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안마하신다 125화 >
“근데, 너는 굳이 왜 여기 나와 있냐?”
두 사람이 테라스의 난간에 나란히 서있던 와중.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최성현이 물었다.
“난 선수들 보려고 있는 건데··· 넌 딱히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최성현은 에버튼FC의 매 경기를 챙겨보는 팬이다. 비록 3층 높이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것이긴 해도, 선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볼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강태한은 에버튼의 팬도 아니고, 본인 입으로 선수들 얼굴은 모르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것치고 강태한은 아까 전부터 계속, 최성현과 같이 테라스의 난간에 서서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뭐 그야. 일단 손님들 얼굴 정도는 봐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해서.”
최성현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차근차근 선수들의 모습을, 한 명 한 명 살펴보고 있는 강태한. 허나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흐음··· 일단 딱히 심각한 증세는 없는 것 같군.’
미리 선수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함.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기감으로 다시 한 번 전체적인 상태를 훑어본다.
물론 가까이에서 확인하는 것보단 아무래도 알 수 있는 내용도 적고, 세밀한 부분까진 알기 힘들지만··· 그래도 몸 상태가 건강한지, 문제가 있다면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지 정도는 얼추 파악할 수 있다.
오늘의 안마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말하자면 단체손님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한하에 출장을 나가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때보다도 좀 더 시간이 빠듯하다.
그렇기에 미리 얼마나 걸릴 지 가늠을 해두는 것.
‘이 정도면 뭐···’
대충 견적을 뽑아낸 강태한은, 할 만하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운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다들 몸에 피로가 상당히 누적되어있긴 하지만··· 당장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든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사람은 딱히 없어보였으니까.
물론 처음 생각했던 대로 강태한 혼자 했다면 시간이 꽤 빠듯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오··· 생각보다 그럴듯하게 꾸며놨네요?”
“이야, 이런 데서 안마를 다 해보네.”
때마침 홀 안으로 들어오는 김성훈과 황태진.
처음 계획은 강태한 혼자서 안마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다 최성현이 자진해서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어젯밤 두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들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던 것.
‘원래는 휴가 날인데도 말이지.’
휴가 날 일을 시키는 사장이라니. 그야말로 악역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름 배려를 했던 부분인데··· 아무래도 쓸 데 없는 배려였던 모양이다.
전날, 강태한에게 찾아왔을 때 ‘저희 그렇게 의리 없는 놈들 아닙니다.’라며, 두 사람 모두 은근하게 섭섭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 분 다, 아침부터 나와주셔서 고마워요.”
“에이! 그런 말 마십쇼, 원장님.”
“애초에 원장님 덕분에 전용기까지 타본 건데요.”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젓는 두 사람.
이렇게 장인코스 세 명의 손이 더해졌다.
“근데 저희는 구체적으로 뭘하면 되나요?”
“음··· 일단 제가 먼저 상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할 거고요, 그 다음에 두 분은 마무리 작업만 해주시면 돼요.”
따로 문제가 있거나 혈도에 이상이 있는 부분들은 강태한이 직접 손을 보고, 이후에 비교적 단순작업이 되는 마무리 단계는 장인코스의 세 명이 맡는다.
안마의 분업화라고 할까.
물론 마무리라해도 근육과 관절 정도는 다룰 수 있어야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이 필요하지만···
장인코스를 담당하는 이 세 명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동안 강태한이 가르치고 지켜봐온 게 있었으니까.
“따로 더 준비할 건 없나요?”
“딱히 없을 것 같네요. 사실 저희 손이랑 침대만 있으면 충분하기도 하고.”
손님이 편하게 누워있을 수 있는 자리와 안마사.
정말 최소한의 조건이긴 하지만,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안마는 못할 것도 없다. 강태한은 빙긋 미소를 짓고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자, 빨리 끝내고 다시 휴가로 복귀하자고요.”
“하하, 좋습니다!”
“시켜만 주십쇼.”
강태한의 말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어? 어··· 오케이!”
한편, 그때까지 테라스에 있다가 뒤늦게 홀로 되돌아온 최성현은, 구령을 내지르듯 눈치껏 힘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 * *
한편, 리조트 호텔의 로비에선.
“자, 잠깐 말 좀 들어봐.”
짝, 짝.
에버튼FC의 선수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손뼉을 쳐서 주목을 끌고는, 안내를 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마사지를 받으러 오긴 했지만, 다 같이 모여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어. 그리고 여기에는 꽤 많은 시설들이 준비되어있지.”
풍경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 따스한 온수로 채워진 수영장, 쾌적한 피트니스 센터··· 등등. 스텝은 대표적인 시설들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놀다가 와도 된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지. 기왕 마사지로 릴렉스하러 온 거, 답답하게 있지 말고 지금부터 릴렉스하자 이거야.”
스텝은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호출이 들어가면 바로 올 수 있게 너무 멀리가진 마. 그런 의미에서 골프 치는 건 금지야. 그리고 호출은 각자 핸드폰으로 연락할 거다.”
“혹시 호출을 못 들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 사람은 마사지 못 받고 돌아가는 거지, 뭐. 한국으로 가서 따로 받고 오든가.”
그 말에 선수 몇 명은 본인의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무음이나 진동으로 되어있지는 않은지 한 번씩 확인을 하고 벨소리를 키워놓았다.
“어쨌거나, 다들 이따가 보자고.”
남자는 그러고 나서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넌 어쩔래?”
“···난 일단 방으로 가서 좀 누워있을래.”
“바트, 내가 그래서 밤새지 말고 오랬지?”
“난 오랜만에 숲길이나 좀 걸어야겠다.”
그걸 기점으로 모여 있던 선수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는 수영장에, 누구는 방의 침대에, 누구는 산책로에···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까.
아무도 없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혼자 런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는 한 선수가 있었다.
“헉, 헉.”
에버튼FC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이보르 깁슨.
그는 다른 곳에 들르는 일 없이 곧바로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원래 매일 해왔던 아침 훈련이 이 마사지 일정으로 인해 스킵되었기 때문.
물론 아침훈련이라 해도 간단한 몸 풀기 과정이지만, 어쨌거나 그에겐 하루를 구성하는 루틴 중에 하나였고, 지금 이렇게 뛰고 있는 건 자신 나름대로의 보충이라 할 수 있었다.
“후우우···”
성실하기 짝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허나 이보르에겐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예전에 비해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진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의 주장은 대부분 경험이 많고 팀에 오래 머무른 선수들이 맡게 되며, 자연스레 나이가 많은 선수가 뽑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보르의 나이 또한 적지 않은 편이다.
은퇴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그렇다보니 신체능력은 점점 떨어져가고, 본인 또한 시즌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이를 절절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점점 녹이 슬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할까.
그러니, 그에게 있어 훈련은 더 성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다. 이렇게 트레이닝이라도 꾸준히 해야 겨우 현상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르겠군.’
솔직히 말해, 자기가 활동하는 동안 에버튼FC는 그리 좋은 팀이 아니었다. 그가 팀에 입단하기 전부터 약팀이었고, 그 흐름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고드윈이 들어오고, 강주완이 들어오면서 팀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가, 최근에 와서는 메이저급 클럽들과도 충분히 붙어볼만한 전력이 되었다.
아마 이 라인업으로 활동하는 몇 년 동안이, 에버튼이라는 팀의 새로운 전성기가 될 것이다. 이보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만 더 이 팀에서 뛰고 싶다.
자기 실력은 이제 하강기에 접어든지 오래고, 경기를 뛰는 와중에도 숨이 벅차는 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래도 이 팀의 전성기에 함께 뛰고 싶다.
자기가 아직 현역으로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그게 에버튼의 주장이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응원한 팀이 에버튼이었던 팬으로서의··· 작은 욕심이었다.
‘···그래도 굳이 분위기를 초칠 필요는 없었는데.’
그렇게 한참 런닝을 뛰고 난 후.
이보르는 벤치에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전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자신을 돌이켰다.
어쨌거나 오늘의 마사지는 다른 선수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일이다. 설령 자신의 생각대로 마사지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그 자체가 동료들에겐 엔터테인먼트이자 릴렉스의 효과를 줄 터였다.
주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할까.
아무래도 요즘 들어 자기 고민에 빠지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른 선수들의 입장이나 의견을 헤아리는 데에 소홀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펍에서 맥주라도 한 잔씩 돌려야··· 음?’
그렇게 자기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도중.
런닝머신에 거치해뒀던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으러 오라는 호출이었다.
“···일단은 받으러 가볼까.”
고드윈이 말했던 그런 극적인 효과들을 기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긴장을 풀어주는 릴렉스 정도는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이보르는 땀에 젖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샤워실로 향했다.
* * *
“여기, 마무리 좀 부탁드려요.”
“예, 원장님.”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떼어내며 말하는 강태한.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황태진이 대답하며 종종걸음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기랑 여기, 뭉쳐있는 부분마저 풀어주시고···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허리부터 시작해서 목 부근에서 마무리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각 지점들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리는 강태한.
구체적인 내용은 딱히 없었지만, 황태진은 전부 알아들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으허어어억···”
“후우, 후우우우.”
강태한이 먼저 손을 보고.
장인코스의 세 사람이 그 뒤를 이어받은 다음.
안마가 끝나고 나면, 다시 강태한이 찾아가 깊이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수혈을 짚어준다.
일련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시스템.
강태한이 예상한 대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고, 홀에 임시로 세워진 칸막이 사이사이에서는 안마를 받는 선수들의 신음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원장님.”
그때, 대기하고 있던 최성현이 강태한을 불렀다.
“다음 손님이 오셨는데요.”
업무 중인만큼 평소와 다르게 존칭을 사용하는 최성현. 그러면서도 입술은 아까부터 계속 씰룩거리고 있는 것이, 그가 지금 얼마나 기분이 좋은 지를 대강 보여주고 있었다.
‘신났구만.’
에버튼의 팬인만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
강태한은 피식 실소를 터트린 다음, 천천히 최성현이 가리킨 칸막이 쪽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그곳에 누워있는 선수는 이보르 깁슨.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이보르의 말에, 강태한은 싱긋 웃으며 마주 인사를 건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보르는 얌전히 침대에 정자세로 누운 채로 말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강태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사지를 받아보시는 게 처음이신가보네요.”
“···예, 맞습니다.”
그걸 바로 알 수 있는 건가?
과연, 뭔가 다르긴 다른 건가. 이보르는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야··· 마사지를 받아야하는데 정자세로 누워계시니까요. 좀 엎드려주시겠습니까.”
“···아하.”
듣고 보니 그렇다.
이보르가 머쓱한 표정으로 몸을 뒤집자, 강태한은 천천히 다가와 그의 등 위에 손을 올렸다.
“흐음···”
가볍게 기감을 펼쳐 내부를 확인하는 강태한.
대강적인 건 아까 미리 훑어놨었고, 지금은 이상이 있어보이던 곳들을 중점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몇 초 정도 손바닥을 올려놨다가 떼어낸 수준.
‘···뭐지.’
허나 그 잠깐 사이에도, 이보르에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온수가 흐르는 것 같은 따스한 느낌이, 자기 몸 안 쪽을 가볍게 훑고 지나간 것이다.
‘···에이, 설마.’
그의 머릿속에 순간 떠오른 개념은, 포스(Force).
어렸을 적 열성적인 수준으로 좋아했던 영화에 나오는 신비로운 힘이다. 허나 그게 현실에 있을 리가 없으므로, 이보르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요즘 들어 숨이 벅찰 때가 자주 있었겠네요?”
“예? ···예.”
이보르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감하고 있는 피지컬 감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 닿는 부분은, 지구력과 폐활량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는 방금 피트니스 센터에서 런닝머신만 뛰었던 것처럼, 평소에도 유산소 운동을 중심으로 트레이닝 메뉴를 짜고 있었다.
“숨이 차면 몸의 힘도 같이 쭉 빠지고.”
“···맞아요.”
“식단도 채식 위주로 바꿔가고 있었던 거 같은데··· 뭐 덕분에 몸은 좀 가벼워졌겠지만, 힘도 같이 빠지니 큰 성과는 없었겠네요.”
···이 사람, 대체 뭐지?
이보르는 엎드려있던 상체를 살짝 일으키고, 자기도 모르게 강태한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냥 좀 젊고 건강한 청년으로 보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괜히 비범한 인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