릿해졌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양궁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양궁만큼은 압도적이라 할 정도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둬 왔고, 그만큼 타 종목에 비해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아 왔으니까.

그렇기에 어떻게든 성과를 거두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양궁 국가 대표 팀의 책임이었다.

말하자면 최소 목표가 금메달이라고 할까.

자칫해서 메달을 놓치는 참사라도 일어났다간, 대국민 사과라도 올려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김 코치는 그 안마사 선생님에게 깊은 감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 팀장님 덕분이기도 하죠.”

“아, 그야 그렇지. 따로 신경을 써 주신 우 팀장님이랑 최아람 선수 덕분이기도 하지.”

벤치에 앉은 정가인이 슬쩍 한마디를 끼워 넣자, 김 코치는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이 말하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듯한 시늉을 했다. 보이지 않는 두 사람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사 표시였다.

‘…근데.’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잠시 정적이 흐르던 상황.

그 정적 속에서, 정가인은 슬쩍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화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네.’

다만, 그 모습에 김 코치는 다소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얼굴에 표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 정가인인데… 지금은 싱글생글거리고 있었기 때문.

카톡을 하면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상황.

뭐 정가인과 엄청 오래 본 사이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짧게 본 사이도 아니다. 하나 정가인의 이런 모습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굉장히 낯설다고 할까, 생소하다고 할까.

김 코치가 이걸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도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누구랑 카톡하고 있는 거야?”

결국 김 코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실례일 수 있다. 엄연한 개인 생활의 영역이고, 코치라고 해서 이런 걸 물어볼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지 호기심이 매너를 이겼을 뿐.

“으음… 그러니까…….”

한편, 김 코치의 질문에 정가인의 양쪽 눈동자가 오른쪽 상단 구석으로 몰렸다. 변명과 거짓말을 떠올릴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반응이었다.

“그 가게, 천마안마의 안마사분이세요.”

“아하, 안마받을 때 만난 분이시구나?”

“…예, 뭐. 그렇죠. 일단은.”

정가인의 대답을 들은 김 코치는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후유증을 그렇게 깔끔하게 날려 줬으니, 두말할 것 없는 은인이지 않은가. 자기도 이렇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 정가인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라면 뭐, 아무래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아하하… 대답한 정가인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천마안마의 안마사인 것도 맞고, 그날 만난 사람인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녀는 슬쩍 시선을 피해 괜스레 과녁 쪽을 쳐다보며,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실,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별문제는 없으리라.

스포츠 국가 대표라고 해도 신체 건강한 젊은 남녀. 그리고 그런 이들을 모아 놓은 곳이 진천 선수촌이다.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이지, 선수들 사이에서 생기는 커플의 숫자는 꽤 많다.

이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던 정가인조차도 당장 열 커플 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스태프들도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물론 여긴 훈련에 집중하라고 만들어 놓은 시설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찌 통제가 되겠는가.

옛날에는 이런 부분까지 통제를 했다는 모양인데, 요즘은 훈련에 집중하고 개인 성적만 유지된다면야 사생활은 개인에게 맡겨 놓는 분위기다.

‘그래도 이걸 어떻게 그냥 말해.’

하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냥 김 코치가 ‘누구랑 카톡을 하냐’라고 물어본 순간, 정가인은 굉장히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 자체가 너무 쑥스러웠던 것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 법이라는 말처럼.

연애도 많이 해 본 놈들이 능숙한 법.

그런 의미에서 정가인은, 연애에 있어 갓난아기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성에게 이런 호감을 느껴 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으니까!

“가인아.”

“…예?”

그러던 와중.

옆에 있던 김 코치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정가인이 살짝 놀라 대답하자 그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고 좀 쉴래? 지금 실력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여기까지만 해도 돼.”

“어… 갑자기요?”

“아니, 얼굴을 보니 몸 상태가 좀 안 좋나 해서. 아무래도 걱정이 좀 되네.”

얼굴이 뭐가 어떻기에 저런 반응을 하시는 건가?

정가인은 의아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고, 전면 카메라로 본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하.”

열이 오른 것처럼 붉게 홍조가 들어가 있는 두 뺨.

이런 얼굴은 정가인 스스로도 독감에 걸리거나 몸살이 났을 때밖에 보지 못했던 얼굴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금 그녀는 굉장히 건강한 상태였다.

‘나도 이런 얼굴을 할 수 있구나.’

스스로도 낯선 모습이었으니, 코치는 오죽하겠는가.

다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은 아니었다.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던 정가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 * *

“이야, 형님. 요즘 진짜 바쁘게 사시겠네요.”

대전에 위치해 있는 태한반점.

브레이크 타임을 맞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곳에서, 한 손님이 갓 나온 간짜장을 비비고 있었다.

“저번에도 손님이 엄청 많았던 것 같은데, 아까 보니까 그새 더 늘어난 것 같더만요.”

그 손님은 다름 아닌 조원호.

그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강호연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뭘. 그냥 좋은 자리에 가게를 세운 덕분이지. 전부 조 사장 덕분 아니겠어?”

가게를 옮기려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을 때, 지금의 자리를 알아봐 준 건 다름 아닌 조원호였다. 그런 그에게 자연스레 공로를 돌리려던 강호연이었으나.

“하하… 형님, 그전에 여기 들어왔던 사장님들은 뭐 자리가 안 좋아서 망했겠습니까? 여기 건물이 좋은 건 사실인데, 그전에 줄줄이 망했던 것도 사실이죠. 그냥 형님이 잘하시는 겁니다.”

그걸 또 맞받아치는 조원호였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받아치기도 어려운 말.

강호연은 머쓱한 표정 그대로 머리를 긁적였고, 조원호는 빙긋 미소를 짓고서는 다 비빈 간짜장을 크게 한 젓가락 집어 올렸다.

후루루룩!

깔끔하게 입안으로 들어가는 면발.

갓 볶아 낸 간짜장의 달큼 짭짤한 맛이 먼저 입 안에 퍼지고, 쫄깃한 수타면의 식감이 씹는 맛을 더한다.

“으음!”

절로 새어 나오는 감탄.

한입 크게 채워 넣은 조원호의 얼굴에는 금방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야, 이러니까 줄을 안 설 수가 있나.”

이 자작하게 볶아 낸 간짜장의 진한 맛.

그러면서도 간은 또 절묘하게 어우러져 너무 짜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조원호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덧붙이듯이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요 간짜장, 요건 진짜 다른 곳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조원호가 생각하는 베스트 메뉴.

그 말에 강호연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간짜장은 내가 예전부터 열심히 만들기는 했지.”

“그래요? 뭐 이유라도 있으신가?”

“태한이가 제일 좋아하던 메뉴거든.”

강태한이 학생이었던 시절, 부자지간은 그리 원만하지 못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가끔 가게에 찾아오면 밥 한 끼 정도는 차려 줄 수 있었다.

그때마다 찾던 메뉴가 바로 간짜장.

그래서 그런지 유독 개발도 많이 들어간 메뉴고, 지금까지도 나름 집착이 있는 메뉴다. 다른 건 몰라도 간짜장만큼은 내가 최고로 맛있게 만들겠다,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또, 또 태한이 얘기로 가시네.”

“조 사장도 툭하면 아들 사진 보여 주잖아.”

강호연은 허허,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조원호 또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태한이가 또 한 건 크게 올린 것 같던데요. 페르모 가이드 3성에 들어갔다던데.”

“아, 그거 봤어?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하하하.”

강태한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슬쩍 말을 꺼내 본 조원호.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호연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텐션이 올라간 모습이었다.

“내가 그런 쪽은 젬병이라 잘 모르는데, 그 페르모 가이드가 대단한 곳인 모양이지? 뭐 기사도 잔뜩 나오고 말이야.”

“하하, 유명한 편이죠. 아무래도.”

“호텔계의 미슐랭이라던가, 그렇다더라고. 물론 태한이네 가게가 직접 이름을 올린 건 아니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기사에서 막 그러던데.”

잔뜩 흥이 올라 이것저것 말하는 강호연.

그 모습에 조원호는 조그맣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 참.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어.’

본인 가게와 메뉴를 칭찬할 땐 쑥스러워하면 쑥스러워했지 비교적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던 강호연이었으나, 정작 아들 강태한의 이야기에는 화두만 던졌을 뿐인데도 이 정도 반응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싫냐, 하면, 그 반대다.

애당초 이런 뻔한 반응을 예상하고 그런 화두를 던졌던 거니까. 강호연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조원호는 내심 흐뭇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이렇게 하면 되나?”

조심스레 어깨 안쪽의 혈 자리를 짚는 최성현.

이윽고 자기가 찾아낸 위치를 지압한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강태한의 눈치를 살폈다.

“좋아. 이번에는 잘 잡았네.”

“와, 진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강태한.

짧고 담백한 그 목소리에, 최성현은 반쯤 환호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깔끔하게 ‘잘했다’라고 말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전 거랑 느낌이 좀 다르긴 했어.”

그 말에 확신을 더해 주듯, 연습 상대를 해 주고 있던 황 실장도 입을 열었다. 다만 아직 의아함이 섞여 있는 목소리로 조심히 물었다.

“근데 이게 진짜 그… 혈도라는 게 있는 건가?”

솔직히 황 실장으로서는 믿기 힘든 개념이었다.

일단 강태한이 말하고 최성현도 그렇다고 하는 데다, 실제로 안마를 받으면서 느껴지는 차이도 있다. 다만… 그래도 ‘이게 맞나?’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부분.

그동안 강태한이 보여 줬던 기적 같은 성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다가도, 살면서 쌓아 온 상식이라는 것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다니까요.”

그런 황 실장의 말에 최성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기감이 트인 그로서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이미 넘어간 상황이었으니까.

“뭐 안 믿어도 상관은 없죠. 실장님이 직접 안마를 하시는 건 아니니까.”

“그 말도 맞기는 한데…….”

그래도 참으로 묘한 기분.

황 실장은 최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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