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57화 >
“흠.”
강태한의 말에 장우영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약간의 장난기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돈을 말하는 건가, 사람을 말하는 건가?”
“당연 후자 쪽이죠.”
“같이 사업을 하기에는 내가 나이가 좀 많은데?”
“아, 그건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참가하시겠다면야 나이가 대수겠습니까. 저로선 두 팔 벌리고 환영할만한 일이죠.”
장우영은 짐짓 알아듣지 못한 척 이리저리 대화의 방향을 돌려봤으나, 강태한은 당황의 기색도 없이 능청스레 대꾸했다. 그 반응에 장우영은 피식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당연히 농일세.”
“그야 그렇겠지만, 약간 아쉬운 마음도 있긴 하네요. 환영한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빙긋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강태한.
그 모습은 장우영은 인상 깊게 쳐다보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생각이지만, 가끔 장우영은 강태한이 정말 이십대의 청년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얼추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됐다’ 싶다가도 좀처럼 알 수가 없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젊은이보다는 오히려 동년배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것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어본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종종 든다.
‘방금 전에 말한 내용도 그렇고.’
사업을 확장할 때에 비즈니스적인 도움을 바란다.
방금 전, 강태한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보아하니 이미 예전부터 이런 부탁을 하려고 생각해두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는 건··· 자기가 이런 말을 꺼내리라는 것도 먼저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
언제부터일까?
오늘 카페에 앉을 때부터? 약속을 잡았을 때부터? 혹은,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장우영은 커피 잔을 입가에 갖다 댄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사람 욕심이 좀 나는구만.’
계산적이라기보다는 받을 건 받아간다는 느낌.
그러면서 요구하는 내용 또한 상당히 합리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우영에게는 사업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양질의 인맥들이 쌓여있다. 어지간한 사업의 인프라는 가까운 지인들만으로도 곧바로 형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강태한은 바로 그 인맥을 활용하게 해달라고 한 것.
뭔가 막연한 부탁을 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가장 효율적이면서 실리적인 부분을 요구한 것이다. 말하자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어망과 어선을 받아온 셈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속이 깊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시야가 꽤 넓다는 느낌.
그리고 장우영에겐 그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자기가 아직 은퇴를 하지 않고 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면, 어떻게든 대청그룹으로 데려오려 했을 것이다.
“강 원장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어떤 부분이 그런지는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런 걸 사람이 입체적이라고 하나? 허허.”
장우영은 웃음을 흘리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체인점이라···”
그는 들고 있던 커피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잠시 생각할 일이 좀 있었을 뿐이지, 대답 자체는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야, 얼마든지 도와주도록 하지. 말만 하게나.”
“감사합니다.”
흔쾌한 목소리로 답하는 장우영. 그 대답에 강태한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자네가 먼저 내 부탁을 들어준 답례를 하는 것뿐이지 않은가. 내가 더 감사하지.”
그런 강태한의 반응에 장우영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그는 조심스레 덧붙이듯이 물었다.
“근데··· 혹시 투자를 받을 생각은 없는가?”
“흐음. 글쎄요.”
강태한이 만드는 안마원 프랜차이즈.
물론 지금 이야기가 나온 것은 단순한 체인점이지만, 나중에 가서는 이게 전국적인 프랜차이즈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강태한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그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투자처로 여겨진다고 할까. 허나 그런 장우영의 말에 강태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지금보다 사업을 크게 굴릴 때가 되면, 한 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구만.”
꼭 말해주면 좋겠군.
장우영은 그렇게 덧붙이고는, 잔에 남아있던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커피 잔으로 가려진 그의 얼굴엔 못내 살짝 아쉬워하는 기색이 남아있었다.
* * *
인도의 백화점 체인들 중 하나인 뉴에이지.
에너지 관련 대형그룹인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의 계열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뉴델리, 뭄바이, 벵갈루루 등 주요 도시들에 지점을 두고 있는 유명 백화점 체인이다.
다만 백화점 업계 내에서의 인지도는 다소 밀리는 편이고, 뭔가 여러모로 애매한 포지션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요 근래, 뉴에이지 백화점에는 어느 지점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고 있었다.
하루 방문객의 숫자가 어림잡아도 5할 이상은 늘어난 수준. 그리고 그 손님들이 몰려드는 곳은··· 명품관이나 특별기획코너 같은 곳들이 아니라, 평소 비교적 발길이 뜸한 편인 가구 및 전자제품 코너였다.
“안마의자에 체험하러 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번호표 받고 대기하셔야 합니다!”
“이쪽은 체험줄, 이쪽은 구매상담줄입니다! 참고하셔서 줄을 서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들을 불러모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새롭게 입점한 바디케어의 안마의자 코너.
몰려든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바디케어의 앞에 가서 번호표를 뽑아갔고, 쌓여있는 대기자의 숫자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으하아아···”
“확실히, 좋긴 좋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야하면, 아무래도 기대가 높아진만큼 만족도도 비교적 떨어지기 마련인데.
체험코너의 안마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쾌감에 젖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안락함이라는 개념을 몸으로서 표현해낸 행위예술 같은 느낌이라 할까.
이렇다 보니 바디케어의 안마의자는 들여오는 족족 매출로 이어지는 수준이 되었고.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의 뉴에이지 백화점 또한, 거의 유래가 없는 수준의 관심도와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안마의자를 보러 온 손님이라 해도, 그것만 사거나 보고 돌아가는 손님은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하하하, 그야말로 성공적이구만.”
그리고 뉴델리에 위치해있는 엘리펀트 인더스트리의 본사. 회장실에 앉아 서류를 훑어보고 있던 마르케시는,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생각대로 흘러가주니, 너무 기분이 좋네.”
인도에서 바디케어의 신제품 안마의자, 더 마이스터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르케시의 생일파티에서부터였다.
당시 파티에 참가하고 직접 안마의자를 이용해본 상류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사교계에 서서히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
그들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가 겪었던 경험을 솔직하게 입에 담았고, 그 이야기들은 비록 ‘과장이 심하다’는 인상을 줄지언정,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여기에 사교계의 핵심인물들에게 마르케시가 따로 안마의자를 선물하거나 몇몇 행사에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노출도를 좀 높이니,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필수품인 것마냥 유행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상류층에서 먼저 유행이 일어나니.
중산층에서도 ‘저게 대체 뭐길래 저러나’라며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서 물건 자체의 성능이 애매하면 단순히 관심이 끌리고 이례적인 열풍 정도로 끝나겠지만, 더 마이스터의 성능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
체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소문은 더욱 널리 퍼져만 갔고, 결국은 지금 같은 상황이 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국지적인 유행이나 잠깐 반짝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고, 가히 전국적인 신드롬이라 할 만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에서의 안마의자 열풍, 인도까지 번지다?]
[대청그룹이 인도에서 따낸 것은 대형 건축 프로젝트만이 아니었다. 인도에 일어난 K-마사지의 물결]
[안마의자 불모지에서 우뚝 일어선 한국의 안마의자. 기술 수입하던 위치에서 이젠 시장을 선도하는 입장으로.]
이런 유행이 워낙 크게 일어나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언론에서도 이를 다루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야, 처음엔 K-마사지라고 하길래 좀 오바가 심하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한편, 식당 테이블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최성현.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고 있던 그는, 감탄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랬는데?”
“보니까 이틀 전쯤에 올라온 게시물인데··· 이 정도면 K-마사지라고 부를만한 것 같다.”
강태한이 가볍게 대꾸를 하자, 최성현은 자기가 보고 있던 화면을 강태한에게 보여줬다. 화면에는 그가 팔로우하고 있는 유명인의 게시물이 나와 있었다.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있는 게시물.
거기엔 네 명의 외국인들이 나란히 안마의자에 앉아, 노곤하게 늘어져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게시물을 올린 건 다름이 아니라 에버튼FC의 강주완 선수였고, 사진에 줄줄이 앉아있는 외국인들은 모두 에버튼FC에서 뛰고 있는 유명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앉아있는 안마의자는, 바디케어의 더 마이스터. 사진을 쳐다보던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자기 스마트폰을 뒤적였다.
왠지 이 정도면 기사도 나왔을 것 같아 좀 찾아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국 프리미어 리그까지 침투한 K-마사지?] 같은 뉘앙스로 서너 개의 기사들이 이미 올라와있었다.
“강태한 씨,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러던 와중, 최성현이 리포터의 말투를 흉내 내며 강태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태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뭐가?”
“더 마이스터의 개발자님의 소감 말입니다.”
으음···
질문을 받은 강태한은 팔짱을 끼고는 잠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번 분기 로열티가 좀 기대된다?”
“아··· 솔직하신 답변, 감사합니다.”
최성현은 그제야 마이크처럼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그때쯤, 마침 식사가 나와 두 사람 앞에 올라왔다.
뚝배기에서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수육국밥.
화제가 애매하게 끊긴 탓일까, 아니면 식사에 집중을 하고 있는 걸까, 잠시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좀 있었을까.
“···근데 말이야, 안마의자 한 대 팔리면 로열티는 얼마 정도나 들어오냐?”
아까 전부터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였던 최성현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 질문을 입에 담았다.
* * *
4월을 맞이하여 다시 시작되는 한국 프로야구 시즌.
한동안 발길이 끊겼던 야구장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주변의 상권에도 다시 활기가 맴돌기 시작하는 시기다.
아무래도 몇 달 이상의 휴식기를 거쳐 다시 시즌이 시작하는 만큼, 많은 팬들이 야구장에 방문하고 그만큼 기대가 몰리는 시기이기도 한데···
이번 시즌은, 유달리 그 기대가 폭발적이었다.
[안태경 선수, 쳤습니다! 터져 나오는 안타!]
[2회 초, 경기 초반부터 3루까지 주자가 들어와 있는 상황! 과연 이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홈런입니다! 2회초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3점 홈런! 어제 경기에 이어 이번에도 시원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한하입니다!]
우와아아아아!
해설들이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고, 현장의 관중석에서도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카메라 너머 중계를 봐도 그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미쳤다, 한하!”
“올해는 가을야구 꼭 가자!!”
지난 번 연승을 이어갔던 시즌 말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한하.
지난 시즌에는 초중반 성적이 워낙 안 좋았던 탓에 그러고도 포스트 시즌에 나가질 못했지만, 이번 시즌이야말로 가을야구에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팬들 사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허나, 이번 시즌에 열광하는 것은 비단 한하의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야, 왠지 올해 시즌은 좀 보는 맛이 있지 않냐?”
“그러게. 약간 경기 자체가 시원시원해진 느낌?”
“맞아. 경기장 와서 보는 보람이 있어.”
한하 뿐만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의 실력도 전체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 프로야구의 수준 자체가 한 단계 올라온 느낌이라고 할까.
가끔 실수를 떠나서 경기력 자체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 순간이 종종 있어왔는데··· 이번 시즌은, 적어도 지금까진 그런 느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형, 이거 봐요.”
“뭔데?”
한편, 경기를 앞두고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하의 최태준 선수. 그는 재밌는 걸 봤다는 듯 옆에 누워있는 김태평 선수에게 말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인데요, 프로야구선수들끼리 다 같이 지옥훈련이라도 다녀왔냐는데요.”
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시즌에 비해 선수들의 기량이 한참 올라가고, 그에 따라 경기력도 올라오다 보니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이리라. 최태준이 읽어준 내용에 김태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옥훈련보단··· 다 같이 천마안마를 받았지.”
호텔 로비나 안마원 대기실에서 다른 팀 선수들과 마주쳤던 기억들. 그 기억들을 떠올리던 김태평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