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56화 >
페르모 가이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최대 3개까지의 별점으로 평점을 매겨왔고, 각각의 개수에는 나름대로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의미가 담겨있다.
1성은, ‘쾌적한 휴식이 보장됨.’
2성은,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숙소로 삼을만함.’
그리고 최대점인 3성은,
‘한 번 방문하면 후회하지 않을 가치가 있음.’
물론 단순하게 ‘별점이 많을수록 좋은 곳’이라 생각해도 별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평가원들 사이에서는 해당 기준들을 염두에 두고 평점을 매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호텔 자체는 3성을 받을만한 수준이 아니다.
물론 부대시설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았고, 객실의 설비도 쾌적했다. 허나 이것들을 높이 평가하고 반영한다하더라도 1성 정도가 최선이다.
이것도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이지, 다른 평가원들의 평가까지 감안을 한다면 그마저도 어려우리라.
허나··· 방금 자기가 받았던 마사지까지 평점에 포함을 시킨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기가 직접 겪어본 경험을 평점에 반영시킨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가치가 있지.”
자기가 수첩에 적어놓은 내용을 재차 훑어보던 알프레드는, 재차 확신을 다지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행으로 쌓인 몸의 피로는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스펀지에 스며든 색소처럼 몸에 배어든다고 할까. 동양권에서는 이를 여독(旅毒), 즉 여행의 독이라고 표현하던데, 알프레드는 예전부터 이를 꽤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본인은 미국 서부 쪽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거리상으로도 그렇고 기간도 그렇고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일정. 그의 몸에 스며들어있던 피로는 하루 이틀 만에 사라질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헌데 그걸 마사지 한 번에 풀어버린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아니, 피로를 푸는 수준이 아니지.’
그는 정정하듯이 고개를 젓고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발을 굴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몸 상태와 컨디션이 너무나도 훌륭하다.
오후에는 피트니스 센터에 들르는 것도 꺼려질 정도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 야밤에 조깅이라도 한 바퀴 뛰고 오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치 날씨 좋은 휴양지에서 몇 주 동안 바캉스를 즐기고 온 듯한‧ 아니, 그런 수준을 넘어, 아예 20대 초반쯤의 몸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경험을 대체 어디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솔직히 자기가 겪어봤으니까 지금 이게 말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었다면 ‘과장이 너무 심하게 들어갔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자기는 앞으로 서울에 볼 일이 있다면.
아니, 서울이 아니라 동아시아에 볼 일이 있고 일정에 여유만 있다면야, 반드시 하루 정도는 여기서 꼭 묵으며 마사지를 받고 갈 것 같다.
‘예약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천마코스에 한정된 이야기.
그가 받아본 건 원장이 직접 만져주는 천마코스 뿐이었고, 잘은 몰라도 아마 다른 코스들은 이 정도의 만족감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예약이 필요한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이 정도 솜씨라면, 그게 당연한 거니까.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호텔들만 해도, 대부분 몇 주 전에는 예약을 해야 방문을 할 수 있는 곳들이다.
‘···아니, 잠깐.’
순간 알프레드의 얼굴에 망설임이 맺혔다.
자기가 예약을 잡았을 때 문의한 내용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천마코스는 대략 한 달 정도 전에는 연락을 해둬야 예약을 잡을 수 있는 듯했다.
이것 자체는 뭐, 그리 나쁘지 않다.
원래 명소에 방문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다.
헌데··· 여기서 페르모 가이드에 이름이 올라가게 된다면. 이곳의 존재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로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예약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어쩌면, 굳이 보고를 올리지 않고 자신만의 오아시스로 남겨두는 것이 나한테는 더 좋은 게 아닐까?
알프레드는 순간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애초에 예약까지 잡아가면서 천마코스를 받았던 건 자신의 호기심 때문이었지, 원래라면 평가원으로서 일반코스 정도만 받아보고 끝냈을 것이다.
그럼··· 굳이 보고를 올릴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정말 좋은 건 혼자서만 먹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고 할까. 점점 깊어지는 갈등에, 알프레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볼펜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아니.’
허나, 그 갈등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 가게는, 더 유명해질 만한 자격이 있어.’
이런 명소들을 발굴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바로 페르모 가이드의 설립 목적이 아니겠는가! 알프레드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가 페르모 평가원으로 활동한지 대략 육 년 째.
솔직히 별다른 직업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는데 비용도 대신 내주고 월급까지 준다는 말에 수락했을 뿐이었다.
헌데···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직업의식과, 평가원으로서의 의무감을, 알프레드는 지금 처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정리한 내용을 수첩에 적고, 이를 다시 노트북에 옮겨 적는 알프레드. 그는 천마안마에 관한 극찬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다음, 메일을 송신했다.
* * *
“이야아···”
“사람이, 진짜 바글바글하구만.”
얼마 전에 새롭게 가게를 옮기고 오픈한 태한반점.
방금 막 가게 입구 쪽으로 들어선 최씨와 김씨는, 주변을 둘러보며 저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테이블이 손님들로 가득 차있었던 것이다.
“저, 손님. 죄송한데 저희가 곧 브레이크 타임이라서요. 식사는 좀 어려우실 것 같은데요.”
“아··· 그, 그래요? 허허.”
안쪽에 엉거주춤 서있는 최씨와 김씨에게, 직원이 다가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최씨가 머쓱한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쯤, 주방에서 강호연이 나오며 화색을 지었다.
“아, 괜찮아. 나 찾아온 손님들이야.”
“아, 사장님 지인분들이세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는 강호연. 직원은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켰고, 강호연은 최씨와 김씨, 두 사람을 쳐다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이거,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그런가? 몇 주 안 지난 거 같은데?”
“좀 되긴 했지?”
강호연의 말에 최씨와 김씨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여긴 직원들한테 방해되니까, 자리를 좀 옮기자고. 안쪽에 휴게실이 따로 있어.”
그런 와중에 안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강호연.
앞장서서 가는 강호연을 따라 두 사람이 들어가니, 겉보기보다 제법 넓고 깔끔한, 식당의 휴게실이라기엔 꽤 쾌적한 그런 공간이 나왔다.
“이야··· 가게 하나 기막히게 잘 구했네, 강 사장.”
“그렇지? 아들이 해준 가게야. 흐흐흐.”
휴게실 안쪽을 둘러봤다가, 다시 문 너머로 가게 내부도 한 번 살펴보고 감탄을 터트리는 최씨. 그 반응에 강호연은 아들자랑을 곁들이며 웃음을 흘렸다.
“아니, 뭐. 가게 좋은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줄은 몰랐네?”
최씨는 일이 바빴던 탓에 이번이 첫 방문이었으나, 김씨는 새로 오픈한 직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손님이 꽤 있긴 했지만, 그래도 테이블이 가득 차는 수준은 아니었었는데··· 지금은 딱히 붐빌 시간대가 아닌데도 테이블에 빈 자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아이, 뭐. 김씨 왔다간 이후로 계속 늘어나더라고.”
“난 ‘바쁘니까 안 와도 된다’라는 말이 우리 배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 꼴 보니까 배려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랬구만.”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언저리.
원래 이때쯤이면 일반적인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식당에 손님들의 발길도 뜸해질 시간이다. 이런 시간에도 테이블이 꽉 차있다는 건··· 말 그대로 가게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는 뜻이었다.
“뭐 그동안 주방생활 해오면서··· 요 근래가 가장 정신없게 바빴던 것 같기는 해.”
강호연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머쓱해하며 말하기는 했지만, 그 말은 과장 하나 보태지 않은 진실이었다.
“이야··· 잘 됐네, 강 사장.”
“강 사장 솜씨가 드디어 빛을 좀 보는구만.”
“하긴, 요즘 여기만한 중국집이 딱히 없긴 해.”
그런 강호연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는 두 사람.
두 사람은 모두 꽤 오랜 시간 동안 가게를 방문해왔던 단골들이다. 그들이 이곳을 꾸준히 방문한 데에는 소위 ‘정’이라 불리는 이유도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강호연이 만드는 요리 자체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것이 더 컸다.
특히나 작년 중간쯤, 강호연의 어깨 상태가 돌아오고 다시 수타를 치기 시작한 이후로는, 이 근방을 넘어서 대전에서도 딱히 비교할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아졌었다.
“뭘. 다 태한이 덕분이지.”
“아유, 아들 자랑이 그냥 쉬지를 않네.”
“하하하. 좀 심했나?”
장난스레 손을 저으며 짐짓 싫증난 표정을 짓는 최씨. 그러자 강호연이 머리를 긁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는 예전처럼 간단하게 짜장 한 그릇 하고 가기는 힘들겠구만.”
그러던 와중, 옆에 앉아있던 김씨가 내심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오랜 시간동안 단골이었던 그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부분이었다.
“뭐··· 가게 영업하고 있을 때는 좀 힘들겠지.”
그러자 강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손님이 워낙 많이 찾아와 번호표를 나눠주는 것도 일인 상황인데, 누구는 오랜 단골이라고 앞서 끼워준다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따로 생각해둔 뭔가가 있는 듯, 강호연은 싱긋 웃으면서 덧붙이듯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예전 가게 있잖아?”
“우리 동네에 있는 거?”
“그래. 거길 임대라도 줘보려고 내놔봤는데··· 좀 구석진 곳이라 그런지, 좀처럼 나가질 않더라고. 그래서 그냥, 쉬는 날에 메뉴 개발하거나 요리나 좀 하는 용도로 내가 쓰려고.”
“허어··· 그래서?”
“뭐, 가게 쉬는 수요일에··· 딱히 갈 때 없고, 간단하게 짜장이나 한 그릇 하고 싶으면, 나한테 연락이나 한 번 해보라고.”
본인도 휴일인 만큼 매주 수요일마다 거기에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상황이 맞으면, 지인들한테 식사 대접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단골 케어 확실하구만.”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최씨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괜히 머쓱해졌는지, 강호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흠흠. 어쨌거나, 오늘 빈 속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 식사는 뭐로 할래?”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어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갔고, 테이블의 손님들도 빠졌을 시간.
“역시 여기는 짜장이 제 맛이지.”
“나도 짜장.”
“그래, 짜장 두 개. 일단 홀로 가서 좀 기다려.”
물어보기는 했지만, 강호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는 바뀌었으나 단골과 사장간의 분위기는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 * *
라이너 빌딩 2층에 위치해있는 카페.
이곳은 1층의 카페보다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테이블 사이사이에 벽이나 칸막이가 세워져있어 나름의 차별점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카페의 안쪽 창가자리.
이곳에는 대청그룹의 장우영 명예회장과 천마안마의 강태한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앉아있는 상태였다.
잠시 테이블 위로 침묵이 흐르고 있는 상황.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장우영 쪽이었다.
“일단··· 좀 늦은 것 같아 미안하네.”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감사인사의 타이밍이 말이야.”
장우영은 손에 쥐고 있던 커피 잔을 컵받침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강태한이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감사에 타이밍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마울 뿐이지.”
장우영은 지난 번 최아람과 관련하여 강태한에게 따로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최아람은 아직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두 발로 걸을 수 있었고, 다시 환한 웃음을 되찾았다.
그뿐인가.
그녀의 언니인 최보람 또한 다리의 감각을 되찾았고, 지금은 동생과 함께 재활훈련에 힘쓰고 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다만 부득이한 일로 해외에 있었기에, 그동안 강태한에게 직접 고맙다는 말을 건네지 못해 못내 마음이 불편했던 장우영이다.
“어쨌든··· 나로선 자네한테 빚을 하나 진 셈이지.”
나지막하게 말하는 장우영의 한 마디.
강태한은 굳이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들고 있던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반쯤 은퇴한 몸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도록 하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달라.
지인들 사이에서 으레 주고받는 흔한 말이었지만, 장우영 회장이 말하는 거기에는 무게감이 달랐다. 그는 애당초 좀처럼 빈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며,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딱히 원하는 게 없다면야, 그냥 으레 주고받는 흔한 말처럼 흐지부지 되겠지만··· 강태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언제가 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습니다만.”
그는 한 모금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안마원의 체인점을 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찾아오는 손님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말이죠.”
“흐음··· 하긴, 그럴만하군.”
잠시 머릿속으로 검토를 해본 장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천마안마의 상황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선택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제가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말입니다.”
황 실장이 사업적인 부분에서 상당한 경험과 능력을 보유한 인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개인이 전부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강태한은 이쪽에 인맥이 그리 넓지 않다. 다른 사람을 구해야하거나 조언이 필요해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혹시 필요한 때가 되면, 회장님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좀 받고 싶습니다만.”
지금 그에게는, 대한민국에서 재계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 전 회장의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