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59화 >
페르모 평가원들의 웹 클라우드는 모든 평가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곳. 그렇기에, 이곳에 업로드 된 보고서는 모두에게 공유되며,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이게 뭐야?”
“단기간에 3성 평가가 하나 더 올라왔다고?”
때문에 이번에 재차 업로드 된 라이너 호텔에 관한 평가서는, 지금 한국에 있는 평가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평가원들의 관심을 확 끌어 모았다.
한 번의 이례적인 평가는, 있을 수 있다.
페르모 평가원들은 나름 이 분야에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이들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도 있고, 평가원으로 특정되어 자기도 모르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받았을 수도 있다.
이제 생긴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며, 이전까지 딱히 화제가 된 적도 없었던 호텔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일도 가끔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 번이나 연속으로 이어지면?
그때부터는 아무래도 신빙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헌데, 라이너 호텔의 3성 평가 보고서는 그 두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하나 더, 그리고 또 하나 더.
다른 평가원들이 라이너 호텔에 방문할 때마다, 이곳을 3성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는 계속 한 장씩 늘어났다.
“이런 평가가 나오는 건 또 오랜만이네.”
“···대체 어떤 곳이기에?”
본래 페르모의 별점은, 한 번에 결정되기 힘들다.
별점을 결정하기 위해선 최소 열 명 이상의 평가원들이 방문하고, 해당 평가원들의 평가가 8할 이상 일치되어야 하는데, 의견과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헌데··· 이렇게 깔끔하게, 그것도 3성의 평가가 계속해서 쌓여가니, 다른 평가원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심지어 평가도 개별적인 부분들은 다르나, 큰 줄기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호텔 자체는 다소 애매할 수 있다.
다만 부대시설들의 수준은 아주 훌륭한 편이며.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안마원에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유니크, 아니, 감히 레전드라 부를 수 있을만한 놀라운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보고서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강 이런 느낌.
물론 개중에 예외가 하나 있기는 했다.
‘잘 쳐줘도 1성’이라 평가를 올린 보고서가 한 장.
허나 해당 평가원은 안마원을 방문하지 않아 그곳에 관한 이야기가 아예 누락되어 있었고, 기존 평가자들에게 뭇매를 맞고 재방문을 예약한 상태였다.
“···한 번 가볼까?”
“이 정도 평가라면, 이건 업무가 아니라 휴가를 내서라도 다녀와 봐야겠는데.”
이렇다 보니, 이제는 호기심이 생긴다. 페르모 평가원의 업무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여행객으로서 관심이 끌리는 것이었다.
* * *
천마안마의 옆에 비어있었던 공실.
허나 이전과는 다르게 그저 휑하기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었지만, 벽지와 바닥을 비롯해 간단한 인테리어 공사가 되어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디자인은, 바로 옆에 있는 천마안마의 인테리어와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해당 공간을 임대하고 공사를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천마안마의 강태한이었으니까.
원래 예전부터 가게를 좀 확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 그러다 때마침 이곳이 완전히 공실이 되었다는 말이 들려왔고, 강태한은 그 날 곧바로 일을 진행시켰다.
그렇게 얼추 완성된 상태가 바로 지금.
이제 안에 가구와 설비들을 집어넣고, 크게 공사할 것도 없이 복도 부분만 연결하면 끝나는 상황이다.
한편, 그 공간에서 강태한은 황 실장과 함께 한참 중요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흐음··· 혹시 지금 지내고 계시는 곳은 어디시죠?”
“이 근방에서 자취하고 있습니다. 걸어서 한 20분 정도 걸리겠네요.”
“그렇군요.”
다름 아닌 면접.
강태한과 황 실장은 가로로 긴 테이블에 앉아 짐짓 무게감이 실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 앞에 앉은 면접자는 살짝 긴장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혹시 희망하는 휴일은 있으십니까?”
“음··· 아무 요일이나 상관없습니다.”
“아무 요일이나 상관없다···”
황 실장은 적당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지고, 면접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받아 적었다. 반면 강태한은 아무런 질문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면접자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과는 저희 쪽에서 차후 통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야말로 감사했습니다.”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고, 황 실장이 인사를 건네자 면접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끼익, 하고 닫히는 문.
그러자 황 실장이 곧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강태한에게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땠어? 난 좀 애매한 것 같은데.”
“저도요. 나와 있는 경력들이 무색하네요.”
면접자에게 꾸준히 질문한 것은 황 실장이었으나.
실질적으로 면접을 보는 사람은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강태한이다. 면접자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었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몸만 봐도 얼추 보인다고 할까.”
몸에는 평소 행동의 흔적이 남는다.
관절의 상태라든가, 발달해있는 근육이라든가.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것들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당장 필요한 정보들은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안마사로서 평소에 일을 성실하게 해온 사람인지, 아니면 대충 해온 사람인지.
안마는 생각보다도 많은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단순하게 어깨를 주무르는 것만 해도 십 분 정도가 지나면 꽤 버거워지는데, 그걸 전신에, 그것도 한 시간 가량을 계속해야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안마사들은 싫어도 팔 근육이 발달할 수밖에 없고, 특히 손아귀의 힘이 유독 강해지는데··· 방금 전 면접자는 적혀 있는 경력에 비해, 팔의 근육은 그다지 발달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신입이었다면 모르겠는데, 경력자가 저런 몸이면 아무래도 좀 꺼려질 수밖에 없죠.”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허나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 그렇다면··· 그냥 일을 대충대충 해온 것이라고,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으리라.
“오늘은 별로 수확이 없네.”
끄흐응!
황 실장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기지개를 폈다. 그의 말에 강태한은 빙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사람이 제일 구하기 어려운 법이죠.”
“그야 뭐 그렇기는 한데···”
황 실장은 강태한을 슬쩍 곁눈질로 쳐다보며 뒷말을 흐렸다. 오늘은 수요일. 원래라면 강태한은 집에서 쉬고 있는 날이다.
말하자면 휴일에 일을 하러 나온 셈.
그럼 아무리 자기 사업이라 해도 좀 피곤하거나 싫은 티를 낼 법도 한데··· 딱히 그런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참 태한 씨도 대단하구만.”
“왜요?”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강태한의 반응에 황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괜스레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책상 위에는 꽤 많은 이력서들이 쌓여있었다.
“그건 그렇고, 신청이 많아서 다행이네요.”
이력서들을 쳐다보던 강태한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처음엔 ‘과연 신청이 얼마나 들어올까’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구직사이트에 모집공고를 올리자마자 신청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많을만하지, 뭐. 이런 곳이 어디 흔한가.”
그 말에 황 실장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쪽 업계에서는 천마안마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일단 SNS에서의 반응부터 난리인데, 유명인들의 방문인증도 툭하면 올라오는 수준이었으니까.
여기에 휴일 확실하게 보장해주지, 비율도 업계 평균 이상이지, 정산도 제때 맞춰 제깍 해주지··· 딱히 말하고 다닌 적은 없지만, 원래 이런 이야기는 알아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전에 전 사람도 그거 물어봤었잖아.”
“그거요?”
“다 같이 영국 리조트 갔다 온 거, 진짜냐고.”
“아···”
기억이 난 듯 강태한이 머쓱한 표정으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비단 그 사람이 아니라도 그걸 물어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직원들 모두와 함께 영국 리조트를 다녀왔던 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슨 전설이라도 되는 것마냥 널리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비행기 하나를 전세내고 갔다 왔다더라, 가서 강주완 선수랑 에버튼 선수들도 만났다더라, 사비는 거의 쓰지도 않았다더라··· 같은 이야기들.
개인적으로 강태한이 좀 머쓱한 부분은, 그 이야기들이 또 대부분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조용히 있는 강태한에게 황 실장이 덧붙이듯이 말했다.
“어쨌거나 뭐, 사람이 몰릴만하다는 거지.”
“뭐, 그렇긴 하네요.”
강태한이 납득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꽤나 파격적인 사건이었다는 건,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 * *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마무리 된 면접.
책상을 정리하고 있던 와중, 황 실장이 강태한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나?”
“뭐가요?”
“태한 씨말이야.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일을 평소랑 달리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해야 하나?”
옆 공실을 확보하여 가게를 확장하고, 안마사들의 숫자를 더욱 늘린다. 이야기 자체는 예전부터 나왔던 내용이었으나, 당장 급한 일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강태한은 조급해하지 않고 시기에 맞춰 일을 진행시키는 타입. 그렇기에 좀 차근차근 진행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저도 뭐라고 딱 말하긴 힘든데···”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직감이 좀 들어서요.”
“직감?”
“앞으로 손님이 좀 많아질 것 같다?”
“뭘 새삼. 예전부터 그래왔잖아.”
천마안마는 오픈 직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우상향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손님이 많아지는 것 정도는 예삿일인 것이다. 허나 그런 황 실장의 말에 강태한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이 아니라··· 확 늘어난다고 해야 하나? 가까운 시일 내에 뭔가 계기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어느 순간 문득 느껴지는 본능적인 직감.
강태한 스스로도 뭐라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간혹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직감은 무림에 있었던 시절부터 얼추 들어맞는 편이었다.
“계기라면 뭐, 미슐랭 3스타라도 받는 건가?”
“···미슐랭이 안마원에도 별을 줘요?”
“아니, 그냥 예시를 든거지.”
가볍게 농을 던진 황 실장. 하지만 강태한의 진지한 반응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쯤이었다.
“혹시 여기가 천마안마입니까?”
문이 열리더니,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왜일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음. 아직은 아닌데요.”
“···예?”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황 실장이 넌지시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아해하는 반응이 나오자, 곧바로 정정하듯 손을 저으며 옆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마안마는 저쪽이에요.”
“그렇습니까. 실례했습니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남성.
그때, 묘한 기시감에 그를 계속 쳐다보고 있던 강태한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성현이 아버지십니까?”
“···설마, 태한이냐?”
서로를 알아보고 다시 쳐다보는 두 사람.
머지않아 남자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나타났다.
“이야, 오랜만에 보는구나! 이게 얼마만이지?”
“하하··· 글쎄요.”
강태한은 정말로 알지 못했다
최소 육십 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은, 성현이랑 같이 입대할 때에 같이 인사를 드렸었던 일이다.
“그때 입대할 때 봤던 게 마지막 같은데.”
의외로 기억이 맞았군.
강태한은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고는, 최성현의 아버지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근데, 뭔가 일이라도 있으세요?”
최성현과 강태한은 같은 대전 사람이며, 이사를 가신 게 아니라면, 최성현의 아버지도 대전에서 살고 계실 터였다.
그런 분이 서울까지 오셨다면야,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리라. 물론 그냥 안마를 받으러 오셨을 수도 있지만··· 여러모로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잘 됐다. 너도 여기서 일한다고 했었나?”
“예. 일단은 그런데요.”
“성현이 녀석이랑은 도통 말이 안 통해서 말이야. 여기 사장님이랑 따로 이야기 좀 하려고 왔다. 여기 사장님이 누구냐?”
강태한은 잠시 황 실장을 쳐다봤다.
황 실장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도 아는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사장인데요.”
“그래? ···아니, 뭐?”
순간 당황의 기색이 나타난 최성현의 아버지.
그는 의아함이 실린 눈빛으로 강태한을 쳐다보았고, 강태한은 ‘방금 들은 말이 맞다’고 확인시켜주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뭐냐···”
그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느낌. 그러다 그나마 적당한 말이 떠올랐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출세했구나.”
“하하··· 감사합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해진 분위기.
그 옆에서 황 실장은 주섬주섬, 조용히 책상 정리를 마저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