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165화
“페르모 가이드에서… 3성이 나왔다고?”
곽상영은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만큼 생각지 못한, 예상 밖의 결과였던 것이다.
“잘못 본 거 아니야?”
자기가 운영하고 있는 호텔에 대한 자부심,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도 신경 쓰지 말라고 방침을 내려놨었기에,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1성이라면 또 모를까, 3성이라니.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말이 사실인 것보단 저 사람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거나 장난을 치고 있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르모 가이드의 별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
1성만 되더라도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이 올라간, 소위 ‘페르모 호텔’의 반열에 오르게 되어 인지도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올라간다.
페르모 가이드 자체가 유명하기도 하지만, 각국에 따라 기준이 들쭉날쭉해지는 일반적인 호텔 등급과 달리, 전 세계의 모든 호텔을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하기에 그만큼 객관성과 공신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유럽의 5성급 호텔과 후진국의 5성급 호텔은 전혀 다를 수 있지만, 페르모 가이드의 3성급 호텔은 어딜 가더라도 만족도가 보장된다고 할까.
한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호텔은 이십여 곳밖에 되지 않으며, 3성은 그중에서도 단 두 곳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라이너 호텔이 3성이라니.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요즘 서서히 인지도를 쌓아 가고 있던 신생 호텔에서, 갑자기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호텔로 격상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직접 보시겠어요?”
남자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뚜벅두벅 걸어와 들고 있던 자료를 내밀었다. 자료를 건네받고 목록을 살펴보던 곽상영은… 서서히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 이게 왜 진짜지?”
“사실 저도 처음 봤을 땐 믿기지 않아서 문의 전화까지 넣어 봤지 뭡니까.”
“그랬어? 근데 여기서는 반응이 왜 이렇게 담백해? 장난이라도 하는 건 줄 알았잖아! 후하하하!”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란 걸 확인하고 나니, 당혹감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그 이상의 기쁨이 찾아온다. 곽상영은 잔뜩 들뜬 표정으로 연이어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좀 봐도 될까요?”
“아, 네. 사장님.”
그때쯤 장재연이 그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자료를 건네는 곽상영. 자료를 살펴본 장재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납득하듯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아마… 천마안마의 영향이겠군.’
자료에 나와 있는 건 오직 별점뿐. 가이드가 정식으로 갱신되기 전에 먼저 나오는 업계 내부 자료이기에, 별점과 관련된 평론이나 세부적인 특기사항 같은 건 따로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로 3성이라는 평가가 나오게 되었을지,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회사, 위아리치에서는 꽤나 많은 숫자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쪽 업계에 깊은 관심과 조예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로비만 훑어보아도 객실의 퀼리티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며, 객관적으로 이 호텔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지 자체적인 평가도 내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라이너 호텔은… 본인이 소유한 호텔이지만, 솔직히 페르모 3성을 받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호텔의 서비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가이드에 이름을 싣는 것도 애매한 느낌이 있고, 좀 잘 봐준다면 1성까지는 받을 수도 있는. 딱 그런 정도의 위치.
하나 그럼에도 3성이 나왔다면… 호텔의 외적인 부분에서 뭔가 파격적인 가산점이 붙었으리라. 말 그대로 호텔의 평가를 뒤집어엎어 버릴 정도로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 건물의 20층에 위치해 있는 천마안마.
페르모 가이드에서 별 세 개의 의미는, ‘한번 방문하면 후회하지 않을 가치가 있음’이다. 그리고 그녀가 직접 체험해 본 천마안마는 그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한 곳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수준이다.
‘…무조건 잡아야 하는 사람이야.’
사실상 단독으로 페르모 3성을 따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장재연은 원래도 갖고 있던 본인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천마란 무릇, 파천(破天)을 추구하는 존재다.”
얼굴이 흐릿한 노인이 말한다.
저 남자가 누구였지. 기억을 더듬어 보는 사이에, 노인은 연이어 입을 열었다. 그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이치를 부순다. 세상을 바꾼다! 이를 추구하는 자야말로 마교의 우두머리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뭐라 답을 하려 했지만,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복수를, 마침내 이뤄 냈던 순간.
어느새 노인의 얼굴은 뚜렷해져 있었다.
무림의 공적이자 나의 운수였던 선대의 천마는, 온몸이 피에 절은 상태로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나의 스승께선 만인(萬人)에게 공정(公正)한 세계를 만들고자 하셨다. 나는 스승을 죽인 세상에 천벌을 내리고자 하였다. 하나, 모두 허사였다.”
허공을 쳐다보고 있던 그의 눈은 어느새 나에게로 향했다. 그는 뭐라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힘없이 읊조리듯이 말했다.
“파천의 의지를 이어 갈 자야. 너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본좌의 하늘을 무너트린 너는, 앞으로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것이냐.”
내 눈에는.
목적지를 잃은 남자가 한 명 보일 뿐이구나.
“…….”
강태한은 눈을 뜬 상태로 한동안 누워 있었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 그러고 있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에 꿨던 꿈의 내용이 천천히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이 꿈을 꾸는 건 오랜만이군.”
강태한은 나지막한 혼잣말을 내뱉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지만, 그리 썩 반갑지는 않았다. 그리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곧바로 주방으로 걸어가, 정수기로 받은 냉수를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강태한이 원수를 갚았던 그 순간.
대부분의 꿈이 그렇지만, 실제 있었던 일과 꿈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실제로는 좀 더 과격한 분위기였으며, 무엇보다 제대로 말을 마치기 전에 그의 목을 날려 버린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원래는 들어 본 적도 없는 말이다.
하나 이 꿈을 꾸고 난 뒤면, 유독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너는 무엇을 추구하느냐고.
복수를 원했다. 그리고 복수를 이뤘다.
그 뒤에는 그동안 흘려 온 피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았다. 그 때문에 천마의 자리에 올랐고, 무림의 지존으로 군림하며 쓸데없는 유혈(有血)을 억눌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뚜렷한 목표는 없다. 단지, 예전에 걸어 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그 길가의 풍경이 제법 아름답고 향기로워, 나름의 애착을 갖고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닐 터.”
잠시 식탁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던 강태한.
그는 싱긋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꿈에서 나온 죽은 원수의 말보다는, 당장 오늘 잡혀 있는 약속이 더 중요했다.
* * *
“아, 오셨어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자, 장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 반응에 강태한이 살짝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근데 환영이 묘하게 과한 느낌이네요?”
“하하…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어제도 꽤나 호의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약간 결이 다른 느낌이다. 하나 강태한의 말에 장재연은 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반응했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장재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아 있는 상황. 살짝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와중에, 먼저 입을 연 것은 강태한이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제안 말입니다만.”
“아, 예! 저희 쪽이랑 체인점 사업을 같이 연계해서 진행하는 일 말이죠!”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긴 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말하는 내용이 꽤나 세세하다. 안 그래도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지라, 장재연의 얼굴에 자연스레 화색이 드러났다.
“생각을 좀 해 보셨을까요?”
“뭐 당장 확답을 내리진 않겠지만… 다른 파격적인 제안이 없다면, 저도 같이 일하던 쪽이랑 같이 진행하는 쪽이 좋을 것 같군요.”
천마안마는 라이너 호텔과 서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천마안마는 질 좋은 사우나 시설과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 좋고, 호텔은 손님들은 끌어모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쪽과 연계하여 체인점들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야… 아무래도 훨씬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그건 강태한 쪽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정말이신가요?”
강태한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장재연에게는 그야말로 반가운 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화색이 더욱 짙어진 얼굴로 되물었고,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혹시, 언제쯤 사업을 진행하실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아,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그쯤에 맞춰서 저희도 일을 진행시키는 게 좋으니까요.”
강태한의 대답은 스스로 말했듯 확답이 아니었지만, 굉장히 긍정적인 대답인 것도 사실이었다. 장재연은 자연스레 이야기를 좀 더 진행시키고자 입을 열었다.
“흐음, 글쎄요. 그리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강태한은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며 손으로 턱을 짚었다.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장재연은, 살짝 진정된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건넸다.
“혹시 말씀드린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거나…….”
“그런 건 아니고, 다만 아직 이쪽에서 준비가 덜되어 있을 뿐입니다.”
강태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답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때가 가리키는 것은 운명적인 뭔가가 아니라, 준비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를 가리키는 것.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천마안마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인지도는 충분히 높아진 상태고, 약간의 홍보만으로도 금방 프랜차이즈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더라도, 실력이 부족하다면?
결국에는 그 깊이가 드러나고, 부풀어 올랐던 인기는 금방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일을 서두르면 도리어 망칠 수도 있는 법.
굳이 역사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흔한 일이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인재들이 나왔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해 나갈까 생각 중입니다.”
황 실장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마친 상태다. 강습을 좀 더 체계화시키고 안마사들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혹시 가게를 운영할 관리자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가 알선을 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가게의 원장을 맡을 안마사를 말하는 겁니다.”
예전에 비하면 다른 안마사들의 실력도 이미 많이 늘어난 상태고, 특히 장인 코스의 세 명 같은 경우는 꽤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실제로 꽉꽉 채워지고 있는 예약들이 이를 증명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도 가게를 따로 낸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가게의 원장을 맡긴다고 한다면.
아직은 조금 모자라다. 단순히 뭉쳐 있는 근육이나 담을 풀어 주는 것 정도로는 부족한 것이다.
“뭔가 기준이라도 있으신가요?”
“글쎄요. 혈도의 흐름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겠죠.”
강태한 같은 실력자가 가게마다 앉아 있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혈도와 생기의 흐름 정도는 짚어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소 허황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강태한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그런 기미를 봐두기도 했고 말이다.
“혈… 뭐라고요? 혈도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찌 됐거나, 그때가 되면 제가 먼저 사장님에게 부탁을 좀 드리도록 하죠.”
다만 장재연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뿐이다. 강태한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말을 돌렸다.
* * *
“최 사장님! 하하, 오랜만에 뵙네요!”
“오우, 우리 최 선생! 오랜만이야.”
천마안마의 안마실 안.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온 최성현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자, 상대방도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보아하니 꽤나 단골인 모양.
“한 두 달 만에 오신 건가? 좀 바쁘셨나 보네요.”
“아구구, 베트남에 출장 갈 일이 좀 있어서.”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그런지 허리 쪽도 다시 딱딱하게 굳어 있네요. 그리고 여기 어깨 쪽도.”
남자는 꽤 익숙한 듯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침대 위에 몸을 엎드렸고, 최성현도 곧바로 그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요 근육들을 만져 보고, 척추를 비롯한 골격들도 한 번씩 확인해 보고. 그렇게 보던 와중, 남자가 덧붙이듯이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어깨랑 허리 위주로 봐 드리면 될까요?”
“그렇게 해 줘.”
그 정도로 마무리하려던 찰나.
‘…음?’
남자의 몸을 살펴보고 있던 최성현은, 순간 느껴진 묘한 느낌에 손을 멈췄다. 왼쪽 종아리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혈관은 아닌 것 같고.’
근육 아래에서 흐르고 있는 무언가.
몸에서 뭐가 흐른다고 하면 혈류밖에 없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심장박동에 맞춰 움직이는 그 맥동감이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마치 물처럼 흐르는 듯한… 그런 느낌.
다만 허벅지에서부터 주욱 이어져 오던 그 흐름이, 종아리에서 급격하게 약해진다. 마치 시냇물을 바위가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 최 사장님.”
“왜 그래?”
“혹시 이쪽 종아리에는 불편한 게 없으신가요?”
그 말에 남자는 캬, 하는 작은 감탄을 터트렸다.
“신통하네, 최 선생. 사실 밤마다 그쪽에 저릿한 느낌이 있었거든. 뭐 따로 신경 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신기하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자.
하나, 신기한 건 최성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지?’
최성현은 남자의 종아리에 손을 얹은 채, 한동안 멍하니 손의 감각에만 집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