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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03화 (103/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03화 >

고드윈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그는 마당의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졌던 적이 있다.

물론 아직까지 잘 살아있는 걸 보면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떨어진 높이가 꽤 높기도 했거니와, 당시 근처에 있었던 아버지의 말로는 쿵! 소리가 났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실제로 한동안 머리가 나빠진 것 같아서 걱정도 많이 했었다며 지금도 아버지가 종종 꺼내놓곤 하는 이야기.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족이나 친한 지인 몇 명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다.

굳이 말하고 다닐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생각해 공적인 자리에서는 단 한 번도 입에 담았던 적이 없는 것이다.

‘뭐지?’

만약 이곳이 영국이었다고 해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이 이야기를 했다면 신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헌데 여기는 외국, 그것도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끝에 위치해있는 한국이 아닌가. 고드윈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주완이 이야기한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건 아직 강주완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다. 애당초 주완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원래 알고 있었던 정보가 아니라···

‘포, 포스의 힘?’

방금 뭔가를 통해서 직접 알아낸 정보라는 것.

고드윈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강태한을 올려보았다.

“알아내는 방법이 다 있지.”

“오, 마이 갓···”

설마 했는데 역시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하는 저 목소리, 그 여유로운 모습에 고드윈은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역시 주완이 거짓말을 한 거였어.’

강주완이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고드윈은 그에게 ‘오리엔탈 마셜아츠 마스터’에게 마사지를 받고 온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었고, 강주완은 ‘그런 건 영화 속에 밖에 없다’라고 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강주완이 거짓말쟁이라는 걸 확신했다.

없긴 왜 없는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데.

아직 본격적인 뭔가가 시작되진 않은 모양이었지만, 방금 느꼈던 심상치 않은 기운과 과거를 읽어내는 저 신비한 능력만으로도 그의 비범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정말 놀랍···?”

하지만 고드윈이 이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경험에 관한 감상을 입에 담으려던 찰나.

“흐음.”

어느 순간부터인지 강태한의 손이 그의 허리춤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있었고.

“오옥, 오오오오옥!”

그 두 손이 척추를 따라 오르며 지압을 시작한 순간, 고드윈은 감탄으로 동그랗게 벌어져있던 입 모양 그대로 비명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 * *

‘몸 자체는 굉장히 탄탄한데 말이지.’

한편, 강태한은 그의 척추를 따라 혈자리들을 지압하는 동시에 재차 그의 몸 상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고드윈은 에버튼을 대표하는 선수 중에 한 명.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훈련과 노력을 거듭해왔고, 그 흔적들은 고스란히 몸에 남아 상당한 수준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르는 강태한이, 신체의 상태를 훑어본 것만으로도 그의 노력과 실력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벼려진 스포츠 선수의 몸.

다만 거기에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확실히 이쪽 혈도의 흐름이 좋지 않아.’

척추를 따라올라 뒷덜미의 혈을 짚으며, 다시 한 번 문제점을 확인한 강태한은 애매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위치는 천주(天柱)혈.

하늘의 기둥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상단전을 받쳐드는 역할을 하며, 그에 따라 상단전과 이어진 혈도 중 대다수, 특히 척추와 연결된 혈도들은 전부 이곳을 거쳐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남자는 바로 이곳에 문제가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주변의 혈도가 살짝 비틀려있어 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던 것이다.

남아있는 흔적이나 정황을 보아한데, 어렸을 적 이 부근에 큰 충격을 받으며 혈도가 한 번 크게 뒤집어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어릴 적에는 자생력이 워낙 뛰어나기도 하고, 이 인간 자체가 타고난 원기의 양이 비범한 덕분에 별다른 조치 없이 자체적으로 회복을 마친 모양.

‘그것 자체는 다행인 일이다만.’

자칫하면 죽을 뻔했던 순간을 넘긴 것이고, 실제로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그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몸에서 급하게 회복시키느라 구조가 미세하게 왜곡되거나 휘어진 채 자리를 잡은 혈이 몇 군데 있었던 것이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이 이 천주혈.

물론 그 왜곡의 정도가 그리 심하진 않지만, 상단전의 가장 큰 통로인 만큼 기의 흐름에 어느 정도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아마 반응속도에 미세한 영향이 있었겠지.’

일반인이라면 생활에 아무 이상도 없는 수준이지만.

이 손님은 축구선수라고 하지 않았는가?

찰나의 움직임만으로도 게임의 흐름이 뒤집힐 수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충분히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말하자면, 자체적으로 걸림돌이 하나 있는 셈이라고 할까··· 원래 낼 수 있는 실력과 재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뭐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그만이지.’

강태한은 그의 허리부근에 손을 올려놓고, 척추의 명문(命門)혈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하단전을 함께 자극하기 시작했다.

고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뭔가가 비틀려있으면, 피면 그만이다.

아예 엉켜있거나 틀어 막힌 수준까지는 아니기에, 기의 흐름을 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물을 세게 틀면 꼬여있던 호스가 스르륵 풀리는 것처럼 말이다.

척추부터 시작하여 주요 혈자리를 뚫음으로서 통로를 확장시키고, 명문혈을 활성화시켜 체내를 순환하는 생기의 양을 증대시킨다.

여기에 틈틈이 하단전을 자극시켜 펌프의 역할을 수행. 그에 따라 기의 흐름에 서서히 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탁기 또한 자연스레 빠져나오게 된다.

“끄호호호, 왓 더, 왓?!”

다만, 이 일련의 과정들이 고드윈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자극이었다.

그가 여태동안 영국에서 받아 본 마사지들은 아주 부드럽게, 천천히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과격한 마사지라니!

온몸의 혈자리를 뚫어내는 강태한의 엄지손가락이, 지금 그에게는 마치 송곳처럼 느껴졌다.

“아픕니다, 많이 아파요!”

“아직은 안 아팠을 텐데?”

“···예? 워어어억!”

두두두둑.

강태한이 등과 꼬리뼈에 손을 올리고 양쪽으로 당기자, 몸이 주욱 펴지는 동시에 거기서 들리면 안 될 것 같은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강렬한 자극.

허나 강태한의 손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마치 이럴 시간도 없다는 듯이 몸 곳곳을 지압하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노오우, 노오오오!”

고드윈은 척추를 타고 온몸에서 흘러들어오는 감각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그동안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감각. 한국 사람들은 흔히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그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묻는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단지 이 낯선 감각과 함께 동반되는 고통에, 고드윈은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흠. 안마를 받기가 영 힘든 모양인데.”

그러던 와중, 안마를 하던 강태한이 손을 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좀 도와주도록 할까?”

“아, 드디어!”

이제야 강도를 좀 낮춰주는구나.

고드윈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강태한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목 아래쪽의 혈자리 하나를 쿡, 하고 짚었다.

“···왓 헤픈?”

그와 동시에 온몸의 힘이 풀린 고드윈.

마치 컴퓨터의 전원을 끈 것처럼 스르륵, 하고 늘어지더니,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당황한 고드윈이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이러면 더 이상 몸부림은 치지 않겠지.”

“······”

이어진 강태한의 말에, 고드윈은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만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 * *

“···허억!”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고드윈은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건 대체···”

그리고 그는 캄캄한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본인이 잠들어있었던 것 자체에 놀란 듯한 반응.

그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자기가 언제 잠에 들었던 건지 기억이 애매했다.

‘급한 일은 없는가?’

한참 정신이 없을 때 마스터가 건넨 말 한 마디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 허나 이마저도 현실에서 들은 것인지, 꿈에서 들은 것인지 애매했다.

“일어나셨군요.”

그때쯤, 직원 한 명이 조용히 들어와 조명등을 켜더니,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거기엔 차 한 잔과 약간의 다과가 담겨있었다.

“천천히 쉬시다가 나오시면 됩니다.”

“···Okay.”

직원은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 다시 방을 나섰다.

한국말이었기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시고 나오라는 뜻이겠지. 고드윈은 손을 뻗어 조심스레 찻잔을 들어올렸다.

“···어라.”

그저 찻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일 뿐임에도,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그 상태로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찻잔을 내려놓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뭔가 달라졌어.”

전체적으로 몸이 가볍고, 근육들의 상태도 훨씬 부드럽다. 사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생각보다 많은 피로가 쌓여있었는데, 지금은 찌뿌둥한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게다가 세밀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뭐라 딱 짚어 말하긴 힘들고, 이게 정말인가 싶기도 한데··· 몸의 감각이, 예전보다 날카롭고 더 빠르게 반응하는 느낌이다.

“하하··· 기대한 거 이상이잖아?”

강주완에게 말하던 오리엔탈 마스터. 당연한 말이지만, 고드윈도 반쯤은 농담으로 꺼냈던 말이다.

한국까지 날아온 것도 실제 효과를 기대했다기보다는 호기심과 흥미의 비중이 더 컸다.

헌데 이 정도의 효과라니.

단순히 몸의 컨디션뿐만 아니라 감각마저도 예리하게 바꿔놓는 솜씨에, 고드윈은 그저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오랜 세월 둔해져있던 반응속도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았을 뿐이지만··· 고드윈의 입장에서는 ‘더 좋아진 것’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흥분.

이에 대한 감사도 하고 싶고, 안마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좀 더 나눠보고 싶다. 마음이 앞서나간 고드윈은 찻잔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밖으로 나섰다···만.

일은 고드윈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네? 퇴근하셨다고요?”

“예. 지금 가게에는 안 계십니다.”

황 실장의 말에 고드윈은 눈에 띄게 시무룩한 티를 냈다. 이 감상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은데, 그럴 길이 없어진 탓이다.

“크흠, 그건 그렇고··· 애버튼의 고드윈 선수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황 실장은 다른 고객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상체를 가까이 숙인 다음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인 한 장만···”

그리고 몸 안쪽에서 슬며시 내미는 사인펜과 종이.

누가 보면 밀매라도 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 * *

“조심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가게를 나오는 고드윈.

안 그래도 마음에 담겨있는 감상을 표출하고 싶었던 참이었기에, 그는 흔쾌히 사인 한 장을 남기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래도 너무 아쉽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 번 더 오리엔탈 마스터와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토록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아무런 표현도, 감사도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있을 이유는 없다.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좀 더 정확히는, 예정된 쾌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신기할 정도로 개운해져있는 동시에, 배가 텅 비어있는 것 같은 공복 상태가 될 거야.]

강주완이 적어준 내용의 일부.

그 말대로, 안마를 받고 방금 일어난 고드윈은 뱃속이 휑하게 비어있는 공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쯤 되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뭘 먹어도 맛있을 거라고.

이 상태라면 학교 식당에 가끔 나오던 오트밀조차도 달게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근데 여기에 삼겹살이 들어온다?

기름기와 육즙이 잘잘 흐르는 도톰한 돼지고기가?

“이건 맛있음 확정이다.”

예전에 한 번 강주완을 따라가 한식당에서 맛봤던 그 맛을 떠올리며, 고드윈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 근처에 고기집이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아, 저기 있군.’

건물 밖으로 나온 고드윈은 금방 목표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주완이 말하길, 가게 안에 이상한 굴뚝이 많이 달려있는 집이면 99퍼센트 고기집이라고 말했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직접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테이블마다 굴뚝이 하나씩 내려와 있는 것이다.

“어서 오세요.”

곧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간 고드윈.

한참 저녁때라 그런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빠 보이는 걸.’

다만 아예 한적한 식당보다는 바쁜 식당이 좋다. 그만큼 손님들이 많다는 거고, 그만큼 맛도 좋다는 뜻이니까.

그는 기대감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빈자리를 찾아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

근처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놀란 눈으로 고드윈을 가리키며 감탄사를 터트렸고.

“오!”

거의 그와 동시에, 고드윈은 그 남자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사람을 쳐다보고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에버튼의 고드윈 선수를 알아본 축구 팬 최성현.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아있는 오리엔탈 마스터, 강태한을 알아본 고드윈. 보고 싶었던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에, 두 사람의 얼굴엔 화색이 가득했다.

“···뭔데?”

반면, 한참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고 있던 강태한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양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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